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8)

윤슬의 양 손목을 붙잡아 가까이 끌어당겨 얼굴을 마주하자. 당황한 윤슬이 목덜미를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왜, 왜 그래요?”

"내가 얘기한 적 있습니까? 윤슬 씨가 귀여워서 큰일이라고."

"내 귀여운 얼굴에 정돌어서 나중에 나쁜 짓 못 할 것 같다고 말하긴 했 었죠."

그리 말하는 윤슬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왜 저런 얼굴을 하는지 태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침울한 목소리에 태준이 소리 내어 옷음을 터뜨렸다. 귀엽다 귀엽다 하 니까 정말 귀여운 짓을 하려는 모양이다.

"자부심울 가져요. 정말 귀엽습니다.”

."0" 됐어요. 그만해요.”

짜증을 내며 태준의 손을 털어내려는 윤슬을 꽉 붙잡은 태준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입니다. 목 약 먹고 날뛰는 개새끼 같아서 귀엽습니다." 

"목그래야만 했습니까?”

"지금 당장 쫓아내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기시죠.”

"난 환자입니다."

"내가 칼로 찌론 거 아니거든요. 권태준 씨가 환자인 건 나랑 아무 상관 도 없어요.”

윤슬의 발에 차인 정강이를 문지르며 권태준이 불통거렸다.

약 먹고 날뛰는 개새끼? 그래, 그 미친개한테 물린 소감이 어때.

윤슬이 속으로 씨근덕거리며 태준을 홀겨보았다.

"살 만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가주시죠?”

"환자를 내쫓을 생각입 니까?"

"환자면 병원에 입원을 하든가, 간병인을 불러야죠.”

"윤슬 씨, 참 매정합니다.”

댁이 어젯밤에 술 먹고 여기 온 것부터 환자의 길에서 벗어난 짓이었거 든.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내쉬며 윤슬이 마음의 평온을 부르짖었다.

"환자라는 명목으로 남의 침대 뺏어서 잤으면 충분한 거 아녜요?”

"그래도 환자 혼자 보내면 윤슬 씨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아뇨. 편해요. 아주 편하니까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다시 말하지만 나는 간병이 필요한 환자입니다."

"간병이 필요하면 강 선생님한테 가시든가.”

"호수 그 새끼보다는 윤슬 씨가 간호해 주는 게 더 좋습니다."

"간호해플 생각 없다니까요."

애초에 권태준이 환자라는 생각조차 둘지 않았다. 만추!한 꼴을 보지 않 았다면 환자 춰급을 해줬을 수도 있겠지만. 꼭지가 돌게 마신 꼴을 보았는 데 이제 와서 환자 타령을 해봤자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요, 윤슬 씨도 일해야 하는 사람이니 딱 주말까지만 있다 가겠습니 다. 나도 월요일에는 출근해야 합니다."

붙잡는 사람 없으니 제발 지금이라도 가줬으면 좋겠건만. 태준은 인심 쓴다는 것처럼 주말을 입에 담았다. 주말이 대체 언제인지 달력을 쳐다본 윤슬이 미간을찌푸렸다. 

"오늘은 회사 안 가요? 오늘 금요일이잖아요."

"괜찮습니다. 병가로 대체될 겁니다. 말했지만 나는환자……."

"아, 됐어요."

입만 열면 나오는 환자라는 핑계가 이제는 지겹기까지 했다. 말도 안통 하고. 대화도 안 이어지고. 무슨 말을 해도 권태준이 가지 않으리라는 것 울 알아차린 윤슬은 한숨과 합께 백기를 들었다. 차라리 상대튤 하지 않고 빠르게 포기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편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권태준에게 지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일단 옷 없습니까? 언제까지 날 벗겨둘 겁니까?"

그러고 보니 어젯밤 피를 닦은 뒤에 아무것도 입혀두지 않았다. 내내 상의를 탈의한 상태였는데, 하도 속 뒤집는 소리만 해대는 탓에 그것을 망각 하고 있었다.

"권태준 씨한테 맞을 만한 옷이 없을 텐데.”

윤슬은 옷장을 뒤적거리며 사이즈가 큰 옷을 찾았다. 옷을 낙낙하게 입는 편이라고는 해도 그게 권태준에게 맞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평 소 입는 옷을 준다면 권태준에게는 딱 달라붙는 티가 되겠지. 상상도 하기 싫온 모습을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았기에 윤슬은 열심히 옷더미를 을쑤셨 다.

"이거……안되겠죠?”

한참을 뒤적거리던 윤슬이 얇은 옷 하나를 꺼내 둘어 보였다.

"나한테 맞을 것 같습니까?”

"그렇 것같기는한데……"

사이즈가 크게 나온 옷울 잘못 산 탓에 입지 못하고 옷장에 처박아두었던 것이었다.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샀던 옷이라 옷장 속에서 몇 년 동안 목은 옷이기도 했지만, 선뜻 권태준에게 입으라고 내일지 못하는 건 이 옷 이 망고 민소매인 탓이 컸다.

본인이 입을 때에는 만족스럽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흔히들 눈 버린다고 말하는 옷. 큰 사이즈를 산 탓에 입지 않아 다행이라고 뒤늦게 안도 했던 옷.

'뭐 어떻습니까. 그건 옷 아닙니까?'

그래도 망고 민소매라……

"패션의 완성은 얼굴 아닙니까. 내 패션은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괜찮습니다."

"아, 네."

자부심 가독한 일굴로 말하는 권태준을 향해 윤슬이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옷을 내일었다.

"바지는 없습니까?"

"반바지도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다행히 바지는 고무줄 바지가 몇 개 있었다. 시원한 소재로 되어있는 하늘하늘한 고무줄 바지를 꺼 내 주었다.

"작작하시죠."

"알겠습니다. 딱히 안 입고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이쪽이 상관있을 것 같은데. 오만상을 찡그리며 윤슬이 질색한 내색을 했다.

편의점에서 사다 줄게요.”  

"땅을 흘려서 몸도 씻어야 할 것 같은데 도와플 겁니까?”

"미쳤어요?"

"환자입니다.”

이제는 뭐라고 말만 하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환자라는 대꾸가 추임새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웃기지도 않는다며 윤슬이 못방귀를 뀌었다.

"팔을 다친 것도 아니고. 다리를 다친 것도 아니고. 상처에 을 안들어가게 수건으로 덮고 조심조심해서 씻어요. 그 정도도 못 해요."

