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24화 (24/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24화

8. 토끼발(8)

“미누엘! 아니 무슨 짓이에요. 아주머니?”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제이든 역시 그녀의 손에 가벽 속으로 밀쳐졌다.

아주머니가 힘도 얼마나 센지 비틀거리던 제이든은 한두 발짝 내딛다가 곧 중심을 잡았다.

“어서 오세요.”

족제비처럼 턱이 뾰족하고 교활하게 생긴 사내 하나가 미누엘을 일으켜 주고 있다가 제이든을 맞았다.

“동행하신다는 감정사님이시죠? 파노스 씨는 넘어지셨는데 감정사님은 잘 들어오셨네요. 운동신경 좋으신가 봐요. 처음 통과하는 사람들은 대개 넘어지는데…….”

사내는 말하다 말고 제이든의 뒤를 보며 눈이 커졌다.

아실리가 우아한 걸음걸이로 가벽을 통과해 들어와서 제이든에게 머리를 까딱했다.

-간단한 환영 마법이야. 전에 그 단검 사건 때 제이든 탈출시키면서 내가 쓴 거랑 비슷해.

족제비 닮은 사내는 신기한 듯 아실리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가 혼자서 마법의 장막을 뚫고 들어오다니, 그것도 저렇게 태연하게, 대단하네요!”

이번엔 제이든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충성도가 굉장히 높은가 봐요. 주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간다! 이런 건가요. 캬! 개 못지않네요!”

“냐우웅!”

아실리가 몹시 못마땅한 소리로 울면서 그를 흘겨보았다.

-나를 개에 비교하다니!

“자, 그런데 이를 어쩐다? 감정사를 동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고양이까지 데려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흠……, 밤의 경매에 동물이 경매품으로 나온 적은 있어도 응찰자가 동물을 데려온 적은 없는데 동반을 허락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같이 가게 해주세요. 우리 감정사 형님 제가 어렵게 모셨단 말이에요. 이 고양이가 행운의 마스코트라고 일부러 데려온 건데, 감정사 형님 안 계시면 저도 경매 참여를 못 해요. 저 이번에 21만 골드 번 거 알죠? 좋은 물건만 있으면 바로 낙찰받을 건데.”

“흠…….”

미누엘의 너스레에도 턱을 만지며 고민하던 족제비 사내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경매에 가끔 수인이 참여하는 일도 있으니 고양이도 뭐……, 위험한 동물은 아니니까 같이 가도록 하죠. 하지만.”

그는 제이든을 보면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만약에 저 고양이가 경매 중 방해를 하거나 소란을 일으키면 바로 내쫓을 겁니다. 동의하시죠?”

“예. 물론입니다.”

“냐아아웅!”

아실리는 무슨 그런 걱정을 하느냐는 듯 자존심 상한 눈빛을 족제비 사내에게 보내며 고개를 외로 꼬았다.

“아, 이 고양이 숙녀분 정말 매력 있네요. 자, 그럼 마차에 오르실까요?”

사내의 뒤쪽에는 서너 명 겨우 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마차가 있었다. 짙은 회색이고 창문이 없어서 상자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문 닫겠습니다. 잠시 찌릿찌릿하실 수 있는데 놀라지 마세요. 무기나 통신 장치 같은 게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상자 같은 마차 안 천장부터 바닥까지 불그스름한 빛이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몸이 조금 저릿저릿한 느낌이 있었지만 크게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끝났습니다. 두 분 다 깨끗하시네요. 목적지에 도착하면 알려드릴 거고요. 죄송하지만 문은 잠그겠습니다.”

제이든과 미누엘, 아실리가 마차에 타자 족제비 사내는 밖에서 문을 잠그더니 마부석에 오르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겠네.”

“그러게요. 좁은데 천장도 낮아서 머리가 닿겠네, 너무 답답한데 아실리는 괜찮을까요?”

미누엘은 좁은 마차가 답답한지 몸을 꼬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실리를 쳐다봤지만 아실리는 제이든의 옆에 편안하게 앉아 그루밍을 하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야옹 울었다.

“아실리는 괜찮아. 고양이는 원래 상자를 좋아해.”

“냥!”

마차는 이리 돌고 저리 돌며 한참 달린 후에야 멈춰 섰다.

“내리시기 전에 이걸 써 주세요. 자, 감정사님은 이게 좋겠네요.”

족제비 사내가 문을 열더니 두 개의 가면을 제이든과 미누엘에게 건넸다.

눈구멍과 입 부분만 뚫려 있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화려한 가면이었다. 제이든의 것은 고양이, 미누엘의 것은 얼룩말이었다.

“자, 지금부터 두 분은 밤의 경매가 끝나고 다시 마차에 타실 때까지 고양이와 얼룩말입니다. 실수로 본명을 부르셨다가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모두 본인의 책임입니다.”

마차는 낡은 저택 앞마당처럼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었지만, 입구 바로 앞에 문이 있는 데다 내리자마자 족제비 사내가 그들을 문안에 몰아넣었기에 주위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봐도 소용없을걸. 환영 마법이 걸려 있었어. 실제 모습과는 다를 거야.

아실리가 종알거리면서 제이든의 다리에 딱 붙어 복도를 걸어갔다.

‘라파엘의 말로는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했는데.’

