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8)

“이제 어찌실 거예요? 그 사랑에게 뒤늦게 계약서라도 들이일 거예요?

「정말, 정말 싫다고 했습니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처음 강호수에게 전화를 걸 때만 해도 화가 났었는데. 이제는 이 상황이 제법 유쾌하기도 했다. 그래, 이건 자신 을 속이고 멋대로 일을 꾸민 강호수를 향한 작은 복수심과도 같은 기분이 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주 단호하게 싫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멋대 로 판단해서 일을 벌인 선생님이 이제 수습할 차례예요.”

「꿈이라고 생각하겠죠. 그게……그게 어떤 기회였는지도 모르고.」

“그 사랑이 내 얼굴을 봤어요. 가면을 벗겼어요.” 

“내 얼굴울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혹시라도 길에서, 선생님 병원에서 마 주친다면 날 분명 알아보겠죠. 그렇게 인상적인 꿈을 꿨으니까요. 날 괴물 처럼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선생님은 확신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이 그저 꿈으로 치부하고 아무렇지 않아 할 거라고?”

그 대단한 예상과 확신을 이번에도 내세울 수 있겠냐며 윤슬은 비웃듯 이 강호수를 향해 을었다.

「내가……멋대로 일을 꾸민 건 미안합니다. 윤슬 씨가 마욤 상한 것도 이 해해요.」

“이제는 선생님의 이해한다는 말도 진정성이 없게 느껴지네요.”

강호수의 침묵이 무겁게 깔렸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강호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윤슬 씨의 능력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윤슬 씨의 능력 을 알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아니.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것이죠. 그 녀석도 윤슬 씨가 꿈에 나왔다는 것만으로. 윤슬 씨가 자기 꿈을 찾아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낮에 만 

났던 윤슬 씨가 기억에 남아서, 인상 깊어서, 그래서 꿈에 나왔나보다고 생 각할 가능성이 크겠죠. 짝사랑을 하는 소넌이 꿈에서 그 상대를 보는 것처 럼 말입니다.」

일반적이라면 말이지. 다독이는 것처럼 부드럽게 울리는 강호수의 목소 리를 들으며 윤슬이 코웃음울 삼켰다. 본인의 낭패로움과 침통함을 빠르 게 감추고, 강호수는 정신과 의사답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군가 꿈에 나왔울 때, 그 사람이 나오는 꿈을 자신이 꾸었다고 생각하 지 그 사람이 자신의 꿈에 찾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리 말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런 생각을 쉽게 하지는 않아요. 사람은 상대에게 뭔 가 깊은 호감울 느꼈거나, 최악의 만남이었을 때 그 여파로 꿈울 꾸죠. 그 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날 현실에서 특별한 문제는 없었으니. 아마도 윤슬 씨에게 저도 모르게 호감을 느꼈나보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 사람 게이예요?”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이걸 위로라고 하고 있는 건지. 변 명이라고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윤슬이 혀를 찼다.

「그래도 윤슬씨는 매력적이니, 또 압니까? 첫눈에 반할 수도 있지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친구도 게이로 만들어버리는 노력이 가상하 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농담은 반갑지 않네요.”

마음이 조금 진정되어 여유로워졌는지 농담을 지껄이는 강호수를 향해 윤슬이 표폭하게 대꾸했다. 잠시 입을 다을고 있던 강호수가 윤슬 씨, 하 고 불렀다.

「악몽에 대해 제가 울으면 안 되는 거겠죠.」

“네. 말 안 할 거예요. 그러니까 묻지 마세요. 그리고 이번 일은 선생님 이 수습하세요. 그 사람이 무슨 질문을 하든, 선생님이 알아서 수습하세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 녀석도 나름 이성적인 인간이니, 이쪽 으로는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아닌데.

그 남자가 이성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적인 것에 더해 감각적이기까지 해서 문제였다. 꿈에서 본 남자는 한낱 개꿈으로 넘겨버 릴 만큼 허술해 보이지 않았다.

꿈은 현실을 반영한다. 더불어 꿈은 현실보다 더욱 본능적이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에 맞물려 본모습을 내비치지 않는사람이라 도, 꿈에서는 거칠 것이 없기에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깝기 마련이다.

남자는 다론 의뢰인들과 달랐다. 악몽에 시달리며 피하고 싶어하기보 다. 그것을 관조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의 악몽을 모두 꿰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윤슬의 침입을 먼저 알아차렸다. 거기에 더해 윤슬의 행동을 제압하기까지 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건 불가농한 일인데.

윤슬은 강호수가 말에 쉽사리 동의할 수가 없었지 만, 묘한 껍껍함을 느 끼면서도 어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밝는 대로 전화를 해서 약속울 잡아보겠습니다. 뭔가 껑새가 이상 하면 제가 원천 차단울 하죠. 윤슬 씨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강호수의 말에 윤슬은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가 갓 지나 있었다. 어지간히도 화가 났었는지, 이 시간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강호수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강호수의 낮게 잠긴 목소리 가 자다 일어난 목소리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윤슬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미안합니다. 내가 욕심이 앞섰다는 것을 인정해요. 윤슬 씨에게 정말 미 안합니다.」

“멋대로 기대하고 또 혼자 실망하는 게 얼마나 웃기고 좆같은 일인지 알 고 있는데, 내가 그러고 있네요. 이번 일로 선생님이 내게 다시 그 현실을 보게 만돌어주셨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말은하지 말아요. 윤슬씨. 이번 일은분명 내 잘못이지만, 그렇다 고 윤슬 씨에게 상처 주고 해를 끼칠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윤슬 씨의 편입니다. 윤슬 씨의 케이스가 특이해서 계속 지켜보고 싶은 마음 과 별개로, 사람 대 사람으로 나는 윤슬 씨를 오래 보고 싶습니다. 이건 아 무런 계산도 없는, 내 순수한 호감이에요.」

강호수의 말에 윤슬은 잠시 입을 다을고, 그가 내별은 말을 되새겼다. 순 수한 호감. 아직까지 제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남아있었나. 믿을 수 없다고, 이제 더는 믿을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강호수 를 믿고 싶어졌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강호수가 정말 자신에게 순수 한 호감울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 호감 뒤에서 자신을 이용하려는 계산 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윤슬은 계 능력을 알면서도 제게 변함없 이 웃어주는 강호수를 쉽사리 내칠 수 없었다.

