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8)

"뭐가요?'

"다 이렇게 게으르고 지저분하난 말입 니다.”

"개인차이지 않을까요." "밥은 언제 먹었습니까."

권태준의 물음에 윤슬이 공곰이 생각해보았다. 새벽에 먹었나, 아니면 어제저녁에 먹었던가. 어겨I 낮에 먹었던 과자가 마지막이었었나. 윤슬의 생각이 길어질수록. 권태준의 미간에 자리 잡은 주름도 질어졌다.

"시켜요."

"월요?"

든 먹을 수 있는 거로. 짱개를 시키든, 탕을 시키든. 닭울 시키든. 뭐 든 폼 시컵시다. 요즘에 배달 안 되는 것도 있습니까?”

별로 먹고 싶은 생각 없는데."

"끌려 나가서 먹을 겁니까, 그냥시켜서 먹을 겁니까."

"그냥 시켜서 먹을래요."

"그럼 시켜요. 기다리는 동안 청소는 내가 해주겠습니다."

굳이 청소를 해주겠다면 사양하지는 않겠다. 윤슬은 의자에 암아 권태준 이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기 둘리는 모습울 보며 배달 융식을 검색했다.

"지금 시키고 앉아 있는 겁니까?"

"네, 시켰어요."

"전화하는 거 못 봤습니다만.”

"요큼은 배달 사이트에서 선택해서 결제하면 끝이거든요." 

뭔가 하나라도 트집 잡으려는 아버지처럼 권태준이 눈울 부릅뜨고 윤슬 을 쳐다보았다. 애초에 집을 어지론 것도, 식사를 하지 않은 것도. 씻지 않 고 있었던 것도 본인인지라 윤슬은 꿍하게 입을 다을었다. 그러다 문득 권 태준이 왜 난리지? 하는 불만이 생겨났다. 이런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독립을 한 건데. 아버지도 아닌 권태준에게 구박을 듣고 있는 이 상황은 대 체 무어란 말인가.

"권태준 씨."

"왜요? 걸레질은 윤슬 씨가 할 겁니까?"

"……아뇨. 힘들어 보여서요. 무슨 걸레질을 해요. 청소기 다 일었으면 좀 쉬세요.”

제 앞으로 내미는 걸레를 정중히 거절하고 윤슬은 방싯 웃었다. 엎드려 걸레로 바닥을 문지률 때마다, 와이셔츠 소매률 접어 드러난 팔뚝 위로 불 끈거리는 힘플이 보였다. 그것을 멍하게 보고 있던 윤슬이 홈홈, 하고 헛기 침을 했다.

더웠는지 방을 닦은 권태준이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힐 곳, 눈치를 보며 에어컨을 톨어준 윤슬이 때맞춰 배달된 용식을 가져와 상 위에 을리자, 권태준이 다가와 거들었다. 

"뭐 시킨 겁니까?”

"찜 닭이요.”

0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오놀 처음으로 권태준에게 칭찬울 둘은 기분이다. 윤슬이 접시를 가져 와 권태준과 제 앞에 내려놓았다. 뜨거워 김이 울라오는 찜닭울 그릇에 나 눠 담고, 함께 배달된 밥도 놓아주었다.

"그런데 왜 왔어요?”

"연락이 안돼서와봤습니다."

"일한다고 말했잖아요."

"대체 일윧 어떻게 하기에 연락도 안 되는지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이렇 게까지……주변울 초토화시키면서 일에 집중하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지를 수도 있는 거고, 게으름을 부릴 수도 있는 거 고. 좀 더럽게 살 수도 있는 거지. 꼭 그걸 꼬집어 지적해야 하는 걸까. 윤슬이 삐죽 입술을 내밀며 불통거 렸다.

띠I 꼴 안 보이고 잔소리도 안 들으려고 독립한 거거든요.”

"아무리 일에 집중을 해도, 정도껏 씻고 밥은 먹어가면서 일해야 하는  

거아님니까?"

"더 이상 못 참을 지경일 때가 오면 저도 씻고 밥 먹고 해요.” "그건 사람의 상태가 아닐 때를 말하는 겁니까.”

윤슬의 침묵에 한숨을 내쉬던 권태준이 이내 헛웃음울 홀렸다.

"왜 옷어요?”

"종 충격이라서 말입니다.”

"뭐가요."

"그렇게……뭐랄까. 정도 이상으로 지저분한 모습?”

"원래 혼자 살면 다 그래요. 보여플 사랑도 없는데. 깨곳이 치장할 필요 가 없잖아요."

"청결하게 씻는 건 기본 아닙니까?”

그렇게 묻으면 대꾸할 말은 없지만. 정도 이상으로 더러웠다는 것에 동 감도 했다. 그래도 제 입으로 공정하고 싶지 않은 윤슬은 모론 척 밥을 입 에 넣었다.

"이렇게 촉박하게 써서 달라고 했습니까, 출판사가?”

"아뇨. 부담 갖지 말고 쓰라고는 하는데, 더 이상 시간 끌면 안 될 것 같 아서요. 이거 마무리해서 원고 넘기고 다음 작품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 어서 폼 서둘렸어요. 사실 출판사가 기한울 혹박하게 준 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미뤘던 것이기도 하고."

"얼마나 더 이 골로 생활해야 하는 겁니까?"

문득 권태준이 이렇게 당흑스러워하고 치를 떠는 상황도 있구나, 싶은 생각에 웃옹이 나왔다. 항상 평범하지 않은 행동과 말로 자신울 당황스럽 게만 했지. 그 반대 상황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이상하게 뿌듯한 마음도 둘었다.

"왜 웃습니까."

방금 전, 윤슬이 했던 것과 폭같은 질문을 권태준이 내별었다.

"권태준 씨, 더러운 거 안 좋아하나봐요.”

"더러운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사랑이 살면 어지르고 살 때도 있는 거죠. 누가 항상 정리정돈 깨끗하 게 하고 살아요? 삭막하게.”

"아까처 럼 사는 것보단 삭막하게 정 리하고 사는 게 낫습니 다.”

생각을 떠을리는 것조차 싫은지 권태준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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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일 정도 도시락 배달시켜 놓겠습니다. 씻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끼니는 그렇게라도 챙깁시다.”

"왜 일주일인데요?"

