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8화 (18/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8화

8. 토끼발(2)

“토끼발?”

-응, 요즘 애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옛날에 성했던 미신이야.

포에니 토끼는 산속 깊이 살고 영리해서 사람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토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산의 상징이지만 포에니 토끼만큼은 의외로 출산율이 적어서 수도 적다.

희귀성 때문인지 행운의 상징으로 각광을 받았는데, 포획해 사육을 시도해 본 사람들은 모두 실패했다.

지능이 높고 감정이 풍부한 데다 자존심까지 강해서 양식은 불가능했고 한두 마리를 키운다 해도 사람과 교감이 형성되지 않는 한 탈출하거나 죽고 만다고 했다.

그런데도 포에니 토끼를 가진 사람에겐 행운이 따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는 포에니 토끼와 친해져서 집에서 기를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반드시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포에니 토끼를 기르기 어렵다 보니 사람들은 포에니 토끼의 귀나 발을 잘라 행운의 부적으로 삼게 되었다. 귀보다는 발이 보관이나 휴대가 편하고 효과도 좋다고 해서 더 인기가 있었다.

워낙 포에니 토끼가 희귀하다 보니 일반 토끼로 제작된 가짜 부적이 많이 유통되지만 감정 마법을 사용하면 진짜를 가려낼 수 있다.

진짜 포에니 토끼의 발로 만든 부적은 사람에 따라서는 부르는 게 값일 만큼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세상은 다 비슷하구나.”

아실리의 이야기를 들은 제이든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토끼발은 지구에서도 행운의 부적 또는 주술 도구로 사용되곤 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무덤 근처에서 잡은 토끼의 왼쪽 앞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자른 게 제일 좋은 거라던가?

소원을 들어주는 부적으로 쓰이는 원숭이 손이나 행운의 파랑새 이야기도 있었지.

박물관에서 파랑새 새끼를 잡아 가려던 남자 생각도 났다.

-사람이나 동물이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사냥하는 건 이해해. 나도 고기를 먹는걸.

아실리의 초록색 눈이 깊게 반짝였다.

-하지만 재미를 위해서 다른 동물을 죽이거나 고문하는 건 다른 이야기지.

고양이는 앞발로 잠든 아기 토끼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아무 생각 없이 토끼발을 부적으로 만들어 목에다 걸거나 허리에 차는 사람들도 토끼발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야.

아실리는 아기 토끼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토끼발은 그냥 잘라서 만들기도 하지만, 가장 효과가 영험하다고 여겨지는 부적을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포에니 토끼는 잡기가 쉽지 않지만, 모성애가 지극히 강한 동물이라 새끼를 먼저 잡게 되면 미끼로 써서 부모를 잡을 수 있다. 어미와 아기 토끼를 함께 잡았을 때 가장 좋은 부적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두 개의 틀을 놓고 어미와 새끼를 서로 다른 틀에 넣는다. 움직이기 어렵고 앞만 볼 수 있는 틀에 넣어 약간의 사이를 두고 마주 보게 한 뒤 밥을 굶긴다.

어미와 새끼는 서로 마주 보고 애달프게 우는데 며칠 밥을 굶고 죽기 일보 직전이 되었을 때 앞발을 내밀면 닿을 정도로 틀을 가깝게 놓는다.

어미와 새끼는 죽기 전에 서로를 한 번만이라도 만져보려는 일념을 담아 필사적으로 앞발을 틀 사이로 내미는데, 그때 그 발이 새끼에게 닿기 직전에 붙잡아 자른 것을 토끼발 중 가장 일품으로 친다는 것이다.

그 앞발에 포에니 토끼의 모든 염원과 영력이 담겨 있다고 해서.

그렇게 잘라낸 어미와 새끼의 앞발을 한 쌍으로 해서 만든 부적이 토끼발 부적 중에서도 가장 고가품이라 한다.

아실리는 슬픈 듯이 잠자는 아기 토끼의 머리에 살짝 코를 비볐다.

-얘 엄마가 발을 잘릴 때, 죽기 직전에 난동을 부려 얘만 겨우 탈출시켰대. 지금은 아마 죽어서 부적이 됐겠지.

제이든은 마음이 아파서 잠든 아기 토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포에니 토끼는 사람처럼 지능이 높고 감정이 풍부하다는데 이 작은 몸속에 얼마나 큰 아픔이 깃들었을까.

