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이래 봬도 끈기 있다는 소리 많이 들었거 든요. 게다가 나는 이렇게 윤슬 씨와 밥 먹고 애기하는 것도즐겁습니다.
그래서 윤슬 씨가 계속 버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전히 익기 전에 빠르게 고기를 뒤집으며 권태준이 생긋 옷었다.
“정말 감추고 싶은 거라면 끝까지 버터요. 이건 시간싸움입니다.”
넌지시 충고를 건네는 권태준의 얼굴은 이미 승자의 얼굴이었다. 그 얼 굴을 마주 보며 윤슬은 권태준과 단단히 얽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권태준욷 앞에 두고 속 좋게 집어 먹었던 고기 때문에 체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다.
윤슬은 집에 을 때 사온 소화제를 먹고도 여전히 더부룩한 배를 손으로 문질렀다. 손끝이 차가운 게 체한 탓인지 혈액순환이 안 되는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체했을 때는 바늘로 손을 따야 한다는 권태준의 제안울 윤슬은 단호히 거절했다. 권태준이 바늘을 들고 있으면 그 바늘조차 흥기가 될 것 같았다.
떼 재미있었습니다. 2권도 빌려 가도 됩니까?”
“그냥 한꺼번에 가져가시죠. 아니. 그냥 드릴 테니 가지세요.”
“아님니다. 한 권씩 빌려 가야 윤슬 씨를 더 자주 보죠.”
그걸 피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고 저런 소리를 지낄이는 걸 거다.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술프게도 술술 권태준의 대화 패턴에 익숙해지 고 있는 윤슬이 그런 권태준을 훌겨보았다.
그래도 이제 칼 맞을 위험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 윤슬은 반쯤 포기 상태 였다.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기엔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탓도 컸다. 침 대에 비스등하게 누운 윤슬은 제집처럼 돌아다니다 책장 앞에 서서 책울 구경하는 권태준울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윤슬 씨는 참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까? 작가들은 다 이렇게 상상력이 풍부합니까?’
“그냥 쥐어짜내는 거죠.”
가져온 1권을 책장에 꽂아두고. 2권을 뽑은 권태준이 윤슬의 근처로 다가와 바닥에 주저암았다. 양복을 입고 방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암는 모양새가 참 화보 같다는 생각울 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짓도 안 하고 있으면 예술인데. 윤슬은 낮게 탄식했다.
“아침에 빌려 갔으면서, 언제 읽었어요.”
“회사에서 읽었습니다.” 회사에서 농맹이를 피웠노라 말하는 태도가 자못 당당했다.
“차원 이동한 마법사가 현대 운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혜매는 게 옷기더군요. 윤슬 씨는 유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판단이 잘못되었던 모양입니다.”
“그 판단 잘못된 건 아닐걸요. 제가 유머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으니까요. 책 속의 캐릭터는 제가 만들어내는 허구고. 어떻게 쓰든 허용되는 판타지니까…… 저의 유쾌함을 재는 척도가 될 수는 없죠.”
“그래도 아주 유쾌하고 흥미롭습니다. 판타지 소설은 처옴 읽어봤는데, 아주 재미있더군요. 이제 첫 권인데.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 금해졌습니다.”
그 흥미가 끝까지 안 가서 문제이지. 저 글을 완결 내고 욕도 많이 먹었다. 용두사망에 막장이라고.
“주인공은 어떻게 됩니까?”
“……잘 살아요.”
“주인공이니까잘살겠죠. 어떻게 잘 살지 기대됩니다.”
처음엔 현대 생활에 적용하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살던 마법사가 성형 외과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법으로 얼굴을 고쳐주면서 돈을 벌고, 야매 시술로 신고가 되어서 감방에 갔다가 탈출을 해서 현상금이 걸린 탈주자가 되어 도망을 치면서 환생한 죽은 연인을 만나게 되고 또 이리저리 사람들과 얽히는 이야기. 작넌에 썼던 판타지 소설의 내용울 떠울리던 윤슬은 확실히 날려썼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왜 옷습니까? 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 니까?”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며 윤슬이 권태준울 흰 눈으로 쳐다보았다.
“판타지도 장르 문학 중의 하나이기는 한데. 그 판타지 안에서도 종류가 여러 개로 나눠어요. 그중에 현대 판타지라는 게 있거든요. 환생울 한다거 나. 회귀를 한다거나, 영혼이 다론 사람의 몸에 돌어간다거나. 이런 식의 소재가 많이 쓰였는데, 요즘에는 배경이 현대고 주인공이 그냥 일반 사람 인데, 그 주인공이 미지의 힘을 갖게 되는 게 많더라고요.”
뜬금없이 꺼낸 이야기를 권태준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윤슬은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책을 읽기만 해도 그걸 다 기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거나. 절대 음감을 얻거나, 미래를 본다거나.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거나. 시간을 엄추거
나 되돌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거나, 타인의 감정을 색으로 볼 수 있다거나, 타인의 생각을 듣게 되는 것 같은 능력.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능력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현대 판타지라는 겁니까?”
“네. 그런데 그런 판타지 소설의 끝은 결국 주인공이 그 힘을 이용해 성공하게 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힘울 숨기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키 게 되었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울 악마나 괴울처럼 보지 않고, 이 해해주고 좋아하고 선망하거든요. 그래서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웃었어요.”
평범합과 거리가 먼 누군가를 알게 되었을 때, 배척하지 않고이해하는 사랑들이 과연 있긴 한 것일까.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그 이야기가 판타 지인 것은 아닐까.
“평범하기만 하면, 다론 사람과 다를 것 없이 똑같으면, 모든사람들이 다 좋아해즙니까?”
“……네?”
윤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권태준이 특 하고 질문을 내밸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
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해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 다. 그 사람을 믿는 사람도 있고 불신하는 사람 도 있죠. 누군가에게 이상한 힘이 있든 없든. 어차피 사람 사는 것은똑같 다는 듯입니다.”
권태준의 말을 멍하게 듣고 있던 윤슬이 낮게 웃음을 홀렸다.