그럼 상황을 보고, 나중에 연락 주세요.”

「정말 미안합니다, 윤슬 씨.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있어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야지.

윤슬은 대충 통화를 마무리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남자의 악몽에서 벗어나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여전히 남자가 제 손목을 움켜쥐고 있는 기 분이 들었다. 

03. 정체불명의 남자

잠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한 시야는 흐릿했다. 환영에 휩싸인 것처럼 뿌3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기분까지도 돌었다.

윤슬은 멍하니 천장을 울려다보았다.

하늘이 검은색에서 시린 하늘색으로 바뀌며 달이 희미해지고 해가 뚤 준 비를 하려는 시간. 그 을빛 하늘을 을려다보다 겨우 잠든 기억이 났다. 흐 릿한 시야는 아마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탓이겠지. 일어날 타이밍이 아니 었음에도 잠에서 깨어난 것은 현관문울 광광,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비척비척 현관문으로 다가가며 윤슬은 까칠해진 뺨을 문질렀다. 대학교 다닐 때에는 곧잘 맘을 새우곤 했는데, 해가 바뀔수록 밤 새우는 것도 어렵고 잠울 못 자면 몸이 축나는 것을 느꼈다. 이십 대 다르 고 삼십 대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서론이 넘으면 이 몸뚱이가 얼마나 더 쏠모없어질지 모르겠다며 윤슬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세요.”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터라 목이 칼칼했다. 홈, 하고 헛기침을  

하며 문밖을 향해 을었지만, 문 두드리는 소리만 이어질 분 대답은 들려오

지 않았다.

“누구세요?”

“우유대금 받으러 왔습니다.”

이 아침 시간에 우윳값을 받으러 울 건 뭐람. 보통 사람들은 출근할 시간 인데.

윤슬은 미간울 찌푸리며 투덜거리면서도 문을 열었다. 그러다 문득우

유 대금을 이제까지 쭉 자동이체로 냈던 기억이 떠욷랐다. 도어록이 플리

고 문이 열리는 것이 술로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그짧은시간동안수많

은 생각이 떠을랐다.

집을 잘못 찾아왔울 수도 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상대가 정확히 이 집

을 지목해 찾아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 대금을 받으러 온 사람은

아니다. 거짓말을 했다. 정체를 숨기고 싶은 사람이다. 더불어 윤슬이 알

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문 너머의 사람은 정당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이 집에 들어오려고 하고 있다.

운통으로 단정하게 각이 잡힌 양복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윤슬이 문손잡

이를 잡아당겼다. 쿵. 둔탁한 소리를 내며 운이 울렸다. 간발의 차이로 문

너머의 사람이 문틈으로 구두 끝을 일어 넣었다. 윤슬이 이를 악물고 문을

잡아당겼지 만. 그런 노력과는 다르게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869

.”도와줘요. 강도. 강도야.”

.”손잡이를 잡고 놀어지며 윤슬이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급하게 문 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윤슬의 입을 막고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 혼돌리는 시야로 서서히 닫혀 자동으로 잠기는 문이 보였다.

“조용히 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윤슬을 벽으로 일친 사람이 어디서 끼냈는지 날이 빛나는 회칼을 윤슬 의 목 언저리에 가져다 대며 정중하게 말했다. 날을 세우지는 않았지 만, 목 덜미에 닿는 섬뜩한 감촉에 윤슬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지 말아요. 날을 갈아뒤서 움직이다 베이기라도 하면 곤란합니다. 난 정황만으로 사람을 죽이 거 나 다치게 하는 취 미는 없습니 다.”

윤슬은 제 목덜미에 닿아있는 칼에서 눈앞의 사람으로 시선을 돌렸다. 본 적 있는 남자였다. 아니. 기억에도 남아있는 남자였다. 어제 악몽 속에 서 만났던 남자였고, 밤새 윤슬이 잠들지 못하고 고민하게 만든 원흥이기 도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말을 하기엔 옥 근처에 있는 칼이 날을 빛내고 있었다.

이 남자가 대체 왜. 아니. 어떻게 여길 찾아왔단 말인가.

남자를 바라보는 윤슬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들렸다. 그것 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생긋 입 끝을 을려 옷었다.

“나 본적 있지 않습니까?”

남자의 을음에 윤슬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목덜미에 칼이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꺼풀울 깜박였다.

“어제, 나한테 무슨 짓을 했습니까.”

알고 온 걸까. 자신이 남자의 악몽에 들어갔던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일까. 보통은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유달리 사고의 유연성이 뛰어나 윤슬이 남자의 악몽에 들어갔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찾아왔거나, 아니면 그저 이상하다는 생각만으로 충분히 칼을 들고 쫓아을 정도로 미친농이거 나. 남 자가 어느 쪽일지, 윤슬은 차마 짐작할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할수 있게. 잘 설명하는 쪽이 좋을 겁니다.”

“으, 으읍, 욥욥.”

남자의 손으로 입이 늘려 신음과 같은 항의룹 별어내자, 남자가 아차차  

하고 눈 끝울 찜긋거 렸다.

“미안합니다. 입을 막고 있다는 걸 깜박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 입을 막 았던 손을 떼어낼 건데. 소리를 지른다거 나 반항을 하면 우리가 대화를 시 작해보기도 전에 끝날 겁니다. 알겠습니까?”

무엇이 끝난다는 것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볼을 가볍 게 탁탁 두드리는 칼날에 윤슬이 재차 눈을 공뼉였다. 위협을 하듯 윤슬의 뺨을 가볍게 때리던 칼날이 다시 목덜미에 들이밀어지고, 입을 막아누르 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윤슬이 조심스럽게 숨을 둘이마셨다 내별었 다.

“홍윤슬 씨. 맞습니까?”

왠지 모르게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윤슬은 차분히 네, 하고 대답 했다.

“좋습니다, 홍윤슬 씨. 난 어제 윤슬 씨가 나한테 어떤 짓을 했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설명을들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이른 시간 에 찾아왔고요. 자다일어났습니까? 머리가부스스하네요. 잠을깨운 거라 면 미안합니다.” 미친놈아, 목에 칼 들이 일고 사과하지 마.

