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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216화 (216/217)

[216화]

아름다운 정원이었던 그 모습은 이제 사라져 황폐하고 상처만 가득한 대지.

그 가운에 세 명이 대치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숲 지기. 우선 너는 너무 방해야. 죽이기도 애매하고. 더군다나 지금은 더욱더.”

왼손을 뻗자 땅에서 거대한 완드가 솟아 올라와 그녀의 손에 잡힌다.

“그러니 방해하지 말도록. 이제는 진심으로 갈 거니.”

화려하게 치장된 완드. 그 완드로 땅을 찍자 흐름이 순식간에 변하는 것이 보인다.

“너희는 신이 된 마법사의 마법을 구경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니라.”

땅에서 마법진이 밝게 빛나면서 젬마를 포위하는 반투명한 반구가 생겨났다.

“그거 알고 있니. 북부에 수많은 신이 있지만, 신이 된 이들은 대부분 던전을 통해서임을.”

젬마가 반구 안에서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마치 다른 공간처럼 젬마의 화살이 반구에 닿지 않았다.

“고대에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초월자들. 그리고 그들의 자취가 남겨진 던전.”

반구가 생기는 즉시 움직이고 싶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흐름이 그러지 말라고 경고를 보낸다.

“내가 있던 던전은 정말 지하 깊은 곳이었지. 작은 틈 하나로 하늘이 겨우 보이는 그런.”

젬마를 가두고 있던 반구의 형태가 점차 투명해지더니 깨진 조각처럼 변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 하늘이 되고 싶었지. 골방에만 박혀 수십 년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

반구가 깨진 유리처럼 변하고 나서부터는 젬마의 기척이 사라졌다. 눈에는 보이는데 기척이 없었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생각보다 많이 무시당했지. 그저 골방에서 연구만 한 마법사라고.”

곧이어 등장한 마법진에 왜 흐름이 앞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 했는지 이해했다.

“처음에는 그게 싫었는데, 생각해 보니 왜 그게 별로인가 싶더라고. 어차피 마법사가 돌아다니는 게 이상하지.”

황폐하기만 하던 대지에서 탑처럼 솟아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하나하나가 무언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내 영역을 만들기 시작했지. 그리고 그 영역 안에서 나한테 대들 수 있는 이들은 없었어.”

싸늘한 느낌이 척추를 타고 올라온다. 하나의 탑을 베었지만, 금세 다른 탑이 올라온다.

“마지막으로 만든 내 영역이 여기야. 추억이 서린 곳이랄까. 그런데 이렇게 도움이 되네?”

언 듯 보아도 수십 개가 넘어가는 탑들이 솟아올랐다. 탑들이 공명하며 내는 압박이 몸을 무겁게 한다.

“신이 되고 너무 자만했지. 그래. 하나하나 확실하게 해야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고맙다고 할게.”

그 탑들 중 가장 높게 솟아오른 곳에 서서히 올라가는 에트라.

“너의 삶은 내가 잘 써주도록 할게. 그럼 발버둥 쳐봐.”

결국 모든 것이 완성될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개같은 상황이었다.

‘공부를 하라고 할 때 해야 했나. 개같네.’

흐름이 보여도 알지 못하니 함부로 끊어낼 수가 없었다. 멍청하면 몸이 고생이라던 놀림이 새삼 와 닿는다.

“그럼 가볍게 시작해 볼까?”

그 말과 동시에 대지가 울리기 시작하며 서 있던 자리에 늪이 생긴다.

흐름의 속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랐다. 자칫했으면 발이 묶일 뻔했다.

발을 놀려 앞으로 튀어나가는데 땅에서부터 순식간에 얼음이 얼더니 발을 묶으려 한다.

발구름으로 털어낸 순간 머리 위에 낙뢰가 떨어진다. 베어낸 즉시 또다시 날아오는 불덩이.

암담함이 찾아오려는 찰나 든 생각. 어차피 모든 것을 베어내고 나가면 된다.

베어내고 털어내도 몸이 무거워지고 느려지고, 동시에 날아오는 마법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감각이 알려준다. 한 발이더라도 확실하게 가고 있노라고.

“확실히 마법사는 편하단 말이지. 근데 그 편한 걸 난 왜 포기했을까?”

에트라를 볼 정신도 없었다. 다가오는 흐름에 집중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흐름과 나타나는 흐름에 집중해야 했다.