“지금 방금, 강 선생님과 비슷했어요.”
기분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양복쟁이와 비교당하는 건 제 를래스에 대한 모욕입니다.”
를래스에 대한 모욕이래. 은근히 웃긴 면도 있는 것 같다며 윤슬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게요. 참 다론데……방금 전에 말을 하던 권태준 씨가 이상하게 강 선생님하고 겹쳐 보이더라고요. 친구라서 그런가.”
권태준은 모르고 지절인 소리겠지만. 그의 말이 마치 윤슬울 위로해주 는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 감정에 호소하거나 설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저 제 생각을 말한다는 것처럼 무뚝뚝하고 심드렁한 어조여서 더 진 실하게 전해져 왔다.
거에 대한 모욕은 그쯤 하기로 하고. 이 책 서점에서 팝니까?”
들고 있는 책을 앞뒤로 살피며 권태준이 물었다. 아직 계약 기간이니까 그렇겠지. 윤슬이 고개를 끄덕이자 권태준이 장난스러운 시선으로 윤슬울 바라보았다.
“나중에 책 사 오면 사인도 해줍니까? 작가 친필 사인?”
“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독자 태준 씨에게.”
“사랑하는이 왜 돌어가요?”
“서비스 아닙니까. 사랑하는 팬 누구에게. 사랑하는 독자 누구에게. 이런멘트.”
아니거든요.”
권태준에게서 책을 뺏으려고 손을 뻗는 윤슬의 손목을 권태준이 낚아챘다.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윤슬 씨 모습도 아주 좋습니다.”
뒤라는 거야. 인상올 찌푸리던 윤슬이 코앞에 있는 권태준의 얼굴을 보고 놀라며 고개를 둘렸다. 황급히 손울 털고 물러난 윤슬이 잡혀있던 손목 을 감쌌다. 왠지 모르게 체한 속이 묵쿡 아파 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윤슬 씨가 스물일곱이라고 했죠? 대학교 졸업한 뒤에 글쓰 기 시작한 겁니까? 바로 촐간도 하고 대단하네요.”
이젠 나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윤슬은 권태준에게서 을러나 침대에 암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딱히 글을 쓰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남들 취업준비 할 시간에 놀면서 끄적거 렸던 글을 어찌다 춥판하게 되고. 이걸로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 어서 쓰고는 있는데 딱히 재능은 없나보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생각울 합니까. 내가 보기에 윤슬 씨는 재능이 있는데. 아주 재 미있다니까요.”
“글 쓰겠다고 했울 때 아버지가 걱정하셨어요. 글쟁이는 배고픈 직업이 라고. 근데 정말 돈이 안되더라고요. 많이 버는 작가들은 많이 번다고 하 는데, 그거야 일부고.”
손아귀의 움푹한 부분을 꾹꾹 누르며 윤슬이 한탄처럼 말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권태준이 피식 웃으며 윤슬의 옆으로 다가와 암았다. 한쪽으로 책을 내려놓고 윤슬의 손을 끌어와 윤슬이 누르고 있던 부분을 꾹꾹 늘러
“아, 아파요.”
“아파야 효과가 있다고 돌었습니다.”
커다란 손이 힘주어 꾹꾹 누를 때마다 윤슬이 몸을 비톨며 고통을 호소 했다. 체한 것보다 권태준 때문에 아픈 것이 더 컸다. 윤슬이 버둥거리며 겨우 권태준에게서 손을 빼내고 뒤로 몸울 을리자. 권태준이 윤슬의 몸울 덥석 잡아 돌려 앉게 만들었다.
“뭐 하는 거예요.”
“누가 들으면 성추행이라도 당하는 플 알겠습니다.”
지금 댁이 추행을 하고 있잖아. 옴을 비틀며 벗어나려는 윤슬의 어깨를 누르고.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윤슬의 등을 쓸어내렸다. 쏙쓱. 반북해서 쓸 어내리는 행동에 등으로 온기가 생겨났다.
“처음부터 다 가진 사랑 없고, 처음부터 잘되는 사람 없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가다 보면 돈 엄청 벌게 해주는 글이 나을지도 모롭니다.”
“지금그거, 담당자님이 했던 말과 비슷했어요.”
“그래도 처음부터 많이 벌고 싶은 게 사람 욕심 이겠지 만요.”
윤슬이 작게 웃으며 대꾸하자. 권태준이 허리를 펴고 암으라며 허리 근처를 특특 두드렸다. 허리를 곧게 펴고 자세를 잡자 권태준이 다시 등울 쓸 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체했을 때 효과 있는 거 맞아요.”
“의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민간요법이라는 게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종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윤슬이 고개를 끄덕 이자, 권태준은 작게 웃으며 윤슬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겸사경사 스킨십도 하면서 가까워지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님니까.”
이 사람이. 윤슬이 고개를 둘려 권태준을 힐곳 노려보았다.
“가만히 있어요. 한십 분쯤 이러고 있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둘아간 윤슬의 머리를 밀어 앞을 보게 한 권태준이 느릿느릿 윤슬의 등을 쏠었다. 벽을 바라보고 암은 상태로.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을 느끼며 윤
술이 잠시 눈울 감았다. 왠지 모르게 어렸을 때, 체했을 때마다 등을 쓸어 주던 아버지의 손길과도 비슷했다.
“많이 해보신 것 같아요.”
“뭘 말입니까?”
때렇게 누가 체했을 때. 등 쓸어주는 거요.”
윤슬의 말에 권태준이 아아, 하고 긍정했다.
“여동생이 옴이 약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식사를 하면 곧잘 체해서 가공 이렇게 등을 쓸어줬습니다.”
권태준이 말하는 여동생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지만. 윤슬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권태준의 말을 듣고 있다는 정도로만 반응했다.
“윤슬 씨도 몸이 약한가 봅니다.”
“그건 아니고요.”
소화기관이 안 좋아서 체한 게 아니라, 권태준 얼굴 마주하고 밥 먹기 불편해서 체한 건데. 권태준은 저 좋을 대로 생각올 했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제는 그 오류를 고쳐주고 싶은 의욕도 들지 않았다.
