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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1화 (프롤로그) (1/195)

고양이는요고양이는 감정사를 키운다 1화

프롤로그

제이든은 탁자 위에 놓인 물건들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제작된 지 이백 년은 되어 보이는 동방 대륙의 단검 여섯 자루, 보존 상태가 훌륭했고 이국적인 세공도 손상된 곳이 거의 없었다.

완벽히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장식, 아직 저울에 달아 보진 않았으나 무게도 똑같겠지.

여섯 자루 모두 같은 공방에서 제작된 것이 확실해 보였고 동봉된 감정서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미 감정을 마친 물건인데 날 또 불렀다는 건 이 감정서가 미덥지 않았단 이야기겠지? 아니면 단순한 교차 검증인가?’

옆에 놓인 감정서를 흘끔 보자 그도 이름을 아는 2급 감정사의 서명과 인장이 찍혀 있었다.

‘3급도 아니고 2급 감정사한테 감정했으면 웬만해서 교차 검증을 또 하진 않을 텐데.’

“날이 좀 흐린데 창을 닫고 등을 켜는 게 더 낫지 않겠소?”

제이든이 단검을 들여다보며 눈을 가늘게 좁히자 창가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말을 붙였다. 의뢰인의 대리로 나온 집사라고 했다.

“아니요, 일단은 자연광으로 좀 보겠습니다.”

제이든은 창문에 커튼을 치려는 집사를 제지하면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원래는 방 가운데 있던 탁자를 제이든이 원하는 대로 창가 쪽으로 끌어다 놓은 걸 빼면 의자 두어 개가 있을 뿐 썰렁한 방이었다.

꽤 번화한 마을 외곽 지역에 있는 이층집이었는데 어쩐지 사람이 사는 집다운 온기가 없었다. 어딘가의 영주라던 의뢰인이 이번 감정처럼 은밀하게 진행하고 싶은 일에나 쓰는 집인가.

덩치가 좋은 남자 한 명이 문 옆에 팔짱을 끼고 선 채 제이든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손도끼가 꽂혀 있었다.

감정을 위해 귀한 물건을 꺼내 놓는 만큼 지키는 사람을 두는 건 당연하지만 아까 방으로 안내할 때부터 위압하듯 한기를 풍기는 게 기분이 안 좋았다.

칼잡이들 중 저런 태도가 몸에 밴 자들이 더러 있긴 하지, 빨리 감정이나 마쳐야겠다.

제이든은 스물스물 올라오는 언짢은 기분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한 번 흔든 뒤 안력을 돋워 단검을 차례차례 들여다보았다.

의뢰인은 아마 이 중에 복제품이 있지 않나 의심하는 것 같았는데 제이든이 보기에 이 단검들은 모두 진품이었다.

얇은 장갑을 낀 손으로 단검을 조심스럽게 뒤집어 본 그가 나지막이 감탄했다. 훌륭한 물건이었다. 이 정도 가치가 있는 물건을 여섯 점이나 한자리에 수집했으니 2급 감정사를 두 번이나 불러 볼 만도 했다.

‘어라?’

시간을 충분히 들여 단검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해 본 후 더 볼 것이 없다 싶어 감정서를 쓰려고 펜을 들던 제이든은 다시 단검에 집중했다.

푸르스름한 빛무리를 두르고 있던 여섯 개의 단검 중 맨 가장자리의 단검 하나가 점점 붉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단검은 그의 눈앞에서 점점 더 피처럼 붉어졌지만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라? 이거…….”

“왜 그러시나? 복제품으로 의심되는 물건이라도 있소?”

제이든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집사가 물었다. 왠지 뭔가 기대하는 듯한 음성이었다.

“아뇨, 그렇진 않아요. 모두 진품입니다. 그런데…….”

제이든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집사를 바라보았다.

“이거 좀 색다른 물건이 하나 끼어 있네요?”

그는 손끝으로 가장자리의 단검을 가리켰다.

“모두 진품이긴 한데 저주 마법이 걸린 단검이 하나 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제가 보기엔 ‘붉은 손의 단검’ 같습니다. 센 왕조 2차 왕자의 난 때 왕좌를 바꿔 놓았다는 전설이 있는 바로 그 단검이요.”