묘하게 구체적인 날짜에 윤슬이 면을 건져 먹으며 고개를 갸옷거렸다. 초로롭, 하고 면을 흡입하면서 튀긴 국을에 권태준이 주섬주섬 물티슈를 뽑아 주변을 닦았다.

"내가 일주일 동안 지방에 내려가서 그렇습니다."

."아아.”

"왜 내려가나고안 묻습니까?"

딱히 물어블 필요가 있나.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은데. 하지만 저를 압박 하며 응시하는 시선에 윤슬이 마지옷해 왜요? 하고 물었다.

"회사 일로 내려갑니다. 바빠서 통화도 잘 옷할 겁니다."

"아, 예."

윤슬은 대충 대꾸하며 면과 감자를 흡입했다. 배달 옹식은 기본 이하라 는 생각이 있었는데. 기대가 낮았던 탓인지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배달  

시켰던 곳을 적어뒀다 나중에 다시 시켜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윤슬이 저 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왜요?”

"윤슬 씨는 나한테 관심이 없나봅니다."

"……관심……있어야 해요?”

"그래도 와서 청소도 해주고 밥도 같이 먹고 하는 사이인데, 자리를 비운 다고 하면 어딜 가는지 왜 가는지 정도는 을어야 하는 거 아닙 니까?'

"회사 일 때문에 지방에 간다면서요.”

윤슬의 대꾸에 무거운 한숨이 내려암았다. 것가락울 입에 문 윤슬이 덩 달아 미간울 찌푸렸다.

"권태준 씨.”

-2" 부릅니까."

."권태준 씨, 게이 아니라면서요. 연극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잖아요. 솔직히 나는 권태준 씨의 지금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이해가 안 됩니다."

본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마치 남 얘기를 하는 것처럼 권태준은 심드렁 하게 대꾸했다.

"내가 작업 거는 것 같습니까?”

"우리가 친구도 아니고, 서로 챙겨줄 만큼 특별하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 잖아요."

"아는 사이에 왕래하고 신경 쓰는 게 특별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왕래는 아니죠. 권태준 씨가 내 집에 일방적으로 방문하는 거지."

"내 집에 오고 싶다고 둘려서 말하는 겁니까?"

"아뇨, 권태준 씨가 내 집에 일방적으로 오고 있는 거라고 직접적으로 말 한 건데요.”

둘려서 말한 의도 같은 건 없으니 둘려서 듣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윤슬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알게 모르게 배 가 고팠는지 찜닭울 절반 이상은 혼자 먹은 것 같았다. 후아, 하고 부론 배 를 문지르며 윤슬이 힐곳, 권태준을 쳐다보았다.

"권태준 씨.”

"왜요.”

조금 불통한 목소리로 권태준이 대답했다. 윤슬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꾸역꾸역 찜 닭만 먹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금 토라진 것처럼 보이기 도 했다. 웃기네. 제법 익숙해졌다고 이제는 권태준이 귀여운 짓을 하는 것 

"다 먹고 이것도 정리해플 거죠?"

"양심 없습니까?”

"커피 타클게요."

"……알겠습니다."

자신이 남긴 찜닭과 감자를 남김없이 먹는 권태준의 모습을 지켜보며 북 스러우면서도 참 단정하게 먹는구나. 하고 한가로운 생각을 했다. 다용 글 에서 저런 남자를 주인공으로 써도 괜찮울 것 같았다. 걸모습은 멀정한데 알맹이는 이상해서 다론 사람과 소통이 어려운 남자. 그럼 읽는사람이 답 답해지려나. 캐릭터가 확실하기는 한데 호불호 역시 확실하게 갈릴 위험 이 컸다. 본인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이는 윤슬을 권태준이 힐곳 쳐다보았 다.

"새삼스럽게 내가 잘생겨 보입니까?”

아, 왠지 들어본 적 있는 질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윤슬은 언젠가 강 호수가 저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음을 기억해냈다. 저런 농담을 자주한다 는 친구의 정체가 권태준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새삼스럽지는 않고. 항상 그런 생각을 하죠.”

"그런데 왜 그런 씁쓸한 표정입니까.”

그건 네 얼굴이 아까워서.

아니에요. 하고 대답을 얼버무리며 윤슬이 일어나 포트에 을을 받았다. 찜닭울 깨끗하게 비운 권태준이 주섬주섬 음식을 쓰레기를 모으고, 빈 용 기를 봉지에 담아 한쪽으로 치웠다. 물티슈로 깔공하게 닦은 상에 커피 두 잔울 타서 내려놓았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지방 내려간다고요?”

"나 없다고 울지 말고. 잘 지낼 수 있겠습니까."

" 그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 예요?"

"있던 사람이 없으면 허전하지 않습니까. 괜히 외롭기도 하고." "서럽지도. 외롭지도 않아요.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독립해서 처음 여기서 "울 때도 멀쩡히 잠만 잘 5다. 하을며 상대가 권 태준인데, 허전하고 외로울 리가 있나.

"내가 안 들여다봐도, 인간적으로 좀 씻고 청소도 하고 삽시다."

"어차피 올 사랑도 없고, 권태준 씨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게 있어요."

"있긴 뭐가 있습니까. 더러워지고 싶은 그런 마용이 있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여기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거요. 씻는 것도. 식 사하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이 장면만 쓰고 해야지. 이 부분만 써놓고 해야지. 그러다가 조금만 더 쓰면 끝날 것 같으니까 끝 을 봐야겠다. 끝내고 씻어야 휼가분할 것 같은 기분."

"어차피 하루 이틀 안에 끝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 달이 걸 리면 한 달 동안 안 씻고 청소도 안 하겠다는 겁니까?”

"그러진 않겠지만, 그동안은 그런 부수적인 것보다 글쓰는 거에 집중울 하게 된다는 거죠."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가사 도우미도 불러야겠습니다."

"가사도우미는 무슨.”

참. 나.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며 코웃음울 쳤지만. 문득 조금은 끌 리기도 하는 윤슬이었다.

권태준이 없는 일주일은 참으로 평온했다. 바볼 거라고 말했던 것이 허 풍은 아니었는지 중간에 한 번쯤 오리라 생각했던 전화도 없었다. 마치 권 태준을 알지 못했던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시간 맞침 배달되어 오는 도시락을 먹으며 가공 권태준읗 생각하기도 했 지만, 그가 말했던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결단코 아니었다. 권태준은 식당  

도 맛있는 집을 많이 알고 있더니 시켜주는 도시락조차 맛있구나, 딱 이 정 도.