혹시 이걸 노렸나. 사람울 지치게 만몰어서 포기하고 그냥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오게 만드는 거. 그렇다면 정말 치일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못생긴 게 몽만 약해서 빌빌거리는 게 참 싫었습니다.”
체할 때마다 등을 쓸어주었다면서 못생겼다느니 싫었다느니. 그건 너무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냐고 말할 뻔했다. 웃음과 함께 말을 삼킨 윤슬이 다 론 말울 내별었다.
“여동생울 많이 예뻐하셨나봐요.”
“예뻐하긴 쥘 예뻐합니까. 돗생겼다니까. 만날 울기나 하고. 울어서 더 못생겨 보였습니다. 그 말을 하면 또 삐쳐서 밥울 안 먹기도 했다니까요.”
강호수의 기억 속의 소녀는 참 예었는데. 동생이라고 예쁘다는 말은 하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친남매도 아닐 텐데 사이가어지간히 좋은 것처럼 보여, 윤슬은 자연스레 자신의 형인 재영을 떠을렸다.
“그러고 보니 윤슬 씨와 비슷합니 다.”
“뭐가요?”
“못생기고 울보인 것.”
언제 우는 모습이나 봐놓고 저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윤슬이 강하게 부정했다.
“건드리면 울 것 같은 얼굴울 하지 않습니까. 그 녀석도 항상 그런 얼굴 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싫은 것도 있었어요.”
“아무른 전 울보도 아니고, 못생긴 것도 아니에요.”
“스스로 잘생 겼다고 생각합니까?”
그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본인 입으로 본인 얼굴이 잘났다고 말을 하는 건 윤슬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면구스러워서도 불가농한 일 일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농한 사람은 권태준이 유일하지 않을까, 윤슬 은 생각했다.
“강 선생님이 저 매력적이라고 했어요.”
“둘이 사귑니까?”
강호수를 끌고 오자 권태준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다.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요.”
“양다리 걸치면 곤란합니다. 난 윤슬 씨 놓고 호수랑 싸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니거든요
옴을 비를어 권태준의 손에서 벗어나며 윤슬이 항의하듯 대꾸했다. 내내 등을 쓸어주던 손이 떨어지고, 윤슬이 두어 뼘 뒤로 을러나 권태준울 바 라보았다.
“속은 좀 편해진 것 같습니까?”
미간울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윤슬을 향해 권태준이 웃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더부룩하던 느껑이 조금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윤슬 이 상체를 쭉 펴고 배를 문질렀다.
“꽤 괜찮아진 것 같아요.”
“옛날부터 내 손이 약손이었습니다.”
“손 줘봐요.”
“왜요?”
“얼론 줘봐요.” 이유는 말해주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말에 윤슬이 잠시 고민하다 손을 내일었다. 그 손울 잡고 조물조물 만지던 권태준이 손울 떼어냈다.
“아까는 차갑더니 온기가 조금 둘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바로 뭐 먹지는 말고, 누워서 한숨 자도록 해요.”
그걸 알아보려고 손을 달라고 했던 거였구나. 윤슬은 제 손울 만지작거리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첫인상이 최악이라 계속 꺼려지는 면이 있기 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의외로 세심하고 자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면은 확실히 강호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권태준 씨는……
“삭막하게 권태준이 뭡니까. 성 떼고 부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그거야 댁이 일방적으로 했던 말이고.
“권태준 씨는……나이가 몇이에요?”
“이제 나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나 봅니다.”
사람의 착각은 끝이 없고, 개소리를 반복하지. 윤슬이 됐어요. 하고 손
“별로 안 듣고 싶네요.”
“호수랑 동갑입니다.”
“선생님 나이를 알 정도로, 선생님하고 친하지 않거든요.”
“그렇습니까? 의외네요. 무척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착각이십니다.”
불통하게 내별은 말에 권태준이 손으로 턱을 긁적였다.
“서론넷입니다.”
“서론넷에 영업 이사면 엄청 촐세하셨네요.”
“네, 노력했습니다. 이 짓 저 짓 가리지 않고 개처럼 시키는 일을 하니 이 자리까지 을라오게 되더군요.”
권태준이 말하는 '이짓 저짓’이 대체 어떤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뉘앙스 상으로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곱 살 차이면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이 있죠.”
“금시초운인데요.”
“그렇습니까? 난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이상하군요.” 많이 들어봤다는 권태준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애초에 남자끼리 궁합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고.
“말장난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데. 권태준 씨랑 애기하다보면 결국 말장 난이 되어버리네요.”
“다시 불러요. 거리감느껴집니다.”
현태준 씨.”
“성 빼고.”
“권태준 씨..”
윤슬의 말에 권태준의 미간 위로 주름이 졌다. 그런데도 윤슬은 고집스럽게 권태준의 이름을 부르며 그룯 쳐다보았다.
“나는……권태준씨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거예요.”
권태준이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윤슬은 알고 있었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건 분명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윤슬은 권태준에게 확답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 확신하고 있는 지금의 권태준과 확신을 확인시켜주었을 때의 권태준이 또 다를 것임을 윤슬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윤슬은 외면하기로 했다.
“끝까지 모른 척하려고요. 권태준 씨도 포기하지 못하고, 나도 포기할 수 없다면…… 누군가 하나가 포기할 때까지 버터봐야죠. 그래서 권태준 씨가 말하는 것처럼 연기라도 해보려고요.”
“그게 윤슬 씨 선택입니까?”
“대답해봐요. 첫날 그랬던 것처럼, 또 나한테 폭력을 쓸 생각울하고 있어요?”
윤슬의 을음에 권태준은 손으로 눈썹 끝을 문지르며 조금 곤란한 얼굴을 했다.
“아님니다. 그건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슬 씨에게 폭력 을 휘두르거나 힘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
우발적인 사고까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권태준이 저렇게 말을 한다면 윤슬은 그것을 믿어보기로 했다. 살짝 떨리는 손끝울 말아쥐고. 윤슬은 스스로에게 다짐올 하는 것처럼 권태준욷 향해 말했다.
