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3권) (13/18)

야스 - 꿈을 먹는 괴물 3

13. 진창 속의 바퀴

실컷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니, 잠은 푹 잔 것 같은데 옴이 찌뿌듯했다.

비가 오려고 그러나. 창문 쪽을 바라보자 하늘이 조금 흐린 것도 같았다.

"일어났습니까."

바로 곁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권태준이 팔로 머리를 괴고 윤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해요?

"윤슬 씨 자는 모습 보고 있었습니다.”

로맨틱함보다 미져리가 달라붙은 기분을 느꼈다. 떨떠름한 윤슬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권태준이 팔을 뻗어 윤슬의 몸을 끌어안았다.

“이렇게 있으니 참 좋습니다."

이쪽은 참 부담스러운데. 윤슬이 슬금슬금 움직여 엉덩이를 뒤로 쭉 뻤다.

"싱글은 좁긴 한데. 딱 달라붙어서 자게 되는 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퀸 사이즈로는 바꿉시다.”

"내 침대 사이즈를 왜 마음대로 결정해요. 그거 걱정해줄 시간에 권태준 씨 옷이나 입어요. 왜 홀딱 벗고 있어요?”

자신은 원래부터 티를 입고 있었고 새벽에 일어나 속옷도 걸쳤지만, 권태준은 위부터 아래까지 올 누드였다. 아까부터 허벅지에 술찍술찍 스치는 물건의 존재감이 영 거북스러웠다.

"왜 벗었는지 기억 안 납니까?"

"일어났으면 옷부터 입으라는 소리죠.”

"옷이야 천천히 입으면 되는 거지, 뭐 어떻습니까."

“자꾸 존재감을 드러내잖아요."

잠시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짓던 권태준이 하. 하고 웃음을 흘렸다. 윤슬의 허벅지에 사타구니를 문질러 비비며 권태준이 "이거 말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래, 그거. 맨살에 닿는 타인의 물건이 찝찝해서 윤슬의 얼굴이 구겨졌다. 머리카락보다 굵고 고불거리는 무언가도 굼실거리는 기분이고. 

"아, 진짜."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 아님니까. 윤슬 씨도 남자면서 그걸 이해 못 합니까?,

댁은 방금 일어난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지금 허벅지에 문지르며 더 커지고 있는 기분인데.

어쩔 수 없이 윤슬이 권태준을 일어내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뒤돌아서 바지를 입는 윤슬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훑는 시선이 매우 거슬려서 윤슬의 손이 빨라졌다.

"일어나서 옷 입어요.”

권태준의 속옷과 바지를 던져주고, 말라 굳은 액체로 뻣뻣해진 민소매는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어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입을 일이 없을 것 같던 망고 민소매를 알차게 사용한 기분이지만, 보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도 일할 겁니까?”

"네."

원래 일어나서 바로 글을 쓸 만큼 부지런하지 않았지만, 부지런한 척을 하지 않으면 권태준이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일 것 같았다.

“일요일인데 안 쉽니까? 만날 일한다고 컴퓨터만 붙잡고 있으면 데이트는 언제 합니까?"

바로 지금처럼.

"프리랜서가 주말을 왜 찾아요? 일 안 할 때 쉬고, 아니면 일하는 거지.”

"오늘은 쉬는 날 하면 안 됩니까?"

"오늘은 일하는 날이에요."

단호하게 대꾸하자 권태준이 작게 혀를 찼지만, 윤슬은 그것을 무시했다. 씻으려고 욕실로 향하는 윤슬에게 권태준이 물었다.

"그래도 아침은 먹고 일합시다. 아침 뭐 먹을 겁니까?”

"찬장에 시리얼 있어요."

"……죽 배달시키겠습니다."

그래 준다면야 고맙다. 좋다는 뜻으로 손을 까닥거린 윤슬이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잔잔하게 틀어놓은 음악과 함께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귀를 즐겁게 했다. 음악에 맞춰 키보드를 두드리던 윤슬이 잠깐 창밖을 바라보았다.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점점 거세져 저녁이 되자 한동안 멈추지 않을 것처럼 쏟아붓고 있었다. 비가 오는 것을 보던 권태준이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한 것이 삼십 분은 된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자신이 왜 권태준을 걱정하고 있나 싶어서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환자인데.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냈지만 뒤늦게 탈이 나서 길바닥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애초에 멀찡하게 외출해서 강호수랑 술도 마시고 온 사람인데 설마 그럴까. 그래도 비까지 오니 무슨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에이 씨, 진짜."

머리를 어지 럽히는 생각에 윤슬이 짜증을 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부터 집에 없던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제 집에서 나가 다시 오겠다던 사람이 안 오고 있자 신경이 쓰였다. 평소라면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글에 집중했을 텐데. 그 집중이 다 사라졌는지 자꾸 헛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울 만지작거리며 전화를 해볼까. 권태준이 아까 우산을 가지고 나갔었나.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던 윤슬의 귀로 띠띠띠띠. 하는 전자용 소리가 들렸다. 삐리릭 하고 도어록이 풀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권태준은 한 손에 흠뻑 젖은 우산을, 그리고 다른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든 상태였다.

"어디 갔다 왔어요? 비도 많이 오는데.”

"나 걱정한 겁니까?”

윤슬이 손에 든 휴대폰욷 보며 권태준이 물었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보며 윤슬은 이제까지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걱정은 무슨. 권태준 씨가 길바닥에서 죽기라도 하면 찝찝할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게 걱정하는 겁니다."

"우산도 있는데 왜 그렇게 젖었어요?”

"폭우처럼 쏟아져서 우산을 써도 이 모양입니다."

하얀 면티에 고무줄 반바지 차림으로 삼십 분이 넘게 어딜 다녀온 것인지, 옷이 흠뻑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워낙 체격이 좋아서 가슴 쪽은 봐줄 만한데, 허리 아래 부분까지 옷이 달라붙어 있는 것은 조금 못 볼꼴이었다. 욕실에서 수건 한 장을 가져와 건네자, 신발을 벗고 올라온 권태준이 들고 온 비닐봉지를 싱크대에 내려놓고 수건을 받아 젖은 머리와 얼굴을 닦았다.

"바지 다른 거 줄 테니까, 들어가서 씻고 나와요.”

"상 펴서 이거 올려놓고 있어요. 나와서 같이 먹읍시다."

"뭔데요?”

"비 오면 부침개 정도는 먹어줘야지 않습니까. 나가서 먹자고 하면 안 먹는다고 할게 뻔해서 사 왔습니다."