"누가 못 한다고 했습니까? 그냥 해줬으면 하고 바란 거지."

참자. 어차피 말로도 주먹으로도 이기지 못할 상대다.

윤슬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 마용의 평온을 갈구하다 언젠가는 득도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 다녀을 테니까, 들어가서 씻어요.”

"천천히 씻고 있을 테니, 일찍 오면 들어와서 도와주는 겁니다?”

"내가 왜요."

"같은 남자끼리 뭐 어떻습니까."

"같은 남자의 알몸을 보고 싶지가 않아서 그럽니다. 자꾸 헛소리하면 쫓아낼 거예요."

권태준의 등을 일어 욕실로 집어넣은 윤슬이 지갑과 휴대폰울 손에 둘었다. 그러다 문득 왜 권태준의 속옷울 자신의 돈으로 사다 줘야 하는지에 대 해 고민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윤슬은 권태준의 정 장 재킷을 뒤적거려 지갑을 찾았다.

손에 무언가 묵직한 을건이 걸려,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그 무언가를 꺼낸 윤슬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접는 칼이기는 한데 일반 잭나이프보다 날 이 유난히도 크고 굵은 놈이었다. 윤슬로서는 차마 정확한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이 무기의 정체보다 이게 왜 권태준의 정장 주머니에 들어있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꺼내본 적이 없다는 듯 빠르게 칼울 주머 니 안에 다시 넣어둔 윤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속옷 몇 장 정도는 자신의 돈으로 사도 될 것 같았다. 권태준이 샤워 후 속옷을 입지 않고 활보하는 것을 방 지해야겠다며 편의점으로 향하는 걸음울 서둘렸다.

오피스텔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게 들리지만, 기껏해야 원룸인 작은 공간일 뿐이다. 그런 곳에서 한 시간 내외로 손님을 맞는 것이야 상관없지 만, 식객이 늘어붙는 것은 꽤나 갑갑한 일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신경에 거슬리고,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일어나는 것에도 신경이 쓰였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도 느껴지는 것 같고.

뒤통수가 간질간질한 느껑에 윤슬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뒤를 둘아 보자 어김없이 권태준과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치자 권태준이 생긋 옷었다. 참 상큼한 웃음이기는 한데, 망고 민소매에 고무플 반바지를 입고 침대에 드러누운 자세가 백수건달처 럼 보였다.

왜 그렇게 봐요?”

"뭐가 말입니까가

"권태준 씨 시선 때문에 뒤통수가 간질간질하잖아요."

."윤슬 씨 뒤통수가 귀여워서 좀 봤습니다. 보는 것도 안 됩니까? 집중해 서 일하는 줄 알았더니 내 시선을 풀기고 있었던 겁니까."

"안 플겼어요. 뒤통수 뚫어질 것 같으니까 보지 마세요."

알미운 0ㅏ음에 쏘아붙이묫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식객 주제에 뭐가 저 렇게 당당해. 자신은 일하고 있는데 널브러져 놀고 있는 꼴을 보려니 부럽 기도 하고, 환자랍시고 침대를 떡하니 차지하고 누워 윙굴거리는 게 얄밉 기도 하고,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용건도 없이 다론 누 군가와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것은 권태준의 시선이 묘해진 것이었다. 이상하 게 부드럽기도 하고, 뭔가 정말 귀여운 것을 보는 것처럼 몽글몽글한 시선. 생각만으로도 닭살이 오르고, 오한이 난 것처럼 옴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난 후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공포와 경악에 가까 웠다. 그게 싫어서 비밀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어쩔 수 없이 권태준의 악몽 에 들어갔지만, 권태준 역시 같은 반응울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 었다. 그 걱정과는 다르게 권태준이 별다론 내색울 하지 않고, 이전과 다르 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기는 했지만……권태준의 태 도가 묘해진 것이 또 다론 문제였다. 이상하게 꺼림칙한 기분을 털어낼 수 가 없었다.

후우, 하고 한숨을 백만 번쯤 내쉬었울 때. 뒤에서 웃옹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불편합니까? 아직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불편한 거 알면서도 권태준 씨는 집에 가클 생각이 없어요?”

"사람이 옴이 아프면 외로워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윤슬 씨가 옆에 있어 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습니 다."

자신이 뭐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강도가 들어와도 자신보다 권태 준이 더 힘을 쓸 것 같은데. 저건 분명히 자신을 괴롭히려는 의도라며 윤슬 이 입술을 뒤틀었다.

"글이 안써지면 나가서 술이라도 한잔하는 게 어떻습니까." 

역시 환자라는 자각이 없는 거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을 무시하고 타 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자,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권태준이 윤슬의 어깨 에 턱을 기댔다.

"계속 이렇게 내 시선을 플기고 싶다는 겁니까?”

귓가에서 들리는 저움에 윤슬이 어깨를 움츠렸다. 습기를 담은 숨결이 귓바퀴를 파고드는 건 익숙하지 않은 느껑이었다.

"뭐야, 진짜. 계속 이렇게 방해하면 진짜 내쫓을 거예요."

"나가서 가볍게 한잔만 마십시다."

"환자라면서요."

"배를 다친 거지 입을 다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차라리 입을 다쳤다면 저렇게 나불거리지는 않았울 텐데. 아쉬움 을 느끼면서 윤슬은 바짝 붙어 서 있는 권태준을 일어냈다.

"떨어져요."

"저번처럼 편의점에서 한 캔씩만 마시고 옵시다. 산책도할 경. 윤슬씨, 집 밖으로 언제 나갔습니까? 아까 내 속옷 사러 편의점 간 거 제외하고."  

민감한 주제가 나오려고 했다. 스스로도 평소 활동량이 적은 것을 알고 있는 윤슬이었기에. 그 부분을 가지고 놀어지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 또 한 알고 있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윤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시자고 한 사랑이 사요.”

"그럽시다."

권태준이 정장 재킷 주머니를 뒤적거려 지갑과 휴대폰울 챙겨 들었다. 또 다론 무언가률 꺼내 고무줄 바지 주머 니에 넣는 것을 윤슬은 모론 척했 다. 무게 때문에 주머니가 축 늘어져 바지가 벗겨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생 겼지만, 그것 역시 지적하지 않았다.

"오피스퉫 건을에도 편의점이 있지 않습니까. 왜 항상 건을 밖으로 갑니 까?’