“해봐요, 우리. 그시간 싸움.”
누가 마지막까지 버털지. 누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될지.
며칠 밤울 새우고 쓰러져 잠든 것이 아니라면, 보통의 수면 시간은 일고 여덟 시간으로 일정한 편이었다. 단지 잠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들 쭉날쭉하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충분히 잤다는 것을 느끼며 눈을 뜬 윤슬은 몸을 쭉 폈다가 이완시키고, 뼉뼉한 눈울 감았다 뜨며 천장울 을려다보았다. 옆으로 옴을 틀어 아이처럼 자세를 구부리며 게으름을 부리던 윤슬의 시야 안으로 누군가의 머리통 이 보였다. 놀라 헛숨울 둘이켠 윤슬이 조용히 그 머리통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일어 가려진 상대의 얼굴을 살폈다. 눈울 감고 고요히 숨울 내쉬고 있는 것은 권태준이었다.
침대 아래 바닥에 암아, 손울 침대 위로 걸치고 그 위에 머리를 기대 잠든 권태준은 살짝 선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이 남자가 대체 왜 여기서 이런 자세로 자고 있는 걸까. 윤슬은 삑삑한 머리를 굴리며 생각했다.
시선을 느꼈는지 예민한 남자가 눈을 떴다. 눈이 마주치자 권태준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을렸다.
“왜 그렇게 자고 있어요?”
“침대에서 같이 누워 잘 걸 그랬습니까? 난 아직 그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소극적이었나 봅니다.”
“자고 일어나서 듣는 헛소리가 참 신선하네요.”
면박울 주면서도 권태준이 침대 위로 울라을까봐 윤슬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암았다. 선잠을 자고 일어난 권태준의 옷차림은 조금 흐트러진 상태였다. 첫 대면과 다론 묘하게 느슨한 모습을 하나둘씩 볼 때마다 윤슬 의 경계심이 저도 모르게 조금씩 누그러졌다. 어찌면 그냥 포기하게 된 것 일 수도 있고.
“왜 그러고자고 있었어요?”
“점심 같이 먹으려고 왔는데 윤슬 씨가 자고 있었습니다. 깨우고 싶지 않 아서 기다리다 잠든 모양입 니다.”
권태준의 앞에서 무방비로 잠돌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윤슬이 머쑥한 기분에 손으로 뺨을 문질 렀다.
“몇 시에 잤습니까? 나 때문에 일어난 겁니까?”
“아뇨. 다섯 시 넘어서 잔 것 같으니까……슬슬 일어날 시간이었어요.” 시간울 확인하니 한 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기지개를 쭉 켜고 다리를 침 대 밖으로 내려 걸터암는 모양새를 취하자. 바닥에 암아 있던 권태준이 자 리에서 일어섰다. 훌쩍 높아진 권태준의 얼굴울 윤슬이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윤슬 씨는 자고 일어났울 때 멍한 게 참 귀엽습니다.”
“사랑은 자고 일어나면 다 멍해요.”
“그 와중에 따박따박 대꾸하는 것도 귀엽습니다.”
정말 귀엽게 보이는 건지, 아니면 귀엽게 봐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건지. 언제는 못생겼다고 말했던 주제에, 스을일곱 살의 사내에게 귀엽다는 말을 잘도 내별는 권태준울 휼겨보며 윤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사 안갔어요?”
“윤슬씨와 점심 먹으러 잠깐 나온 겁니다.”
물 한잔울 따라 마시던 윤슬의 시야에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종이가방이 보였다. 이런 것을 여기에 둔 기억이 없는데. 정체를 알수 없는 종이가 방을 보고 있자, 권태준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밥 사 왔는데. 먹을 수 있겠습니까?’
입이 조금 깔깔하긴 하지만, 먹을 수 있을 때 먹는 게 이득이라고생각 한 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먹지 않으면 아마귀찮아서 저녁때까지 굶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권태준과 같이 먹는 것은 영 절끄러운데, 도시락 만 받고 권태준은 가라고 한다면……역시 갈 것 같지는 않았다.
“식사는 어디서 합니까?’
“상 펼게요.”
한쪽에 접어 놓아두었던 작은 상을 가져와 펼치고 물티슈로 닦았다. 그 것을 보고 있던 권태준이 웃으며 종이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상 위에 을 렸다.
“왜 웃어요?”
“호수랑 비슷해서요. 그 녀석도 게을러서 울티슈를 애용합니다. 상 닦을 때도, 바닥 닦을 때도, 청소할 때도.”
“선생님은 깔끔하신 것 같았는데.”
“엄청 지저분한 농입니다. 청소도 제대로 안 하죠. 같이 살때 티격태격 많이 했습니다. 그 녀석 뒤치다끼리 엄청 힘들었거든요.”
이건 종 예상외였다. 어지르는 건 권태준이고. 치우는 건 강호수가 할 것 같았는데. 윤슬의 생각울 알아차린 것처럼 권태준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반대라고 생각했습니까?”
“아뇨, 뭐 그냥……”
도시락을 끌어와 뚜껑을 열며 윤슬이 애매하게 대꾸했다.
“도시락이 엄청 대단해 보이네요.”
“자취하면 반찬 이것저것 못 먹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정식 도시락으로 사 왔습니다. 괜찮아 보입니까?”
말 그대로 엄청난 도시락이었다. 설러드에 전복도 있고, 닭조림도 있고. 튀김도 있고, 기본 반찬도 네 가지에 국까지 작은 통에 담겨 있었다. 도시 락 상자도 엄청 커서. 도시락 두 개를 올리자 상이 오히려 좁을 정도였다.
“이건……”
“그건 장어입니다. 이건 전북이고요.”
“먹을게요.”
식당에 가서 사 먹는 것보다 더 비쌀 것 같은 도시락 덕분에 옆에 있는 권태준의 존재가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입에 을고 있던 젓가락으 로 조심스럽게 밥울 헤집었다.