그리 말하고 휘적휘적 욕실로 들어가 버리는 권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윤슬이 한숨을 내쉬며 옷장을 뒤적거려 반바지와 저번에 사다 두었던 속옷을 꺼내 욕실 문 앞에 내려놓았다.

비닐봉지 안에서는 기름 냄새가 났다. 요즘 시대에 비 온다고 무슨 부침개야. 구시렁거리면서도 상을 펴고, 접시를 가져와 비닐봉지 안에서 부침개를 꺼냈다. 아직 온기를 잃지 않은 부침개가 따끈따끈했다. 방금 전까지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기름 냄새와 합께 두툼하게 부쳐진 부침개를 보자 식욕이 돌았다.

"배고팠습니까?"

"네?"

"침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보고 있어서 말입니다."  

수건을 목에 걸치고. 마치 제집처럼 젓가락과 가위를 꺼내온 권태준이 윤슬의 맞은편에 앉았다.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종류별로 한 장씩 달라고 했습니다. 해물파전도 있고, 그냥 파전도 있고, 부추전도 있고, 김치전도 있고, 녹두전도 있습니다."

어찐지 양이 많더라니.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넣는 집에서 사 왔는지 부침개가 실했다. 해물파전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씹자, 오징어와 굴이 고소하게 씹혔다.

"와,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요.”

"오랜만에 먹는 겁니까?”

"그렇죠. 집에서 만돌기엔 기름 냄새도 나고, 남자들뿐이라 식사나 겨우 차려 먹는 정도였거든요. 있으면 먹는데 나가서 사 먹을 정도로 먹고 싶은 음식도 아니고. 비가 올 때 생각나도, 비 맞으면서까지 나가서 먹고 싶은 정도는 아니고."

전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권태준이 냉장고에서 언제 사다 두었는지 맥주 두 캔을 꺼내왔다. 따뜻한 부침개에 차가운 맥주를 곁들이자 왠지 마음이 느긋해졌다.

"비 오는 거 싫어합니까?”

"아뇨, 좋아하는 편에 속해요. 빗소리도 좋고. 축축한 느낌도 좋고, 비가 오면 가라앉는 분위기도 좋고. 비 맞는 걸 싫어하는 거지, 비 오는 건 좋아해요."

"딱히 비가 안 와도 나가는 건 싫어하지 않습니까."

틀린 말이 아닌지라 윤슬은 모른 척 부침개만 입에 쑤셔 넣었다.

"나는어릴 때 비 오는 날이 참 싫었습니다.”

치익, 탁. 맥주 캔을 딴 권태준이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맥주를 마시고 입술울 훔치며 말을 이었다.

"고아원에는 제대로 된 우산이 별로 없었거든요. 우산살이 망가진 우산 을 쓰고 학교에 가면 애들이 놀렸습니다. 그게 참 창피했죠. 하루는 일부러 우산을 안 쓰고 비를 맞아서 감기에 걸려 호되게 앓기도 했습니다. 그때에도 미련한 짓이라는 생각은 있었나봅니다. 그 뒤로는 망가진 우산이라도 잘 쓰고 다였거든요."

어 린 날의 추억이라고 꺼내놓는 경험담이 우중충하고 우울해서 윤슬이 캔에 입술을 대고 맥주만 꼴깍꼴깍 넘겼다.

“왜 나는 부모가 없을까. 원망은 항상 거기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왜 나는 사람이면 당연하게 가지고 태어났을 부모가 없을까. 왜 나는 집이 없을까. 왜 나는 돈이 없울까. 왜 내 인생은…… 고아원에서 시작되었을까."

"원망만이 아니라 권태준 씨의 불행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겠죠."

"그렇네요. 불행의 시작. 이제까지의 내 삶은 꿈만이 아니라 현실도 악몽이었으니까."

"그건 나랑 비슷하네.”

윤슬이 건배틀 하듯 권태준이 둘고 있는 캔맥주에 자신의 것을 가법게 부딪쳤다.

"윤슬 씨와 알게 되어서 참 좋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그것도 일반인읕 만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알고 지낸다는 게 이제는 힘든 일이 되어 버렸거든요.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치 못한 소득을 얻은 기분이 둘어 기쁩니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의 절반은 일상적이지 않을걸요."

"그래도 그 정도는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계속되는 악몽 속에서 가공 한 번씩 꾸는 좋은 꿈처럼. 요큼 윤슬 씨와 만나는 내가 그렇습니다."  

아, 권태준온 오그라드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아니. 어찌면 문제는 권태준의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저런 소리를 한다면 어디서 개수작이냐고 뒤통수률 쳤을 텐데, 나 이 서론 넘어 무슨 사춘기 소년 같은 발언이냐고 욕을 바가지로 했을 텐데. 저 잘생긴 면상으로 저런 개 같은 소리를 하니 왠지 진지하게 돌려왔다.

윤슬은 손가락으로 대충 귀를 후비적거리며 김치전을 입에 넣었다. 살 짝 짜면서도 고소한 맛에 젓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윤슬 씨 먹는 모습만 봐도 좋습니다.”

이건 정말 개소리인데. 왜 저 말을 자신은 진지하게 듣고 있는 걸까. 왜 개소리하지 말라는 말도 이제는 입에서 나오지 않는 걸까. 권태준의 개소 리에 익숙해져서? 아니면 권태준의 얼굴을 향해 험한 말을 하는 것이 죄라 는 생각울 이제라도 하게 되어서? 어느 것도 좋지 못한 이유였다.

"내일부터 혼자 있으면 내가 보고 싶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그 개소리는 언제까지 계속할 건데요?”

다행이다. 아직 권태준에게 완전히 면역된 건 아닌 것 같았다. 빈 캔을 내려놓으며 윤슬이 불통하게 대꾸했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이 정도면 자다가도 생각날 얼굴 아닙 니까?"

부침개를 먹던 윤슬이 목에 걸리는 기분에 를록를록. 기침을해댔다. 가 슴을 치며 기침울 진정시킨 윤슬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공 자 다가 권태준 얼굴이 떠울라 벌떡벌떡 일어났던 때도 있었다. 권태준의 행 동에 하도 열이 받아서, 화병이 생길 것 같아서.

"헛소리하지 말고, 내일 병원에나 가봐요. 여름이라 골을 수도있으니 까."