건을을 나와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의점으로 향하며 권태준이 을었다. 망 고 민소매에 하늘거리는 고무풀 반바지. 심지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흔들흔들 걷는 모양새가 참 한량 같아 모른 척하고 싶었지 만, 대꾸를 안 하 면 재차 물을 것 같아 윤슬이 입을 열었다.

"그냥, 양심에 찔려서 나온 김에 몇 걸욤이라도 더 걸으려고? 이런 때라 도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울 구경하고 싶어서? 뭐 이런저런 이유죠.”

"저번처럼 편의점 앞에서 마시고옵시다.”

"마시고 인형 뽑기 하고 싶어서 그러죠?"

"몇 마리 뽑아플까요? 말만 하면 다 뽑아주겠습니 다.”

아냐, 네 머리채를 뽑아버리 기 전에 그만해.

오늘도 인형을 뽑아온다면 집에 있는 곰 인형과 나머지 인형들까지 봉지 에 싸서 권태준이 집에 갈 때 들려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형 때문 에 점점 침대에 누울 공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한두 개였을 때에는 침대 옆 에 놓아두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의점 앞 테이불에 앉아 있자 권태준이 안주 몇 가지와 맥주 팩울 사 왔 다. 아흡 시가 넘어서인지 사위는 어두웠고, 길을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적한 주변을 둘러보며 윤슬이 맥주 캔을 따서 몇 모금 삼켰다.

"맥주는 술 같지 않지만 시원한 맛이 있습니다.”

."술 같은데요."

"윤슬 씨는 소주 안 좋아할 것 같습니다. 요즘 나오는 과일맛 나는 소주. 이런 거 마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런 질문을 하는 의도가 뒤냐며 윤슬이 눈을 가늘게 뜨고 권태준을 용 시했다.

"편식하는 걸 보면 왠지 어린이 입맛일 것 같았습니다."

"미안하네요. 애들 추)향이라서."

"미안할 게 뭐 있습니까. 귀여워서 그럽니다;"

아. 제발 귀엽다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듣다가 익숙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가 귀엽다고 인정해버릴 것 같았다. 스스로의 얼굴 에 자부심을 느끼는 권태준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 뭐하나 을어봐도 돼요?”

"됩니다. 종류별로 여러 개 사 왔으니 추I향껏 을어요.”

그러면서 권태준온 오징어와 쥐포를 종류별로 뜯어 윤슬의 입 앞에 가져 다 땠다.

"……뭐야, 더러워. 아재개그."

"웃자고 한 말인데, 왜 안 웃습니까."

기금 방금 내 혐오스럽다는 표정 못 봤어요? 그래서 안 웃냐고 묻는 거 예요?" 어디서 쌍팔년도 개그를 하고 있나. 윤슬이 질색한 표정으로 권태준울 바라보았다. 저 얼굴로, 저 허우대로. 저런 개그를 한다는 것에 조금 동정 심도 일었다.

"궁금한 게 뭡니까."

권태준은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을었다.

"그……주머니에 그거, 왜 가지고 다녀요? 진짜 사용하려고 가지고 다니 는 거 아니죠?"

"봤습니까?”

"……네."

끝까지 모론 척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궁금한 마음이 컸다. 자신에게 사 용할 용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뭐, 이 정도 자리에까지 오르면 사실 연장은 잘 안 가지고 다니긴 합니 다."

자신이 회사 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는 것인지 윤슬은 조금 궁금해졌다. 요즘 회사원은 다들 연장 가지고 다니나. 영업 이사 자리까지 오르면 연장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건가. 명함에 분명 58." 영업 이사라고 써 있었 는데. 문득 58." 직원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나는 가진 게 목숭밖에 없는 농이라서 말입니다. 혹시 물라 혼자 움직 일 때에는 이렇게 휴대용이라도 가지고 다닙니다.”

"아. 휴대용……"

윤슬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첫날 권태준이 둘이일었 던 회칼에 비하면 휴대용처럼 앙증맞긴 했다.

드!러니 윤슬 씨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내가 지금 환자이기는 하지만, 윤슬 씨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습니다."

권태준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을까. 권태준에게서만 지켜진다면 세상 살 아가는 것이 안전해질 것 같은데.

윤슬은 맥주 캔을 입에 을고 대답을 아꼈다. 꼴깍꼴깍. 소리 없이 비운 맥주 캔이 놀어났다. 분명히 한 캔만 마시자고 하고 나왔는데, 상황을 지켜 보던 권태준이 중간에 두어 번 일어나 맥주를 사 온 탓이었다. 하도 자연스 러운 움직임이라 지적할 타이밍도 나질 않았다.

"어이, 형씨들. 어지간히 마셨으면 좀 일어나지. 여기 전세 냈어 V

50" I 869

누군가 턱, 하고 윤슬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쩔렁하게 말을 별었다. 고개 를 둘자, 술 한 잔씩 걸친 것처럼 보이는 절렁한 남정네들 셋이 윤슬의 뒤 를 에워싸고 있었다.

"권태준 씨. 흑시 드라마틱한 연촐을 위해 사람 샀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둗이 지금 뭐라는 거야?

권태준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권태준은 아니라고 고 개를 저었다. 그럼 이게 실제 상황이라는 건가. 권태준이랑 다니다 보니 별 이상한 경험도 한다며 멍하게 생각하던 윤슬은 제 뺨울 특 건드리며 시 비조로 묻는 남자의 행동에 정신을 차렸다.

"야. 내말 안들려? 무시하냐?"

."0" 다 마셨어요. 자리 비켜드릴게요."

왠지 얽히면 안 좋은 꼴을 볼 것 같은 기분에 윤슬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데 권태준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주섬주섬 테이블 위에 있는 빈 캔과 쓰레기를 치우는데도 권태준은 느긋하게 암아 맥주를 마셨다.

''권태준 씨, 그만일어 나요.”

"나 아직다 안마셨습니다.”

사나이 자존심은 좀 버리고, 다룸은 피해 가면 좋으련만. 권태준의 대꾸 에 서 있던 남자들이 불끈했다. 윤슬 본인도 남자이지만, 남자들의 이런 욱 하는 성질은 정말 쓰레기만도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말고 집에 가요. 더 마시면 상처에도 안 좋고, 나 좀 피곤해서 집 에 가는 게 좋겠는데.”

"이거 비우고 일어나죠."

당장 일어나라고, 당장.

사내들의 눈치를 보며 윤슬이 권태준의 뒤에 서서 공공거렸다. 뭔가 싸 움이 나도 일단 권태준울 방패막이로 쓰려는 생각에서였다.