“윤슬 씨, 뭐합니까?’
권태준은 깨작거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데도. 지저분하지 않았다. 저렇 게 먹는 게 복스럽다는 거였나. 윤슬이 밥을 떠 입에 넣는데, 권태준이 입 에 있는 것을 삼키고 물었다.
“콩 안 먹습니까.”
권태준은 윤슬의 밥을 보고 있었다. 하필이면 잡곡밥이라 밥 사이사이 에 박혀있던 콩이 윤슬의 것가락질에 의해 밥 한쪽에 일렬로 풀을 서 있었 다. 콩을 한쪽으로 빼놓은 것을 본 권태준이 작게 웃었다.
콩 싫어해요.”
“편식할 것 같았습니다.”
“콩만 안 먹는 것뿐이에요.”
“왠지 두부도 안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것도 콩으로 만든 거잖아요.”
“식감이 싫어서 안 먹는 것들도 있을 텐데요.”
귀신인가. 윤슬이 불통한 속내를 감추며 말을 돌렸다.
“선생님이랑 같이 사는 거예요?”
“쭉 같이 살다가 작넌에 서로 독립했습니다. 그 녀석도 결혼하려면 술술 연애도 해야 하고, 그럼 여자도 집에 데려오고 할 텐데 내가 있으면 불편하 지 않겠습니까.”
“그건 권태준 씨 경험담 아니에요?”
“그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저도 혼자 살고 있으니 윤슬 씨는 언계든 와 도 좋습니다.”
“내가 거길 왜가요?”
“와서 자고 갈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안 생겨서 은근히 묘한 뉘앙스의 농담도 한다며 윤슬이 권태준 을 훌겨보았다. 실제로는 전혀 관계없는 사이이고. 속내를 감춘 사이인데. 멀찡한 남자 둘이 이런 농담을 하고 있는 상황이 우스웠다. 이거야말로 연 극이라고 증명하는 꼴이 아닌가.
콩만 빼면 완벽한 도시락이었다. 파는 음식돌에 비해 간도 적당해서 집 밥울 먹는 기분도 돌었다.
“콩은 그래도 싫은 모양입 니 다.”
절반쯤 먹은 밥 옆으로 골라낸 콩을 가리키며 권태준이 말했다.
“전 죄짓고 감옥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콩밥 안 먹어서.”
“교도소에서도 콩밥은 안 즙니다. 그건 60넌대 이야기지, 요즘은 쌀밥 먹습니다.”
“그걸 권태준 씨가 어떻게 알아요?”
“글쎄요, 어떻게 알 것 같습니까.”
느물거리며 웃는 얼굴을 보면서도 윤슬은 답하지 돗했다. 권태준의 표정 이 왠지 조금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기고 일어나서 안 먹는다고 할 풀 알았는데, 잘 먹어서 다행입니다.”
“자고 일어나서 첫 끼를 늦게 먹는 건, 일부러 안 먹는 게 아니라 귀찮아 서 그래요. 가족이랑 살았을 때는 누가 밥 차려주면 자다 일어나서도 먹었
어요. 챙겨 먹기 귀참으니까 남이 차려줄 때 먹으려고.”
솔직한 윤슬의 고백에 권태준이 웃음울 홀렸다.
“입이 깔깔하면 다음부터 죽이나 수프 같은 걸 사 오는 게 좋겠습니까?”
“괜찮아요. 저 자다 일어나서 삼겹살도 먹어요.”
일반찬 몇 가지를 제외하고 깨끗하게 비운 도시락통 위에 젓가락을 을려 놓으며 윤슬은 부론 배를 두드렸다. 모처 럼 만에 정말 밥 같은 밥으로 포식 을 한 기분이었다. 후아. 하고 작게 숨을 내별자, 권태준이 차곡차곡 빈 도 시락통울 정리해 종이가방에 담았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숨 종 돌리고 가겠습니 다.”
“회사요?
게, 다시 들어가봐야죠.”
“점심시간 이미 지난 것 같은데, 참느긋하시네요.”
시간을 확인하니 2시가 넘어있었다. 윤슬의 지적에 권태준은 웃기만 했 다.
매번 궁금해지는 권태준의 정체를 윤슬은 오늘도 모론 척했다. 왠지 알 게 되면 목숨이 위험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화나소설에서 보던 일 이 현실이 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무서워서 벌벌 떨 정도는 아니었지 만, 그렇다고 들쑤셔 위험을 만둘고 싶온 생각도 없었다.
을을 끓여 커피 두 잔을 탔다. 윤슬이 내미는 머그를 받아 장시 향을 맡 던 권태준이 한 모금을 머금었다.
“외출은 잘 안 합니까.”
“그런 편이죠.”
“귀찮아서?”
“네. 귀찮아서.”
귀찮은 마음도 컸지만.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기껏 하 는 외#은 필요한 식자재와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가는 것, 아버지를 보러 집에 가는 것, 그리고 강호수의 병원에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근 일 넌의 일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였다. 그마저도 급하지 않 으면 인터넷 쇼핑으로 대체하고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니, 마트에 가는 일 도 점점 졸어들고 있었다.
“주말에 데이트 어떻습니까.”
“……네?”
윤슬은 잘못 둘었다는 것처럼 권태준을 향해 되을었다. 떼이트요. 날씨도좋은데, 더 더워지기 전에 데이트 종 합시다.”
데이트라. 윤슬은 권태준의 입에서 나온 말을 주워 제 입 속에서 굴려보 았다. 어색하고 낯선 단어였다. 특히나 권태준을 상대로 어울리지 않는 단 어였고. 권태준과 흉윤슬의 사이에서 나을 말은 더더욱 아닌 단어였다.
“왜요? 집이 좋습니까?”
장소의 운제가 아닌데. 권태준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어찌면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고-
“데이트는 막힌 곳에서 하는 걸 좋아합니까? 뭐. 역사는 비밀스럽게 이 뤄지긴 합니다만”
역사가여기서 왜나와요?”
