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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3화 (3/195)

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3화

1. 동방의 향로(2)

“아니, 이 꼬맹이가!”

그렉의 진품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데 가게 안쪽에서 이노시카가 종종종 뛰어나왔다.

“삼촌! 그만하세요!”

이노시카는 재빨리 그렉과 청년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미안해요, 우리 삼촌이 성격이 좀 급해서.”

그녀가 사과하면서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노시카 톰슨이에요. 톰슨 골동품상 주인입니다.”

“제이든 로스입니다.”

“죄송해요. 삼촌이 워낙 거친 세계에서 살아오신 분인 데다, 로스 감정사님이 2급 감정사로는 너무 젊으셔서 당황하셨나 봐요.”

“예. 뭐, 그쪽도 이런 골동품상 경영자로는 젊어 보이시는데요. 이노시카 톰슨 씨, 성함이 특이하시네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북부 출신이셨거든요. 그쪽 이름을 따서 지어주셨지요.”

청년-제이든은 이노시카의 맑은 하늘색 눈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피부가 희고 눈 색도 옅다 했더니 외탁을 했나 보군.

“대대로 내려온 가업인데 사정이 있어 제가 일찍 물려받았지요.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로스 감정사님 소문은 들었지만 뵙기는 처음이네요.”

이노시카는 옆에 뻘쭘하게 서 있는 그렉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뭐 하세요? 삼촌도 사과하셔야지요. 어려 보인다고 무시부터 하시고.”

“아니, 뭐, 젊어도 너무 젊으니까 그랬지. 2급 감정사가 이렇게 어릴 수가 있나? 그리고 약속 시간보다 훨씬 빨리 왔잖아, 요즘 이런 수를 쓰는 사칭범도 있다고 들어서.”

“삼촌은 누가 저보고 골동품상이 이렇게 어릴 수가 있나 하면서 다짜고짜 무시하면 좋으시겠어요?”

“골동품상은 어릴 수도 있지만 감정사는 어릴 수가 없는 직업…….”

구시렁거리던 그렉은 이노시카가 엄한 눈으로 쳐다보자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게 됐수. 외모만 보고 넘겨짚은 내 잘못이요.”

“저도 욱하는 마음에 실례했습니다. 사실 제가 감정사치곤 나이가 어리다 보니 이해는 합니다만, 여기, 제 자격증입니다.”

제이든은 건들거리던 태도를 싹 씻고 아까 꺼내려다 만 감정사 자격증을 제대로 꺼내 건넸고 이노시카와 그렉은 자격증을 살핀 뒤 머리를 끄덕였다.

“스물여섯 살이라니 보기보다는 나이가 있네.”

“그래도 이 나이에 2급이라니, 정말 소문대로 천재적 재능인가 봐요.”

이노시카는 제이든에게 자격증을 돌려주면서 풍성한 금발 머리를 붕붕 흔들었다.

“저는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골동품 속에서 자랐는데도 아직 3급 감정사 시험 통과할 엄두를 못 내겠던데 정말 대단하세요.”

“아닙니다. 골동품상과 감정사는 또 다른 분야인걸요.”

“날이 좀 차니까, 먼저 따뜻한 차나 커피 한잔하시겠어요?”

“예,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이든은 인상 좋게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저, 제가 고양이를 한 마리 데리고 있는데 안에 들여도 괜찮을까요? 가게 안에 동물이 들어오는 걸 꺼리시는 분들도 있어서 감정 중에는 보통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요. 우리 아실리는 보통 고양이랑 달라서 절대 아무거나 건드리지 않으니까 폐는 끼치지 않을 겁니다. 그럴 일은 없지만 혹시라도 물건을 상하게 하면 제가 모두 배상하겠습니다.”

마치 그 말을 들었다는 듯이 문밖에서 야아옹 길게 빼는 울음소리가 났다.

“어머, 비 오는데 어디로 가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괜찮으니 데리고 들어오세요.”