"야, 어지간히 처마셨으면 그만 일어나라. 험한 꼴 보기 싫으면.”

I나 험한 꼴 많이 보고 산 사람입니다. 한두 번 더 본다고 해도 괜찮습니 다."

권태준이 생긋 웃으며 반쯤 비운 맥주 캔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거 잘생긴 얼굴에 상처 남기고 싶지 않으면, 좋은 말로 할 때 비키지?” "윤슬 씨, 들었습니까? 아무론 내 얼굴은 어딜 가든지 먹힌단 말입니다."

이 양반아, 지금 그걸 자랑할 때가 아니에요.

윤슬이 대꾸하지 못하고 속으로 신욤을 놀러 삼켰다. 권태준이 또라이라 는 것울 새삼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어이!”

"사랑은……-'

주머 니에 넣어 가져왔던 것을 테이블 위에 광. 내려놓은 권태준이 잠시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본인이 자초한 일에 대한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게 시비든, 싸움이 든, 살인이든. 그 결과가 보복이든, 목숨이든, 법적으로 잡혀가는 것이든."

맥주 캔을 내려놓고. 잭나이프를 잡아 날을 세우며 권태준이 느리게 물 었다.

"나는 죽지 않을 자신도 있고, 경찰에 잡혀가지 않을 자신도 있는데…… 그쪽들도 자신 있습니 까?”  

얼마나 날을 잘 갈아놓았는지 잭나이프의 칼날이 시퍼렇게 번찍거 렸다. 급작스럽게 나온 무기에 겁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급작스러운 권태준의 또라이 같은 모습에 겁을 먹은 것인지, 어을어을거리던 사내들이 이내 술 그머니 뒤로 을러나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고 있던 윤슬이 탄식과도 비슷한 신음울 흘렸다.

장했습니까?”

"……조마조마했어요. 그거 꺼낼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네요."

"월 그렇게 조마조마합니까? 내가 윤슬 씨도 못 지 킬 것 같습니까?”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뭔가 오그라듈 기도 하고. 무슨 범죄 액션 영화 찍는 풀 알았네. 난 권태준 씨가 사람 불러 서 연극 한 편 보여주려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와, 진짜 오글오글. 이러 다 정말 싸움 나면 헉, 픽, 픽, 이러면서 십팔 대 일로싸우고. 뭐 그러는 거 예요?''

긴장이 풀린 윤슬의 물음에 권태준이 옷음을 홀렸다.

"어차피 저런 놈들은 싸울 생각도 없을 겁니다. 강하게 나가면 꼬리를 말고 도망치죠. 지금처럼. 게다가 동네 양아치도 못 되는 농들이랑싸우기엔 내가 체면이 안 살지 않습니까.”

단번에 맥주를 비운 권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힐곳, 편의점 쪽을 보 았지만 들어간 남자들은 권태준이 자리를 벗어날 때까지 나을 생각이 없 는듯 보였다.

"술도 기분 좋게 마셨겠다. 인형 하나 뽑아갈까요?'

"제발……"

지갑에서 주섬주섬 천 원짜리를 꺼내는 권태준울 보며 윤슬이 낮게 중얼 거렸다.

"뭐라고 했습니까."

예발 작작하라고, 이 새끼야.”

요란한 벨 소리에 눈이 번찍 떠졌다.

권태준과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곧바로 잠이 들었 다고는 해도, 충분히 자지 못해 여전히 졸용이 밀려왔다. 창밖은 밝았지만 여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 새벽일 것이 분명했다. 힐곳 아래를 보자, 어제 자신이 그러했듯 얇은 이불을 깔고 누워 자고 있는 권태준이 보였다. 그나마 자신이 안고 자던 여분의 베개를 넘겨주어 대충 구색은 맞출 수 있 었지만.

손울 더듬어 휴대폰 액정을 확인하자 아버지의 이름이 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일려돌었다. 이 새벽에 전화를 할 이유중에서 좋은 이유가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여보세요.”

혀로 입술을 축이며 전화를 받았다. 자다 일어난 탓에 목소리가 까칠했다.

「유, 윤슬아. 윤슬아……」

울먹거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가승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껏 아버지가 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셨던 때를제외하 고 약한 모습읗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울음 섞인 옥소 리로 이 새벽에 전화를 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래요?"

「윤슬아, 재영이가…… 재영이가 약울 먹어서 지금 병원에 왔는데.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윤슬아.」

안 좋은 예상은 빗겨가질 않는다. 아버지의 말에 가슴이 싸해졌다. 침대에서 일어나 암은 윤슬이 까칠한 얼굴을 손으로 문질 렀다.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형이 약울 먹어요?”

「그래, 이농이 날을 잡았나 보다. 내가 새벽 낚시 가겠다고 짐을 챙겨 나왔거든. 근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낚시터가 문을 닫았네. 그래서 집에 왔는데……집에서 나갈 때까지는 멀찡했는데. 글쎄 이놈이. 이놈이……니

병은 지금 어찌고 있어요?"

「위세척인가 뭔가 하고 있다. 윤슬아, 어떻게 해야 하냐, 옹? 저농 저거 잘못되는 거 아니겠지?」

이 상황에서 아버지나 자신이나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면서도, 아버지는 애처롭게 물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윤슬이 한숨을 삼 켰다. 

전화률 끊은 윤슬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피곤이 배가 되는 기분이 었다. 물이라도 한 컵 마시고 움직이자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언제 깼는 지 권태준이 일어 나 윤슬을 보고 있었다.

"병원에 갑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태워다 줄까요?”

"아뇨, 택시 타고 가는 게 좋읕 것 같아요. 권태준 씨는 더 자요.”

벨 소리나 통화 소리에 깼던 모양이다. 통화 내용을 돌었는지 권태준은 병원을 입에 담았다. 형이 약울 먹었다는 것도 들어서 알겠지. 윤슬이 씁쓸 함울 감추며 차가운 을 한 컵을 따라 마셨다. 조금 정신이 깨는 기분이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윤슬은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화장실 앞에서 있던 권태준을 바라보았다.

"병원에 계속 있어야 할지도 을라요. 집에 아무것도 없으니까시켜서 밥 먹든가, 나가서 사 먹어야 할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와요."

"……집 비일번호, 딱히 몰라도 권태준 씨한테는 상관없겠지만 윤슬의 말에 권태준은 낮게 웃었다. 을라온 권태준의 두 손이 윤슬의 어 깨를 감싸 쥐었다.