목구멍까지 을라온 말을 늘러 참으며 윤슬이 조심스럽게 남자틀 을려다 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일단은 잡아때자고 생각한 윤슬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하자. 남자가 설 핏 미간을 찌푸렸다.

“나 알아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강 선생님 병원에서 봤잖아요. 어제 일이라서 기억해요.”

꿈에서 만난 윤슬의 얼굴을 남자가 알아봤다고 해도, 그것울 현실로 가 져와 이야기를 끼낼 정도로 미친놈은 아닐 거였다.

너 어제 내 꿈에 들어왔었지?

이따위 말을 누가 제정신으로 할 수 있울까. 그건 자신의 능력을부정하 는 것이었지 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정 당해도 좋다고 윤슬은 생각했다.

“기억 안 나요? 화장실에서, 그리고 강 선생님 상담실에서 봤잖아요.”

“나는 어제 낮의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흥윤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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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말에 마치 도둑질을 한 것 마냥 가승이 쿵쿵 뛰었지만, 윤슬은 모 론 척 고개를 내저었다.

“낮이 아니라면. 그럼 또 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한테 털어놓을 말 없습니까?”

“무슨소리인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윤슬의 턱을 잡아 양쪽으로 둘리며 윤슬의 얼굴울 자세히 훌었 다.

“내가 봤거든요. 윤슬 씨를. 내 꿈에서 .”

그걸 정말 말하는 미친놈이 있었다니. 이성적이라면서. 이성적인 인간 이니, 이쪽으로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 거라면서.

윤슬은 강호수를 원망했다. 자기 친구라고 좋게 포장을 한 모양이었다. 강호수를 향해 이를 갈면서도 윤슬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모 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 왜 저한테 오셔서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혹시…….”  

이런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윤슬은 눈울 꽉 감으며 생각나는 말을 그대로 내별었다.

"혹시 저한테 반하셨어요?”

턱을 움켜쥐고 있던 남자의 손에서 잠시 힘이 빠졌다. 남자의 복잡미묘 한 얼굴을 을려다보는 윤슬의 0.”음속에 강호수에 대한 원망이 차곡차곡 쌓 여갔다. 목에 칼이 닿아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경직되어있던 얼굴이 면구스러운 마옹에 벌겋게 달아울랐다.

“내가 헛것이 돌리는 모양입 니다.”

그렇잖아요. 어제 절 보고 반해서 꿈까지 꾸신 거 아니에요?”

미친 척 한 번 해보자. 하고 윤슬이 생각했다. 남자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인데, 그런 남자를 이성적으로 대해봤자 대화가 될 것 같지도 않고 남자 가 자신을 플어풀 것 같지도 않았다. 같이 미친 척을 한다면 남자가 물러 날 수도 있겠지. 윤슬은 자신의 능력이 알려지는 것보다, 차라리 미쳤다는 춰급올 받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는 누굴 보고 첫눈에 반할 만큼 감정적인 사람도 아니고, 게다가 첫눈에 반하기엔 그쪽 얼굴이……”  

“제 얼굴이 왜요.”

“솔직히 말해서 반할 만큼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빌어먹을 강호수. 현실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면, 아마도 호감을 느 졌나보다고 생각할 거라며.

이제는 강호수를 향해 욕설까지 내뱉었다. 새벽 녁 통화로 주고받았던 강호수의 말을 완전히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호수의 말처럼 별일 이야 없겠지 하고 생각하긴 했다. 강호수가 했던 말을 조금은 믿었다. 이렇 게 강호수의 말과 남자의 행동이 족폭 다를 것임을 알았더라면, 강호수를 믿지는 않았울 터였다.

“홍윤슬 씨.”

남자는 윤슬의 이름을 정중하게 불렀다. 옥소리를 낮게 깔고 부르기 전에 목에 대고 있는 칼이나 치워줬으면 좋으련만, 그 칼은 도통 움직일 생각 을 하지 않았다.

떼.”

“꿈에서의 일은 말할 생각이 없나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건 제 꿈이 아니잖아요.”

“그러게요. 내 꿈이었는데, 분명 윤슬 씨가 나왔단 말입니다. 거기에 더 뭔가를 말하려던 남자가 입을 다을었다. 남자가 삼킨 뒷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 만. 윤슬은 모론 척 침묵했다.

“그럼 꿈에 관한 것은 일단 일어 놓고, 화장실에서 내 손을 잡았던 이유 는 뭘니까?”

“그건 휴대폰을 받느라…….”

“내 손을 잡았죠. 휴대폰이 아니라.”

남자의 지적에 윤슬은 움찔, 어깨를 굳혔다.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던 칼 날에서 차가움이 전해졌다.

“조심해요. 난 대답을 듣기 전에. 윤슬 씨 목에 구멍을 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말투는 정중하기 그지없는데. 말뜻은 무엇보다 위협적이었다. 윤슬은 떨리는몸에 힘을주어 벽에 기대어 섰다.

“대답 안 합니까?”

“착각하신 거예요. 휴대폰 잡았어요. 휴대폰 집다가 실수로 손을 잡은 거 고요.”

.”윤슬 씨. 계속 그렇게 발뼘하고 거짓말을 하면, 이렇게 대화를 하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 정도는 시원하게 대답을 해 봐요.”

“그건……”

“그건?”

예가 그쪽한테 호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아니, 호감을 느꼈어요.”

악몽에 방문하기 위한 접촉이었다는 말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윤슬이 속내를 감추며 변명처럼 대꾸하자, 남자가흐음, 하고 의미 모를 소리를 훌 렸다. 남자가 뿜어낸 입김이 긴장으로 젖은 윤슬의 이마에 닿아 흘어졌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인정한다. 강호수의 말 중에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걸 자신의 변명거리로 써먹을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에서 내별은 말이었다. 윤슬이 살짝 시선을 들어 남 자를 울려다보자. 조용히 입을 다을고 윤슬을 내려다보던 남자가 이내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는 있겠네요. 워낙에 잘생긴 얼굴이다보니.”

네 ? 뭐라고요? 현재의 상황을 잊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뻔한 윤슬이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나룰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말입니까?”

“첫눈에 반했다는 건 아닌데요.”