이쪽에서 경계가 상당한 듯해서 과연 놓치지 않고 따라올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계단을 두어 개 내려가고, 양옆으로 문이 줄지어 있는 복도를 앞장서 걸어가던 족제비 사내가 마침내 문 하나를 열고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반원형의 커다란 방 가운데 둥근 탁자가 있는 무대가 있고, 그 주변을 빙 둘러서 칸막이를 한 자리가 여러 개 있었다. 그중 한 칸에 안내받은 제이든이 자리에 들어가며 눈대중으로 세어 보니 열 자리 남짓 되었다.

무대를 향한 앞면은 트여 있어서 이미 몇 명이 가면을 쓴 채 앉아 있는 것이 잠시 보였다. 한 칸마다 두세 개의 의자와 작은 원형 탁자가 있고 간단한 다과가 놓여 있었다.

“자, 이제 편안하게 밤의 경매를 즐겨 주시고요. 부채는 여기 있습니다. 혹시 화장실에 가고 싶으시거나 따로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부채를 거꾸로 들어주세요. 응찰 진행 중이 아닐 때는 차나 커피, 음료 주문도 가능하고요. 술은 안 됩니다.”

족제비 사내는 물러가서 무대 뒤쪽 벽에 붙어섰다. 그 외에도 몇 명의 사내가 그와 나란히 섰다.

“이거 먹어도 될까요? 혹시 몰라 물을 준비해 오긴 했는데.”

미누엘이 탁자에 놓인 과일, 과자, 찬 음료가 담긴 유리병이며 따뜻한 음료가 든 찻주전자 등속을 보며 말했고 제이든은 아실리를 흘끔 보며 대답했다.

“먹어도 될 거야. 한 번 하고 말 경매도 아닌데 손님들한테 이상한 걸 내놓진 않겠지. 이런 거래일수록 손님들 대우는 잘해줄걸”

아실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제이든은 준비된 음료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음, 굉장히 비쌀 것 같은 맛이야.

그들 뒤로도 몇 명이 더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인원이 다 찼는지 더 이상 사람이 들어오지 않게 되자 어디선가 옛 에테노른 풍의 정복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들어와 중앙 무대에 올라섰다. 검푸른 늑대 모양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 여러분, 밤의 경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의 경매 진행을 맡은 푸른 늑대입니다.”

일반 경매장보다 고객의 좌석과 무대가 훨씬 가까워서 늑대 가면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 오신 분도 계시고, 여러 번 저희 경매에 참여해 주신 분도 계시는군요.”

늑대 가면은 정중하게 절을 한 뒤 안타깝다는 듯이 머리를 가볍게 저었다.

“원래는 열 분이 참여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아쉽게도 한 분이 통신 장치를 가지고 마차에 타셨다가……,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고객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늑대 가면은 분위기를 싹 바꾸어 활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오늘 보여드릴 물품은 열두 가지입니다. 일반 경매와 달리 저희는 사전 전시가 없는 만큼 충분히 보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자체적으로 충실한 감정을 거쳤지만, 아시다시피 경매품에 백 프로란 없습니다. 충분히 검토하시고 응찰해 주시기 바랍니다. 낙찰 후 물품에 대해서는 저희 쪽에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그가 지팡이를 들고 벽을 향해 가볍게 휘두르자 벽면에 영상이 떴다.

“먼저 오늘 경매품을 영상으로 쭉 보여 드린 후 차례대로 하나하나 실물을 놓고 응찰 받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1번 물품은 에테노른의 고대 도기입니다…….”

능숙하게 물품을 소개하는 늑대 가면을 보면서 제이든이 중얼거렸다.

“돈 많이 들였네. 저렇게 고해상도의 영상 기록을 하다니.”

카이엔에는 사진기가 없었다.

대신 정밀 화가가 있어서 웬만한 기록은 화가가 그림으로 남겼고, 마법을 사용하는 영상 기록구가 있었다.

용량이나 해상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지만 일단 가격대가 너무 높아서 스스로 제작 가능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일반인은 사용하기 어려웠다.

-첫 번째부터 장물이네.

“응?”

아실리가 조그맣게 야옹 하기에 제이든은 미누엘의 눈치를 보며 살짝 귀를 기울였다.

-장물이라고. 기억 안 나? 세시온의 사례집 중에 있었잖아. 세시온이 현역 시절 마지막으로 감정했던 박물관 물건 중 하난데, 그때 전시회 이송 중에 도둑맞았던 거. 그 절도 사건 이후 고미술품 전문 배송업체의 방어 체계가 몇 배로 강화되었지. 저게 여기서 나오는 거 보니 아마 밤의 경매로만 몇 번 손을 탔나 보네.

‘으응’

제이든은 아실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럴 때 검색 한 번 좍 해볼 수 있으면 좀 좋아? 스마트폰 하나 있었으면……. 마도구 중의 마도군데.’

“으르르르.”

제이든이 잠시 옛 생각을 하는데 두 번째 영상이 지나가고 세 번째 영상이 올라오면서 갑자기 아실리가 입술을 말아 올려 송곳니를 드러내며 화난 듯 으르렁거렸다.

“이건 정말 오랜만에 보시죠? 저희가 일반적으로 다루는 물품은 아닙니다만 이번에 모처럼 입수했기에 여흥 삼아 목록에 포함시켰습니다. 의외로 이걸 꼭 구하고 싶다고 문의하시는 분도 가끔 계시거든요.”

늑대 가면은 벽에 떠 있는 영상을 지팡이로 가리켰다.

“포에니 토끼의 토끼발입니다. 요즘은 멸종에 가까운 희귀동물이라 정말 구하기 어려운 진품입니다. 게다가 포에니 토끼발 중에서도 가장 영험하다는, 새끼와 함께 잡힌 어미 토끼의 앞발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