"나 말고 윤슬 씨 끼니를 잘 챙겨요. 축 처져있지 말고. ……그 무엇도 윤슬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윤슬 씨의 책임도 아니고."

권태준의 말에 윤슬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질끈, 눈을 감아버리는 윤슬을 권태준이 살며시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 품은 넓고, 단단하고. 따뜻해 서 이상하게 눈물이 나을 것만 같았다.

|침울한 강아지는 귀엽지 않습니다. 힘내서 다녀와요."

토닥토닥. 엉덩이를 두드리는 손을 일어내며 윤슬이 권태준을 홀겨보았다.

"힘이 좀 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도 고맙네. 아무른…… 갔다 을게요""

권태준은 별다론 말없이 윤슬을 배웅했다. 현관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던 윤슬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피스텔 건물을 나섰다.

택시를 잡아타고 문자를 확인해서 병원 이름을 불렀다. 뼘 뚫린 새벽의 도로를 택시가 힘차게 달려 나갔다.

형은 왜 약울 먹었을까. 그 약이 비타민은 아니겠지. 죽으려는 생각이었을까.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울 하던 윤슬은 이내 생각 끝에 도달한 무언가에 고개를 내저었다.

악몽에 시달려서? 겨우 그 정도일까. 잘난 홍재영이 겨우 악몽이 공찍해서 죽으려고 했다고? 말도 안 된다. 자신도 살아가는데, 현실이 악몽 자체 인 자신도 이렇게 살아가는데.

길이 막히지 않아 빠르게 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계신 곳울 물어물어 찾아가자, 위세척이 끝났는지 재영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어깨를 늘어 뜨리고 암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윤슬아!”

구명풀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아버지는 윤슬의 얼굴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달음에 다가왔다. 

"처치는 되었으니 정신 차릴 때까지 두라는구나.”

"별문제는 없고요."

"일단 일어나봐야 알겠는 모양이야. 지금 할 건 다 했다고, 뭔가 이상이 있지는 않은지 지켜보란다."

하릇밤 사이에 십 년은 늙어버린 얼굴을 하고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무거운 한숨이. 그 늘어진 어깨가 얼마나 마용고생을 했는지 말 하고 있어서 윤슬은 가숨이 찜한 한편 재영이 미워졌다.

"계속여기 이러고 있으래요?"

"병실 준비되는 거 기다리고 있다. 별 이상 없으면 퇴원해도 될 거라는데, 아무래도 하루 정도는 병원에 입원해서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계세요. 이상이 있으면 의사가 말해줬겠죠. 처치 다 했다면서요.”

아버지를 의자에 앉히고 그 옆에 앉은 윤슬이 아버지의 손을 잡아 토닥거렸다. 윤슬의 말에도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거 아냐.”

"안그래요. 형이 뭐 나한테 미주알고주알 얘기할 사랑인가."

."대체 원 속앓이를 하고 있기에 이런 짓을 해.”

타박하듯 말을 하지만 그 속에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재영에게서 시선을 때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윤슬이 쓴입을 다셨다.

병실이 준비되었다는 말에 재영을 옮긴 곳은 일인실이었다. 큰 병원들이 으레 그러하듯 급한 환자들울 일인실부터 일어 넣고, 환자와 보호자는 어찔 수 없이 병원의 선택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남은 병실이 일인실뿐이 라는데, 일인실이 부담스럽다고 퇴원을 시킬 수도 없는 일이니까.

"형 덕분에 일인실에도 와보네요.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

"형 괜찮으니까 너무 그러고 있지 마세요. 여기 소파도 있네. 이게 소파 야, 침대야. 그렇게 계시지 말고 눈 좀 붙여요. 잠도 못 자고 계속 그러고 계셨을 거 아녜요."

기더라도 재영이 정신 차리는 거 보고 잘란다."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다고 형이 일찍 정신 차리지도 않아요. 쩔 때가 되 면 깨겠죠. 일어나려다가도 오히려 아버지 시선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옷 일어나겠네." 침대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않아 있는 아버지를 잡아끌어 소파에 않 혔다. 윤슬의 말처럼 소파는 널찍해서 보호자용 침대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따로 간이침대가 없는 것을 보면 애초에 그런 용도로 놓아둔 것 같 기도 하고.

"내가 지켜보고 있울게요. 형 일어나면 바로 깨울 테니까, 눈 좀 붙여요."

"싫다. 그냥 이러고 있으련다.”

"그래요, 그럼. 자지 말고 그냥 누워만 계세요.”

싫다는 아버지를 기어코 눈힌 윤슬이 담요 하나를 얻어와 아버지의 몸 에 덮어주었다.

"자라고 판울 깔아주는구나."

"이왕 있는 거 편히 계시라는 거죠. 그래야 형도 홀가분하게 일어날 거 아녜요."

토닥토닥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윤슬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못. 하고 혀를 찬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불 몇 개를 꺼 서 조명을 낮춘 윤슬이 아버지 대신 침대 근처의 의자에 암았다.

아버지가 장드실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이 재영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도 조금은 마음을 놓으실 것 같았다. 그렇게 윤슬 

재영이 눈을 뜬 것은 서너 시간이 지난뒤였다. 얼마 전부터 낮게 코고 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아버지는 버티 다가 결국 잠드신 것 같았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눈을 깜박이는 재영을 바라보며 놀라지 않게 윤슬이 작은 기척을 냈다. 삐거덕 소리가 날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재영이 윤슬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월 그렇게 놀라. 약 먹고 병원에 실려 오면 온 가족이 비상 걸려서 불려 오는 게 당연한 건데.”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뻐공거리며 재영이 인상울찌푸렸다. 죽다 살아났는데도 힘들지 않은지 미간의 주름은 잘도 만돌었다.

I아버지는 형 깨어나는 거 보겠다고 계속 버티다 조금 전에 잠드셨어. 혹 시 문제 생길지도 모론다고 형 회복하는 거 지켜보고 집에 가야 한다고 입 원 수속 밟았고. 황송하게도 일인실이야. 있어봐. 간호사 선생님 불러을 테 니까." 

투덜거리는 동생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윤슬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 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내, 내가 이런 꼴로 있으니…… 속이 시원하냐?'

목이 아픈지 입을 열기 "!돌어하면서도 재영은 고집스럽게 말을 끝냈다. 그 물음에 윤슬이 걸음울 멈추고 옴울 돌렸다.

