소설리스트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50화 (50/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50화

16. 미녀와 야수(8)

계속 같이 있었는데 언제 제임스를 찾아볼 시간이 있었을까?

제이든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자 카티야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보일 듯 말 듯 높은 하늘에서 선회하고 있는 솔개를 보고 제이든은 납득했다.

자신은 아실리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라파엘은 토끼의 말을 알아듣는다. 솔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매의 눈’은 아니어도 ‘솔개의 눈’이라면 사람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겠지.

‘익명의 제보자’, 사실은 ‘익명의 제보조’로부터 제보를 받은 치안대원들이 제임스를 찾아낸 곳은 베로데인 외곽의 어느 가게에 딸린 창고였다.

가게는 모자, 외투, 장갑 등 모피에 모조 보석을 장식한 옷과 장신구 등을 만드는 공방이었는데 폐업해서 몇 달 전부터 비어 있었고 창고에는…….

“여기 좀 봐, 표범이 있다!”

사슴, 늑대, 여우 등의 박제 틈에 표범의 박제도 한 마리 있었다.

옅은 미색을 띤 표범 박제의 몸통을 쓸어 본 브루스가 손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은빛 가루가 살짝 묻어났다.

“엽사라더니, 박제 기술자였나?”

선임 치안대원이 박제들 사이에 웅크리고 있다가 대원들에게 끌려나가는 제임스를 보며 말했다.

“엽사 중에 사냥한 동물을 직접 박제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저 제임스라는 자는 손이 여물고 솜씨가 좋았던 모양입니다. 가게 주인과 연락이 닿았는데, 예전에 전문 엽사가 되기 전 이 가게에서 일했답니다. 그때 열쇠를 빼돌려 놨던가 봐요. 모피나 장신구용 보석을 섬세하게 잘 다뤄서 그자가 만든 제품이 인기가 꽤 좋았다는데요.”

치안대로 이송된 제임스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겁을 먹은 듯 떨고 있었다.

“이것 봐, 다 닦아냈다고 생각하겠지만 감식반에서 잔존 염료와 흙을 채집했다고. 아직 검사 결과가 안 나왔지만 이 표범 박제의 발톱 사이에서 나온 흙 표본이 다린토스 산의 흙이라는 데에 내가 치안대원 뱃지를 걸지.”

브루스가 제임스를 다그치는 동안 로키 페리헌트가 치안대로 소환되어 왔으나 그는 성을 내면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술집에서 안면을 텄고 괜찮은 엽사라는 말을 들어서 고용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허접한 증거를 가지고 사람을 몰아세워도 됩니까? 저도 변호사를 세울 겁니다.”

그는 씩씩거리며 항변했다.

“내가 유산 2만 골드 때문에 숙부를 죽이겠어요? 예, 뭐 저는 돈도 없고 그렇지만 숙부가 살아 계시는 편이 저한테는 더 좋다고요. 계속 내 뒤를 봐 주시는데.”

로키는 치안대에 와서도 기세가 등등했다.

감식반의 부탁을 받고 뭔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기 위해 치안대의 사무실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이든은 손에 턱을 고인 채 그를 바라보았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부모가 물려준 유산과 숙부의 후원으로 살아가는 처지에 한국 돈 2억에 가까운 유산이라면 절대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도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이 많은데.

하지만 로키의 말대로 굳이 이 시점에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있을까? 그의 숙부는 로키를 아껴서 많은 지원을 해 줬던 듯한데.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 제이든은 벌떡 일어섰다.

아까 병원에서 받아온 투시 광선의 은판을 꺼낸 그는 은판을 다시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제이든은 브루스를 불러서 방을 하나 비워 달라고 부탁했다.

“그림을 해체할 예정입니다. 두 분 정도 입회를 부탁드립니다.”

그 소리를 들은 로키가 펄쩍 뛰었다.

“그림을 해체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감정을 끝냈잖아요?”

“그림에는 전혀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해체한다면서 어떻게 손상이 안 가? 나한테는 소중한 그림인데 용납할 수 없어요.”

“아직 유산 상속이 되지 않았으니 그림은 로키 씨의 자산이 아니지 않나요? 저는 고인의 감정 의뢰를 끝까지 완료할 겁니다.”

“아무것도 찾을 게 없을 텐데 쓸데없는 일 하는 거요.”

제이든은 치안대에서 비워 준 사무실 하나에 그림을 가지고 들어갔고 브루스와 또 한 명의 치안대원이 입회하러 들어왔다.

카티야가 아실리와 포이를 데리고 따라 들어와서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았다.

“이런 데서 그림을 해체해도 됩니까? 뭐 전문 설비가 있는 곳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지금 하려고 하는 건 여기서 해도 되는 겁니다.”

