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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217화 (217/217)

[217화]

폐허가 된 곳.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리퀴두스님의 손짓에 폐허가,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정리 아닌 정리를 한 후 자리를 옮기고 하루 푹 쉴 수 있게 되었다.

“여기는 여전히 신비하네.”

머리 위로 평화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며 침상에 누워있는 것이 꿈 같았다.

“진짜. 끝이네.”

숲에 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자 목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인연을 맺게 된 것 같았다.

“아젠스는 잘 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거기에 생각하지도 못한 제자가 생기기도 했다. 별로 가르쳐 주지도 못했다는 생각도 들고.

“종종 나가서 봐줘야 하려나. 상황이 되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회상의 끝은 마지막 감각으로 귀결되었다.

“분명히 하나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육체가 못 버텨준 거란 말이지.”

조금 허탈함이 올라왔다. 이제껏 육체적인 문제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문제였으면 문제였지 육체가 문제 된 적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굴러야 할까. 진짜 암담하다.”

이럴 때는 부발님이 가지고 있던 재능이 부럽기 그지없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

*

긴장이 풀려서인지, 방에 뭔가가 있는 것인지 깊은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아침.

아침을 같이 먹자는 리퀴두스님의 말씀에 따라서 나온 곳은 아프를 처음 만난 그 정원이었다.

“고생했다. 생각보다 정말 잘 해 주었어.”

누가 요리했을까 궁금할 정도로 정갈한 음식을 먹으며 듣는 칭찬.

“더군다나 이렇게 빠를 거라고도 생각을 못 했지. 적어도 1~2년은 넘게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뭐 이런저런 사건도 생기고 그런 거 아니겠어?”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 리퀴두스님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옆에서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는 아프. 그 옆의 젬마. 하루 전과 다르게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뭔데. 그렇게 보지만 말고 물어봐. 대답해 줄게.”

“왜 리퀴두스님께서는 안 나서시고.”

어제부터 궁금했던 것. 아니 알게 된 사실. 드래곤. 그중에서도 리퀴두스님이 얼마나 강대한지.

에트라가 쥐고 있던 타인의 흐름까지 합치더라도 지금 눈앞의 리퀴두스님에 비하면 반 정도일 뿐이었다.

‘아니. 응집도가 차원이 다르니까 1/3이라고 해도 많이 쳐주는 거려나.’

그를 본다면, 분명 다른 드래곤들도 저것보다는 못 해도 강대할 것이 분명했다.

굳이 연약하디 연약한 자신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실패 확률이 낮을 터였다.

“우리가 나서기 참 애매해서 말이지. 거기에 네가 이렇게까지 해줄 거라 생각 못 하기도 했고. 아!”

그리고서는 눈을 빤히 쳐다보시던 리퀴두스님. 기세를 피웠다 줄였다 해보시더니 피식 웃으신다.

“진짜 너 인간 맞냐? 참. 어이가 없네. 그리고 어린 것들은 네가 지금 보는 것 같지 않다.”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납득은 갔다. 또 다른 질문.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그럼 아프는…. 뭔가요? 다음 대의 영왕 이런 건가요?”

“어? 너 몰랐구나? 진짜 모를 줄 몰랐는데!”

옆에서 젬마가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이 자리에서 아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나뿐인 듯했다.

“아프. 네가 말해야 하지 않을까? 잠시 다녀오렴.”

인자한 리퀴두스님의 말에 아프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래서. 뭔데?”

[이 몸은 위대한 존재다!]

아직도 장난을 치는 아프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자,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연다.

[감히! 진짜 너무하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살포시 날아가더니 빛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아프.

“아프?”

그냥 빛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흐름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결코 내 아래가 아니었다.

‘미친. 저 정도로 강하다고? 아니 흐름이 바뀐다고?’

흐름을 보게 되며 존재감을 확실히 자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경지 또한 세세하게 보인다.

그런 눈에 보이는 아프의 모습은, 흐름이 점차 거대해지는 말도 안 되는 모습이었다.

“아플라투스다. 이 모습은 처음이네. 위대한 리퀴두스님의 자손. 하이 엘프의 피를 이은 용혈. 위대한 드래코니안.”