이노시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렉이 출입구의 문을 열었고 날씬한 은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문 앞의 매트에서 조금 전의 제이든처럼 몸을 한 번 털고 네 발을 잘 닦은 뒤에야 살랑살랑 안쪽으로 들어왔다.

“어머, 발 닦는 거 봐! 정말 똑똑한 고양이네요! 예쁘기도 해라.”

고양이는 우아한 걸음으로 들어오더니 제이든의 발치에 얌전하게 발을 모으고 앉았다.

이노시카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가게 안쪽으로 잠깐 사라졌던 그렉이 매장으로 돌아오더니 황소 같은 덩치를 가능한 한 조그맣게 쭈그리고 앉으면서 고양이의 앞에 손을 펴 보였다.

고양이 머리통이 서너 개는 들어갈 만한 큰 주먹 안에는 앙증맞은 물고기 모양의 과자가 한 줌 들어 있었다.

고양이는 그렉의 험상궂은 얼굴을 한 번 보고 커다란 손바닥을 한 번 보고 하면서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과자 하나를 맛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냠냠거리며 먹기 시작했다.

그렉은 고양이가 놀라기라도 할까 봐 겁내는 듯 속삭이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이노시카, 이것 봐! 얘가 내 손에서 과자를 먹는다. 날 무서워하지 않아!”

“어머, 드디어 과자 주인이 나타났네요.”

제이든에게 커피를 내주던 이노시카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우리 삼촌이 저래 봬도 작은 동물을 좋아하시거든요. 강아지나 고양이 준다고 간식 같은 걸 사놓으시는데, 삼촌이 워낙 몸집도 크고 인상도 험악…… 음, 강하시다 보니까 대부분 다 도망가 버리더라고요. 오늘 소원 성취하셨네. 감정사님 고양이가 굉장히 순하고 친화적인 아이네요.”

‘흠, 꼭 그런 건 아니지만요…….’

제이든은 커피와 함께 속말을 꼴깍 삼키면서 그렉과 아실리를 바라보았다.

과자를 받아먹고 난 아실리가 그렉의 통나무 같은 다리에 애교 있게 몸을 비비자 그렉은 금방 녹아내릴 것처럼 행복한 얼굴이 되어 손가락으로 아실리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이노시카, 이것 봐, 여관집 루이는 내가 그렇게 간식을 줘도 잘 안 오는데 얘는 벌써 나한테 골골송을 불러준다!”

“아휴 삼촌…….”

이노시카는 곰 같은 삼촌이 조막만 한 고양이를 데리고 좋아 죽는 꼴을 못 보겠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제이든은 고개를 돌리며 입맛을 다셨다.

‘사회생활 잘하는 괭이 같으니라고.’

커피를 다 마신 그들은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왔다.

“로스 감정사님이 먼저 연락을 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많이 바쁘셔서 의뢰도 어렵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예, 그렇긴 한데 증조할아버님이 수집하셨다는 진귀한 향로를 꼭 보고 싶어서요.”

이노시카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감정을 부탁드릴게요. 여기가 편하시겠어요? 아니면 안쪽으로 들어갈까요?”

제이든은 힐끔 문 쪽을 살핀 뒤 말했다.

“여기서 하겠습니다. 매장에 방어 마법은 걸려 있나요?”

전통 있는 골동품 가게라면 당연히 도적을 방지하는 마법 정도는 걸려 있겠지만 그래도 대개 상인들은 귀한 물건을 매장에서 감정하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이든은 나름대로 위험을 여러 번 겪어본지라 낯선 곳에서 퇴로가 없는 공간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예, 방어 마법도 설치해 놨고 삼촌도 계시는걸요.”

이노시카의 말과 함께 그렉이 출입구 쪽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매장 전체를 살필 수 있는 위치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그가 자루가 기다란 망치를 의자에 기대어 놓는 걸 보고 제이든은 머리를 끄덕였다. 경호원 역할이었군. 자루에 손때 묻은 걸 보니 한두 해 쓴 물건이 아니네.