윤슬의 대꾸에 남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제 대답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처 럼 보여 윤슬이 헛웃욤울 내벨었다.

'호감이 생겼다는 말과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다르잖아요. 무슨 자신감 이에요, 그건?”

“뭐, 알겠습니다. 호감이라고 칩시다. 그럼 윤슬 씨는 호감이 있는 나를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 기쁘겠군요.”

“그런 질문욘 칼이나 치우고 하시죠.”

처음엔 목 아래로 들이민 칼에 겁을 먹고 놀라 당황하기도 했는데, 몇 마디 이야기룹 나누다보니 정말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생각 이 들었다. 설사 악몽에 들어간 것을 남자가 확신하고 있다고 해도, 혼자만 의 확신으로 사람을 죽이겠다는 생각울 쉽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반쯤 제정신이 아닌 남자를 보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득 이 상황이 부당하고 짜증스럽게 느껴져 윤슬은 저도 모르게 배짱을 부리듯 물었다.

“가침부터 남의 집에 무단침입한 이유가 뒤예요? 죽일 거면 빨리 죽이고, 말할 게 있으면 예의를 지키시죠.”

“안 무섭습니까?”

칼의 옆면으로 목을 특특 치며 남자가 되을었다. 칼이 닿을 때마다 차가운 느껑에 옴이 절로 움찔거렸지만. 윤슬은 표정을 굳히며 남자를 똑바로 을려다보았다.

“무서운 것보다 짜증 나는 게 더 커서요.”

“의외로 그 점은 통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지금짜증 난 상태거든요.”

“그렇게 짜증이 난다면 죽이시든가. 얘기를 하고 싶으면 앉으시든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가주시는 게 좋겠는데요.”

“임팩트 있는 등장은 좋았는데, 이대로 가버리면 폼이 안 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일 반 시 민 붙잡고 목에 칼 들이 밀고 있는 지금 모습도 상당히 폼 안나.”

“그렇습니까?~

남자는 말장난을 주고받는 것처럼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놓아준다면 도망가지 않을 겁니까?”

“칼 휘두르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도망가진 않을게요.”

“알아서 나와 대화를 하는 것에 협조할 겁니까?”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심문하는 것도 아니고, 협조는 무슨. 애초에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신이 매우 협조적이라는 것을 남자가 알지 못한다는 점이 윤슬울 답답하게 했다.

“허무앵랑한 질문이 아니라면 대답해드리죠.”

“마음에 드는 자세입니다. 보통은 겁울 먹어서 대화하기가 어렵거든요. 

“칼 들이일면 다 겁울 먹어요. 반대의 입장이 안되어본모양이네요.”

“성격도 마음에 들고, 눈빛도 마음에 둘고, 얼굴도…… 얼굴은 보다보면 정드는 타입인 것 같고.”

야, 이 개새끼야.

남자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외모 평가를 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정도면 평균 이상의 준수 한 정도는 되지, 라고 생각하는 윤슬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둘기도 했고. 그 평가를 하는 인묻이 성격이야 어쨌든 외모만은 홈잡을 곳 없이 완벽하 다는 점에서 더욱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이제 천천히 대화를 나눠보겠습니까?”

남자는 목에서 칼을 물렸지만. 여전히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강도라고 오해하기 좋은 모습이었다. 아니, 강도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 는 상황이었다.

“그 전에 전화 한 통화만 하죠.”

“신고라도 할겁니까?”

“신고해도 돼요?”

“을론 안됩니다.”

그러 면서 뭘 을어 . 윤슬은 당장에라도 112에 전화를 걸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전화번호부에서 익숙한 이름을 찾아 남자에게 확인시키듯 보여주 었다.

쪽울 신고할 거라는 생각도 안 들거든요.”

“그런데 왜 호수에게 전화를 하려고 합니까?”

“적어도 내가 죽으면 내 휴대폰 통화 기록은 남울 거니까. 죽기 직전의 마지막 통화 상대가 강 선생님이라는 것으로 수사에는 도움이 되겠죠.”

“보기보다 치밀한 구석이 있군요.”

“칭찬 참 고맙네요. 아무론 전화해도 되죠? 어차피 칼 쓸 거 아니라면서 요. 그럼 운제 될 거 없잖아요.”

어절 거냐고 물으며 윤슬이 남자를 빤히 울려다보았다. 조금 곤란한 표 정으로 뺨을 긁적거리 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스피커폰으로 통화합시다.”

누가 들으면 저랑 통화를 하는 풀 알겠네. 하지만 그것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에 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0.”음이 바뀌기 전에, 윤슬은 강호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피하는 것인지. 화장실에 간 것인지. 강호수는 종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사랑이 왜 이러지. 혹시 남자에게 주소를 알려준 것이 강호수였나. 그래서 전화를 피하고 있는 것인가.

「여보세요.」

한참 만에야 강호수가 전화를 받았다. 그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듣는 순간 화가 치일기도 했다. 이 사태의 원흉이 바로 강호수라는 것을 상기했 던 탓이었다.

“선생님.”

「윤슬 씨, 미안합니다. 종 정신이 없었어요. 간방에 병원에 도둑이 둘었 던 모양입 니다. 경보는 울리지 않았는데. 제 상담실이 조금 난리가 났네요. 컴퓨터도 뒤진 것 같고.」

“선생님.”

「윤슬 씨, 무슨 일 있습니까? 아직도 걱정하는 겁니까? 미안합니다. 아 직 연락울 못 해봤어요. 없어진 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경찰에 신고부 터 하고. 그러고 나서 그 녀석에게……」

“선생님!1

정신이 없는 모양인지 강호수는 평소답지 않게 주절주절 제 이야기만을 늘어놓았다. 강호수의 입에서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윤슬이 빠르게 강호수의 말을 잘라냈다.

“선생님 친구분이 지금 저희 집에 와 계세요.”

「네?」

“선생님의 절친한 친구분이 내 집에 있다고요.”

「누가 거기 있다고요?」

강호수가 오늘따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윤슬이 한숨울 삼켰다. 아 니,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건 아닐까. 윤슬도 오늘따라 강호수에 대한 믿 욤이 희미했다.

“선생님의. 절친한, 친구요.”