"그렇지 않아도 실밥 뽑으러 가야 합니다.”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요. 대체 뭘 어떻게 하고 다녀야 칼을 맞아 요? 난 손가락만 베여도 아프던데. 배에 칼 맞고 생글생글 잘도 웃고 다니 고. 아무른 신기해."

"윤슬 씨가 날 걱정한다는 걸 알았으니, 조심하겠습니다.”

"나랑 상관없이 그건 그냥 본인이 조심해야 하는 거죠."

"알았습니다."

알았다면서 웃는 얼굴이 꺼림칙했다. 왠지 권태준이 묘한 착각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그것을 물어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남은 부침개를 입에 쑤셔 넣으며 윤슬이 입을 다물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자 권태준이 정장울 입고 있었다. 집에서 입고 윙굴거리던 면티에 재킷을 걸치던 권태준이 어떻게 알았는지 윤슬을 둘아보았다.

"나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몇 시예요?”

"여섯 시조금 안되었습니다."

"응, 응."

윤슬이 옹알거리듯 답하며 팔다리를 쭉 뻗었다. 부들거리며 기지개를 켜 는 모습을 지켜보던 권태준이 웃으며 다가왔다.

"좀 더 자요. 졸린 얼굴입니다."

"이 시간에 출근해요?”

"윤슬 씨 얼굴 더 보고 싶지만, 집에 가서 옷 갈아입어야 해서 일찍 나갑 니다.”  

씻었는지 젖은 머리에서 톡, 하고 물방울이 떨어졌다. 미간울 찌푸리며 얼굴을 흔들자. 권태준이 옷으며 얼굴에 묻은 물기를 홈쳐 주었다.

"몇 시에 일어날 겁니까?"

"조금 있다가요."

"나 없다고 밥 먹는 것도 미루고 씻는 것도 미루고 그러면 안 됩니다.”

"으음.”

대충 소리를 내서 대답을 대신하자 권태준이 눈울 뜨라며 톡톡 뺨을 두 드렸다.

"점심시간에 맞춰 밥배달시킬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일어나서 먹고싶 은 메뉴 골라 문자보내요. 아니면 내 아용대로 콩밥에 두부조림에 된장찌 개 시켜서 보낼 겁니다."

"아, 콩. 싫어."

콩에 짓늘리는 기분이 들어 윤슬이 흐느끼듯 웅얼거 렸다. 괴롭힘을 즐기 는 악당처럼 권태준이 킬킬 웃었다.

"콩자반, 두부 덮밥, 두부 세이크, 두부 설러드, 두부죽.”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옮조리는 말에 윤슬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마치 노래룹 부르는 것처럼 듣기 좋게 낮은 목소리가꿀처럼 감겨오는데, 귀를 타고 들어온 내용은 정반대인지라 속이 메스꺼워졌다.

“윤슬 씨 귀여워서 촐근을 돗 하겠습니다.”

“잠 덜 깬 사람 괴롭히는 게 그렇게 재있어요?"

“윤슬 씨를 보고 있노라니 사람 괴롭히는 것도 졸거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돕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출근이나 해요."

권태준의 얼굴울 쭉 일어내며 타박하자. 권태준이 윤슬의 손을 잡아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고개 돌려 봐요." 

“왜요?"

"가기 전에 뽀뽀나 한번 합시다."

"뭐래? 맡겨뒀나. 왜 그렇게 당당해?"

"맡겨뒤야 할 수 있는 거였습니까? 진작 말을 하지. 입술 이리 대요. 맡 겨놓고 가게."

진짜 뭐라는 거야.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피하는 윤슬의 얼굴을 잡  

아 권태준이 고개를 숙였다.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은 건조했다. 쪽, 쪽. 가볍게 두어 번 부딪쳤던 입술이 짓눌려 뭉근하게 문질러졌다. 살짝 벌 어진 입술 틈으로 혀끝이 톡 부딪쳐왔다.

타액이 섞이며 건조했던 입술이 을기로 젖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 처 럼 입술울 빨았다 밸어내며 권태준이 뜨거운 숨울 흑 불어 냈다.

"그만해요.”

상체를 숙인 권태준에게 것늘리듯 누워있던 윤슬이 몸울 비를었지 만. 권태준은 둘리지 않는 사람처럼 다시 윤슬의 입술울 막았다. 입술이 벌어지 고 혀가 찔러 들어왔다.

타인과 혀를 얽을 때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낯설고, 조금 징그 럽고, 조금 흥분되고, 또 조금은 신기하고 플거운. 대학교 다닐 때. 술자리 에서 장난으로 했었던 혀로 체리 묶기가 문득 생각났다. 매듭을 잘 묶을수 록 키스를 잘한다고 했던가. 그때도 믿지 않았지만, 지금도 신뢰감 없는 게 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게 정말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권태준에게 속수무 책으로 리드당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무슨 생각합니까."

다론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린 권태준이 물었다. 윤슬이  

눈 끝에 웃음울 매달고 고개를 내저으며 작게 웃었다.

"아니, 어떻게 키스를 하면서 딴생각을 합니까? 지금 나한테 집중을 해 도모자를 판국에."

"갑자기 대학교 때, 혀로 체리 묶었던 게 생각나서요.”

"혀로 체리를 묶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체리 목지만 입에 넣고 혀로 매듭 만들어 묶는 거 요. 그거 잘하면 키스를 잘한다는 속설 못 들어봤어요."

"아아. 윤슬 씨 매든 하나도 못 묶었습니까?”

"그거 지금 나 키스 못 한다고 돌려서 말하는 거죠?"

권태준은 대답 대신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과거의 행동과 지금의 결과 가 일치한다면 자신이 웃기다고 하지도 않았울 텐데, 권태준은그걸 알지 못했다. 윤슬이 손울 뻗어 권태준의 목울 감아 끌어당기며, 바짝 붙은 입술 을 달싹거려 을었다.

"내가 몇 번이 나 매듭을 묶었을 것 같아요?”

"……몇 번이나, 입니까?"

“한 번은 기본. 체리 꼭지가 길면 두 번도 가능하고, 세 번까지는 힘들더 라고요. 나 그래서 대학교 다닐 때 키스 선수일 거라고 소문났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왜 이래요? 능력이 퇴보한 겁니까. 아니면 나한테 성의 가없는 겁니까?”

권태준이 진지한 얼굴로 을었다. 저건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까고 있는 거다. 윤슬이 이를 세워 권태준의 입솔울 잘근 깨을었다.

“그게 진짜였으면 내가 속설이라고 했겠어요?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게 확인되었으니 옷은 거죠.”