“허! 정말이오? 세상에 그런 게 끼어 있다니, 주인님께 빨리 알려 드려야겠는데! 이거 위험하진 않은 물건인가?”

집사는 호들갑스럽게 놀랐지만 제이든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집사가 놀라는 태도가 어쩐지 작위적으로 보였다. 설마 짐작하고 있었던 건가?

“그럼 감정서를 쓰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주 마법이 걸린 유물은 문화재 관리국에 신고해야 하는 건 아시죠? 이건 이름까지 붙어 있는 물건이니 소유자나 감정사 모두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 후 2주 이내에 마탑에서 나와 정밀 검사를 실시하고 후속 조치를 알려줄 겁니다.”

제이든은 감정서 용지와 펜을 끌어당기려는 듯 일어서다가 잽싸게 탁자 위로 뛰어올랐다. 방문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슬그머니 문을 막아서면서 허리춤에 손을 얹는 걸 보았던 것이다.

“잡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해!”

집사의 외침을 뒤로하고 제이든은 주저 없이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창문이 와장창 깨지면서 그의 몸이 잔디밭 위로 굴러떨어졌다.

미리 창문 밑을 지키고 있던 사내 하나가 덤벼들었지만 제이든은 그대로 한 바퀴 굴러서 벌떡 일어나 미꾸라지처럼 사내를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크!”

귓전에 피리릭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리더니 방금 발을 디디려던 자리에 손도끼가 날아와 꽂혔다.

“미친놈들 아냐? 정말 살인멸구할 작정이었네!”

제이든은 빽 소리를 지르며 뜰을 가로질러 달려갔고 앞쪽에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두세 명의 몸집 좋은 남자들이 마주 달려왔다.

한 명 제치고, 두 명 피하고, 제이든이 좌우로 몸을 현란하게 흔들면서 쏜살같이 남자들의 틈을 빠져나가는데 세 번째 덩치가 양팔을 벌리고 가로막으며 그를 움켜잡았다.

“잡았다!”

다음 순간 어디선가 회색 그림자 하나가 사내의 얼굴로 날아들며 매섭게 손발을 휘둘렀다.

“흐끄우아악!”

사내는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제 얼굴을 쥐어뜯었고 제이든은 그 틈에 사내의 손을 벗어났다.

-이쪽으로!

회색 그림자가 사내의 얼굴에서 뛰어내려 제이든의 앞을 달렸고 제이든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회색 그림자의 꽁무니만 바라보며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다가 울타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켰을 때 방금 통과한 울타리의 틈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앞에는 드문드문 서 있는 나지막한 건물들 가운데 마을 중앙으로 향하는 길이 뻗어 있었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옷을 털고 매무새를 바로잡은 후 걷기 시작했다. 곧 사람들의 왕래가 제법 많은 큰길이 나왔고 청년과 회색 그림자는 행인들 틈에 스며들었다.

“고마워, 아실리.”

-내가 말했잖아! 이 의뢰 안 맡는 게 좋겠다고!

“나도 미심쩍긴 했어. 그래도 백주 대낮에 거리 한복판에서 이럴 줄은 몰랐네. 작은 마을도 아닌데.”

-의뢰자 신분도 확실치 않은데 덥석 일 맡을 때 알아봤어. 내가 퇴로 확보 안 해놨으면 어쩔 뻔했어?

“그치만 동방 대륙에서 건너온 희귀 유물이라고 해서…… 꼭 보고 싶었단 말이야.”

-하여간…… 빨리 가서 치안대에 신고부터 하자. 그놈들도 도망가기 바쁘겠지만 혹시 모르니 우리도 빨리 떠나는 게 좋겠어. 다음 의뢰지는 어디라고 했지?

“메이빌이라고 델리움 시 근교의 작은 마을인데, 톰슨 골동품상. 거기는 신분 확실해.”

-사흘쯤 걸리겠네.

길가에 서서 막대 사탕을 빨고 있던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신기한 듯 그의 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옆에 선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엄마, 저 아저씨 고양이랑 말을 해.”

제이든의 다리 옆에 붙어서 냥냥거리며 걷고 있던 은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아이를 살짝 돌아보자 커다란 초록색 눈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작가의 말

사진의 고양이는 이미지 연상을 돕기 위한 모델묘 백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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