“하롯맘에 만리장성도 쌓는 게 연애 아님니까.”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윤슬이 질겁한 표정을 지으며 권태준을 바라보았다. 권태준과 저 사이에 만리장성이 나을 말인가.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에 윤슬이 표정울 굳혔다.
“윤슬 씨는 연기가 종 더 필요하겠습니다. 이 정도 말은 농담처럼 휼릴 수 있는 가면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권태준의 지적에 윤슬이 입술을 깨을었다.
“정말 연애하는 사이라도, 대똥 만리장성 얘기를 꺼내지는않거든요. 남 녀 사이에서도 그런 얘기 꺼내면 뺨 맞아요. 손도 안 잡고, 뽀뽀도 안했는 데, 만리장성 얘기부터 꺼내면 누가좋아해요? 연애를글로배웠어요?”
“손잡고 뽀뽀하자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겁니까?”
“아니거든요.”
윤슬의 불통한 대꾸에 권태준은 소리 없이 웃기만했다. 들고 있던 머그 를 내려놓은 권태준이 윤슬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보기만 하자, 권태준이 내민 손을 작게 까닥거렸다.
“손부터 잡읍시다.”
“커피 마시고 얼른 가기나 하시죠. 점심시간 끝나신 것 같은데.”
이러다 손잡으면 또보하자는 말이 나을 것 같아두렵기도 했다. 권태준 의 머릿속이 분명 정상이 아닐 거라는확신이 들었다. 권태준이 이렇게까 지 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자신울 혼들려는 수작일까. 남자와 연애하 는 흥내를 내면서까지 진실을 아는 것이 권태준에게 그리 중요한 것일까.
“정말 게이 아니에요?”
“글쎄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이성애자가 되 고, 맞다고 하면 동성애자가 되는 것인지. 윤슬 씨는 본인이 이성애자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본인이 이성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고, 동성읕 사랑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인해봤습니까? 경험해보지 도 않은 것에 대해 확신할 수 있습니까?”
권태준의 말을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가. 하는 생각이 돌었다. 권태준의 말발에 휩쓸리는 이성을 간신이 잡아챈 윤슬이 헛웃음을 내밸으며 말 을 엘어 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아요?”
“동성애자가똥입니까? 너무하군요. 동성애자들이 슬퍼할 겁니다.”
“이상한 쪽으로 몰고 가지 마시죠. 그걸 목 확인해봐야 알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거든요.”
윤슬의 대꾸에 권태준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윤슬 씨. 글을 쓰는 입장에서 윤슬 씨는 사고의 폭울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윤슬 씨가 쓰는 글처럼. 생각도 자유롭게 펼쳐 봐요. 스스로를 단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권태준이 손을 내일어 윤슬의 손을 잡아부드럽게 만지작거렸다. 커다란 손으로 감싸인 윤슬의 손이 유독 작고 하닿게 보였다. 그 손을 을끄러 미 내려다보고 있자, 한 뼘 정도 가까이 다가온 권태준이 작은 목소리로 속 삭이듯 물었다.
“이제 뽀보해볼까요?”
요즘 들어 자신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을 꼽으라면, 윤슬은 주저 없이 권태준을 꼽을 거였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자신을 가장 신경 쓰이게 만 들던 권태준이 이제는 자신을 가장 피곤하게 하고 있었다.
정말 연애를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윤슬이 버티지 못할 만큼 궁지에 몰려는 것인지는 을라도 권태준의 태도는 연극이라고 말하기엔 과한 부분이 많았다.
외출하기 싫어하는 윤슬울 이끌고 집 밖으로 나간 권태준이 향한 곳은 극장이었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주말, 거기에 더해 그 사람들을 한공간에 일어 넣어 빡빡한 상영관. 그곳에서 윤슬은 권태준과 나란히 앉아 멜로 영 화를 보았다.
“영화는 재미있었습니까.”
“네, 뭐.”
반쯤은 졸면서 봤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생각하며 윤슬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안보고자는 것같던데…….”
그걸 봤나. 머쓱해진 윤슬이 손으로 뺨을 문지르며 빨대를 입에 물었다.
“빨리 마셔요. 집에 가게.”
극장은 나왔지만. 극장 근처의 카페도 사람이 많았다. 주말인 탓에 카페 내부는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번화가인 탓도 크지. 윤슬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며 눈을 내리깔았다. 근처에서 느껴지는 사람들, 시끄러운 음악과 그것보다 더 큰 사람돌의 목소리. 커피와 음식물의 오묘 한 냄새. 그 모든 것들이 윤슬울 피곤하게 만둘었다.
“역시 막힌 곳으로 가고 싶습니까.”
“아뇨. 데이트 충분히 했으니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말이었는데요. 오놀 데이트 끝.”
“집에 가스 켜놓고 왔습니까? 왜 벌써 집에 가려고 합니까? 난 아직 끝이라는 말 안 했습니다.”
“뭐 더 남았어요?”
“당연히……”
뭔가 말을 하려던 권태준이 주머 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진동으로 해두었던 권태준의 휴대폰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전화 종 받고 오겠습니다.”
전화 받고 그냥 안 와도 되는데. 경사경사 화장실에 가려는 것인지, 멀어지는 권태준의 등을 보며 윤슬이 빨대를 잘근거 렸다.
이 정도 어울려줬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시간 싸움울 해보자고 말을 꺼냈던 주제에, 윤슬은 벌써 지친 기분이 들었다. 턱을 괴고 창밖으로 혼잡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사람 참 많네. 주 말이라고 온갖 사람돌이 다 기어 나온 모양이었다. 평일에 공부를 하든, 일 울 하든 했으면 주말에는 집에서 쉬고 싶지 않나. 뭐 할 게 있다고 주말까지 사람으로 혼잡한 곳에 나온 것일까. 이유를 알 수 없다며 고개를 젓던 윤슬은 정작 본인도 이 혼잡함에 한 손 거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작게 혀 를 갔다.
“커피는 다 마셨습니까?”
떼.”
“그럼 갑시다.”