"그 말은 마치 내 탓이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버지가 깨지 않았는지 확인한 윤슬이 재영을 바라보았다. 죽다 살아났 욤에도 저를 경멸하는 표정은 여전했다. 그래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울 까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고, 대체 무엇이 재영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애초에 악옹의 원인이 된 일을 저지론 건 형이고, 악몽을 꿨던 것도 형 이고. 악몽을 없애줬더니 그런 날 기피했던 것도 형이야. 원래 형이 저지 론 일이고. 원래 형이 꾸던 악몽이라고. 거기에 나는 없어. 나 때문에 일어 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게 내 탓이야? 형에게 일어났던 일들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왜 내 몫인데? 책임 전가가 너무 과한 거 아냐?."  

를린 말온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도 재영은 윤슬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 이 여전히 너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무엇이 자신의 탓인지 윤슬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정말 모르고 있는 거라면 제발 알고 싶기도 했다. 자신이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는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재영 이 자신을 원망하는지 .

"대체 뭐가 나 때문인데? 나도 궁금해. 제발 좀 알려줘라. 그냥 무턱대 고 미워하지만 말고 제발 좀 알려줘. 나도 이젠 짜증 나고 지긋지긋해. 형 이 날 미워하고, 싫어하는데 이유를 모르겠는 거 진짜 미치겠거든. 나도 형 한테 착한 동생이 되고 싶으니까 제발 방법 좀 알려주라. 응? 내가 뭘 어떻 게 해야 하는 건데?”

"네가…… 네가…… 넌 괴물이야."

마치 억지를 부리는 아이와도 같았다. 는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무 턱대고 악마라고 손가락질하는 광신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 하고 윤슬 이 헛웃음을 내별었다.

"그래, 내가 괴물이라고 치자. 내가 괴묻인 게 형하고 무슨 상관인데? 형

이 자살하려고 약을 먹은 게 내가 괴묻이기 때운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지절이지 마. 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본인 스스로 이해는 가? 그게 정

말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 죽고 싶은 마용이 있긴 했어? 그랬 5""."869

으면 약을 먹지 말고 확실하게 목을 매거나옥상에서 뛰어내리지 그랬어. 자기 옥숨 가지고 장난치지 마. 아버지 걱정하시니까. 애들도 아니고 나이 서른 넘어서 억지 부리는 거 작작해. 꼴사나워."

쏘아붙이듯 날카롭게 말한 윤솔이 더는 듣기 싫다며 병실을 나와 버렸 다. 등 뒤로 뭔가 말을 하려는 것처럼 재영이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울 할 지 삔했다. 괴을이라느니, 너 때문이라느니. 사람이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들어주지.

꾹 입술을 깨을며 데스크로 간 윤슬이 간호사를 불렀다. 환자가 정신울 차렸다고 알리고.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윤슬은 화장실 에 가서 세수를 했다. 차가운 을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번찍 들었다. 후우. 하고 크게 심호흡을 한 윤슬이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얼굴울 때 렸다.

"정신 차려, 홍윤슬. 울지 말고. 화내지도 말고.”

거울 너머로 물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젖은 얼굴이 보였다. 이상하게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인다며 윤슬이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 다.

병실로 들어가자 간호사가 깨웠는지 아버지가 일어나 재영의 곁에 서 있 었다. 뭔가를 한참이나 체크하던 간호사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 를 비켜주었다. 간호사가 병실을 나서자 아버지가 한숨울 내쉬며 윤슬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에 네 형 일어났다.”

"알아요. 깬 거 보고 제가 간호사 선생님 불렀어요."

"그랬어? 그런데 어디 갔다 지금 와?”

"정신이 어질어질해서, 잠 좀 깨려고 화장실 가서 세수 좀 하고 왔어요. ……간호사 선생님이 뭐라셔요?"

"별 이상은 없단다. 아침에 한 번 더 체크하고, 그때도 이상 없으면 퇴원 해도 된다고."

뭔가를 더 을을까 걱정이 된 윤슬이 말을 돌리자. 아버지는 의심 없이 대 답을 하셨다. 으옹.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가 누웠던 소파로 가 주저 앉았다. 의식적으로 재영이 있는 쪽윧 쳐다보지 않으려 아버지의 등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재영의 곁에 선 아버지는 뭔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새 로 재영을 살피고 있었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서…… 아니다, 일단 좀 쉬어. 묵 쉬고 퇴원부터 하 자."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니까, 형은 퇴원하는 거 무섭겠네.”

"넌 이놈아, 목 말을 해도. 넌 이제 집에 가." "아, 왜요.”

"정신 사나우니까 가. 난 자고 일어나서 괜찮으니, 너도 가서 눈 폼 붙이 고."

깐폭거리는 둘째 아들이 못마땅한지, 아버지가 윤슬을 잡아 일으켰다. 왜 쫓아내려 하냐고 칭얼거리며 버티자, 아버지는 오히려 더 내보내려고 엉 덩이를 토닥거 렸다.

." 시간 있으면 금방퇴원한다. 피곤할 텐데 너까지 있을 필요 없어.”

"이제 용건 없어졌다고 나 보내려는 것 봐봐."

"재영이도 특별한 이상은 없고 안정만 추)하면 된다니까, 너도 이제 그만 가서 쉬어.”

"왜요. 나있으면 형 못 쉬어요."

"네가 그렇게 종알거리는데 누가 편히 쉬겠냐."

"아버지랑둘이 있으면 숨 막히잖아요. 나라도 같이 있어야지."

재영이 절대 원할 리 없겠지만. 오로지 아버지만을 위한 연극처럼 윤슬 은 거짓말을 했다. 사실 이 자리에 있고 싶지도 않았다. 재영이 죽었다면 모르겠지만, 멀찡한 것을 아까 확인까지 했으니 더는 이 자리에 있을 이유 도 없었다. 재영도 그것을 바라지 않을 테고. 

기라. 종가.”

피곤하다는 듯 아버지가 손울 내저으며 얼론 가라고 재촉을 했다. 피. 하 고 입술울 삐죽거리며 윤슬이 서운하다는 내색울 했다.

ㅁ새벽에 놀라 달려왔울 텐데, 고생했다. 가서 쉬고. 퇴원해서 집에 가면 아비가 전화하마."

"알았어요. 그럼 집에 도착해서 전화하세요."

디래.”