-수인(獸人)들을 중심으로 그 제작 방법이 너무 잔인하다는 여론이 일어서 그렇게 토끼발을 만드는 게 금지된 지 꽤 오래됐거든. 그래서 요즘 애들은 잘 모르는 이야긴데 아직도 그걸 하는 사람들은 숨어서 하나 봐. 그걸 또 비싸게 사는 사람이 있으니 안 없어지는 거겠지.

아기 토끼가 옹알이를 하면서 몸을 뒤집더니 앞발로 허공에 꾹꾹이를 했다. 엄마 젖을 누르는 것처럼 양발을 꾹꾹 누르다가 잠결에도 삐애앵 울면서 아실리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람을 무서워하는구나. 제이든은 조심스럽게 아기 토끼의 등을 쓰다듬어주고는 일어섰다. 세상에 무서운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면 좋으련만.

* * *

“제이든, 잠깐 나 좀 볼까?”

그렉의 부름을 따라 그렉 방으로 가보니 이노시카와 미누엘, 낯선 청년이 함께 있었다.

“우리 형이에요.”

산 너머 여관에 남았다던 미누엘의 형인가 보다.

나이 터울이 큰지 서른 정도로 보였고 큰 눈이나 얼굴 생김새가 미누엘과 많이 닮았지만 머리는 미누엘처럼 붉은색이 아니고 약간 붉은 기만 감도는 갈색이었다.

“안녕하세요. 동생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파엘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수인사를 나눈 뒤 그렉이 문밖을 한 번 더 확인하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라파엘이 할 말이 있다는군. 말해보게. 라파엘 군.”

라파엘 역시 목소리를 낮추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산 너머 테르빌 여관에 남았잖습니까? 큰 부상이 아니고 조금 접질린 거라, 이틀 정도 쉬면서 그 마을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더니 괜찮아졌는데요. 미누엘이 걱정할 게 마음에 걸려서 서둘러 출발했거든요.”

테르빌 여관에서 메이빌까지의 산길은 델리움으로 가는 쪽보다 거리가 짧고 길도 고르다.

그래서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걸어서 메이빌까지 온 다음에 루이네 집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마을마차를 타고 델리움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이든과 아실리도 테르빌에서 메이빌까지는 도보로 갔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았던지 루이네 집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단 말입니다.”

어두워진 데다 초행길이다 보니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한동안 산길을 헤매다가 어렴풋이 보이는 불빛을 보고 그쪽으로 갔더니 커다란 마차가 두 대 있고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깥쪽으로는 무장한 보초가 경계를 서고 있었고.

“반가워서 도움을 청하려고 갔는데 좀 찜찜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계 태세도 너무 심해 보이고.”

도보가 아니라 마차라면 테르빌이나 메이빌 어느 쪽이나 하룻길 안쪽으로 충분한 거리이니 굳이 산중에서 밤을 지낼 필요가 없을 것인데.

“제가 시력은 별로지만 귀가 많이 밝거든요, 경계도 잘하는 편이고.”

말하면서 싱긋 웃는 라파엘의 귀가 쫑긋거렸다. 제이든은 좀 놀랐다. 사람 귀가 어떻게 따로 쫑긋거릴 수 있지?

“큰 바위 뒤에 숨어서 이야기를 좀 들었는데.”

라파엘은 소리를 더 낮췄다.

“아는 목소리가 있는 겁니다. 예전에 선박으로 골동품 밀수를 했던 자였지요.”

미누엘이 끼어들었다.

“우리 형이 남부에 있을 때 항만 세관에서 일했거든요. 그때 밀수꾼 잡는 일을 했어요.”

라파엘이 말을 이었다.

“그때 대규모 밀수 조직을 쫓다가 결국 윗놈들은 다 놓치고 잔챙이들만 몇 잡은 일이 있는데, 그 잔챙이를 또 만날 줄은 몰랐죠. 아무튼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또 뭔가 중요한 골동품을 밀수 아니면 장물 처리를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이노시카가 조금 의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그런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밤이라도 철저히 경계를 하고 있을 텐데 들키지 않고 그런 말까지 들을 수가 있었나요? 사람을 확인한 것도 아니고 목소리만 들으셨다면서.”