통화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권태준에게서 희미한 담배 냄새 가전해졌다.
“집에요 V
“거 집 어지간히도 좋아합니다. 영화 봤고, 커피도 마셨고, 이제 밥 먹으 러 가야 하지 않습니까. 윤슬 씨는 데이트도 안 해본 모양입니다.”
데이트에 정해진 수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 닌데. 기어코 밥까지 먹어야겠다는 걸까. 윤슬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오래 버티는 것만의 운제가 아니었나 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피곤하 게 만드는 것도 더하겠다는 뜻이겠지. 이런다고 먼저 손들고 물러나겠다 고 할까봐.
묘한 승부욕울 느끼며 윤슬은 권태준의 뒤를 따랐다.
빌딩 안에 중국 궁궐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직원들은 치 파오를 입고 있었고, 인테리어는 과하지 않았지만 단순명료하게 의미를 전 달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윤슬이 잠시 걸욤울 멈추고 주변을 훌자, 권태준 이 안 따라오고 뭐 하나는 시 선으로 윤슬울 둘아보았다.
기장면 먹자고 하지 않았어요?”
분명 그렇게 둘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다른 거 먹어도됩니다. 깜봉 먹고 싶습니까.”
윤슬에게 답하는 권태준의 얼굴이 옷고 있었다. 왠지 놀리고 있다는 느
낌이 들어 윤슬이 표족하게 권태준울 훑겨보았다.
안내해주는 직원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룸 형식으로 되어 있는 모양인 데, 문조차 고풍스러운 나무 창살로 이루어진 미닫이문이었다. 열어주는 문을 통해 룸 안으로 들어선 윤슬이 선객울 발견하고 권태준울 돌아보았 다.
“놀라움의 연속이네요.”
윤슬은 롭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강호수와 제 뒤를 따라 들어온 권태준울 번갈아 쳐다보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혀 놀랍지 않은목소리입니다.”
띠“ 자리의 의도가 뭔가 싶어서요.”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암아. 윤슬이 강호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에 강호수가 손울 내저었다.
“저도 윤슬 씨가 오는 줄은 몰랐습니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연락했더 니. 평소 먹던 곳이 아니라 이런 곳을 말해서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권태준. 윤슬씨도 오는 거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고 부른 것일까. 왜? 권태준이 무엇을 노리고?
“나도 삼겹살집이 편하기는 한데, 윤슬 씨는 막힌 곳을 좋아해서. 그렇 지 않습니까, 윤슬 씨.”
아니거든.
“나랑 둘이서만 식사하기를 바랐습니까? 내가 윤슬 씨 마음도 모르고 호 수를 불렀나 봅니 다.”
“내가 바란 건 집에 가는 거였거든요.”
“그래요, 다음에는 집에서 둘이 먹읍시다. 그러니 아쉽더라도 이번에는 눈치 없는 강호수를 이해하고 넘어가죠.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같이 먹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권태준의 말을 대체 어디서부터 수정해줘야 할지 암담해 윤솔은 입을 다 물고 침묵했다. 저런 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 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깨달은 덕분이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먹고 싶은 것으로 시켜요. 오늘은 내가 내겠습니다.”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권태준이 자리를 피하듯 룸을 나섰다. 조용히 닫 히는 문울 보고, 강호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윤슬 씨.”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이제 밥 먹을 차례라는 거죠.”
“뭡니까, 그게. 마치 데이트하는 사람들처럼.”
윤슬의 대꾸에 웃던 강호수가 구겨지는 윤슬의 표정을 확인하고 웃음울 지웠다.
“그래도……태준이와 잘 어울려 다니는 모양입니다. 태준이 녀석이야 본인이 하는 일을 시시를를 말하고 다니는 농이 아니니 그러려니 했지만, 윤슬 씨도 요큼 연락이 없어서 별다론 일이 없나 보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묻 위의 백조가우아하고 고요하게 보이기 위해, 물 밑에서 치열하게 발 을 움직인다는 말이 있죠.”
네?”
“강 선생님이 별일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상황 이면에서 제가 치열하
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었어요.”
강호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친구가 정도 이상의 또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강호수였으니, 윤슬의 말을 이해하지 옷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였다. 삼신 넌 넘게 알고 지내오면서, 강호수는 진정 권태준의 정신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문독 공원에 사냥개를 풀어놓고 우리 개는 착해요. 안 을어 요, 라고 말하는 개 주인이 떠을랐다. 그래, 강호수는 권태준에게 위협을 느낀 적이 없겠지.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테고. 심리상담가는 강호수가 아닌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둘었다.
1별다론 말없이, 그냥 이렇게 친구처럼 지내기로 한 겁니까?”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다면 권태준의 입에서 데이트라는 단어가 나오지 도 않았겠지. 애초에 권태준과 자신이 친구처럼 지낸다는 것이 성립될 수 나 있을까. 사자가 앞발로 토끼를 툭툭 건드리며 가지고 놀고 있는 꼴인데.
“버티고 있는 거예요. 연극울 하면서. 누가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잘하는 지. 누가 오래 버티는지. 권태준 씨는 알고 싶은 것이 있고, 나는 말하고 싶 지 않은 것이 있으니까요. 결국 이기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갖겠죠.”
“종 더 자세히 설명해풀 의향은 없습니까.”
“권태준 씨는 그때의 일에 확신을 갖고 있지만. 그걸 증명해졸 건 내 말 분이죠. 결국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권태준 씨의 추측밖에 될 수 없어 요. 그러니 권태준 씨는 내 입에서 답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나는끝까지 그걸 입으로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나는 권태준 씨에게 호감이 있 었다는 것으로 일고 나가고, 권태준 씨는 그걸 이용해서 최대한 나를 귀찮 고 번거롭게 만둘고. 결국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포기하게 되는 거죠.”
윤슬의 말에 강호수는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윤슬 씨도 태준이와 얽히고 싶 지 않잖아요. 그냥 말해버리면…….”
