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41화
14. 새로운 여행
마탑의 업무량이 많기도 하지만 마법사들이 워낙 자유분방하고 특이한 성격이 많다 보니 언제 나온다고 날짜를 말해 놓고도 이삼일 늦기가 일쑤인데, 이번엔 오히려 하루를 당겨서 이틀 만에 사람이 왔다.
“제가 마침 가까운 스노우타운에서 일을 보고 있었거든요.”
둥글둥글하니 후덕하게 생긴 중년 마법사는 조심스럽게 거울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원래는 문관국 마법 유물부에서도 사람이 나오는데, 이 거울은 여기서 해결이 될 만한 물건이 아니라 일단 마탑으로 이송할게요. 문관국과는 이송 후에 공조하도록 하지요.”
그는 거울을 신중하게 특별제작된 보관함에 넣은 뒤 그것을 다시 평범하게 생긴 배낭에 넣어 등에 메었다.
.로브나 뾰족모자 같은 것을 착용하지 않은 일상복 차림이라 그냥 간단한 소풍이라도 나온 이웃 아저씨처럼 보였다.
“검사가 끝나면 로스 감정사님께도 연락드릴게요. 사서함 쓰세요?”
“예. 여기 주소입니다.”
제이든은 사서함 주소를 건네 주며 물었다.
“그 거울의 저주, 풀 수 있을까요?”
“음…….”
마법사는 잠깐 입을 다물고 머리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저주를 건 주술사가 누군지는 몰라도 실력이 대단한 어둠의 주술사예요. 센 왕조 후기는 주술의 수준이 무척 높았지요. 저는 서방 저주에 대해서는 공부를 많이 했지만 동방의 주술에는 그렇게까지 밝지 못해서 이 거울의 저주를 푸는 게 상당히 어렵겠다는 정도만 알 수 있지만요.”
그는 둥근 뺨을 부풀리며 웃어 보였다.
“마탑에는 동방 주술에 정통하신 분이 계시니까 풀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혹시 못 푼다 해도 진행 상황을 알려드릴게요.”
어린애처럼 포동포동한 손을 내밀어 플로렌스가 구운 과자를 집은 마법사는 과장되게 감탄했다.
“라벤더베리를 넣은 과자군요. 정말 맛있는데요. 르 미엘 과자점의 과자 못지않아요.”
르 미엘 과자점은 수도 카이에른에서 가장 유명한 과자점이다.
참고인으로 치안대에 동석했던 플로렌스가 볼을 붉히며 웃었다.
“감정사 총각이 야생 라벤더베리를 한 바구니나 가져다 주셔서 만들어 봤는데 치안대 오는 김에 가져왔어요.”
“맛도 맛이지만 모양도 너무 귀여워요. 혹시?”
마법사는 제이든의 옆에 있는 아실리와 어깨에 올라 앉아 있는 포이를 쳐다봤다.
“맞아요. 이 아이들이 모델이에요.”
플로렌스는 웃으면서 고양이 모양의 과자를 아실리에게, 토끼 모양의 과자를 포이에게 하나씩 주었다.
“진짜 귀엽네요. 곰돌이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것이 꼭 곰돌이를 닮은 마법사가 두둑한 배를 두들겨 보이는 바람에 제이든도 플로렌스도 웃음을 터뜨렸다.
“마법사님, 성함이 테오도르라고 하셨던가요?”
“예, 그런데 모두 테디라고 부른답니다.”
테오도르는 제이든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나저나 정말 놀랐습니다. 로스 감정사님은 사문도 거주지도 알려지지 않아서 다들 어느 은거 기인의 제자려니 하고 있었거든요.”
“…….”
“카이엔의 특성상 스스로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내력은 굳이 캐묻지 않는 게 관례라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추측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기 살고 계셨군요.”
“여기가 고향은 아닙니다. 원래는 외지 출신인데 몇 년 전 우연히 인연이 닿아서 저 위 산속에서 수련하게 된 거고요. 마을에는 가끔 내려옵니다. 지금은 일 때문에 다른 지방을 돌 때가 더 많아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플로렌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감정사 총각이 그렇게 유명한 감정사인가요?”
“그럼요. 아주 유명한 감정사랍니다. 도시에 나가면 사람들이 이분 감정 한 번 받아보려고 값비싼 유물을 싸들고 줄을 설 텐데요.”
“어머, 어떡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가게에 놓을 접시나 꽃병도 봐 달라고 하고 그랬는데.”
플로렌스가 울상을 하는 바람에 제이든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처음 만났을 때는 온전한 감정사도 아니었는데, 그때 아주머니랑 거울을 보는 바람에 제가 감정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걸요.”
“오 그랬나요?”