제이든도 이노시카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엘은 방 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제이든과 이노시카를 향해 싱긋 웃으면서 손을 귀에 대었다.

갈색 머리카락 틈으로 뾰족 솟은 귀가 쫑긋거렸다.

“음, 사실은요. 저희 집안에 토끼 수인과 결혼하셨던 분이 한 분 계시거든요. 9대 전이라 지금은 후손들에게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데, 저한테만 유독 그 형질이 강하게 전해졌나 봅니다.”

아! 제이든은 납득했다. 그냥 귀가 밝고 경계를 잘하는 사람 수준이 아니었구나.

“소네트 경매 때문에 지금 델리움과 글로비스에는 수집가들이 엄청 모여 있잖아요? 장물이나 밀수품이라면 경매에 내놓을 수는 없지만, 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매자를 찾으려면 이런 시기가 좋지요.”

“치안국에 신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했습니다.”

라파엘이 살짝 웃었다.

“정식 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예전 인맥을 통해서 말을 넣었고 담당 요원과 접선도 했습니다.”

미누엘이 경매장에도 안 오고 다른 일이 있다 하더니 이 형제가 매우 바빴던 모양이었다.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온종일 그날 밤에 본 마차를 찾아 헤맸는데, 혹시 그 잔챙이가 제 얼굴을 기억할까 봐 변장까지 하고요.”

그는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뜻밖에도 미누엘에게 접촉이 왔지 뭡니까?”

“예?”

“미누엘이 이번에 헤카디아의 너울을 위탁했잖습니까. 미누엘이 골동품에는 초보고 우연히 보물을 건졌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나 봅니다. 게다가 헤카디아의 너울이 낙찰되고 나면 막대한 돈이 미누엘에게 들어올 거고요.”

“아주 먹음직스런 호구인 거지.”

그렉이 한마디로 정리했고 라파엘은 말을 계속했다.

“사흘 뒤, 경매가 끝난 후에 따로 밤의 경매를 할 사람 몇 명을 물색 중이라고 하는데 미누엘이 걸려든 겁니다.”

“형, 무슨 소리야. 내가 걸려든 게 아니라 그쪽이 나한테 걸려든 거지. 그거 노리고 내가 얼마나 호구력을 뽐내면서 글로비스 골동품상을 돌아다녔는데.”

“그 잔챙이가 제 얼굴을 알기도 하고 저는 물건 보는 눈도 부족하니 로스 감정사님이 미누엘과 동반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상세한 작전은 담당 요원과 제가 따로 짜보도록 하겠습니다만 일단 로스 감정사님의 동의가 중요하니까요.”

라파엘은 또 귀를 쫑긋거렸다.

“동의하지 않으셔도 괜찮으니 부담은 갖지 마시고요. 그러면 또 다른 작전을 짜야겠지요.”

* * *

제이든이 방에 돌아오자 아실리는 잠들어 있고 아기 토끼는 그 옆에서 꼬물꼬물 놀고 있다가 경계하는 눈으로 제이든을 바라보았다.

토끼 수인의 후손을 만나고 와서 그런가, 제이든을 쳐다보는 아기 토끼의 얼굴이 사람 어린애의 얼굴처럼 보였다.

“꼬마야,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 우리 아실리가 난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말 안 해주던?”

제이든은 손을 내밀어 잠든 아실리의 머리를 쓸어주다가 옆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토끼의 귀도 쓸어주었다.

토끼는 무심결에 제이든에게 머리를 내주고는 깜짝 놀란 듯 깡충 뛰어 물러서면서 앞발로 제이든이 만진 귀를 붙잡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제이든이 웃자 아기 토끼는 뾰로통한 얼굴이 되더니 팽 돌아앉았다.

오뚜기처럼 동그란 몸통 위에서 새까만 귀 두 개만 꽃잎처럼 솟아나와 있는 뒤태도 아주 그냥, 깜찍했다.

#작가의 말

작중 토끼발 만드는 방법은 옛날 무당이 염매(厭魅), 새타니 또는 태자귀 만드는 법이라 해 어린애를 굶긴 뒤 음식을 보여주고 음식을 향하는 손가락을 잘라 신물로 삼았다는 이야기에서 변형했습니다.

염매 이야기는 조선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 제 5권 ‘만물문’ 중에 나오며 ‘어우야담’ 및 다른 야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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