“아닙니다. 연습하면 잘할 수 있울 겁니다. 오놀부터 매일 체리 사다플 테니 다시 연습합시다."

전혀 연습이 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권태준은 열의에 불타 보였다. 쪽, 쪽. 꾹꾹. 그 후로 몇 번이나 입술울 늘러 붙였던 권태준이 겨 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러다정말 늦겠습니다."

"어차피 촐퇴근 시간 잘 안 맞춘다면서요."

"나 지각하라고 부추기는 겁니까?" "아니, 갑자기 성실한 척을 하니까 새삼스럽잖아요."

"내가 성실할 때는 또 성실한 남자입니다."

아. 네. 윤슬은 대충 고개를 주억이며 이불을 끌어당겨 안았다. 권태준 이 주말 내내 방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커다란 곰 인형을 끌고 와 윤슬

의 옆에 눕혀놓았다.

"가독이나 좁은 침대에 이건 왜 울려요?”

"나 대신 끌어안고 자라는 배려입니다.”

더워 죽겠는데 끌어안고 자기는 뭘 끌어안고자. 윤슬이 보란 듯이 곰 인 형을 걷어차 침대 밑으로 던졌다.

"나 간다고 심통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잡시다. 저녁에 체리 사다 줄 테니 까."

"필요 없다니까요."

"점심 전에 연락하는 거 잊지 말고."

윤슬의 발을 붙잡아 얌전히 침대에 내려놓은 권태준이 이불을 덮어주며 다시 한 번 확인을 시켰다. 네. 네. 대충 대답하는 윤슬의 뺨에 가법게 입 을 맞춘 권태준이 가보겠다며 훌찍 집을 나섰다. 성실할 때는 또 성실한 남 자라 갈 때에도 미련 없이 가는 모양이다. 돌아보는 일 없이 문을 열고 나 서는 권태준의 등을 바라보던 윤슬이 창밖으로 슬슬 떠오르는 해에 이불 을 끌어올려 얼굴을 덮었다. 

원고를 받은 담당자가 득달같이 전화률 했다. 평소 이메일로 연락울 주고받았던 것을 떠을리면, 담당자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원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면 마지막 권 원고이니 우정의 미를 다지는 기념에 서 예의상 하는 연락이라거 나.

"아뇨, 제가 빨리 마지막 권을 보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요. 더 이상 질질 끄는 것도 안 될 것 같고 해서. 빨리 완결 내서 출간하는 게 낫잖아요.

「원고 앞부분 봤는데, 이번 권도 재밌을 것 같아요. 에피소드 몇 개 넣어서 두어 권 더 늘여도 괜찮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일찍 끝내셨어요?」

망해가는 게 보여서 그랬습니다. 여기서 더 써봤자 괜히 힘만둘이고 판매는 안 될 것 같고 욕만 두 배로 먹을 것 같아서, 라는 말을 꾹 밀어 넣으 며 윤슬이 손사래를 쳤다.

"이 정도가 좋을 것 같아서요. 지금도 늘어진다는 말이 나오고. 그냥 이번 글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다른 글이나 준비하려고요." 

「어휴. 아쉽다. 원고 하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어요. 그럼 폼 쉬시다 다음 작풍 준비하시는 거죠?」

"네, 그래야죠. 소재 생각날 때까지 종만 쉬었다가, 얼론 다음 글 시작해 야죠.”

이제까지 놀면서 쓰던 생활이 양심에 가책울 느끼게 했지만, 윤슬은 매끄럽게 옷으며 대꾸했다.

「다용 작풍도 기대할게요, 작가님. 언제 한번 나오세요. 같이 밥 먹어요.

"네, 나중에요."

예의상 하는 말임을 알기에 윤슬 역시 예의상 대꾸를 둘려주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언제나 말뿐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서로 기분 좋 게 통화를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스케줄 조정해서 교정고 받으실 날짜 잡히면 말씀드릴게요.」

떼, 교정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푹 쉬고 계세요. 요큼 날씨 너무 덥더라고요. 건강 조심하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사이좋게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끝냈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이는 바탕화면이 정말 끝울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윤슬이 활짝 기지개를 켰다.

"와, 끝이다."

"뭐가 끝입니까?"

"아, 깜짝이야."

언제 돌어온 건지도 모르게 와 있던 권태준이 뒤에서 불쑥 물었다. 의자 팔걸이를 붙잡고 놀어지며 윤슬이 소리를 질렀다.

"놀랐잖아요!"

"뭘 그렇게 놀랍니까?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잘못하긴 뭘 잘못해요? 기습적으로 돌어와서 말 거니까 놀란 거지."

"기습적이긴, 무슨. 문 여는 소리 들릴 텐데, 얼마나 통화에 집중울 하고 있으면 못 듣습니까? 누구예요? 누구랑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통화를 합니 까?"

"담당자예요. 그럼 화기애애하게 통화하지, 담당자 멱살이라도 잡을 기 세로 통화해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 윤슬은 컴퓨터를 끄고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일차적으로 원고도 끝냈으니 교정고가 을 때까지 는 자유다. 부지 런한 사람이라면 차기작 구상울 할 테지만, 윤슬은 본인 스 스로 부지런한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쉬자, 자자. 놀자. 침 대에 길게 드러누워 베개를 끌어안는 윤슬을 권태준이 물끄러미 내려다보 았다.

"자려고 누운 겁니까?"

"네."

"내가 왔는데도?"

"네."

"같이 자자고?."

"아뇨.”

분명 아니라고 답을 했는데도, 권태준온 정장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쳐 두고, 윤슬을 벽 쪽으로 일어 조금 여유가 생긴 침대 위로 울라왔다. 권태준이 언젠가부터 이 비좁은 침대를 탐내고 있었다.

은데 목 이러고 있어 야겠어요? 

"좁으니까 이렇게 포개져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직 날도 밝은데 야한 짓이나 합시다."

날이 밝은 것과 야한 짓은 전혀 연관이 없었다. 다가오는 권태준의 입술 을 윤슬이 두 손으로 밀어 막았다.

“내려가. 내려가.”

손으로 얼굴을. 발로 권태준의 허리를 일어내며 말하자 권태준이 웃움 을 터뜨렸다. 커다란 손이 허리를 일어내는 발목을 붙잡았다.

"부끄러운 겁니까?”

ㅁ야한 짓 하자고 대똥 달려들면 좋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부끄러 운 것과는 다론 운제라고요."