“예. 죽자고 수련하다가 가끔씩 마을 내려왔을 때 이 아주머니 빵 먹으면서 힘을 냈지요. 접시든 꽃병이든 얼마든지 봐 드릴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이번에 이 거울을 찾아낸 것도 아주머니 덕분이에요.”
“그건 맞습니다. 이 거울, 이번에 잡지 못했다면 세상에 돌아다니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더 잡아먹었을지 모르잖아요. 부인이 큰일 하셨어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하는 테디의 등에 멘 가방이 화가 난 듯 으르릉 울었다.
“어이쿠, 저는 빨리 가 봐야겠어요. 이 근처엔 포탈이 없어서 스노우타운까지는 치안대의 호송용 마차를 이용하기로 했어요. 로스 감정사님도 길 떠나시는 중인 듯한데 같이 가시겠어요?”
“아니요. 공무 수행 중이신데 제가 방해하면 안 되죠. 방향도 다르고요. 저는 삯마차를 빌리려고요.”
“그럼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로스 감정사님, 연락 드릴게요.”
인사를 마친 마법사 테디는 아빠곰 같은 몸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발걸음으로 치안대 쪽으로 사라졌다.
하긴 사람들이 잘 몰라 그렇지 곰은 원래 몸도 빠르고 머리도 영리한 동물이다.
순둥순둥 곰돌이처럼 어수룩해 보이는 저 마법사도 사실 만만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탑에서 저주받은 거울처럼 위험한 물건을 회수하는 사람으로 보내진 않았겠지.
테디의 뒤를 바라보던 제이든은 고개를 돌리고 플로렌스에게 인사를 했다.
“저희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번 일은 좀 먼 곳까지 다녀와야 해서 두어 달 걸릴 거 같아요. 궁금하실 테니 마탑에서 거울에 대한 연락을 받으면 비둘기를 보내겠습니다.”
“그래요. 정말 고마워요.”
아실리는 플로렌스의 손에 다정하게 머리를 비비며 인사를 했고, 포이는 제이든의 머리통에 얼굴을 숨긴 채 귀만 쫑긋쫑긋 까딱거리며 인사를 했다.
* * *
“포이! 피잇?”
“냐옹, 냐아옹.”
“피잉?”
“미야옹. 먀앙.”
대충 번역하자면 이렇다.
“저거 뭐양? 왜 빨개?”
-단풍이야. 가을에 나뭇잎이 물드는 거야. 예쁘지?
“저건?”
-그건 은행이야. 그래서 노랗지.
“일껏 마차를 빌렸는데 안에 아무도 안 타네.”
제이든은 말고삐를 잡은 채 킥킥거리며 웃었다.
레이크빌에서 베로데인까지 갈 삯마차를 빌렸다.
.보통 삯마차는 마부가 딸린 마차를 빌려서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마부가 마차를 몰고 출발지로 돌아가는데, 제이든의 경우처럼 마부 없이 마차만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
삯마차 회사의 지점이 있는 도시로 이동할 경우 지점에 마차를 반납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렌트카, 아니 렌트마차인 거지.’
제일 작은 소형 마차를 빌렸는데, 마차 안의 좌석에는 배낭만 타고 있다.
포이와 아실리는 둘 다 제이든이 타고 있는 마부석에 끼어 앉아 가는 중이었다.
토생 삼 개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포이가 이것도 궁금, 저것도 궁금해서 퐁퐁거리고 아실리가 참을성 있게 하나하나 대답해 주고 있었다.
“우리 아실리, 인내심도 좋지. 우리 포이는 아가라서 그런가 궁금한 것도 참 많네.”
제이든이 아실리를 내려다보자 아실리가 제이든의 허벅다리에 올려놓았던 턱을 들면서 야아옹 울었다.
-제이든은 뭐 포이랑 많이 달랐는 줄 알아? 처음 왔을 때 생각해 봐.
카이엔에 처음 떨어졌을 때 제이든은…….
“아실리, 저기 새 파는 가게야?”
-우편국이야.
“아실리, 이거 무슨 열매야?”
-라벤더베리, 아직 못 먹어. 좀 더 익어야 돼.
“실리, 주방에 냉장고가 없는데 식료품 보관을 어떻게 하지?”
-냉장고가 뭐야?
“차가운 온도를 유지해서 음식이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기구인데.”
-? 온도는 모르겠고 세시온이 보존마법을 걸어 놓은 찬장은 있어. 거기 넣으면 돼.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린 제이든의 얼굴이 빨개졌다.
“음, 그, 그래도 내가 포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어?”
아실리는 초록색 눈을 반달처럼 접으면서 제이든을 올려다보았다.
-흠,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은뎅.