“드래코니안?”

“그렇다! 드래곤의 진실 된 후손. 드래곤과 다른 종족이 합쳐져 나타난 기적 같은 존재가 바로 나다!”

눈이 확실히 리퀴두스님을 닮았다. 그리고 다른 부분은 젬마와 비슷했다.

다만, 접혀 있는 날개와 꼬리가 다를 뿐이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신비스러웠다.

“너…. 진짜 재수 없게 생겼다.”

본 얼굴 중 가장 잘생긴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허당끼 넘치던 아프와 전혀 다른 얼굴.

“여러모로 내가 좀 대단하기는 하지. 만나서 반갑네. 진짜로.”

“뭔데?”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신기하기는 했지만, 놀아난 느낌이 없지는 않았다.

“에이. 또 그렇게 무게 잡는다고? 성인식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겸사겸사이기도 했지만, 봐.”

눈짓으로 알려준 곳은 왼손의 등. 새 모양으로 새겨져 있던 가계약의 증표가 어느새 드래곤으로 변해 있었다.

“뭐. 친우의 증표 이런 거랄까나. 속인 건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아프에게 들은 설명은 납득이 가는 이유이기는 했다.

‘드래곤도 아니고 드래코니안도 성인식이 살벌하구나.’

종족 중 2개의 종족을 선택해 일생을 보내야 성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성인식.

성인식을 치르는 데에만 200년 가까이 걸린다고 하니 새삼 드래코니안의 수명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한 번은 인간이었고 지금이 영수라는 거였지.’

“위대한 존재라고 입에 달고 살더니.”

“그…. 그건! 폴리모프라는 건 성격과 지능 그리고 능력까지 제한을 두어서 그런 거다!”

변명을 하지만 그래 봐야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생긴 게 크게 달라서 문제지.’

아프가 영수일 때는 이게 영수가 맞나 싶은 허당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진짜 얼굴이 다 하는구나.’

그래도 아프는 여전히 아프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 이야기는 잘 하고 왔고?”

“네. 정말 상상도 하지 못 했지만 말이죠.”

“아프가 워낙 사고를 많이 치기로 유명하기는 하지.”

“젬마! 니가 할 말은 아니지!”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는지 투닥거리고, 일상이라는 듯 바라보는 리퀴두스님이었다.

“이제 하나의 성인식만이 남아있구나. 아프.”

“맞아! 성인식도 안 치른 꼬맹이가! 누나에게!”

“누나는 무슨! 사고뭉치가!”

갑자기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이 리퀴두스님의 손짓 하나로 제압된다.

“착하지?”

어느새 양손에 머리가 잡혀서 꿇려있는 두 사람의 표정에는 어색한 미소가 감돌았다.

“네네!”

“네! 아버지!”

“리퀴두스님. 아프의 성인식은 끝난 게 아니었나요?”

“드래코니안으로서는 끝이 났지. 하지만 엘프로서는 아니지. 이제 가면 될 거다.”

“엘프…의 성인식이요?”

“그래. 그리고 너도 같이 갈 거고. 내일 출발할 거다. 설명은 아프에게 듣고 준비하거라.”

리퀴두스님의 손짓에 순식간에 아프와 함께 방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 방이네. 한 방. 착한 아프.”

“아버지 앞에서 한 방이 아닌 존재를 데리고 와 보시지?”

“오오. 금세 살아났는데?”

“내가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서 사고뭉치라는 거구나?”

“이익! 그게 아니. 에휴. 듣기나 해라.”

포기한 얼굴로 설명해 주는 아프의 성인식. 엘프들의 성인식은 꽤 신기했다.

“그냥 걷는 건데 뭐가 다른가 보네?”

“숲이 환영하는 걸음은 일생에 한 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장관이니까.”

“내가 같이 가도 되는 거야?”

“넌. 나보다 먼저 갈걸? 내 환영객인 거지. 나는 2주 뒤에나 도착할걸.”

숲 밖을 보고 온 엘프들은, 숲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발로만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근데 난 왜?”

장난기가 가득한 아프의 웃음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떠오른 존재.

‘드디어 만나는구나.’