“역시 밀밥을 좀 깔아야 하는 겁니까? 장미. 와인. 술, 데이트, 선을 이 런 거? 분위기도 좀 잡고, 은근술찍 터치도 해서 옴도 달구고?"

"달구긴 뭘 달궈."

기어코 발에 힘을 주어 권태준을 밀어냈다. 쿵, 소리를 내며 권태준이 침 대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상체를 둘어 침대 위로 기대며 권태준이 불통거렸다.

"우는소리 하면서 기어 올라오지 말아요.”

"예민한 곳 안 만지고 안고만 있을 테니까 좀 봐줘요.”

은근술찍 침대로 다시 올라온 권태준이 윤슬의 팔을 쭉 펼치고 팔베개 를 했다. 손울 뻗어 허리를 감아 옆구리에 매달린 자세를 취한 권태준을 윤슬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그거 압니까? 윤슬 씨랑 이렇게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합니다."

후우. 하고 한숨울 내쉬는 권태준의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윤슬이 살짝 몸을 를어 권태준울 향해 누웠다.

"이렇게 달라붙어 있을 거면 에어컨이라도 좀 켜고 오지.”

"이렇게 달라붙게 해풀 풀 을랐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밀어줄까요?”

"참아줘요. 조금만 이러고 있읍시다.”

윤슬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권태준이 한숨처럼 말을 내별었다. 저보다 더 큰 남자가 자신의 팔을 베고 아이처럼 매달려있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뭐랄까, 조금 미묘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애릇한 마욤이 들기 도 하고. 덩치만 큰 어린 남동생울 돌보는 기분도들고. 이래서 로맨스에 나쁜 남자가 먹힌다고 하는 건가. 다음에는 권태준을 모델로 로맨스 장르 를 써봐도 괜찮울 것 같았다. 아나, 어찌면 욕을 엄청나게 먹을지도 올라.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 다.

"퇴근하고 온 거예요?”

떼 큰형님이 일찍 퇴근하셔서 저도 같이 퇴근했습니다.”

왠지 이상한 단어가 중간에 하나 껴 있는 것 같았지만윤슬은 모론척했 다. 권태준의 머리를 살살 쓸어주며 윤슬이 다시 을었다.

"지쳤어요?"

"……그런 것 같습니다. 네, 지쳤어요."

그리 말하는 권태준의 얼굴은 정말로 지쳐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배의 상처가 나았다고는 말했지만아직 괜찮지 않은 것일까.

“ 왜 이렇게 지쳤어요? 오늘 힘들었어요?"

"그냥. 쭉 살아오다가 문득 지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가끔그  

런 생각울 합니다. 진창을 구르는 마차의 바퀴가 된 것 같다고. 바퀴는 삐 거덕거리는데. 마차의 주인은 바퀴가 완전히 고장 나기 전에는 바꿀생각 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물과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서 점점 더 덜컹거리는 데. 이 진창의 끝에는 마론 땅이 아니라 늪이 있을 것 같은 기분. 끝없이 오 을을 묻히고 굴러가야 할 것 같은 기분. 바퀴가 망가지기 전에 마론 땅울 밟울 수 있긴 할까요.”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권태준의 속내를 본 것 같은 기분에 윤슬이 작게 혀를 찼다. 머리를 쓰다등던 손으로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드러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가보는 수밖에 없죠. 바퀴를 바꿔주지도 않고. 고쳐주지도않는다 면……갈 수밖에 없잖아요. 가서 확인해봐야죠. 정말 늪인지, 아니면 마론 땅일지.1"

"끝에 도달할 때까지, 그 바퀴가 버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틸 수 있어요. 내가 본 권태준 씨는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니까. 이기 적으로 살아남아요. 땅에 있는 건 다 밟아서 올라타고, 정 안 되면 마차라 도 뒤집어요."

윤슬의 말에 권태준은 작게 웃기만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긴 했다. 권태준이 뒤집어야 할 마차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6"."869

클 것이 분명할 테니까.

"윤슬 씨는 뭐가 끝나서 그렇게 독립을 맞은 사람처럼 기뼈했습니까?”

"원고 끝내서 보냈거든요. 그리 성실하게 쓰지는 않았지 만, 그래도 폼 쉬 려고 생각하니까 좋아서요."

"일주일 전부터 끝난다끝난다 말만 하더니, 이계 정말끝난 겁니까." 떼, 쓰는 건 완전 끝났어요. 교정고 오면 한 번 더 보긴 해야겠지 만.”

방금 전까지 플죽어있던 사람이 번찍 고개를 들어 눈을 빛냈다.

"휴가갑시다."

“휴가철 다 지났는데 무슨 휴가?”

“윤슬 씨 여름휴가도 안 갔잖습니까.”

"전 원래 그런 거 안 챙기는데요."

여름휴가. 겨울휴가 딱딱 맞춰 쓰는 회사원도 아니고. 어딜 가고 싶으면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는 프리랜서이기에 딱히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기 도 했다.

"윤슬 씨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휴식은 제가 알아서 가질게요." 권태준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침대에 늘어져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 을 것 같았다.

"나도 휴식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권태준 씨 휴식은 권태준 씨가 알아서 챙겨야죠."

“일박이일 정도로 가까운 산속 펜션이나 바닷가 호텔로 다녀옵시다."

"아니, 난그냥 집에……."

"나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이론 마스터 했으니 이제 실전만 치르면 됩니 다."

이거 왠지 연애할 때의 그런 상황 같다. "일박이일로 여행 다녀오자. 너 랑 같이 여행가고 싶어서 그래. 가서 바다도 보고, 맛있는 거 먹고, 푹 쉬 다 오면 좋잖아. 이상한 짓 안 할게.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거라니까. ’ 여기에 더해 권태준은 당당하게 뭔가를 실천하자고 말하는 상황이고.

"됐어요. 실전은혼자 치러요.”

"확인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혼자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공부는 남이 확인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만족하는 거지."

“만족스러운 수준 같으니, 증명할 기회를 좀 줍시다. 학교 다닐 때에도 시험 보지 않습니까.” 아, 이런 질척질척한 남자 싫다. 억지 부리는 남자도, 때쓰는 남자도. 말 안 통하는 남자도. 그럼에도 권태준은 떨어지지 않았다.

“바퀴가 어쩌고저찌고하면서 지쳤다면서요. 가만히 좀 누워서 쉬어요.” 기쳤으니까 쉬자는 겁 니다.”

"그래요, 쉬어요.”