“비밀이에요. 그건 내 비밀이라고요. 내 치부고. 내 공포고, 내 악몽이나 마찬가지예요. 선생님은 귀찮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치부를 아무에게나 보 일 수 있어요?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애초에 일을 벌인 선생 님을 나는 아직도 원망하고 있으니까.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이 선 생님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런 웃기지도 않 은 .”1
쏘아붙이듯 빠르게 말을 내별던 윤슬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밸으며 239.”869
1나는 지금 내 성격까지 죽이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요. 일을 벌인 당사자로서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데요? 그냥 손 놓고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하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권태준 씨가 선생님 친구라는 이유로 무슨 일이야 있겠어, 라는 안일한 생 각울 가지고 그냥 모론 척하고 계시는 거 아니냐고요.”
“윤슬 씨. 저는…….”
“난 아무리 봐도 선생님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권태준 씨는 매일 매시간 이렇게 나를 귀찮고 번거롭고 피곤하게 만둘고 있는데, 정작 선생님은 아무런 피해도 없으니 지금 이 사태에 대해 크게 신 경 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계신 거겠죠.”
“윤슬 씨.”
“왜요, 이런 말 듣는 게 억울해요? 그럼 권태준 좀 내 눈앞에서 치워줘 요. 제발 종 부탁할게요. 규칙을 어긴 건 선생님인데, 왜 피해는 내가 받아 야 하는데요. 난 그게 진짜 이해가 안 되고 억울하거든요.”
윤슬의 냉랭한 말에 강호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좋게 얘기하면 그냥 호구가 된다는 거, 맞는 말 같다. 그러니 강호수가 저렇게 속 편한 얼굴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거겠지.
표정을 굳히고 싸늘한 얼굴로 앉아 있자, 그제야 강호수는 분위기를 파 악하고 입을 다물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은 잔똑 있는데. 이쪽 눈치를 살 피며 쉽사리 입을 때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괴롭힘당하는 기분이 들어요. 권태준 씨가 나룰 말려 죽이려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차라리 더한 악몽울 꾸게 만둘어서 권태준의 머리를 아예 돌아버리게 만들까, 악몽에 시달려서 자살이라도 하게 만둘까, 그런 생각까지 해요.”
“윤슬 씨 ! 아무리 그래도 그건……-"
“어차피 가능하지도 않아요. 권태준 씨의 악몽을 제어할 수가 없어요. 그 래서 나는 그 사람이 더 두려워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젓자. 강호수가 무거운 한숨을 홀려보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 마론세수를 하며 강호수는 어깨를 축 놀어뜨렸다.
왜? 나는 윤슬 씨 편입니다. 평소 지껄이던 그 말이라도 씨불여 보지. 윤슬은 동그란 테이불 위 하얀 식탁보를 노려보며 속으로 코옷음을 삼켰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합께 미닫이문이 열렸다. 담배를 피우겠다고 나간 권태준 이 돌아왔나 생각했는데, 권태준이 아닌 직원이었다.
“아직 메뉴 안 정했어요.”
“권 이사님께서 주운하셨습니다.”
2“1.”869
뒤늦게 메뉴판울 펼치며 말하는데. 들고 온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 으며 직원이 답해주었다. 이럴 거면 메뉴는 왜 고르라고했어. 어느 것 하 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윤슬이 짜증이 담긴 손길로 메뉴판을 덮었다.
몇 가지 반찬이 깔리고 개인 접시가 놓였다. 조용히 문울 열고 나서는 직 원과 교체하듯 권태준이 룸으로 돌어섰다.
“아직 메뉴를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적당한코스로주문을 넣었습 니다. 괜찮습니까?”
떼.”
“분위기가 조금 험악해진 것 같은데. 호수랑 싸웠습니까.”
“글씨!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강 선생님께 여쭤보세요. 우리 싸웠어요?”
.”……내가 윤슬 씨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싸우기는 뭘 싸워? 이상한 소 리 하면서 이간질하지 마라.”
윤슬의 을음에 강호수는 베테랑처럼 표정을 바꾸어 웃으며 권태준을 타 박했다. 그런 강호수와 윤슬울 권태준이 훌듯이 느리게 쳐다보았다.
“업무적인 일을 볼 때 가공 오는 곳입니다. 격식 차리는 곳은좋아하지 않는데. 음식이 깔끔해서 나브지는 않습니다. 윤슬 씨 입에도 맞았으면 좋 겠네요.”
당장 골 보기 싫은 인간을 둘이나 앞에 두고 밥을 먹어야하니, 체하지 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냉채를 시작으로 코스 요리가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것가락을 둘어 옹식을 맛보면서도 윤슬의 불통한 0ㅏ음은 플어지지 않았다. 권태준을 따라 와 식사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하나같이 가게들의 응식이 쓸데없이 맛 있었다.
“왜 그런 표정입니까. 호수랑 헤어지는 게 아쉽습니까.”
“아니거든요.”
자신들과 헤어져 혼자 거리를 걸어 사라지는 강호수의 뒷모습을 바라보 고 있자, 운전석에 을라 시동을 걸던 권태준이 을었다.
“술이라도 같이 마시고 헤어질 걸 그랬습니까? 역시 데이트 묘미는 술이 겠죠. 지금이라도 술 마시고 대리를 부르는 게 좋겠습니까.”
“사양할게요.”
로 영화에, 커피에. 식사까지 끝냈으니 이제 홀가분하게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왠지 모르게 숙제를 끝낸 기분도 둘었다.
“강 선생님이 뭔가 할 말이 있어서 보자고 했던 것 같은데요.”
“듣지 않아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식사도 같이할 생각이었겠죠. 강호수 속내는 다 압니다.”
“가폭 같네요.”
“네, 가폭이죠.”
권태준은 평소와 달리 조금 느슨한 얼굴로 웃었다. 저도 모르게 플어진 얼굴이었다. 이게 가폭울 생각할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모습이겠지. 오히 려 가족 이야기를 할 때 긴장하고 꾸미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게 이상한 걸 거다. 윤슬은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형의 생각을 힘겹게 지우며 창밖으 로시선을 돌렸다.
“오늘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