권태준이 노렸을 리는 없겠지만 끼니를 챙겨 먹게 되니, 양치를 하게 되 고, 양치를 하니 겸사겸사 씻게 되기도 했다. 끼니가 규칙적으로 변하니, 쉬는 것도 규칙적이 되고, 일상이 규칙적으로둘아갔다. 적당히 쉬어주니 나머지 시간에 집중해서 글울 쓰고 잠도 자게 되고.

이래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더라도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고 다들 말 하는 모양이다. 아버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며 윤슬이 고개를 주억 였다.

저녁 도시락을 먹고 양치를 하며 겸사겸사 샤워를하고 나온윤슬이 커 피 한잔울 타서 책상 앞에 암았을 때였다. 정말 오랜만에 현관 벨 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이었다면 아버지를 떠을렸을 텐데, 이제는 반사적으로 권태준이 떠 올랐다. 사람의 학습효과란 무서운 것이구나. 마치 계 모습이 애인의 방문 을 기다리는 사람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울 떠을린 윤슬이 본능적으 로 어깨를 떨었다. 왠지 모르게 무서운 생각을 한 기분이었다.

잠깐 다론 생각에 빠져있던 윤슬은 재차 울리는 벨 소리에 느릿느릿 자 리에서 일어나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대답 없는 벨 소리만 계속 울렸다. 권태준이 아닌가. 잠시 고민을 하며

윤슬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세요?”

"권태준이사님입니다."

문 너머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권태준이라 답변을 해왔다. 이 묘한 상황은 뒤지. 고개를 갸옷거리며 외시경으로 밖울 내다보자 축 처져있는 권태준을 양옆으로 부축한 사내들이 보였다.

"문종 열어주십시오.”

윤슬이 현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사내가 재차요구했다. 아 니, 권태준도 모자라서 왜 저 사람들까지 저렇게 당당한 건데. 윤슬이 인상 울 쓰며 문을 열었다. 기척을 느꼈는지 권태준이 푹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둘어 윤슬을 확인하고 눈을 접어 웃었다.

"어, 윤슬 씨. 오랜만에 보니 반갑습니다?"

어지간히도 마셨다. 두어 걸용 떨어진 곳까지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또 강호수와 술을 마시기라도 한 건가. 무슨 피난처도 아니고, 왜 술을 마 시면 여기로 기어들어 와. 한 소리를 하려던 윤슬이 채 입을 벌리기도 전 에. 사내들이 우악스럽게 집 안으로 일고 들어왔다.

"저기. 잠깐만요. 권태준 씨는 왜 끌고 들어와요?"

"형님이 여기로 오겠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주인 의사도 좀 을어봐주시죠?"

항의를 했으나 사내들은 둘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정중하게 권태준의 신 발울 벗기고 안으로 들어선 사내들이 권태준을 침대에 눕혔다.

"이것 봐요.”

아가건 형님 선물입니다."

뒤이어 들어온 사내가 사랑만 한 공 인형을 윤슬의 품에 안겨주었다. 혁, 소리가 날 정도로 무게가 나가는 곰 인형을 윤슬이 신경질적으로 던졌 다. 침대에 누워있던 권태준의 배 위로 떨어진 곰 인형에 권태준이 작게 앓 는소리를 냈다.

"조심해주십시오. 환자이십니다."

곰 인형을 권태준의 옆에 곱게 놉혀 놓으며 지적하는 사내의 말에 그제 야 윤슬이 권태준의 모습을 자세히 눈에 담았다. 흐트러진 정장 재킷 사이 로 보이는 하얀 와이셔츠가 붉게 물을어 있었다.

저거……피예요? 권태준 씨 피예요."

널브러져 있는 권태준의 와이셔츠를 끌어울리자 배 한 쪽으로 큼직한 거 즈가 붙어있었다.

"칼침을 맞아서 몇 바놀 꿰매셨습니다."

"아니, 회사 일로 지방 출장을 간 사람이 칼 맞을 일이 뭐가 있다고."

"나와바……아니, 구역 정리를 하시다가 마지막에 판이 좀 커졌습니다."

뭔가 전문 용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윤슬이 질색한 표정으로 사내들에 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 났다.

"의사 선생님께서 되도록 안정을 추)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랑이 이렇게 떡이 되도록 술을 마셔요? 의사가 술 마시지 말라 는 소리는 안 했어요?”

"원래 이런 건 알코올로소독을 해야하는 법이라……."

"이 사람들아, 그건 상처 소독을 말하는 거지. 목구멍 소독을 해서 뭐해."  

이게 지금 농담을 하자는 거야. 뭐야. 윤슬이 화를 내며 쏘아붙이자 사내 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격한 운동도 당분간 피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건 또 왜 말하는 건데. 자신이 권태준과 베개 싸움을 하겠는가, 스파링 을 하겠는가. 새삼스럽게 주의를 준다며 빤히 사내를 바라보던 윤슬이 왠 지 모를 시선에 고개를 갸옷거 렸다.

"상처가 터질 위험이 있다고 격한 자세도 되도록 피하라고 하셨습니 다."

격한 운동. 격한 자세. 이해 못 할 말을 잠시 중얼거리던 윤슬이 입술을 뒤휼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야. 안 나가? 이것들이 지금 방중에 쳐들어와서 술 추!한 사람 멋대로 투척해놓고”

뭔가 집어 던질 것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윤슬을 보고 사내 들이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왠지 모르게 말끝에 형님이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 같은 인사였다. 오셨 습니까. 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 쉬십시오. 형님. 이 와중에 허리까 지 굽혀가며 인사를 하는 게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그런 느낌이었다. 인사 를 하고 후다닥 소리가 날 것처럼 쌩하니 공무니를 빼고 나가버리는사내 들울 보며 윤슬이 씨근덕거렸다. 삐리 릭.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는 것을 보 고 있던 윤슬이 등 뒤에서 작게 돌려오는 옷옹소리에 몸을 둘렸다.

"뭐 잘했다고 옷고 있어요?"

"미안합니다."

표이게 지금 웃울 일이에요?"

생판 모르는 사랑에게 요상한 오해틀 받고 있는데. 다친 상처만아니라 면 술 뤼한 사람 상대로 먹살잡이를 했을 거였다. 윤슬이 화룹 누르려는 것 처럼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나 같은 남자와 엮이는 건 행운 아닙니까."