제이든은 배낭에서 부드러운 벨벳 천을 꺼내 탁자 위에 깐 뒤 그림을 올려놓았다.

드라이버와 도구 몇 가지를 꺼낸 후 조심스럽게 그림을, 엄밀히 말하면 액자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 제이든이 들어갔던 방의 문이 열렸다.

브루스와 또 한 명의 치안대원이 그림을 가지고 나왔다. 겉보기에는 들어갈 때와 똑같아 보였다.

“그것 봐요. 아무것도 못 찾았지? 이제 내가 가져가도 되죠?”

로키가 반색을 하며 그림 앞에 다가서는데 브루스가 치안대장에게 가서 몇 마디 속삭이더니 돌아와서 로키에게 바짝 붙어섰다.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온 제이든이 말했다.

“솜씨가 정말 좋더군요. 제임스 씨가 한 거겠죠?”

“뭐? 뭐가…….”

제이든은 손에 들고 나온 주머니를 흔들어 보였다.

“다이아몬드 말입니다. 상당한 양인데요? 감쪽같이 속을 뻔했어요.”

로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제임스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빌어먹을 감정사 자식…….”

로키가 벌떡 일어나서 구둣발을 쾅 굴렀다.

“비켜!”

누군가 제이든을 확 잡아당겼고 금방까지 제이든이 서 있던 자리에 뭔가 핑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가슴 높이의 벽에 푹 박혀서 끄트머리를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은 세모꼴의 날카로운 쇳조각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제이든은 자신을 잡아당긴 카티야에게 인사를 했고 치안대원들에게 제압당한 로키는 끌려가면서도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 *

“허, 이거! 깊이도 박혔네!”

선임 치안대원이 벽에 박힌 쇳조각을 보며 감탄했다.

“장치도 정묘하고 겨냥도 정확하네요. 연습을 이만저만 하지 않았겠는데?”

표창처럼 만들어진 조각 칼날은 로키의 구두코에 장착되어 있었다. 뒤축을 굴러서 발사할 수 있게 된 장치였다.

“그때 용케 피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심장을 꿰뚫렸을 뻔했어요. 천만다행이에요. 제이든 씨.”

브루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의 다리에 박혔던 것도 같은 거죠?”

“맞아요.”

“왜 회수를 안 했을까요?”

“그게 말이죠.”

로키는 독해서 끝내 입을 다물었지만 제임스 쪽은 기가 좀 더 약한 편인지 자백하고 형이라도 덜으라고 다그치는 치안대원들에게 결국 입을 열었다.

말의 다리에 깊이 박혀 버린 칼날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수의사가 검사한다면 알아차릴 확률이 있었다.

수술도구 없이는 빼내기도 어려웠기에 로키와 제임스는 원래 말을 같이 벼랑에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경황이 없는 틈을 타서 칼날만 회수할 작정이었는데 흥분한 말이 곁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잭 페리헌트는 로키와 함께 다닌 일이 많아서 그의 말도 로키에게 익숙했다.

평소에 로키도 잘 따르는 말이었기에 벼랑에 몰아넣거나 안 되면 나중에 칼날을 회수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로키와 제임스가 주인을 해치는 것을 본 말은 그들이 옆에만 가도 흥분하면서 발을 구르고 거품을 물었다.

결국 로키와 제임스는 말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왔고 말은 주인이 떨어진 자리를 배회하다가 나중에 로버트에게 발견되었다.

“페리헌트 가의 마부에게 들으니까 로키가 마구간에 두어 번 왔었다네. 그 칼날을 회수할 생각이었겠지만 말이 로키를 밟아 죽일 기세로 날뛰어서 실패했다는군. 의심을 살까 봐 더 오지 못했고 말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었으니 그냥 내버려 뒀다가 나중에 처리할 생각이었나 봐.”

선임 치안대원의 말에 브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든 씨가 말을 조사해 보라고 한 게 신의 한 수예요.”

그건 사실 우리 아실리가 알려 준 거지만요.

제이든은 아실리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실리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잠든 포이를 끼고 그루밍을 해 주고 있었다.

“이런 거 보면 참, 짐승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에요. 말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로버트 씨보다 먼저 고발했겠네요.”

브루스의 말에 다들 공감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고발했어.

“?”

카티야의 목소리가 들려서 제이든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왜 그래요, 제이든 씨?”

브루스가 의아한 듯 제이든을 보았다.

“아니, 아닙니다.”

제이든은 카티야 쪽을 다시 힐끗 보았다.

그녀는 아실리와 포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을 뿐이었지만 한 번 경험이 있다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밤의 경매 때 레노아가 했던 전음과 비슷한 거였다. 소리를 내지 않고 머릿속으로 바로 전달하는 말.

카티야가 다시 한번 그를 살짝 쳐다보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말이 전달되었다.