아프의 놀림을 실컷 받고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을 새고 나서도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

“이건 또 새로운 표정이구나? 하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말거라.”

리퀴두스님의 설명을 들어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식간에 도착한 숲의 입구.

“이게 ‘숲’이라고 불리는 곳의 입구지. 적의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지금 있는 장소도 풀과 나무가 가득했지만, 눈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하늘을 가릴 듯이 빼곡하게 있었다.

숲이 가지를 옮기면서, 풀들이 옆으로 뉘이면서 길을 만들어주는 것도.

영수들이 숲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며 노는 것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숲을 보고 조금이지만 돌아왔던 정신이 다시 나가고, 엘프들의 마을을 보고 돌아온 정신도 다시 나갔다.

“허? 이건 또 신기한 일이구나. 다녀오거라.”

리퀴두스님을 보며 처음으로 보는 놀란 표정도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숲의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던 거대한 나무. 하늘에 닿은 것 같은 거대한 나무.

그 나무가 세계수라고 불리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열리는 밑동으로 들어가자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이가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이미 알고 있는 존재였다.

“관리자님….”

“여기에 와서도 그렇게 부르기에요?”

“테라토리스님. 진짜로 만나게 되네요.”

신을 보겠다는 오로지 하나의 일념을 가질 기회를 준 존재.

삶을 살면서 절망에 빠질 때마다 손을 내밀어준 존재. 신보다 더 보고 싶었던 그 존재가 눈앞에 있다.

눈을 뗄 수가 없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붉어지는 얼굴. 그리고 순식간에 꺼지는 시야.

‘어…?’

다시 열린 시야에서는 끝없이 솟아있는 나무의 빛나는 나뭇잎들이 보였다.

“일어났어요? 갑자기 그렇게 빤히 바라보니까 저도 모르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시야가 암전된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관리자님이니까.

‘그러고 보니까 관리자님은 흐름이 보이질 않네?’

“정말.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제 첫 승천자가 여기까지 이렇게 빠르게 올라올 줄이야.”

‘그러고 보면 관리자님 나이가….’

갑자기 전신을 누르는 압력이 느껴지고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리고 지금 상태면 표층 심리 정도는 읽을 수 있으니까.”

경악과 함께 붉어지는 얼굴의 관리자님을 보니 괜히 부끄럽기도 했다.

“해줄 이야기가 많아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그렇게 시작된 하루하루는 정말 잊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고, 치열했던 나날들이었다.

*

“정말 떠나셔야 하는 겁니까. 스승님.”

“이제는 자식도 있는 녀석이 어리광부리는 거야? 황제 폐하께서?”

아젠스. 결국에는 왕을 넘어서 황제가 된 제자 녀석이었다.

“조금 더 있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아직. 아직 배울 것도 많고.”

“웃기고 있네. 처음에 ‘저는 몸을 지킬만한 정도면 됩니다.’ 이러던 녀석이.”

자식도 있는 녀석이 눈물을 보이는 것이 보기 싫지만은 않았다. 그 옆으로 아프와 젬마가 보였다.

“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진짜 나보다 먼저 갈 줄이야.”

“언제 올 수는 있기야 하고?”

“이 몸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위대한 몸이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아프와 그 옆에 배가 불러온 젬마는 보기 좋은 한 쌍이었다.

“그럼 갈까?”

내민 테라토리스의 손을 잡고 눈 앞에 펼쳐진 계단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맺은 인연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쉽고 슬펐지만 쥐어진 손이 힘을 주었다.

“이게 마지막인가?”

“뭐. 하나 더 남기는 했지만 그건 선택의 문제니까. 가자.”

새로운 세계는 항상 떨리지만, 지금처럼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테라토리스의 부모님….’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테라토리스가 인도하는 그 발걸음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로.

-fin-

그동안 저와 함께 이 글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연재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처음부터 5부작이라고 하면서 세계관만 거대하게 만들어서 힘들기도 하고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지만, 여기에서 우선 멈추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완결을 짓게 되었습니다.

첫 작품. 첫 연재. 첫 완결. 진짜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완결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고, 이렇게 많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른 작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P.S 언젠가 모든 이야기를 꼭 들려드릴 수 있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Uria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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