"그게 지금 자기 입으로 할 소린가?"

"윤슬 씨 입으로 못하는 것 같으니 내가 대신해주는 말입 니다."  

일주일 만에 보는 것이었지 만 반가움보다 화를 부르는 주둥이였다. 벌써 부터 머리가 지끈거려 윤슬이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늘렸다.

"추!했어요. 안 춰했어요?”

추)했다고 하면 어껄 생각입니까?”

"춰했으면 뒷감당 생각 안 하고 한 대 치고. 안 취했으면 심도 있게 대화 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추)했지만 맞은 걸 내일 아침에 기억 못 할 정도는 아니고, 대화라면 내 가 잠들기 전에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일단 심도 있는 대화부터 해보죠."

의자를 끌어와 침대 곁에 두고 암은 윤슬이 누워있는 권태준을 빤히 쳐 다보았다.

"회사 일로 지방 내려갔던 사람이 배에 구멍 뚫려서 온 이유부터 듣죠."

"아까듣지 않았습니까. 구역 정리 하다가 일이 좀 커졌다고."

"회사 일에 구역 정리도 포항이 돼요? 구역 정리라는 게 구체적으로 원 데요?’

"……대외비입니다."

대외비 좋아하네. 윤슬이 주먹을 쥐었다 피는 것을 반복하며 후우, 하고 

"술은 누구랑 마셨. 아니, 술 마시고 여긴 왜 왔어요? 우리 집이 무슨 노 숙자 쉼터예요?”

병원 나와서 애들이랑 가볍게 마셨습니다. 서울 을라오니 윤슬 씨가보 고 싶더군요. 그래서 왔습니다.”

"참도 당당하네.”

성실하게 내별는 권태준의 대꾸에도 자꾸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냥 지금 팰까, 아니면 이따 잠들면 땔까. 지금 당장 한 대 쥐어박고싶은충동 에 손이 근질근질했다.

"상처도 아프고, 술도 생각보다 과하게 뤼해서……인형 뽑기가 힘들더 군요. 그래서 여러 개보다큰 거 하나를 가져다주고 싶었는데, 마침 길거리 에 큰 인형을 여러 개 가져다 놓고 기왓장 깨기 하는 장사가 있었습니다. 아. 저거면 좋겠다 싶어서 장사하는 사람한테 사 왔습니다. 인형을 돈주 고 사본 건 처음입 니다."

"하나도 안 고마워요. 자리 차지한다고요."

지금도 권태준과 나란히 누운 곰 인형이 침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난히도 침대가 비좁아 보여 당장 오늘 자신은 어디서 자야 할지 윤슬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추!객이라고는 해도 환자인데. 권태준 을 바닥으로 밀어버릴 수도 없고.

"이렇게 윤슬 씨를 보니 참 좋습니다.”

권태준은 옆에 누워 있는 공 인형을 향해 말했다. 단순히 곰 인형을 보 는 건지, 아니면 곰 인형에게 말하고 있는 건지를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권태준은 곰 인형을 끌어안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손에 피룯 묻힌 날이면 악몽이 질어집니다."

후우. 하고 한숨울 내쉬던 윤슬이 권태준의 말에 잠시 숨울 멈추었다.

"나는 악몽이 두렵다거나,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몽에 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내 묏값이 라고 생각하니까. 단지……."

권태준의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섞인 것처럼 들리는 건 착각일까. 윤 "59."869

술은 가만히 숨을 죽이고 권태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지. 조금 외로운 것 같습니다. 악몽 속에서도 그게 꿈이라는 것은 압 니다. 잠에서 깰 때까지 그 악몽 속에 홀로 서서 내가 저지론 죄를 계속해 서 보고또 보는 것이……그래요. 외롭습니다."

곰 인형의 머리통을 양손으로 잡고 까만 구술 같은 곰의 눈을 마주 보며 권태준은 말을 이었다.

"그걸 내려놓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도망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 냥……오늘따라 옴이 상처 입으니 아옹까지 약해졌는지……누군가 결에 있어줬으면 하고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윤슬 씨를 찾아왔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찾아온 건 아니죠. 대놓고 일행들 다 끌고 왔지.”

윤슬의 지적에 권태준이 웃음울 터뜨렸다. 아이처럼 웃던 권태준이 윤슬 씨, 하고 불렀다.

"나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필름이 끊기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네. 참 부럽네요.’

"그래도 오늘 일은 내일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말하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듣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일었다. 윤슬은 긴장으로 몸을 움 츠리고 권태준의 어깨 언저 리를 바라보았다.

"나와 같이 있어줘요. 내가 약해지지 않게, 내가 도망치지 않게……그렇 게 오늘 하루만 내 손울 좀 붙잡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은 신선하기도 했다. 언제나 악몽에 짓늘린 사람돌만 봤었는데. 도 망치고 싶다고, 벗어나고 싶다고 애원하는 사람돌만봤었는데. 악몽을 마 주하겠다고 말하는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인 것일까.

"권태준 씨.”

떼."

"나 봐요."

"보고 있습니다.”

그건 공 인형이고. 농담울 하고 있나 싶었는데, 정말 반쯤은 제정신이 아 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저런 약한소리도 하는 것이겠지.

윤슬이 의자에서 침대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등을 돌려 곰 인형을 향해 누워있는 권태준의 어깨를 잡아 바로 눕혔다.

"몸도 성치 않은데 츼하기까지 해서, 권태준 씨 이런 모습도 보네요."

"6" I 869 

"그러게 말입니다."

불편하게 껴입고 있는 정장 계킷을 일어 벗기며 윤슬이 한탄처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춰했어요?"

"추)해서 오늘 일은 내일 기억 못 할 거죠?”

떼."

"추)해서 지금 했던 얘기도 내일 기억 못 할 거고?"

권태준은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피로 물든 와이셔츠 단추를 플어 셔츠마저 벗겨내고, 수건을 물에 적셔와 거즈 주변의 피 얼룩울 살살 닦아냈다. 빨장게 을이 든 부분을 반대로 접어 권태준의 가숨과 팔까지 닦 아준 윤슬이 수건을 손에 쥐고 다시 물었다.