수염이 살짝 떨리는 게 분명히 웃고 있다. 요놈의 고양이가 사람을 놀리네.
“푸르릉!”
마차를 끌던 말이 투레질을 했다. 설마 저 녀석도 웃는 건 아니겠지.
“점심 먹고 가자.”
마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기에 알맞은 빈터가 나와서 제이든은 도로에서 마차를 빼서 빈터 안쪽 나무 밑으로 몰았다.
안전하게 주차(?)를 마친 후 마차에서 말을 풀어 쉬게 해 주었다. 고삐줄을 길게 해서 마차에 느슨하게 묶어 놓으니 몸이 자유로워진 말이 푸르르 몸을 털고는 천천히 주변을 걸으며 풀을 뜯었다.
마차 안에 준비된 말먹이와 물통을 꺼내 말에게 주고 제이든도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플로렌스 아주머니가 빵이랑 샌드위치, 과자를 얼마나 많이 싸 주셨는지. 당근 잎도 잔뜩 주시고.”
풀밭 위에 담요를 깔고 앉은 제이든이 배낭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꺼내자 포이와 아실리가 앞에 앉아서 눈을 반짝이며 그의 손을 지켜보았다.
동그란 초록색 눈동자와 까만 눈동자가 나란히 그의 손을 따라 이쪽저쪽으로 도록도록 움직인다. 하여간 둘 다 먹보란 말이지.
아실리에게 사료와 닭가슴살을 주고, 포이에게는 알팔파 건초와 당근 잎을 준 뒤 제이든은 커다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우와, 진짜 맛있다!”
양념해서 구운 고기, 치즈, 볶은 양파, 양상추 등이 커다란 빵 사이에 듬뿍 끼워진 샌드위치, 특별한 재료는 없는 것 같은데도 플로렌스의 특제 소스 때문인지 손맛 때문인지 맛이 각별했다.
“양파도 단맛이 듬뿍 나고 고기도 촉촉하면서 고소한 게 아주 그냥, 내가 이 맛을 낼 수 있으면 *브웨이, *도날드 다 누를 수 있겠는데!”
-그렇게 맛있어?
아실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한 조각 먹어 보라고 하고 싶지만 양념된 거라 고양이한테는 안 좋을 걸?”
-나는 보통 고양이가 아니라니까. 매운 거만 아니면 된다옹.
고양이 말투가 나오는 거 보니 조급하네.
제이든은 속으로 웃으면서 샌드위치 끄트머리를 조금 잘라 주었고 아실리는 먹어 본 뒤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포잉, 포잉.”
제 몫의 건초를 먹고 난 포이가 제이든의 배낭을 잡아당기더니 안으로 머리를 밀어넣었다.
“피잇!”
“아이쿠, 포이야!”
니콜레타가 준 마법 배낭인데, 포이가 배낭 속으로 폭 빠져 버렸다. 깜짝 놀란 제이든이 배낭 입구를 활짝 열었지만 포이는 보이지 않았다.
“포이야!”
다행히도 손을 넣자마자 포이가 딸려 나왔다.
이 배낭에 넣은 것은 꺼내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손에 잡히는 걸 아는데도 순간 놀랐다.
제이든의 손에 뒷덜미를 잡혀 나온 포이는 입에 토끼 모양의 라벤더베리 과자를 물고 있었다.
“먹보 토끼 같으니, 용케 찾아냈네.”
제이든은 포이를 꺼내 놓고 후식으로 먹을 사과와 라벤더베리 쿠키 봉지를 꺼냈다.
.플로렌스가 구워 준 고양이와 토끼 모양의 과자는 다시 봐도 귀여웠다. 아실리와 포이가 하나씩 붙잡고 아작아작 먹고 있으니 더 깜찍하다.
배도 부르고 바람도 서늘하고 고양이와 토끼는 귀엽고, 거울의 환각 때문에 어둡고 무거웠던 마음이 따뜻하게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제이든은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며 나무 둥치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와삭!”
와삭? 소리가 너무 큰데?
언제 다가왔는지 말이 담요 위로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깨물고 있었다.
“아, 맞아, 말도 사과를 좋아하지.”
제이든이 사과를 반쪽으로 쪼개서 말에게 주자 와삭와삭 잘 먹는다.
“맛있니?”
사과 두 개를 먹고 난 말이 커다란 머리를 숙이더니 라벤더베리 쿠키를 봉지째 덥석 물어 올렸다.
“피잇?”
깜짝 놀란 포이가 팔짝 뛰어올랐고 아실리도 초록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쳐다봤다.
와삭와삭!
그러거나 말거나 말은 봉지를 찢어놓고 과자를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제이든은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먹보가 하나 더 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