이 정도 했으면 되었다. 윤슬은 아버지의 손을 한 번 꽉 잡았다 놓고 재 영에게로 다가갔다.

"형.”

윤슬의 부롬에 재영이 고개를 둘어 윤슬울 바라보았다. 마주하는 시선 속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저를 보는 재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윤슬은 알지 못했다.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서로를 놓는 것이 서로에게 편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가라시니 나 그만 가불게. 푹 쉬었다가 집에 가. 몽조리 잘하 52" " 869

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래."

"목 안 좋으니까 말 너무 많이 하지 말고 -

아버지의 앞에서는 끈끈한 형제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형제처럼 대 화를 나눴다. 그게 자식 된 도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재영도 그것만큼은 같 은 생각인지. 윤슬의 말에 장단울 맞춰 대꾸를 했다.

재영과 아버지를 둘아본 윤슬이 병실을 나섰다. 자신은 뭔가 한 일도 없 는데 힘이 쭉 빠졌다. 어깨를 축늘어뜨리고 터덜터덜 걸어 병원 앞에서 택 시를 잡아탔다.

새벽에 집에서 나온 것 같은데 벌써 출근 시간에 가까워졌다. 텅 비었던 거리에 차을이 제법 들어차 있었다. 천천히 달리는 택시 안에서 윤슬은 멍 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자고 있욷 거라고 생각했던 권태준이 씻는지 욕실 안에서 물소리가 들렸 다. 집 안으로 들어선 윤슬이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멍하게 암아서 시 간을 보내고 있자, 욕실에서 나온 권태준이 윤슬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네"

"일찍 온 것 같은데, 형님은 괜찮은 겁니까?”

"네. 다행히 안 죽었더라고요.”

윤슬의 대꾸에 권태준이 작게 옷었다. 젖은 머리를 털던 수건을 한쪽으 로 던지듯 내려놓고 윤슬의 앞에 선 권태준이 무릎을 바닥에 대고 몸을 내 렸다. 시선 아래로 낮아진 권태준의 얼굴을 윤슬이 을끄러미 쳐다보았다. 생긋 옷고 있는 눈매가 서글서글해 보였다.

뭐가 그렇게 플거운 걸까. 플겁기는 한 걸까. 생각해보면 권태준은 거의 옷는 얼굴이었다.

윤슬은 손을 들어 웃고 있는 권태준의 눈매를 더듬었다. 손끝이 닿자 권 태준이 반사적으로 눈 끝읗 찜그렸다.

."권태준 씨는 항상 웃고 다녀요?”

"글쎄요."

"정색할 때도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거의 웃는 얼굴이었던 것 같아요."

"윤슬 씨를 보면 옷용이 나와서 그렇습니다.”

"신기하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나만 보면 화내고 찜그리던데."

권태준은 제 얼굴을 더듬고 있는 윤슬의 손을 잡아 그 위에 가만히 입술  

울 늘렀다. 맞닿은 피부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 그래서 울었습니까?"

"안 울었는데"

"윤슬 씨 거짓말 참 못한다고, 목소리만 둘어도 알 것 같다고 내가 말하 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권태준은 어떻게 안 것일까. 그저 짐작 으로 을었던 걸까. 아니면 제 얼굴 어디에서 운혼적을 발견한 걸까. 윤슬 이 권태준에게 잡혀있는 손을 빼 제 얼굴을 더듬었다. 따라 나온 권태준의 손이 윤슬의 손과 얼굴을 감쌌다.

"왜 그렇게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안 그랬어요."

"이유도 없이 혼나고 맞아서, 억울해서 눈물 꾹 참고 있는 얼굴입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윤슬이 늘어뜨린 입매에 힘을 주었다.

"숨어서 울지 말고, 크게 울어도 괜찮습니다."

마치 울라고 종용하는 것처럼. 권태준이 손끝으로 눈가룰 문질렀다. 여 린 피부가 자극울 받아 시큰거렸다. 내리깔고 있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흐 르는 것을 보며 권태준이 만폭스러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떠 울어요. 윤슬 씨가 원하는 만큼 소리 내서 크게.”

마치 권태준의 말이 기폭제라도 되는 것처럼. 윤슬이 흐으. 하고 울음소 리를 냈다. 권태준의 말처럼 크게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해도, 참지 않고 흘 려보내는 눈을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눈을로 젖은 뺨을 권태준이 커 다란 손으로 홈쳐 주었다.

"그렇게 서러웠습니까."

권태준의 을음에 윤슬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는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내 탓이래요. ……내가 괴물 이래요.”

웅얼거리며 울욤 섞인 말을 내별자. 권태준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윤슬 씨는 호수랑만 절교할 게 아니라 형님하고도 필히 절교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형인데, 어떻게 절교를 해요.”

"그럼의절을 합시다.”

"그게 그거잖아.”

도움이 안 되는 말에 서러워진 윤슬이 흐어엉, 하고 소리 내어 울음을 터 뜨리자, 뭐가 옷긴지 한숨을 내쉬던 권태준이 웃음을 훝렸다.

"이제 보니 윤슬 씨는 우는 모습도 귀엽습니 다.”

하도 눈을울 문질러 닦아 눈가가 쓰렸다. 젖은 물기를 흥치려는 권태준 의 손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조심스럽게 뺨울 감싼 권태준이 윤슬의 고개 를 돌려 저를 보게 만둘었다.

"앞으로 참다가 을래 숨어서 울지 말고, 내 앞에서 울어요. 귀여운 모습 좀 많이 보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권태준을 일어내려던 윤슬이 뒤이은 권태준의 말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I내가 윤슬 씨에게 나쁜 짓 못할 것 같다는 말 기억합니까?"  

눈물로 젖은 눈꺼풀을 깜빡이며 윤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 을 권태준이 귀여운 동물 바라보듯 응시했다.

"그거 춰소해야겠어요. 나쁜 짓 좀 해야겠습니다.”

그리 말한 권태준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어, 이거 뭐지. 하고 상황 울 파악하지 못한 채 눈만 껑뼉거리던 윤슬의 입술위로 권태준의 입술이 살짝 부딪혔다. 놀라 뒤로 을러 나려는 윤슬의 머리를 감싸고, 태준이 가까 이 끌어당겨 입술울 겹쳤다.

깜빡거리던 눈꺼풀 사이에서 마지막 눈을이 한 방울 홀러내려 입술 틈새 를 파고들었다. 묘하게 짭조름한 맛이 나는 입맞춤이었다. 한 번, 두 번, 가 볍게 닿았다 떨어졌던 입술이 살짝 아랫입술울 을었다 놓고는 결합울 깊 게 했다.