"추)해서 무슨 꿈을 꾸었는지도 기억 옷 할 거예요."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정작 중요한 질문에 애매하게 답을 하는 권태준을 노려보자, 잠이 오는 지 가물가묻한 얼굴로 권태준이 작게 웃었다.

"기억 못할 겁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 그만 자요.”

#소

"손?’

'손잡아줘요."

날을 잡았는지, 답지 않게 어리광을 부리듯 권태준이 손을 내일었다. 커 다란 손을 을끄러 미 바라보던 윤슬이 헛웃음을 내별고는 그 위에 제 손울 겹쳐 잡았다.

슬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약 기운 때문인지는 을라도 권태준은 금방 장 이 둘었다. 제 손울 꽉 붙잡고 곤히 잠든 권태준의 얼굴을 윤슬은 을끄러 미 내려다보았다.

훌로 장들기 싫다는 뜻일까. 아니면 악몽 속에 혼자 남겨지기 싫다는 뜻 일까. 윤슬은 권태준의 말뜻울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잠든 권태 준을 깨워 명확하게 물을 수도 없었다.

이제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는데. 형에게, 강호수에게, 그리고 다론 사람 둗에게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고, 멋대로 상처받고. 또 멋대로 화 내고. 그런 일을 반복하지 말자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권태준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권태준은 어디까지 기대하고 있을까.

상처가 아픈지 권태준은 자는 도중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공공거렸다.

어쩌면 악몽을 꾸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강아지처럼 낑껑거리는 권태준의 머리를 쓸어넘겨주며, 윤슬은 잘생긴 남자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찜그린 미간, 감고 있음에도 눈꺼풀 아래로 불안하게 흔돌리는 눈동자 의 움직임. 살짝주름이 잡힌 못날, 꽉 다을린 입술, 힘이 들어간 턱 끝.

윤슬은 문득 권태준이 처음 이곳에 쳐들어왔울 때를 떠을렸다. 멀곰한 얼굴에 멀공한 정장 차림으로 칼을 들고 침입했지. 그때의 인상과 전혀 달 라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다론 것 같기도 한 남자가 지금 여기에 무방비로 누워 잠돌어 있다는 것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전생에 내가 나라를팔아먹었나. ……한삼백 번 정도."

깊게 내쉰 한숨이 무겁게 깔렸다.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이불을 펴서 권 태준의 벗은 상체를 덮어주었다. 침대 아래에 등을 기대고 암은 윤슬이 힘 없이 늘어져 있는 권태준의 손울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반쯤 벌어져 있는 그손이 왜 그렇게 허전하 고 안쓰럽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살며시 권태준의 손울 감싸뛴 윤슬이 침 대에 얼굴윧 기대고 웅얼거 렸다.

"내일 일어나서 또 칼부림하기만 해봐요. 반대쪽 배에 구멍을 내줄 거니 까."타인의 악몽에 이렇게 여러 번 드나들었던 적은 없었다. 횟수로만 벌써 세 번째인 권태준의 악몽을 앞에 두고 윤슬은 살며시 미간울 찌푸렸다. 도 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참상이 시야를 어지럽게 했다.

"그가면 쪼가리는 뭡니까?

어디선가 나타난 권태준이 윤슬의 앞으로 고개를 둘이일며 심드렁한 목 소리로 물었다. 현실보다 건방지고, 현실보다 나른하며. 현실보다 날 서 있 는 권태준의 이면이었다.

"나 기분 별로니까 시비 걸지 마시죠?"

"정말윤슬 씨 맞습니까?”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꿈을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그만 나가보겠습니 다."

꾸벅 인사를 하고 몸을 돌리려는 자세률 취하자. 권태준이 덥석 윤슬의 손목윧 잡아 세웠다.

"왜 화난 겁니까?” 그렇게 물어본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화가 났다기보다 그저 현실에 서 아는 사람의 악몽에 들어왔다는 절끄러움과 내키지 않는 마음 때문에 불통한 것이었으니까.

"그가면부터 종치웁시다.”

윤슬이 대꾸하기도 전에 권태준의 손에 의해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졌 다. 민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윤슬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 었다.

"정말 윤슬 씨네요."

" 그럼 가짜겠어요?"

"왜 그렇게 뾰로통해 있는 겁니까. 귀엽게."

왠지 모르게 놀리는 것처럼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 얄미웠다. 권태준의 손을 쳐내며 윤슬이 방어하듯 팔짱울 꼈다.

"똥개도 제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더니.”

"똥개?"

"그렇잖아요. 불쌍한 척할 때는 언제고. 기고만장해서는." 윤슬의 말을 따라하며 권태준이 낮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불쌍해 보였습니까?”

아니거든요."

"그래서 같이 있어주려고 온 겁니까.”

아니라니까요."

극구 아니라고 부정을 하는데도. 권태준은 웃음울 지우지 않았다. 왠지 머쓱해져 뺨울 문지르자, 그런 윤슬의 앞으로 권태준이 손을 내일었다.

"손잡아줘요."

어째서 권태준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둘리는 걸까. 윤슬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일어 권태준의 손울 잡았다. 마치 현실에서처럼 단단한 아귀힘이 느껴졌다.

"윤슬 씨가 있으니 오늘은 외롭지 않겠습니다.”

악몽을 없에달라는 것도 아니고. 다른 무언가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윤슬은 무엇울 해야 할지 을라 멀뚱히 서 있었다. 왠지 권태준의 악몽을 자 세히 살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애써 눈앞의 참상에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권태준 씨가……월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무언가를 원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여기 있울 이유가 없으니까요.”

"내 악몽이지만, 나 역시도 무언가를 하지 못합니다. 그냥 바라보는 게 전부입 니다. 그래서 더 외로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슬과 나란히 선 권태준은 자신의 악몽울 직시하며 씁쓸한 어조로 말했 다.

"지켜봐요, 내 악몽울. ……어차피 전부를 보지도 못할 테니.”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이런 악몽 꾸고 싶지 않잖아요."

"이렇게라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권태준의 의도를 모르겠다. 윤슬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 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권태준의 생각을 도통 알 수 없었다.

"정 뭔가률 해주고 싶다면, 무릎베개라도 해주겠습니까."  

생뚱맞은 요구에 윤슬이 단호하게 거절을 내별었다. 그럼에도 권태준은 윤슬울 앉혀서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악몽 속에서 이렇게 느긋한 사람은 처음인지라 윤슬이 잠시 어이없는 표정으로 권태준울 내려다보았다.