-영리한 말이었어. 나한테 다 말했어.

제이든이 카티야의 말을 잠시 곱씹어 보는데 선임 치안대원이 그를 툭 쳤다.

“그런데 제이든 씨, 그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찾아낸 건가요? 투시 광선으로도 못 찾은 걸.”

“아, 정말 공들여서 숨겼더라고요.”

액자에 박혀 있던 수정 장식들은 앞에서 보았을 때 모두 저품질의 장식용 크리스탈이었다. 그러나 액자의 앞면과 뒷면을 분리해서 크리스탈을 빼내자 크리스탈 뒤쪽마다 다이아가 하나씩 끼워져 있었다.

“투시 광선으로는 크리스탈의 모양만 보이니까 뒤쪽이 크리스탈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제임스가 솜씨 좋은 장신구 장인이었다는 말을 듣고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어 크리스탈의 뒤쪽을 확인해 본 것이다.

“크리스탈을 다이아의 형태와 거의 비슷하게 세공해서 하나하나 끼웠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눈치채기 어렵겠더라고요. 반은 크리스탈이고 반은 다이아라니.”

“제이든 씨 덕분에 미제 사건이 하나 풀려서 시카모르 치안대에서 좋아하겠습니다.”

선임 치안대원이 제이든의 어깨를 두드렸다.

“삼 년 전에 시카모르 시의 보석상이 털린 일이 있었잖습니까. 2인조 도둑이 들었지요.”

“아, 그때 그 도둑이!”

“맞아요. 로키와 제임스였던 겁니다. 도박장에서 만났는데 제임스는 보석에 대해 잘 아는 편이었고 로키는 행동력이 있었지요.”

전문 절도범이 아니었던지라 장물 처리가 어려웠던 그들은 비교적 저렴한 보석들은 제임스가 가공해 형태를 바꿔서 팔았지만 다이아몬드는 몇 년 묵히기로 했다.

혹시 수사망에 걸릴까 싶어 자기들 집에는 두지 못하고 페리헌트의 그림에 감추었던 것이다. 로키는 숙부를 구슬려서 그 그림을 준다는 약속을 받았고.

“그런데 잭 페리헌트가 감정사를 부르면서 불안해진 거군.”

“감정사들은 그림만 볼 테니 못 알아볼 거라는 자신은 있었지만 그래도 액자까지 뜯어보려는 엉뚱한 감정사가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실제로 여기 한 분 계시고 말이지.”

“아니, 저도 로버트 씨의 꿈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그리고 제임스가 장신구 가공을 했었다는 걸 몰랐다면 그림 감정만 했을 겁니다. 크리스탈 뒤쪽까지 볼 생각은 못 했을 거예요.”

벌써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올 무렵이었다.

브루스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럼 결국 표범은 없었던 건가 봐요. 베로데인의 흰 표범이 돌아온 줄 알고 설렜는데.”

“왜 굳이 그런 방식의 살인을 택한 걸까요?”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사냥꾼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보니.”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흰 표범 목격담을 처음 이야기한 것이 곡물 행상이 아니라고 한다.

제임스가 다니던 술집에서 어느 술꾼이 산을 넘다가 뭔가 허연 것을 봤는데 베로데인의 흰 표범 같다는 말을 했지만 워낙 만취 상태여서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로키가 그 이야기를 이용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제임스가 갖고 있는 표범 박제에 은빛 칠을 하고 혼자 산을 넘는 사람을 놀라게 할 생각을 했다. 거기에 곡물 행상인이 걸려들었고, 그 후 자신이 직접 한 번 더 목격담을 만들었다.

로키는 숙부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히 표범을 찾으러 산에 가자고 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이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로버트가 일어난 일을 그대로 본 듯한 꿈을 꾸지만 않았다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텐데.

“자, 다들 밤을 새워서 너무 피곤하죠? 이제 좀 쉽시다. 제이든 씨, 이 앞에 숙소를 잡아 놨으니 어서 가세요. 토끼는 아주 곤하게 자네요.”

아실리와 포이도 무척 피곤하겠다 싶어 제이든은 서둘러 일어섰다.

치안대 문을 나서려는데 브루스가 뒤에서 말했다.

“그런데, 표범이 원래 없었다면 카토 씨는 뭐에 놀란 거죠?”

“그러게 말야. 암튼 표범은 아닌 것 같아. 카토 씨가 차차 정신을 차리면 제대로 된 진술을 받을 수 있겠지.”

치안대원들의 이야기를 뒤로 흘리며 제이든은 저도 모르게 카티야를 쳐다봤다.

-왜, 뭐, 왜?

포이를 안고 나오던 카티야는 제이든의 눈길을 보자 입술을 삐죽 내밀며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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