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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21화 (21/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21화

8. 토끼발(5)

상담 및 철회, 마무리 작업 등에 할당된 하루를 빼고 실질적인 경매 마지막 날인 토요일, 헤카디아의 너울은 제이든의 예상대로 시작가 10만 골드로 경매장에 나왔고 순식간에 가격이 치솟더니 시작가의 두 배를 넘는 21만 골드에 낙찰되었다.

“카리온의 소녀상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인데요.”

미누엘은 너무 큰 금액에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헤카디아의 너울이 이번에 화제가 되기도 했고 구매자가 좋았어.”

낙찰자는 남부의 선박왕이자 이름난 부호인 세네디카 소렌토스의 대리인이었다.

“소렌토스 가의 외동딸이 이번에 결혼을 하는데 그 딸의 결혼 선물로 주려고 한다더라고.”

헤카디아의 너울에는 영원한 사랑의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한다. 공주와 그 연인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결혼을 축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선박왕 소렌토스는 카이에른이나 셀레스테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수집가지만 소네트 정도의 경매에는 참여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헤카디아의 너울이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대리인을 보내 응찰하게 했다.

“처음엔 그냥 보자긴 줄 알았는데…… 21만 골드라니, 실감이 나질 않네요. 며칠 가지고 있었다고 이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시원섭섭한데요. 유물이 이렇게 다 비싼가요?”

“그럴 리가 있어? 골동품 가게 돌면서 봤잖아. 이 정도 가격의 유물이나 예술품은 쉽게 볼 수 없지. 카이에른이나 셀레스테에서는 더 비싼 것들도 나오지만.”

제이든은 작년에 참여했던 셀레스테 경매를 돌이켜 봤다. 당시 최고가를 기록한 물품은 카이엔 대제가 황제가 되기 전 대륙전쟁 중에 입었다는 ‘영광의 망토’였다.

현존하는 무기로는 뚫을 수 없다는 강력한 보호 마법이 걸린 데다가 카이엔 대제가 그 망토를 입고 출전했던 전투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전설이 있는 망토였다.

거기다 역사적인 가치가 덧붙여져서 낙찰가가 무려 100만 골드를 넘었다.

‘100억이라, 휴’

제이든이 한국에 있을 때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이처럼 고가품들이 출품되는 경매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대생인 만큼 관련 자료를 관심 있게 보는 편이었는데 지구와 카이엔의 가치 기준은 좀 달라 보였다.

예술품 경매의 양대산맥인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되는 금액을 보면 카이엔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제이든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생존 작가 중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했다는 제프 쿤스의 ‘토끼’ 사진을 본 적이 있다.

2019년 5월 15일에 낙찰된 이 작품은 무려 9천 107만 5천 달러(한화 약 1천 85억 원)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낙찰되었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김환기 화백의 ‘우주’가 2019년 11월에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8,800만 홍콩 달러(한화 약 131억 8,750만 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반면에 카이엔에서는 순수한 예술품도 높이 평가하지만 마법이 걸린 유물이 더 높은 가격을 받는 편이었다. 언제 누가 어떤 마법을 걸어놓았는가에 따라서도 가치가 달라지고.

‘지구라고 모든 유물이 비싼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카이엔의 낙찰 금액은 지구에 비하면 부담이 덜해서 다행이야.’

제이든은 지구에 돌아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유물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의 소유라면 구매할 수 있도록 꾸준히 돈을 모으고 있었다. 어떤 것이 그 매개체일지는 모르지만 유물의 가격이 지구 같았다면 얼마나 더 열심히 일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다미에르 영감님 재산을 꽤 모아 놨다고 하더니…… 쩝.”

세시온 다미에르가 남긴 재산이 적지 않았지만 제이든의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다.

아실리의 말에 따르면 마법 연구를 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고, 좋은 일에 기부도 많이 했으며 ‘위대한 후원자’께서 찾으라 한 유물 여덟 가지를 찾아내 구매하는 데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네 개는 주인이 없었지만 네 개는 주인이 있었거든.

아실리는 앞발을 날름날름 핥으면서 제이든에게 말했었다.

-우리 세시온은 흥정 같은 건 안 하기 때문에……. 음, 유물 소유자가 흥정하기 어려운 상대이기도 했고.

“누구였는데?”

-지금은 말해줘도 몰라. 나중에 알려 줄게.

눈꼬리를 가늘게 휘면서 웃는 아실리의 얼굴이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그때는 그냥 넘어갔었다.

* * *

모든 경매가 끝나고 마지막 정리를 하게 되는 일요일.

“라파엘, 포이를 잘 부탁해요.”

“걱정 말아요. 안심하고 잘 다녀오세요.”

제이든이 경매의 마무리를 위해 경매장으로 가야 하는데 ‘해변의 기수’ 건도 있고 아무래도 아실리와 동반하고 싶었다.

아실리 역시 제이든과 함께 가고 싶은 눈치였는데 문제는 아실리가 없으면 몹시 불안해하는 포이였다.

다행히 라파엘이 포이를 맡아주기로 했고 포이도 라파엘 옆에서는 안심하는 것 같아 제이든과 아실리, 미누엘과 이노시카는 경매장으로 출발했다.

“나헤리움까지 직배송 가능할까요?”

“포장 전에 감정을 한 번 더 받고 싶습니다. 비용은 따로 지불할 테니 감정사님을 모실 수 있을까요?”