"벗어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왜요? 무섭지 않아요? 이런 꿈, 두렵지 않아요?”

"내 죄에 대한 결과를 나만이라도 보고 기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무슨 짓울 저질렀는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빼앗았는지, 지금의 내 가존재하기 위해 무엇울 짓밟았는지.”

권태준이 저지론 짓, 권태준이 빼앗은 것, 권태준이 짓밟았던……사람 둘.

윤슬은 고개를 들어 차마 사람이라 말하기 어려운 형체듈을 바라보았다. 권태준이 저렇게 했다는 걸까.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짓 을 저질렀다는 걸까. 이 남자가그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니,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요?”

I내 악몽을 감당하는 것은 나로 족하니까요."시야를 어지럽히는 장면에서 눈을 땐 윤슬은 대신 제 아래에 있는 권태 준을 내려다보았다. 제게는 보지 말라고 한 주제에. 권태준은 아픈 눈을 하 고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게 왠지 술펐고, 안쓰러웠고, 불쌍했다.

마치 아이를 보등어 재우듯. 윤슬은 권태준의 머리를 쓰다등었다. 토닥 토닥, 다른 손으로 살며시 가숨을 두드려주자 낮은 옷음소리가 홀러나왔 다.

"아는 자장가 있습니까."

"아뇨.”

"자장자장이라도 해봐요."

"왜요? 새삼스럽게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어요?"

"다용에 악몽을 꿨을 때, 윤슬 씨가 없더라도 지금의 기억을 떠을리고 싶 어서 그럽니다."

왠지 모르게 입 안이 썼다.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리며 윤슬은 자장자장 대신권태준씨, 하고 불렀다.

"권태준 씨는 비밀을 말하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없습니다. 내 비밀은 하나같이 내 옥숨을 담보로 하니까. 말하고 싶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살고 싶다면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것들입 니다."  

거, 참. 대화하기 어렵네. 그렇게 대답하면 대화가 안 이어지잖아요."

무거운 분위기에 윤슬이 권태준의 이마를 찰싹 때리며 타박했다. 아프지 도 않을 텐데 권태준은 눈썹을 축 놀어뜨리며 손으로 맞은 이마를 문질렀 다.

"나한테도 비밀이 있어요. 권태준 씨와 지금 여기 이렇게 함께 있는 것으 로 더 이상 비일은 아니겠지만. 권태준 씨는 내일이면 잊을 거라고했으니 까……내일이면 다시 내 비일이 되겠죠.”

권태준이 기억 상실에 걸리기 전까지 그럴 일이야 없을 테지만. 이건 암 묵적인 약속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울 상기시키며 윤슬이 말을 이었다.

으로 듣고 버틸 수 있겠습니까.”

권태준이 불만스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강호수가 플긴다기보다는 기본 적으로 사람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울 지닌 탓이겠지만. 뭐가 그렇게 불만인 지 인상까지 써가며 이 자리에 없는 강호수를 험담하는 권태준의 표정이 제법 볼만해서. 윤슬은 반박 대신 웃음을 홀렸다.

"좋은 분이에요. 항상 힘이 되는 공정적인 말씀만 하시거든요.”

"……그렇죠. 좋은 놈입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할수 없을 정 도로, 나 같은 놈하고는 다론 녀석입 니다.”

스스로를 비하하듯 말하는 권태준을 타박하는 대신 윤슬은 그의 머리를 살며시 쓸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내가 뭐라도 되는 풀 알았어요.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데 바뀌었다고 착각했죠. 강 선생님은 현실을 잊게 만들어요. 그게 좋은 것 만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버 렸어요.”

"구원자. 뭔가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는 그 말에 흔들렸어요. 정말 구원자 는 아닐지라도, 비슷한 언저리의 무엇은 되지 않을까;" 

"선생님은 권태준 씨가 악몽에서 벗어나기를 바랐어요. 내게 부탁했죠. 아니, 부탁이 아니라 권태준 씨가 을랐울 계약이라고 하면 좋겠네요. 그때 당신이 내 손을 잡았다면, 지금 이런 악몽은 꾸고 있지 않았울 거예요."

"악몽울 꾸지 않는다고 평온울 얻을 수 있습니까. 악몽은 본인의 어두운 이면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뿐입 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 어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뭐가 다롭니까."

권태준은 얼굴 위로 손울 들었다. 갈라진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까만 눈동자가 윤슬울 응시하고 있었다.

"악몽을 꾸지 않고 잠든 시간 동안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외면하 고 싶지 않습니다. 무섭거나 두렵지도 않아요. 두려워하는 건 내가 아닌 저 들이니까. 내가 원하는 건 이 악몽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죽을때까지 내 눈으로 이 악몽을 보는 겁니다. 그게 내 책임이고, 내 의무입니다."

신기한 사람이다.

윤슬은 조용히 권태준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분명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나쁜 짓을 수없이 저지른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범 

한 수준이지만, 권태준은 그러면서도 뉘우친다거나 반성한다거나 눈물로 호소하지 않았다.

이제껏 봐왔던 사람들은 마치 윤슬이 재판장이라도 되는 양, 본인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얼마나 반성하는 지 끊임없이 말을 했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으면 감정적으로호소 했다. 얼마나 자신이 괴로운지, 얼마나 자신이 불쌍한지, 얼마나 자신이 고 통 받고 있는지.

"권태준 씨 같은 상담의를 만났으면 좋았울 것 같네요."

"역시 내가춰향입니까."

"물론 그건 아니고. 권태준 씨였다면 이상이나 희망 같은 번지르르한 말 대신, 현실적으로 충고률 해줬을 것 같아서요. ……홀로 이겨내지 못하고 침식되어버릴 악몽 속의 구원자. 강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었어요. 옷기 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꽤 그럴듯하게 들렸거든요. 조금 우쫄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제 와 둘아보니. 나라는 괴물은 타인의 악몽을 먹고 더 커져 있더 라고요."

윤슬의 고백에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권태준의 웃용이었다. 자조 섞인 그 웃용에 윤슬이 물었다.

"왜 옷어요?”