“좋다고 한 겁니까? 그럼 산이 좋습니까, 바다가 좋습니까.”

"아니, 지금 쉬라고요. 여기서.”

“역시 여름은 바다가 좋겠죠. 뭐, 산도 나브지는 않습니다. 여름에는 바 다에 사람이 많아서.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거의 호텔에서 지내니 상관없 을 것 같기도 합니다.”

"너 일부러 내 말안 듣지."

윤슬의 말에 권태준은 잠시 침묵했다. 어찌면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라. 일부러 그런 사람인 척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돌었다. 예전에도 종좀 하곤 했던 이 의심에 확신이 더해졌다.

“멀리 가는 게 싫다면, 그냥근처 호텔에서 쉬다 오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다, 권태준은 그냥 원래 이런 농인 것 같다. 윤슬은 자신의 생각울 철회했다.

「나 정말 윤슬 씨 말을 잘 듣는 것 같습니다.」

권태준이 대뜸 전화해서 내별은 말에 윤슬이 반사적으로 인상울 구겼다. 자신의 말울 가장 안 듣는 사람을 꼽으라면 그게 바로 권태준이었다. 역시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모론다더 니. 권태준이 있으면 거울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면에서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최대한의 인내심으로 이를 악물고 윤슬이 묻 자. 휴대폰 너머에서 권태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서울 터호텔 예약해웠습니다. 이번 주 주말 날짜로. 윤슬 씨와 첫 경험 인데 스위트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하고 옷는 권태준이 눈앞에 있었다면 아마도 들고 있던 숟가락 615."869

으로 입을 때렸을지도 모르겠다. 입맛이 달아난 윤슬이 먹던 시리얼을 싱 크대에 올려놓고 냉수를 찾았다.

"누가 간대요, 스위트롱? 그리고 첫 경험은 무슨. 대체 원 말을 하는 거 예요?"

이 냉수를 자신이 마실 게 아니라 권태준에게 줬어야 하는데. 윤슬이 까 드득 이를 갈고 있자 권태준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이지 않습니까. 우리 둘이 같이 호텔 가는 거. 가서 둘아다니지 말 고 롱에만 박혀서 쉬다 옵시다. 식사도 룸서비스 시켜 먹고. 답답하면 실 내 수영장도 있으니 수영을 해도 좋고, 아니면 가법게 산책을 해도 좋고0

권태준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니 첫 경험이라는 게 정말 처음으 로 호텔에 간다는 의미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권태준 과 호텔을 같이 묶기엔 매우 위험한 단어의 조합이었다.

"내가 권태준 씨랑 왜 가요?”

「저 번에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며칠 전에 그런 말을 듣긴 했다. 하지만 분명 가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 었다. 권태준과 대화를 나눴던 것은 분명한데, 대화의 결론을 왜 다르게 알 고 있는 것인지 윤슬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나는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 내가 미쳤다고 권태준씨랑 호텔에 가요?”

「미치면 가는 곳입니까. 호텔이? 윤슬 씨 집에서 한 침대도 쓰는데, 호텔 이라고 못 갈 게 뭐가 있습니까? 솔직히 호텔 침대보다 윤슬 씨 침대가 더 좁아서. 붙어서 무슨 짓을 할 생각이면 윤슬 씨 침대가 더 위험하다는 거 모릅니까?」

아니, 왜 그걸 자신에게 가르치듯 말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위험한 짓 을 할 생각도 없고, 자신의 침대에 굳이 기어돌어 오는 것은 권태준이었다. 어째서 지금 자신이 권태준에게 설교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위험한 제 침대도 울라오지 마시죠.”

「말이 왜 또 그렇게 됩니까? 호텔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라고 말하 는 겁니다. 그냥 쉬다 오자는 건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굽니까. 호텔 한 번 안 와본 사람처럼 촌스럽게.」

윤슬이 후우, 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거센 입김에 앞머리가 눈앞으로 어지럽게 흔들렸다.

"네. 나 촌스러우니까 호텔은 못 가겠네요. 혼자 잘 다녀오세요.” 「괜찮습니다. 내가 많이 가봐서 잘압니다. 아. 오해는 하지 말아요. 일 때문에 촐장 가서 숙박했던 거지, 다론 용도로 사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나 믿어도좋아요.」

"믿고안 믿고를 떠나서, 나는……"

윤슬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현관 벨이 울렸다. 권태준과는 지금 통화를 하고 있고, 그럼 딱히 방문할 사람이 없는데. 강호수는 이계 울 일이 없고, 아버지가 오셨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고개를 가옷거린 윤슬이 외 시경을 통해 밖을 내다보다 몸을 굳혔다. 집 안에서 반옹이 없자 방문자가 다시 벨울 늘렸다.

「윤슬 씨도 마음에 들 겁니다. 스위트룸은 전망도 좋아요. 거기서 하루 만 지내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또 압니까? 나중에 윤슬 씨가 또 가자고 먼저 말할 일이 생길지.」

"나중에 통화해요." 

「허락한 겁니까?」

"이게 지금 허락으로 들려요? 아니, 나중에 얘기하자니까요.”

「그래요, 하루만 있다 오는 거니 검은 너무 많이 챙기지 말아요. 그냥 몸 만 가도 됩니다. 내가 필요한 건 윤슬 씨뿐이……."

들을 필요가 없는 헛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권태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간 통화가 언제 끝날지 올라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사이에도 벨 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윤슬은 대답 대신 현관을 열었다.

"……없는 플알았다."

“그런 것치고는 열심히 벨을 누르던데."

방문한 것은 재영이었다. 병원에서 서로 모진 말을 나눴던 날 이후로 처 음 보는 얼굴은 병원에서 봤울 때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장울 못 자는 사 람처럼 꺼칠했다.

“들어가도 돼?”

"어, 들어와. 커피 줄까?”

"그냥 시원한 물 한잔 줘."

독립을 한 뒤로 한 번도 찾아왔던 적 없는 재영이었다. 그런 형이 어째 서 방문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짐작이 되는 이유가 있기도 했 다. 설마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설마그 이유인가 하는 마옴 사이에서 윤슬 은 갈팡질팡했다.

건네준 물을 천천히 마시던 재영이 조금 듬을 들이듯, 윤슬의 오피스텔 내부를 둘러 살폈다.

기저분하게 하고 있을 줄 알았더 니, 나름 깔공하게 사는구나.”

에 있을 때도 청소기는 내가 돌렸었어. 내가 뭐 집안일 안 했던 것처 럼 말하네."