“직접 가져갈 거지만 보호 마법을 걸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낙찰자들의 상담을 받고, 물건을 내주고, 전문 배송업체에 배송을 의뢰하는 등 사무실은 몹시 시끌벅적하고 바빴지만 경험 많은 운영위원들과 직원들이 물 흐르듯 체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로스 감정사님 오셨군요. 파노스 씨 축하드립니다. 헤카디아의 너울이 이번 경매 최고가입니다. 저희에게 맡겨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요. 낙찰자인 소렌토스 씨도 매우 만족하셨다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이쪽 아가씨는 카리온의 여덟 번째 소녀와 다이카의 작품을 낙찰받으셨지요? 아가씨께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작품을 소장하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경매를 진행했던 수석 경매사가 제이든 일행에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톰슨 양의 입금은 모두 확인했습니다. 헤카디아의 너울은 이미 소렌토스 씨의 대리인이 수령했고 입금 확인되었습니다. 사흘 안에 다른 문제가 없으면 위탁자의 계좌로 송금됩니다. 작품은 직접 수령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원하시는 장소로 배송할까요? 전문 배송업체가 대기 중입니다.”

제이든은 먼저 카리온의 소녀상을 수도에 있는 올리버 로렌스에게 배송하도록 부탁했다.

고가의 예술품을 전문적으로 배송하는 업체가 대기 중이었기에 바로 처리되었고 운송 중 사고에 대한 보험 서류도 작성했다.

미누엘은 헤카디아의 너울 낙찰과 인도가 순조롭게 처리된 것을 확인하고 필요 서류에 서명했다.

“자, 그럼 다른 건 다 끝났고 다이카의 해변의 기수만 수령하시면 되겠네요.”

수석 경매사의 말에 제이든이 대답했다.

“그 그림 말입니다. 사전 전시에는 나오지 않았죠?”

“예, 소장한 분이 위탁 의사를 밝힌 건 한참 전이었는데 경매 시작 전날까지 그림이 도착하지 않아서 사전 전시에는 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에야 겨우 도착하는 바람에 급하게 도록에만 영상을 실었지요.”

“혹시 그 그림과 똑같은 다른 그림을 한 쌍으로 경매에 출품하겠다고 신청한 골동품상이 있었습니까?”

“맞아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수석 경매사는 손뼉을 딱 쳤다.

“시내에 있는 글렌 골동품상에서 두 번째 해변의 기수를 구했다고 한 쌍으로 맞춰 출품할 수 있는지 문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 소유주께서 거부하셔서 무산되었습니다.”

“흐음…….”

제이든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경매 당일에는 제가 없어서 실물을 못 봤는데 이노시카 양이 인수하기 전에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예 그럼 옆방에서 먼저 보여드리고 수령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복잡한 사무실을 나와 사람 없는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직원 두 사람이 그림을 가져다주었다.

보호용 덮개를 열고 그림을 자세히 보았다. 색감이나 붓 터치, 종이의 느낌 등 어떤 것을 보아도 다이카의 진작 같았다.

동봉된 감정서를 보니 몇 년 전 꽤 이름 있는 3급 감정사가 감정했고 연도 감식까지 마친 것으로 되어 있었다.

3급 감정사라면 마법 확인까지는 못 했을 것 같아 제이든이 감정 마법을 써보았는데 눈속임을 위한 마법 종류도 걸려 있지 않았다.

“잠깐 저 혼자 그림을 봐도 될까요?”

미누엘과 이노시카를 내보내고 아실리와 둘이 남아서 그림에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제이든에게만 나타나는 파르스름한 빛이 그림을 둘러싸는 것도 골동품점에서 본 그림과 같았다. 숨겨진 계곡에 둔 그림도 빛이 나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세 점 모두 진품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것이, 제이든이 볼 수 있는 푸른 아우라는 만든 이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가치가 어느 정도 이상일 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명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작품에서 파르스름한 아우라가 돌기 시작해서 가치가 높을수록 푸른빛이 짙어지다가, 그보다 더 높은 단계, 명품 중의 명품이라 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은 푸른 빛이 금빛으로 바뀐다.

그러니 만약 이 해변의 기수가 위작이라면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다이카에 비길 만한 재능의 소유자인 것이다.

-제이든, 뭐 보이는 거 있어?

“없어, 그냥 봐서는 다이카의 진품 같지만 아무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는데 잡아낼 수가 없네. 아실리, 다이카에 대해서 뭐 짐작 가는 거 없어?”

-글쎄.

박학다식한 고양이는 머릿속의 지식을 되짚어보는 중인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답답하네. 회색의 소녀상처럼 그림이 내게 내력을 보여준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제이든이 답답해하고 있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제이든 님,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엇? 라파엘?”

라파엘이 가방을 품에 안은 채 방에 들어와서 문을 닫더니 아예 잠금장치를 눌러 문을 잠갔다.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포이한테 무슨 일이 있어요?”

“예, 그게 말이지요.”

라파엘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안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새까만 귀가 먼저 쏙 나오고 하얀 얼굴과 분홍색 코가 올라왔다.

“포이가 당장 아실리에게 가야겠다고 어찌나 고집을 부리는지 말릴 수가 있어야지요. 밖에 나가면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그냥 두면 혼자라도 뛰어나갈 기세여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습니다.”

아기 토끼가 깡충 뛰어나오더니 제이든과 아실리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포이, 위험한데 왜 왔어? 여기 사람 얼마나 많은데 포에니 토끼인 걸 들키면 어쩌려고!”

“포오잉”

포이가 어리광 부리듯 울며 제이든과 아실리 사이에 파고드는 순간 제이든의 시야가 흐려졌다.

맑은 하늘, 푸른 바다, 옅은 분홍색 모래가 드문드문 섞인 낯선 해변, 그리고 해변이 보이는 숲 그늘에서 누군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뒷모습이어서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토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발 아래에서 토끼가 한 마리 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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