"대체 무엇이 괴물일까 생각하니 옷음이 나왔습니다. 앞을 봐요. 윤슬 씨ㅣ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들을 저지른 내가괴물입니까, 아니면 타인 의 꿈에 드나을 수 있는 윤슬씨가괴물입니까. 누가 더 괴을에 적합한 것 같습니까. 눈이 없다고 괴물입니까, 손 하나가 없다고 괴물입니까. 열 개 국어를 한다고 괴물일까요, 아이큐가200이면 괴을일까요. 나는존재만으 로, 흑은 어떤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괴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 슨 짓을 저질렀나. 어떤 식으로 살아왔나, 그러한 행동들이 사람을 괴을로 만든다고 생각하지. 봐요. 윤슬 씨의 눈앞에 아주 훌륭한 괴을이 있지 않습 니까."

위로는 아니었다. 누가 더 괴물에 가까운가, 시시비비를 따지며 위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괴울은 존재만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인가. 본인의 행동으로 인해 만돌어지는 것인가. 어느 것이 틀렸다 말할 수도, 어 느 것이 맞다고 말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러게요. 아주 훌륭한 괴물 두 마리가 지금 이 악몽 속에 있네요."

"결국 그렇게 마무리 짓는 겁 니까."

"본인이 괴물이라는 점에서 서로 양보할 수 없다니까 이렇게라도 마무리 를 해야죠. 괴물 타이틀을 놓고 싸우기라도 할까요."

"사양하겠습니다. 뭐 좋은 거라고 타이틀 매치까지 하겠습니까."

윤슬도 권태준도 그저 옷기만 했다.

한 차례 옷고 난 뒤에 찾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항상 악몽을 없애준 뒤 에 꿈에서 퇴장한 터라, 이렇게 타인의 악몽 속에서 타인과 함께 있는 것 이 어색했다. 왜 자신은 권태준에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멍하게 않아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있으니 목 깨어있는 것 같습니 다.”

"현실이었다면 내가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겠죠.”

"또 압니까. 현실에서도 윤슬 씨가 이렇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싶을지."

"네, 아니에요.”

"단호하네요."

"헛소리하지 말고 입 다을고 있어요. 그냥종……종 쉬어요."

잠시 멈추었던 손울 움직여 다시 토닥거렸다. 작게 웃던 권태준 역시 입 을 다을었다. 권태준과 대화를 주고받고. 실없는 농담을 하고, 얼굴을 마주 하는 이 시간이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고개를둘어 앞을보면 비정상적인 권태준의 악몽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종 쉬어요.

홀로 남겨졌을 때 또 이 악몽을 버티기 위해서라도, 좀 쉬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악몽도 언젠가는 끝나고 깨어날 시간은 다가을 테니까. 

잠에서 깨어난 태준은 눈앞에 보이는 허연 것에 몸을 긴장시켰다. 무방 비 상태에서 무언가 지척으로 접근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반용했 다. 찰나의 방심이 죽음을부론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이었다.

눈에 힘을 주고 정면을 바라보다 그것이 어젯밤 사 왔던 곰 인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술김에 이 큰 놈을 사겠다고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과 승강 이를 했었지. 다음날 술에서 깬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왜 그런 짓을 했 울까 하고 태준은 잠시 후회 했다.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침대에서 떨어질 만큼 곰 인형이 차지하는 면적 이 꽤나 넓었다. 아술아술하게 침대 끄트머리에 누워있던 태준이 자리에 서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긴장울 하느라 옴에 힘울 준 탓인지 복부의 상처가 아릿하게 당겨왔다.

복부를 힐곳 내려다본 태준은 벗겨진 상체와 깔공하게 닦인 피 얼룩을 확인했다. 벗겨놓기만 하고 입혀놓지는 않은 범인을 찾아두리번거리다 침 대 밑에 얇은 이불을 깔고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있는 윤슬을 발견했다.

침대를 등지고 누워있는 탓에 윤슬의 자그마한뒤통수가 보였다. 웅크 린 어깨가 고른 숨을 내쉴 때마다 작게 오르내렸다.

꿈.

태준은 간방에 꿨던 악몽을 떠을렸다. 그 꿈은 진짜였나. 아니면 거짓이 었나. 꿈을 대상으로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 자체가 웃긴 짓이지만. 꿈이라  

는 것은 실제로 일어 나지 않은 일. 하지만 어제 자신의 꿈에 나타났던 흥윤슬은 진짜였다. 가짜의 꿈속에 진짜였던 흥윤슬.

흥윤슬이 그렇게도 감추고 싶어 하던 비일이. 강호수가 그리도 보호하려 던 비일이 바로 이것이었나.

겪어보았음에도 선뜻 믿기지 않는 일이기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불가농 한 일이기에……윤슬이 어떤 0ㅏ음으로 숨겨야 했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기 도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모론 척하지 않고 자신의 악몽에 나타난 것은 어 째서였을까.

-# 쉬어요.

악몽 속에서 둘었던 윤슬의 목소리가 귓가를 맹돌았다.

태준은 주섬주섬 침대에서 내려와 윤슬의 머리말에 쪼그리고 암아조심 스럽게 윤슬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느라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유난히 도 까맣다. 그린 것처럼 보기 좋게 휘어진 눈썹 역시 까맣고. 요즘 애들이 라면 한 번쯤 했울 염색이나 파마도 해본 적이 없을 것 같았다. 묘하게 단 정하고, 묘하게 고지식한 외모였다. 심지어 정수리의 가마와 귀밑머리조 차 단정해 보였다. 그런 윤슬의 외모에서 유난히 튀고 시선을 잡아끄는 것 이 있다면 바로 입술이었다. 도통한 입술. 위아래 비슷한 비을로 도통한 입 술을 보고 있노라면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과일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 다.

시선에도 형체가 있는 것일까. 태준의 시선이 따갑다는 듯곤히 자던 윤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단정히 다을려 있던 입술이 귀엽게 오물거 리더니. 이내 감겨있던 눈꺼풀이 살짝 위로 둘어울려졌다.

"……으음. ……아, 씨발."

작게 신음을 홀리며 몸을 펴던 윤슬이 바로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 는 태준의 얼굴울 발견하고 작게 욕설을 내별었다. 가까운 거리 탓에 그것 울 알아들은 태준이 눈썹을 씰룩거 렸다.

"왜 일어나서 내 얼굴울 보자마자 욕합니까?"

."권태준 씨야말로 왜 그러고 있어요? 사람 놀라게. 공포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아니, 내 얼굴이 어떻게 공포영화입 니까? 멜로나 로맨스면 을라도. 