"그래. 안한 것으로 따지면 너보다 내가 더 안하기는 했지."

책상에 컵을 내려놓고 의자에 암는 재영을 마주 보며 윤슬이 침대에 걸 터 암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울 돌이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것 울 먼저 묻고 싶지는 않았다. 약간의 배짱이었다. 아쉬운 사람이 찾아왔으 니, 아쉬운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보라고. 자신은 궁금한 것 외에 그 어떤 아쉬움도 없다고.

재영은 의자에 않아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빈손울 마주 잡고 꼼지락거 리는 손가락이 그의 불안한 심 리 상태를 말하고 있었다. 뭐 가 그렇게 불안한 걸까. 자신이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아니면 자신이 살 고 있는 집에서 부정이 옮기라도 할까봐.

"독립한 지 일 년이나 되었는데, 이제 와서 남동생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 해진 건 아닐 테고. 저번에 사이좋게 헤어졌던 것도아니고. 새삼스럽게 왜 왔는지 난 모르겠는데, 이제 슬슬 말해봐. 아무 용건도 없이 그냥 들렀 다고 하기엔, 우리가 그렇게 허물없는 사이는 아니잖아."  

윤슬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재영은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일까. 모쪼록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유가 아 니기를 바라며, 윤슬은 재영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악몸을 없애줬으면 좋겠다. 예전에, 그때처럼."

그래.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다더니. 윤슬은 한숨울 삼키며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처음 형의 악몸을 없애줬을 때, 화를 내고, 나를 괴을이라고 손가 락질하고, 나를 피했던 건 형이었잖아요

“하지만 악몸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어 ."

"악몸을 없애줘도 화를 내고, 악몸을 둘려줘도 화를 내고. 나는 형에게 화풀이 대상이야?"

"이번엔 안 그럴게. 그러니까……악몸을 다시 없애줘."

무릎 위에 놓인 재영의 두 손이 떨리는 것을 윤슬은 보았다. 고집스러운 얼굴 너머로 감추)져 있는 공포는 악몸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향한 것일까. 재영을 묻끄러미 바라보던 윤슬이 물었다.

"그래."

"악몸을 참아내는 게 힘들어?."

"그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나룰 찾아온 거구나. 십 년 가까이 괴을처럼 바라보고 피하고 화를 내더니……그래서 나룰 찾아왔어. 막상 악몸을 꿔보 니 이게 할 만한 짓이 아니었던 거야. 버터보려고 했는데 공찍했겠지. 그동 안 했던 짓이 있으니 이제 와 아쉬운 소리는 하고 싶지 않고. 죽겠다고 쇼 라도 하면 오지랖 넓은 동생이 또 알아서 악몸을 없애주려나 싶었는데. 어 라, 이번에는 싫다네. 이걸 어째, 또한동안고민했겠지. 한 이 주지났나.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서 형이 결국여기에 왔다, 라는 게 내 생각인데 어때?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고저 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옮조리던 윤슬이 재 영을 보며 물었다. 윤슬에게 향해 있던 재영의 눈동자가 약간의 분노를 담 은 채 혼들리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니까 화가 나? 거봐. 아쉬운 것처럼 보이니 저 괴 물 자식이 기고만장해져서는 버티고 있잖아. 뭐 이런 생각하고 있어."

"……아냐."

“십 년 동안 형한테 괴묻 추)급을 받아온 나는?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한 나는? 그 십 년의 시간이 지나간 일이라고 해도, 적어도 병실에서 형이 했 던 말에 대해서는 사과해야 하는 거 아냐?”

"너는 목 그걸. 지금 이 순간에 끄집어내야겠어? 내가 기어코 죽는다고 네 바지를 붙잡고 늘어져서 고개를 조아려야 속이 시원하겠나?”

광, 하고 책상을 내려치며 재영이 옥박울 지르듯 언성을 높였다. 그 모습 울 빤히 쳐다보던 윤슬이 울 것처럼 입매를 늘어뜨렸다.

"누가 바지 잡고 늘어져서 무릎이라도 끝으라고 했어? 난그냥……형이 사과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나를 괴을이라고 욕하면서 악몸을 없애달라 고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래, 내가 잘돗했어. 그러니까 악몸을 없애춰.”

상대가 권태준이 었다면 뭐 맡겨 놨냐며 핀잔하듯 농담이라도 했울 텐데.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흥재영이었다. 너무나도 정직한 눈을 하고 있어서, 재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여기 있는지, 자신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윤슬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십 년이나 지난 뒤에 형의 악몸을 돌려주었을까. 이상하다

고 생각하지 않았어? 분명히 형에게서 악몸이 사라졌는데, 오랜 시간이 지

났는데도 어떻게 똑같은 악몸이 다시 시작되었는지. 내가 형을 괴롭히려 6231 869 

고 형이 꿨던 악몸을 다시 만들어 줬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진 짜 형의 악몸이야. 그럼 형이 악몸을 꾸지 않았던 십 년 동안. 그 악몽은 어 디에 있었울까. 그 악몽은……누가 꾸고 있었울까."

자신을 보는 재영의 눈은 여전히 그대로라고.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고. 십 년 전과도, 그리고 불과 몇 주 전과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여전 히 자신을 괴울로 보고 있음울 윤슬은 알 수 있었다.

“형, 나는 한 번 보지도 못했던 그 여자의 얼굴을 이제는 외울 것 같아. 눈울 감고 그리라고 해도 그릴 수 있을 것 같고, 수십 장의 사진 속에서 그 여자의 사진을 골라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십 년 동안, 나는 그렇게 형 대신 형의 악몸을 꿨어. 형에게 괴울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고, 없 는 사람 추!급을 당하면서 내가 얻은 건……형의 악몸이었어. 그런데 형은 나에게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끝내 안 하네. 잘돗했다고? 그래, 형이 잘못했지. 그런데 잘못한 건 형의 행동이잖아. 형의 마음은 어떤데? 잘못해서 미안해? 잘돗해서 후회해? 아니면 그냥 인정하는 건가? 잘못하 긴 했는데, 악몸을 꾸는 건 괴로우니까 빨리 없애기나 해. 이런 뜻이야."

"……홍윤슬."

"싫어. 안 해. 형의 악몽은 형이 감당해. 내가 왜? 내가 좋은 소리도못 들으면서 내가 왜 형의 악몽까지 부담해야 하는데. 왜?"