뜨거운 혀가 입술을 벌리고 안쪽으로 파고돌었다. 놀란 윤슬이 어깨률 움찔거리자, 권태준의 손이 어깨를 타고 내려와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안쪽에 움츠리고 있는 윤슬의 혀를 톡, 하고 건드려본 권태준은 반응이 잠잠하자 유려하게 움직여 윤슬의 혀를 감았다. 입술 틈새로 타액이 섞이 는 소리 가 홀러 나왔다.

두근두근. 귓가에 심장 뛰는 소리가크게 들렸다. 윤슬이 밀어내려 권태 준의 어깨 위에 을려놓았던 손에 힘을 주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의 움직 임이 전해졌는지 살짝 입술을 떼어낸 권태준이 윤슬과 눈을 마주했다. 

실컷 울고. 권태준의 말에 의하면 나쁜 짓도 하고, 그리고 한숨 자고 일 어나자 침대 가에 암아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권태준이 보였다. 통통부었 을 것이 분명한 눈을 떠서 을려다보자. 권태준이 살며시 웃는 얼굴로 윤슬 의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주었다.

"일어났습니까?" 

"……네."

목이 까끌까끌해서 잔기침을 하자, 권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묻을 가져 다주었다. 마치 환자처럼 윤슬의 등을 받쳐 일으켜 세우고 을을 마시라며 컵을 입에 대주는 권태준의 행동에 윤슬이 웃음울 홀렸다.

"왜 웃습니까."

"환자는 권태준 씨인데, 간병은 내가 받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반성도 같이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는데.” 

빈 컵을 받으며 권태준이 휴대폰을 윤슬에게 내밀었다.

"아버님이 전화하셨습니다. 걱정하실까 봐 내가 대신 받아서 잔다고 말 씀드렸습니다. 일어났다고 전화해드려요.”

휴대폰울 받은 윤슬이 통화 목록을 살폈다. 두통의 받지 않은 전화와 마 지막에 통화한 혼적. 아마도 계속 울리는 벨 소리에 권태준이 고민하다 받은 것이리라. 윤슬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며 힐끗 권태준울 쳐다보았다.

「윤슬이냐?」

떼 집에 가셨어요?”

「그래. 재영이 퇴원시켜서 집에 왔다. 좀 쉬라고 방에 눕혀놨어.」

"네에.”

「얘기를 좀 해봤는데,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야. 자기가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겠단다. 당분간은 좀 지켜봐야겠지만, 또 이러지는 않겠지. 힘들 면 나한테 말하라고도 해놨고, 그게 부담스러우면 그 심리 상담? 그런 거라도 받아보라고 했다. 요즘에는 그런 게 흉은 아니잖냐.」

"그렇죠."

강호수의 병원을 갔던 전적이 있던 터라, 윤슬은 속으로 찔끔하면서도 

「많이 놀라고 걱정했지?」

"…-아녜요.”

「전화 안 받아서 너까지 원 일이 났나 했는데. 네 친구가 전화 받더라. 너 충격 받은 것 같아서 재웠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재영이 저놈이 어릴 때부터 똑 부러지는 농이었잖아. 병원 일에 결혼 문제에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았던 모양이지. 내가괜히 결혼 얘기는 꺼냈나보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에요.”

「그래도, 너무 을아붙인 게 아닌가 싶어. 어련히 알아서 여러 사람 만나 보다 때가 되 면 결혼하겠다고 했울 텐데.」

"아버지 탓이 아니라니까요. 그건 그냥 형이…… 형이…… 예민해서 그 러는 걸 거예요."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자신의 탓도. 아버지의 탓도.

누군가를 목 탓해야 한다면 그건 재영 본인의 탓이고, 본인의 문제일 것 이다. 그걸 주변 사람들이 자책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진짜 이유를 알지 옷하고, 본인의 탓윧 하는 아버지를 위로하며 윤슬이 재영을 원망했다.

「재영이 걱정은 하지 말고, 너도푹 쉬어. 친구는 무슨 일로 왔어? 네가 부른 거야? 아니면 놀러 온 거야?」 

"음…. 주말에 좀 같이 지낼 일이 생겨서요. 할 얘기도 있고.”

「그래. 친구도 오랜만에 왔울 텐데 안 좋은 일 생겨서 껄끄럽겠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친구랑 맛있는 것도 시켜먹고.」

어린아이 대하듯 어르는 아버지의 말에 윤슬이 낮게 옷었다.

"용, 그럴게요. 아버지도 좀 쉬세요.”

「그래, 너까지 아비 걱정시키지 말고 건강 챙겨. 끊는다.」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윤슬이 한숨과 함께 어깨를 늘어뜨렸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권태준이 그 모습울 보고 작게 웃었다.

"아버님이랑 통화하는데도 왜 그렇게 긴장울 합니까."

"……거짓말하는 기분이 돌어서요. 형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은데 그걸 말할 수는 없고, 이유를 모르는 아버지는 본인 탓이라고 하시고."

"내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만.”

"친구 왔냐고 하시네요. 맛있는 거 시켜먹으래요."

"좋은 아버님입니다."

그런 이유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말라며 윤슬이 가법게 권태준의 어깨를 때렸다. 

"기운은 좀 납니까."

기고 일어나니 괜찮은 것 같아요. 눈은 좀 아파요."

눈가에 손울 대자 화끈하게 열이 느껴졌다. 그것을 보고 있던 권태준이 부었다고 만지지 말라며 손울 끌어 내렸다.

"눈만 아픕니까?’

"네. 왜요?’

"눈만 부은 게 아니라서 그럽니다. 입술도 부었는데, 입술은 안아픕니까,"

장난스러운 물음에 윤슬이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권태준의 말처럼 입 술도 부었는지 손바닥 아래에 닿는 입술이 뜨겁게 느껴졌다.

"나한테 안 보이게 가린다고 입술이 가라암습니까.”

"자꾸 입슬에 집중해서 말하지 말아클래요?" "입술을 입술이라고 하지. 뭐라고 말합니까. 손 내려봐요."

윤슬의 손을 잡아 내린 태준이 유심히 입슘을 살피며 물었다. 

"침 바르면 낫는다던데. 침 발라 플까요."

"하 진짜."

권태준의 어깨를 일어내고 윤슬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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