빌어먹을 가폭 같은 댁의 친구가 내 집에 칼을 들고 난입했다는 말을 힘 겹게 삼킨 윤슬이 한 자 한 자 힘을 주어 대꾸했다.

「윤슬 씨, 태준이 옆에 있으면 바꾸세요.」

옆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같이 듣고 있기도 했다. 윤슬이 남자를 바라보 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손을 뻗어 통화 종료 버튼을 늘렸다. 하고 싶 은 말이 남아 있었는데. 윤슬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남자의 손에 들린 휴대 폰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그 도둑, 저희 집에 있는 것 같아요.

강호수도 지금쯤이면 짐작하지 않았을까. 강호수의 병원에 들었다는 도 둑, 아마도 남자가 윤슬의 정보를 알기 위해 한 짓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강호수가 돈을 주고 의사 면허를 딸 만큼 멍청한 게 아니라면. 강호수는 지 금 당장 윤슬의 주소를 찾아 달려와야 했다. 강호수가 와주기만 한다면. 적 어도 남자의 칼에 맞아 죽을지언정 시체 수습은 되겠지. 아니, 그것도 확신 할 수 없다. 강호수가 남자의 친구라는 이유로 시체 유기를 도울지도. 생각 할수록 암담해지는 머 리를 휘휘 혼돌며 윤슬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마지막 유언을 남긴 표정입니다.”

“제 주소는 선생님 병원에서 알아낸 건가요?”

공찍한 농담을 하는 남자를 향해 윤슬이 을었다. 적어도 죽고 나서 한 달 넘게 시체가 발견되지 않을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지. 강호수와 연 락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윤슬은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빤히 바라 보는 윤슬의 시선에 남자가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멋찍게 웃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때 상담실에서 호수가 윤슬 씨 이름을 불렀던 걸 겨우 기억해냈거든요. 새벽에 그 녀석 병원으로 가서 환자 차트를 뒤져 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서로 된 것이 없어서, 그 새벽에 컴퓨터 전문가까지 수소문해 데려왔다니까요. 왜나 애먹었습니다.”

그거 범죄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일까. 윤슬은 그것을 지적하려다, 아직까지 남자가 들고 있는 회칼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암아서 얘기하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암음시다.”

남의 집을 자신의 집처럼 편하게 구는 남자와 다르게 윤슬은 자신의 집 인데도 이 자리가 너무나 불편했다. 남자가 침대에 등울 기대고 바닥에 앉 는 것을 본 윤슬이 정반대 쪽 싱크대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헤나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기분 탓입니까?”

“아뇨, 현실이죠. 거리 없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이래서야 대화가 되겠습니까. 가까이 암아요.”

“이 거리가 딱 적당할 것 같은데요.”

윤슬은 남자가 옆에 내려놓은 회칼을 턱짓하며 절대 거리를 좁히지 않겠다는 의사클 표했다. 윤슬의 행동을 지켜보던 남자가 나직하게 웃음울 휼 렸다.

“직업이 칼 쓰는 일인가 보네요.”

“아 그러고 보니 소개를 안 했군요. 제가 누군지 많이 궁금하셨을 겁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고 그렇다더군요.”

너도 그레~? 하는 뉘앙스의 말에 윤슬은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긍정의 뜻이 아니라 어이가 없어 답을 내별지 못한 탓이었다. 남자가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울 내일었다. 방 중간에 놓고 멀어지는 남자를 확인하고 윤슬이 경계하며 명항을 집어왔다.

영업 이사 권태준

조폭이 명함도 있네, 하고 생각하던 윤슬이 명함을 확인하고 놀라 명함과 권태준울 번갈아 쳐다보았다.

“회사……다니시네요.”

그것도 영업 이사. 그런 분이 그렇게 칼 둘고 남의 집을 막 쳐들어오셔도 되는 것인지. 그룹은 유명하지만. 남자가 정말 그곳의 영업 이사 로 있는 게 확실한지 알 수 없어, 윤슬이 미심쩍은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떼, 거기 쓰여 있는 것처럼.”

“지금 출근하실 시간 아닌가요?”

“괜찮습니다. 딱 회사 일만 하는 위치는 아니라서, 시간 맞춰 출퇴근하지는 않습니다.”  

“회사 일만 하는 게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하시는지.”

“그건 대외비입니다.”

“아, 네. 대외비요.”

혹시 하신다는 회사 일이 아닌 일에 그 칼울 사용하는 일도 포함되는지. 그걸 묻고 싶었는데 대외비라니 물어도 대답을 해즐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업 이사가 회칼을 들고 다닐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데. 예전에 룹이 전국구 폭력조직이 만든 기업이라는 소문이 알음 알용 떠둘았는데, 그게 진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둘었다.

“꿈 때문에 오신 거라면, 저는 정말 아는 것도 없고 드릴 말씀도 없어요. 권태준 씨가. 권태준 씨라고 불러도 되겠죠?”

“딱딱하니까 성은 때고 부르시죠.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겠다. 정중하고 상냥한 권태준의 대꾸를 못 들은 척 무시하며 윤슬이 말을 이었다.

떼, 권태준 씨가 어떤 꿈을 꾸셨는지 모르겠지만요. 보통 어떤 사람의 꿈을 꾼다고 해서 이렇게 마구잡이로 그 사람의 집을 쳐들어오거나 하지

는 않거든요.”

예가 꾼 꿈은 특별했습니다. 윤슬 씨도 아실 텐데요.”

여기서 조금이라도 아는 척을 했다간 들통 날 것 같았다. 윤슬은 무표정 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윤슬 씨는 고집이세군요.”

“고집의 운제가 아니라, 권태준 씨가 억지를 부리는 상황이거든요. 권태준 씨의 꿈에 내가 나왔다고, 그걸 내 탓으로 둘리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본인의 능력을 본인의 입으로 부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찝찝했지만, 묵묵 쑤시는 가슴 한쪽을 누르며 윤슬이 시선을 돌렸다.

“계속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권태준 씨가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어 요.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솔직히 이런 방문은 당황스럽고 불쾌하네요.”