아실리가 자연스레 그렉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발치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앞발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이노시카가 카운터 아래에서 세 개의 상자를 꺼냈다.

“감정해 주셨으면 하는 물품은 이 세 가지예요. 두 점은 이미 감정서가 있지만 한 번 더 감정을 받아보고 싶은 물건이고, 하나는 얼마 전 새로 구했는데 아직 감정받은 일이 없어요.”

제이든은 차고 왔던 전대에서 장갑과 돋보기 등을 꺼낸 후 먼저 상자의 외관을 살펴 방어 마법이나 트랩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첫 번째 상자부터 뚜껑을 열었다.

은은한 빛무리가 상자 안에서 안개가 흘러나오듯 번져 나왔다.

* * *

한동안 세심하게 물건을 살핀 후 제이든이 머리를 들었다.

“로시난트 왕조의 금동 촛대 1점, 같은 왕가의 보석 머리 장식 1점, 그리고 동방 대륙에서 건너온 서화 1점이군요. 모두 진품이고 보존 상태도 훌륭한데 머리 장식은 여기 이 부분이 옥에 티로군요.”

제이든은 머리 장식의 작은 보석들이 여러 줄 엮여서 술처럼 늘어진 가닥 중 한 곳을 짚었다.

“이 두 가닥은 후대에 새로 만들어 넣은 겁니다. 복원한 솜씨가 좋아서 이음매에도 파손 흔적이 보이지 않고, 알이 잘고 매칭 마법으로 마무리해서 육안으로 표가 안 나지만 사용된 보석도 다른 가닥처럼 루비가 아니라 가넷이에요. 이 상태로도 아주 좋은 물건이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네요.”

“저도 긴가민가했는데…… 매칭 마법 때문에 루비로 보인 거였네요.”

이노시카가 아쉬운 듯 눈살을 찌푸리자 제이든이 손을 저었다.

“그보다 중요한 부분은요.”

그는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재빨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여성이 머리 장식을 착용한 모습의 스케치였다.

“복원한 사람이 기술적인 면은 아주 훌륭했는데 이 머리 장식의 사용법은 정확히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머리에 쓰고 귀 옆으로 드리우면서 고정하는 부분이라 파손된 두 가닥은 다른 가닥들과 형태가 달랐을 거예요. 복원가가 아마 이 형태를 모르고 다른 가닥과 똑같이 만들었을 겁니다. 저는 그게 더 아쉽네요.”

이노시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이든의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와! 감정사 안 하고 화가를 하셔도 되겠는데요, 그림 정말 잘 그리시네요.”

제이든은 잠시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그림을 접었다.

“한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

세 점 모두 감정을 마친 제이든은 감정서를 꼼꼼히 쓰고 서명을 한 뒤 반지의 인장까지 찍어서 이노시카 톰슨에게 건네주었다.

“자, 그럼 부탁드린 향로를 보여주시겠어요?”

“예, 잠시만요.”

이노시카가 안쪽 수장고에 들어갔다. 금고라도 여는지 철커덕거리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그녀가 작은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안고 나왔다.

“조심해서 다뤄주세요. 저희 집 가보나 마찬가지니까요. 평소엔 따로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는 물건인데 특별히 가게에 갖고 나왔어요.”

“물론입니다.”

제이든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밀랍으로 봉인된 상자를 바라보았다.

이 안에 그가 계속 찾아오던 것이 있을까? 삼 년 전의 황궁 전시회에서 이 향로를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묘사한 대로라면 그럴 확률이 매우 높았다.

봉인을 떼고, 이노시카에게서 받은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들어 올리자 검은 벨벳 위에 놓인 자그마한 향로가 보였다.

순간 가슴이 턱 막히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그리움이 와락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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