“너, 이럴 거였으면서 사과를 하라느니……."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는지 재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룰 내 려는 재영보다 먼저 윤슬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얻는 게 없어. 형은 여전히 나를 괴을처럼 보는데.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내가 왜? ……그래. 묵은 감정 털어내고 쿨하게 비즈니스만 생각 해서 천만 원을 준다면 형의 악몽 내가 가져갈게."

"너."

"남들은 그 돈울 내면서도 고맙다고 해. 한 번은 서비스로 해줬잖아. 십 년이면 좋은 꿈을 꾸기에 충분한 시간 아니었어."

"넌 어떻게 가족한테……"

"가족? 내가 형한테 가폭이긴 했어? 세상의 어떤 사람이 가족울 그런 눈 으로 봐? 형이 지금 어떤 얼굴인지 알아? 나를 보는 눈이 어떤지 알아? 그 건 가족을 보는 눈이 아니야.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고「

거울을 좀 봐. 형.

윤슬이 흐느끼듯 말했다.

형의 눈앞에 있는 건 홍윤슬이 아니라 괴묻이야. 형이 그 괴물을 만들었 어.

재영의 눈동자 속에 있던 작은 씨앗이 자신의 몸속에 뿌리를 내리고 싹 을 퇴우고 줄기를 뻗었다. 물과 태양 대신 재영의 시선을 양분 삼아 그 괴 을은 쑥쑥 자라났다. 그리고 괴물이 두 다리를 뻗어 땅울 딛고, 지금 이 순 간 재영의 앞에 서 있었다.

"날 괴물로 만든 건 형이야!”

"그래서 지금 나한테 돈을 달라고? 사과를 하라느니 어찌라느니 하더 니, 결국 이제는 돈이나? 그래, 돈을 주면 그땐 또 뭘 달라고 할 건데. 네가 이따위로 나을 거라고 생각울 했어야 했는데. 넌 이상해졌어. 점점 더 이상 해져 간다고! 이제는 가족도 눈에 안 보이지? 아니, 넌 처음부터 그랬어. 괴물 새끼. 네가 가족을 생각하는 놈이었다면, 엄마가 눈앞에서 돌아가시 는 꼴을 보고만 있진 않았겠지.”

"엄마얘기는 하지 마!”

언성이 높아졌다. 예전의 일까지 입에 담아 비난하는 재영을 향해 윤슬 이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얼굴을 붉히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재영이 윤 슬을 손가락질했다.

“네가 엄아를 죽였어 ! 이제는 내가 죽는 걸 기다리는 거지. 넌 처음부터 그런 농이었던 거야. 년 예전이나 지금이나 괴……"

"아니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윤슬이 재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재영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둘렸다. 저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본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척 남울 비난하고 남에게 손가락질하는 인간울, 남의 아픈 기억을 끄 집어내 그것을 가지고 공격하는 인간을……그래,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죽여버 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난 괴물이 아니야!”

"아니, 년 괴을이야. 년 처음부터 괴을이었어.”

재영이 윤슬에게 밀려 쓰러지며 광, 소리와 함께 책상이 뒤혼들렸다. 책 상 위에 있던 컵과 책 더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영과 한몸으로 엉켜 바 닥을 나윙굴며 윤슬이 고항울 질렀다. 마구잡이로 주먹이 오가고, 괴성도 오갔다. 울분에 찬 윤슬이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비슷한 비명을 내질렀다.

“남들이 알까봐 두렵냐? 꼭꼭 숨기고 평범한 사람인 척 살아가고 싶었 어? 아니 ! 아무리 감춰도 네가 괴물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

히지 마, 말하지 마. 입 다을어."

손으로 재영의 입을 짓누르고 목을 조였다. 피가 올라 재영의 얼굴이 벌 겋게 묻들었다. 

재영이 휘두른 주먹이 윤슬의 턱을 강하게 때렸다. 핑. 하고 시야가 도 는 것과 함께 혀를 잘못 씹었는지 입 안에 비릿한 쇠맛이 났다. 윤슬이 멱 살을 잡고 재영의 머리를 바닥으로 일어붙였다. 쿵쿵, 재영의 뒷머리가 바 닥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재영의 주먹이 다시 윤슬의 관자놀 이를 치고 지나갔다. 삐, 하는 이명이 돌리는 것 같아 윤슬이 눈울 공뼉였 다.

쿠당당, 소리를 내며 의자가 일려나쓰러졌다. 윤슬의 몸을 깔아뭉개고 울라탄 재영이 윤슬의 턱과 가슴에 주먹을 날렸다. 묵직한 몽둥이가 내려 치는 것 같은 감각에 윤슬이 발버둥을 쳤다. 재영의 손목을 잡고 버티며 발 로 재영을 일어내려 했지만, 악에 받쳐있는 재영은윤슬에게 매달려 떨어 지지 않았다.

"거참, 여기까지 합시다.”

다론 이의 목소리와 함께 획하고 재영의 옴이 떨어져 나갔다. 가슴과 턱 이 욱신거려 반사적으로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숨을 몰아쉬던 윤슬 이 고개를 들어 을렸다. 언제 왔는지 권태준이 뒤에서 재영의 머리채를 바 짝 잡아당기고 있었다. 길게 늘어난 재영의 목덜미가 긴장으로크게 꿀렁 거렸다.

"너, 너 누구야? 이 미친 새끼야. 이거 안 놔?”

머리채를 잡은 손에서 벗어나려고 재영이 두 팔을 크게 휘둘렀다. 고개 만 살짝 움직여 버둥거리는 재영의 팔을 피한 권태준이 재영의 오금울 발 로 차 주저암게 만둘더 니. 빠르게 종아리 위를 밟아 놀렀다.

"야, 이 새끼야. 이……"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지르던 재영은 머리가 한껏 뒤로 젖혀진 탓에 말을 잇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조용히 입 좀 다을고 있읍시다. 상황 정리를 해야 할 것 갈으니까."

"너 이 새끼, 너 누구야. 너……"

"참, 나. 지금 내가 누군지가 중요합니까? 이런 상황이면 그런 거 안 궁 금할 텐데.”

언제 끼냈는지 권태준이 휴대용으로 소지하고 다닌다던 잭나이프가 재 영의 목 아래에 닿아있었다. 엎드려 숨을 고르고 있던 윤슬이 그것을 보고 힘겹게 손을 뻗었다. 

"물건은 부서져 난장판이고, 집주인을 죽일 것처럼 패고 있으면, 그 걸 뭐라고 부르는지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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