조금 강경하게 말을 해보았지만. 권태준은 그저 웃기만 했다. 불쾌하다 는 말에 권태준이 화를 낸다면 도망이라도 칠까 싶었는데, 별다론 행동을 취하지 않아 다행스러운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너무나 선선한 대꾸라 윤슬이 눈울 가놀게 뜨고 권태준울 바라보았다. 윤슬과 시선이 마주치자. 권태준이 눈욷 휘며 생긋옷었다.

“그럼 일단 꿈은 윤슬 씨와 관계없다고 해둡시다.”

해두는 게 아니라 관계가 없다고. 아니, 관계는 있지만 관계가 없다고 알 아먹으라고. 갑갑한 마옹에 권태준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 동이 들어 윤슬은 주먹을 꽉 쥐었다.

“꿈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관계없다고 해두겠다며. 끝난 거 아니었나. 윤슬이 불순한 시선으로 권태준을 홀겨보았다.

“나한테 반한 윤슬 씨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네?”

“내가 이렇게 윤슬 씨 집에 찾아와 윤슬 씨의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권태준의 말에는 수두목한 오류가 있었다. 첫째로 윤슬은 권태준에게 반  

한 것이 아니었고. 둘째로 권태준은 윤슬의 집을 정당하게 방문한 것이 아 니라 침입했다는 것이었다. 윤슬은 후우, 하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 었다.

“반한 게 아니라 호감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고요.”

흐음. 하고 못마땅한 신음을 내는 권태준을 무시하며 윤슬이 빠르게 말울 이었다.

“그 호감은 제가 혼자 알아서 정리하겠습니다.”

애초에 호감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강호수의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 뒤에는 의뢰인이라 생각했고, 그리고 지금은 다짜고짜 집에 쳐들어 와 칼을 듈이미는 무뢰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대에게 눈곱만큼이 라도 호감이 생긴다면 그게 미친 거였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나도 윤슬 씨에게 흥미가 생겨서요.”

윤슬은 뭔가 잘못 들은 기분에 눈을 곰뼉였다. 아니겠지, 잘못 들은 거겠지. 고개를 내저으며 권태준울 보았지만, 권태준의 얼굴은 진지하기만 했 다.

“우리 앞으로 잘해보죠.”

어휘력이 달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탓 에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모양이었다. 느리게 눈울 깜박거리던 윤슬이 뭘요? 하고 을었지 만, 권태준은 대답 없이 그저 잔잔히 옷기만 했다.

“윤슬 씨. 윤슬 씨 !'

황광광.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리며 문밖에서 윤슬을 부르는 강호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이 빠져 싱크대에 기대어 암아 있던 윤슬이 문 쪽으 로 고개를 돌렸다.

“강 선생님 오셨나보네요.”

“그런가 봅니다. 원래 이렇게 집에 오가는 사이입니까.”

“글쎄요. 무작정 찾아오는 건 친구라서 비슷한가본데, 권태준 씨가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원롱에 찾아오는 것은 가족이라고 해도 달갑지 않았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강호수의 방문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앞으로 잘해보기로 해놓고. 혹시 강호수와 양다리 걸칠 생각입 니까? 알다시피 친구 사이라서 그런 관계가 되면 불쾌할 것 같은데요.”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윤슬은 권태준의 말울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급하게 온 것인지 언제나 단정하게 넘기고 있 던 강호수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 새끼 아직도 있습니까?”

욕과 존대를 함께 내별으면서도 묘하게 정중했다. 권태준도 그랬지. 칼을 둘이일면서도 말투는 참 정중했다. 단순히 강호수의 직업적인 말투라 고 생각했는데, 친구끼리의 공통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 있는 윤슬울 강호수가 지 나쳐 집 안으로 들어 섰다.

“ 권태준. 너……”

“볼일 있어서 온 거면 자리를 비켜줘야 하나?”

“너 때문에 온 볼일이다, 너 때문에. 여기 어떻게 왔어? 네가 병원 컴퓨 

터 뒤진 거야? 윤슬 씨 주소 알아내려고는 “앉아. 헉헉거리지 말고.”

제집처럼 강호수에게 자리를 권하며 권태준은 느긋하게 말했다.

“권태준, 너 미쳤어? 야 이 새끼야. 저 칼은 뭐야?”

윤슬은 조용히 문울 닫고 들어와 강호수와 권태준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연장 가지고 다니는 거 하루 이틀인가. 새삼스럽게.”

회사원이라면서. 영업 이사라면서. 그런데 연장은 왜 가지고 다니는 건데. 권태준의 존재가 윤슬의 머릿속에서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 다.

“나가. 당장. 너 이러는 거 윤슬 씨한테 실례야.”

실례이기 전에 범죄라는 걸 말해주었으면 싶었다. 윤슬이 화를 내고 있는 강호수를. 그리고 평온하게 앉아 있는 권태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강호수의 말에 따라 이대로 나가줬으면 싶은데, 권태준은 도통 그렇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윤슬 씨, 호수도 왔는데 커피 같은 건 없습니까?” 떼 없어요.”

“냉정하고 단호한 성격이 참 매력적입니다.”

“냉수도 없습니까? 커피가 아니라도 윤슬 씨가 주는 거라면 다 좋습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기꺼이 양잿을을 퍼다주고 싶었다. 윤슬은 싱크대로 가 보란 둣이 컵 두 개에 수돗을울 받았다.

예속 여 기 응개고 앉아 있겠다고? 출근 안 해?”

“내가 언제 시간 맞취 출근했나. 그러는 넌?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 긴 왜 왔어?”

“누가 병원을 털어먹고 가서,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너 때문 에 여기까지 쫓아왔다. 제발 좀 가라. 나도 다시 병원 나가게.”

“나는 윤슬 씨와 할 애기가 남았으니까요 떼가 윤슬 씨랑 할 얘기는 원데?”

그런 거 절대 없습니다. 수듯묻이 담긴 컵을 권태준과 강호수의 앞에 내 려놓으며, 윤슬은 강호수를 향해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거 알아? 윤슬 씨가 나한테 반했다고 하더라고. 어제 처음 봤었는데.”

“호감이라고 했는데요.”

아까부터 계속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만큼은 고쳐주고 싶었다.

“나도 윤슬 씨에게 흥미가 생겨서. 잘 만나보자고 했지.