"됐고. 저리 비켜요."

태준을 일어내며 윤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서 잔 탓에 허리가 아픈지 윤슬은 공공거 리며 작은 주먹으로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욕까지 할 수 있느나고 태준이 재차 물었다. 분명 정상적인 반용이 아니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것까 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놀람에 감탄이 섞여야지, 결단코 욕설이 섞 이는 것은 옳지 못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코앞에 사람 얼굴이 둥둥 떠 있으면 다 놀라요.”

"그 놀라움마저도 승화시키는 얼굴 아닙니까?"

"그게 지금 자기 입으로 할 소리예요?"

"아니, 이렇게 생긴 걸 어떻게 합니까? 내 얼굴이든 남의 얼굴이든 정직 하고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뿐인데.”

머리를 짚고 가볍게 한숨울 내쉰 윤슬이 싱크대 쪽으로 다가가 물을 꺼 냈다. 그 모습을 보던 태준이 저도 갈증을 느끼고 다가가자, 윤슬이 홈칫 몸울 굳히며 다가오는 태준울 경계했다.

"또 뭡니까?"

"왜요? 뭐가요? 왜 갑자기 다가와요?"

"나도 물 좀 마십시다. 왜 나를 치한 보듯이 봅니까?'

윤슬이 슬쩍슬쩍 손을 움직여 싱크대 문을 부여잡았다. 표 나지 않게 움 직인다고 하는 모양이겠지만, 주시하고 있는 태준의 눈에 확연히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거기 뭐가 있는데 저러지. 잠시 윤슬을 보던 태준이 성큼 걸 음을 내딛자. 윤슬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래 그럽니까? 거기 꿀이라도 숨겨 놨습니까?”

아니거든요."

"뭡니까. 좀 봅시다.”

"됐고, 멀찍이 떨어져서 을이나마셔요.”

"이거 먼저 봐야겠습니다.”

윤슬의 팔울 잡아 힘주어 끌어당긴 태준이 싱크대 문울 열었다. 안쪽에 는 냄비와 프라이팬 같은 커다란 조리기구들이 있을 뿐, 특별한 것은 없었 다. 그런데 왜 목숨풀처럼 여길 붙잡고 있었지. 고개를 갸옷거리며 싱크대 문울 닫으려던 태준의 시야에 문 안쪽으로 걸려있는 식칼이 보였다.

"……뭡니까?"

"뭐, 뭐가요."

"난 후환읕 남겨두지 않는 걸 선호해서 말입니다. 내가 들어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습니 다만."

칼을 꺼내 잡은 태준의 눈매가매서워졌다. 방금 전까지 장난스럽게 웃

던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자, 그것을 알아차린 윤슬의 얼굴 역시 하알게 질 "8" I 869 

"선점! 무기 선점이요. 권태준 씨가 또 칼 들고 설칠 것 같아서. 먼저 치 워두려고 했는데. 왜 환자가 일찍 일어나고 난리예요? 뭐, 칼 들면 어찌겠 다고. 나 이제 겁 안 나거든요."

큰소리를 내며 짜증울 부리는 목소리 안에 열은 공포가 섞여 있는 것을 느낀 태준이 쓴웃음울 내별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월요?*

"내가 일어나서 칼부림이라도 할 풀 알았습니까?"

"……그냥 흑시나 하는 마욤에 예방을 하려던 거였죠. 목 권태준씨가그 런 사랑이라는 건 아니 니까, 오해는 플고 칼 좀 내려놓죠."

"그런데 왜 자꾸 뒤로 물러 납니까?”

"이 것도 혹시 나 하는 마음에 예방하려는 거죠."

아무튼 말이나 못하면. 겁먹었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또박또박 말대꾸는 잘도 한다. 삐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삼킨 태준은 식칼을 제자리에 걸어두 고 싱크대 문을 닫았다. 등 뒤로 작게 한숨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이리와요. 물 마십시다ㅣ

"먼저 마셔요."

가까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윤슬의 모습에 고개튤 내저은 태준이 을을 한 컵 따라 윤슬에게 내일었다. 멀찍이 떨어져 서 있던 윤슬이 주충주충 다가 와을컵을 받았다.

"어젯밤에 내가 잘 때……."

조용히 입을 열어 말을 끼내자. 꼴깍꼴깍 을을 마시던 윤슬의 눈이 동그 닿게 뜨였다. 까만 눈동자 너머에 잠재하고 있는 본능적인 공포를 확인한 태준은 자연스럽게 말울 돌렸다.

"왜 그런 얼굴을 합니까."

"……내, 내가 월요.”

"엄청 못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나 잘 때 이상한 짓이라도 했습 니까? 어찐지 옷이 벗겨져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그제야 윤슬의 얼굴에서 공포가 희미해졌다. 굳어있던 턱 끝이 느슨하 게 풀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나 같은 남자가 눈 감고 날 잡아잡수 하고 있는데 그걸 참으면 윤슬 씨도 사내가 아니긴 합니다.”

"뭐라는 거야, 진짜. 그 참신한 개소리는 원데요?"

"부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내가 진지하게 말하는데, 권태준 씨는 시간 내서 강 선생님한테 상담 좀 받으세요."

"왜요. 내 얼굴이 객관적으로 못생겼습니까? 나 혼자 잘났다고 착각하 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잘생겼다는 말을 진지하게 본인 입으 로 하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고요."

"왜 없습니까. 여기 있는데. 그럼 객관적으로 내가 잘생겼다는 겁니까가

태준의 을음에 윤슬이 아아악. 하고 괴성을 질렀다. 그런 윤슬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태준은 날뛰고 있는 윤슬이 제법 귀엽다는 생각울 했 다. 마치 평소에는 얌전하던 개가 약 먹고 날뛰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괜찮습니다. 윤슬 씨는 귀여우니까그

"지금 뭘 위로하는 거예요?"

"너무 자괴감 갖지 말아요. 진심으로 윤슬 씨는 귀엽습니다."

묘한 분위기이 기도 하고. 검은 눈과 붉고 도통한 입술을 보면 새치름하 "8" ." 869 

고 유혹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보고 있노라면 단정하고 정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입을 열어 대화를 하다보면 날뛰는 강아지를 보는 기분도 들고.

"윤슬 씨, 나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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