만나보자는 말도 처음 듣는 말입니다만. 이제껏 권태준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나웠던 모양이라고 윤슬은 생각했다. 권태준에게만 보이는 대화 상대가 있었던 것일까. 강호수는 정신과 상담의로 일을 하기 전에 권태준의 머릿속부터 고쳐놨어야 했다.

방바닥에 양반다리륟 하고 앉아 수돗물을 마시고 있는데도 권태준의 모습은 화보처럼 보였다. 마침 해가 뜨는 아침 시간이라 머리카락 위로 내려 앉는 햇살까지 조명처럼 보였다.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지적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외모이기는 한데. 그런 권태준의 옆에 놓인 회칼이 참 문제였다. 권태준의 알 수 없는 머릿속도 문제였고.

“일단 가. 네가 왜 여기 온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가서 나랑 얘기하자. 아침 안 먹었지? 밥도 먹으면서.” “윤슬 씨랑 할 애기를 왜 너랑하는데. 나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윤슬 씨가 설명해졸래요?”

권태준은 상냥하게 옷으며 윤슬에게 물었다. 저 권태준이라는 인간과 강호수라는 인간울 쌍으로 잡아 집 밖으로 던졌으면 좋겠는데. 멍하게 생각 하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친 윤슬울 향해 권태준이 재차 물었다.

“윤슬 씨는 내가 불편합니까?”

“네. 아까도 그렇게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새삼스럽게 물으시네요. 불편 하고 불쾌해요.”

“너무 이론 시간이긴 했죠? 나 때문에 촐근 못 한 겁니까?”

분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권태준의 말과 묘하게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 졌다. 지금 주고받는 이 말들을 대화라고 할 수는 있을까.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물 잘 마셨어요. 다음에 만나면 커피는 내 가 준비하도록 하죠.”

“커피 안 마셔요. 그리고 다용에 안 만났으면 좋겠네요.”

“역시 마음에 드는 성격입니다. 조금 보고 있었다고 얼굴도 제법 귀여워 보입니다.”  

칭찬인지 험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권태준이 자리에서 일어섰 다. 강호수가 그리 화룰 내고 면박을 즐 때에도꿈쩍 않더니. 무슨심경의 변화인지 알 수 없었지 만 가겠다는 말이 그저 달가웠다.

배웅을 할 의도가 아니라 권태준이 정말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빤히 쳐 다보고 있자, 신발을 신던 권태준이 고개를 들어 윤슬과 눈울 마주했다. 까 만 눈동자가 윤슬울 빤히 바라보았다.

노가무 아쉬워하지는 말아요.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니까. 완전히 해어지 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아쉬워합니까.”

“저한테 하시는 말씀은 아닌 것 같고. 강 선생님한테 말씀하시는 거예 요?”

“불수록 매력적인 성격입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권태준온 끝까지 개소리를 지낄였다. 더 말을 섞다간 혈압이 을라서 쓰 러질 것 같은 기분에 윤슬은 한숨을 삼켰다. 권태준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 부터 문이 닫히고 삐릭, 소리를 내며 잠기는 것까지 확인한 윤슬이 비척비 척 걸어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윤슬 씨, 괜찮습니까?” 정중한 어조인데. 방금 전까지 들었던 권태준의 말투와 묘하게 비슷해 윤슬온 저도 모르게 옴서리를 쳤다.

“괜찮냐는 을음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네요. 육체적으로는 다행 히 칼침은 안 맞았는데 정신적으로 타격이 너무 커서요.”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설마저 녀석이 이렇게까지 할 졸은……”

“물 안 마실 거 면 저 주실래요? 일어나서 을 한 모금도 못 마셨거든요.”

윤슬의 말에 강호수가 둘고 있던 머그를 건네주었다. 그것울 받아 마시 다 문득 수돗을이었다는 것울 뒤늦게 깨달았다.

“쉽게 생각하셨던 거예요. 선생님. 악몽을 침범당한 사람들은 다 저렇게 경계해요. 권태준 씨는 확실히 과한 면이 있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더라 도 대부분 저를 괴물 보듯이 두려워하고, 꺼리고. 경계해요. 그들의 악몽 을, 비밀을 흥쳐본 대가라고 제가 말했었잖아요.”

“미안합니다.”

“명함올 받기는 했는데, 정말 회사원 맞아요? 회사원이 왜 칼을 들고 다 녀요? 저 오늘 세상 하직하는 풀 알았어요.”

윤슬의 말에 강호수는 난감한 얼굴로 어색한 옷음을 훌렸다.

강호수를 보게 되면 이런 상황을 만든 강호수를 원망하며 화를 내고 소  

리를 지를 줄 알았는데. 권태준이 떠나자 긴장이 플렸는지 윤슬은 그저 쉬 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9니까?”

가만히 서서 윤슬을 지켜보던 강호수가 말을 꺼냈다. 그에 떠오론 것이 있어 윤슬이 눈을 샐쭉하게 뜨고 강호수를 노려보았다.

“선생님이 새벽에 했던 말 중에 맞는 거 하나도 없었어요. 친구라고 너 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신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이성적인 사람? 칼 들고 아침부터 남의 집 쳐들어오는 사람이 이성적 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보통은 꿈에 나타나면 호감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 다면서요. 괜히 그 말 했다가 비웃음당했어요.”

“남의 병원 기록 흥쳐보고. 남의 집에 칼 들고 쳐들어오는 거. 저 사람은 그거 범죄라는 거 을라요?”

“압니다.”

0.”는 사람이 그러냐고 반운하려던 윤슬은 뒤이어 나온 강호수의 말에 입 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범죄라는 걸 알아도 거리껑 없이 저지론다는 말이었다. 그속 뜻울 파악한 윤슬이 짧게 한숨울 내쉬었다. 걸려도 더럽게 걸리고, 꼬여도 더럽게 꼬였다. 강호수의 친구라기에 적어도 이상한 사람은아닐 거라생 각했는데, 그 예상이 화려하게 빗나가 버렸다며 윤슬이 혀를 찼다.

빈 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윤슬이 말했다.

"꿈에 관한 건 모르는 일이라고 했어요. 발엠했는데 믿는 눈치는 아니었 고요. 접촉 때문에 화장실에서 실수인 척 손울 잡았던 일은, 그것까지 발뼘 하기가 어려워서 호감이 있었다고 둘러댔는데.”

“착각을 한 모양이군요ㅣ"

“아뇨. 제가 본 권태준 씨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요. 의심이 남아있으 니 곁에서 지켜보려는 명분일 거예요. 더 이상 선생님이 수습할 수 있는 선 을 넘어갔다는 거고요.”

이 일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권태준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는다고 해도 그가 쉽게 믿어풀지도 알 수 없고. 또 그 가 믿는다고 해도 그의 동의 없이 악몽에 들어갔던 일에 대해 그가 어떤 반 응을 보일지도 예상할 수 없었다. 

“선생님, 제가 혹시라도 연락이 두절되거나 사라지거나 하면 목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약속하세요.”

“예?,

“친구라고 감싸지 말고, 혹시라도 시체 유기를 돕거나 알리바이 만둘어 주지 말고. 그게 지금 이 사태를 만든 선생님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시고. 저 희 아버지가 제 시체라도 찾을 수 있도록 꼭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어두운 앞날을 각오한 사람처럼 참담한 얼굴로 말하는 윤슬을 보며 강호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태준이 농이 과격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꿈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사 랑 죽이고 그러지는 않습니 다.”

그럼 다론 이유로는 죽이고 그러나요. 하지만 윤슬은 그 을응읕 내별지 못했다. 어떤 대답이 돌아을지 두려웠다.

“그런 분이 꿈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칼 들고 쫓아오셨거든요.”

“그 일에 관해서는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앞으로가 운제였다. 

“권태준 씨가 또 이렇게 찾아온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왠지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거든요.”

불안한 감이 윤솔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저 경고를 하려고 왔던 것이 아님을. 권태준의 말처럼 흥미가 생겼는지. 아니면 윤슬의 존재를 위협적 으로 생각하는 건지, 그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분명 이번 한 번으로끝 낼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 일의 원인은 선생님에게 있지만, 잘못한 건 결국 내가되어버렸으 니 오늘 일은 이대로 넘어간다고 쳐요. 하지만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 면 저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물라요. 부당하게 당하는 건 사양이에요.”

“제가 일단 태준이 녀석과 잘 말해보겠습니 다.”

“상식적이지 않은 분이라, 대화가 잘될까 걱정이네요.”

“보통은 이러지 않는데, 이번에는 유독예민하게 구네요. 뭔가 남에게 보 일 수 없는 것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겠죠.”

강호수의 말에 윤슬은 권태준의 악몽을 떠을렸다. 심연과도 같이 어듭 고. 수많은 사람들의 비 명과 울부짖음으로 가독 차 있던 악몽.

“저들은 말이야. 모두 내가죽이거나 고통을 줬던 인간묻이거든.

그리 말하던 권태준의 감정이 여과 없이 전해졌던 기억을 떠을리며 윤슬 온어깨를 떨었다.

"쉽게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악몽의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싫었던 기억? 아프고 슬픈 기억? 고통스러웠던 기억? 피해자들이 꿈에서 끊임없 이 고통받는 것만이 악몽은 아니에요. 가해자들도 악몽은 꿔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악행. 그것이 후회든, 양심의 가책이든, 아니면 비밀 이 새어 나갈지도 모론다는 두려움이든 그들도 악몽은 꿔요. 그 악몽이 사 라진다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그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하게 되었을 때 그 둘은 안심할 수 있을까요. 저 하나만 사라지면 악몽도, 불안도 모두 잠재 울 수 있울 텐데 그걸 마다하겠어요?”

“윤슬 씨.”

“문득, 내가 위험한 일에 손을 댄 것 같은 기분이 둘어요. 선생님만이 아 니라 저 역시도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구원자라는 달콤한 말로 넘어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 ….”

처음엔 고통받는 사람돌을 도와준다는 그 명분에 끌렸다. 두려워하고 기 피하는 괴물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고마운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 다. 나중엔 받는 돈이 좋아졌다. 악몽을 꾸는 사람들이 모두 선량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모른 척했다. 그저 돈을 주는 의뢰인이라 생  

-1!둘다면 언제라도 그만뒤도 괜찮습니다. 윤슬 씨에게 아무 일 없도록 내가 최선을 다할 겁니다.”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모르겠더라고요. 내게 왜 이런 능력이 생긴 건지. 쓰라고 생긴 능력인지, 아니면 그저 저주인지도 모르겠고.”

뭔가 이유가 있으니 생긴 능력이 아닐까. 뭔가를 하라고 생긴 능력이 아 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지 만 원인도, 이유도 윤슬은 알 수가 없 었다. 이것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이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이 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했 는데, 어쩌면 괴을이 날될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되네

요 ”

당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 윤슬이 그 물음을 담아 강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요, 윤슬 씨. 종 누워요. 새벽부터 너무 많은 일 이 있어서 지쳤을 겁니다.” 

방바닥에 널브러지듯 않아 있던 윤슬을 일으켜 침대로 데려가 눕힌 강호수가 안쓰러운 시선으로 윤슬울 내려 다보았다.

오늘 일은 내 잘못입니다. 윤슬씨가 두려워하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 게 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 다.”

“난 두려운 게 아니에요. 무섭지 않아요. 그냥 화가 날 뿐이에요.”

자신에게 왜 이런 능력이 생긴 것인지 화가 났고. 이 능력으로누군가에 게 도움을 준돌 그들이 내보이는 것이 호의가 아닌 적대감이라는 것에도 화가 났다.

“알아요, 윤슬 씨 마욤 이해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울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 때문에 얽힌 사람들은 윤슬 씨를 괴물이라고 보지 않을 겁니다. 내가 때려서라도 그렇게 만들어주겠습니다.”

알긴 뭘 알아. 이해하긴 뭘 이해해. 강호수의 말에 윤슬이 작게 웃옹을 흘렸다.

“의사 선생님이 폭력을 휘둘러도 돼요?”

“안 되죠.”

“그러면서 잘도 그러겠다고 하시네요. 그거 알아요? 아무도 믿지 못하겠 다 싶으면서도. ?ㅏ공 선생님의 말은 믿고 싶어지는 거. 아닌 척하지만 선생 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안심이 되곤 해요. 그걸 부정하지는 않아요. 그렇다 고 정말 선생님 말처럼 되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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