지금 잡지 않으면 평생을 다시 살아도 못 잡을 것 같은 감각이 머리를 울린다.

정신없이 생겨나는 흐름을 베고 사라지는 흐름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이 어느새 주변에는 마법이 빼곡히 찼다.

그런 마법들도 위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베어내야 할 것일 뿐이다.

“역시 대단해! 이건 나도 생각만 한 건데! 좋아. 그럼.”

먹구름이 가득하던 하늘에서 더욱 짙은 먹구름이 생겨난다. 간혹 구름 사이에 보이는 뇌전.

“내리치고 또 내리쳐라!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는 이에게 단죄를 내리느니.”

에트라의 말에 따라서 그 짙은 먹구름이 번개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동시에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마법들이 쏘아져 나온다.

베어내고 베어내도 끝이 없었다. 몇 개를 연달아 베어도 몸에 꽂히는 하나가 있었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흐름에 집중하며 가장 큰 흐름을 베어나간다.

에트라도, 마법도, 낙뢰도 지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몸이 반응하고 움직인다.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흐름이 선명해지고 그것을 넘어서는 감각이 올라온다.

몸에 맞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탑을 베어내고, 앞으로 향한다. 흐름을 베고 탑을 베어낼수록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더 깊게 벨 수 있어. 더 많이 벨 수 있어. 모든 것을.’

본능이 알려주고 있었다. 선천 재능이 완전히 개화했다. 이제는 재능이 아니었다.

‘모든 흐름을 한 번에. 눈에 들어오는 것, 그 이상을.’

끊임없이 몰아치던 것들에게 공백이 생긴 찰나의 그 순간. 도에 의지를 담는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된다. 머릿속에 무리가 선천 재능과 하나가 되어 새로이 길을 알려준다.

‘1식 : 류절.’

횡으로 베어지는 단 한 번의 도격. 눈앞에 보이는 모든 흐름을 일시에 끊어낸다.

성한 곳이 없는 몸. 화상과 동상이 동시에 존재하고 베이고 긁힌 상처가 있는 상황이지만.

“크하하하하!”

웃음이 터져나온다. 통쾌함 이상의 감정. 무언가 터져 나온 그 시원함이 전신에 가득하다.

뭐라고 소리치는 에트라가 보였지만 들리지 않는다. 완전히 잘려서 넘어진 수많은 탑들.

반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마법들. 낙뢰를 베어낸 것이 아닌 도흔이 선명한 먹구름.

그보다 기쁜 것은 본능이 알리고 있다는 것. 머리에서 무리가 하나로 합쳐져 알려준다는 것.

이 이상을 벨 수 있다. 더. 더. 더 깊게. 더 보이지 않는 것을.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 감각을 따라서 에트라가 서 있는 탑을 보며 도를 휘두른다. 왼쪽 사선으로 휘둘러지는 도.

“2식 : 공절.”

그동안 운으로, 환경으로 어설프게 만들어낸 공간의 균열. 이번에는 달랐다.

휘둘러지는 도에 생각 이상의 반탄력이 느껴진다. 도를 잡은 오른팔에 힘이 들어간다.

딛고 있는 발을 더 강하게 딛고, 엉덩이부터 시작해서 척추를 강하게 지지하면 휘두른다.

악문 이 사이로 핏물이 슬쩍 올라온다. 전신을 이용해서 겨우 이어나간다.

비명을 지르는, 벽이 긁히는 소리가 나면서 겨우 휘두른 한 번의 도격.

땅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도흔이 눈에 보였다. 검은색의 거대한 사선이 생겨났다.

‘아직. 아직 더 할 수 있어.’

본능에 따라서 한 발 내딛는 순간 무너지는 한쪽 무릎. 전신에 힘이 빠져나간다.

눈에 보이는 도흔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것 같더니 다시 세상이 돌아왔다.

“말도 안 되는구나. 이 정도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야.”

너무 허탈해서 분노조차 표하지 못하는 에트라의 모습이 보였다. 사라진 도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광경.

“고작해야 내 마지막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는 에트라. 그리고 그제야 풍경에 변화가 일어난다.

검은 도흔이 생기고 사라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선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에트라가 서 있던 탑도, 에트라도 그 위에 먹구름도. 모든 것에 사선이 생긴다.

“진짜 미쳤구나? 저걸 고작 도로 할 수 있는 거였어?”

반구가 사라지면서 자유가 된 젬마가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흥! 나는 이럴 줄 알았느니라! 이 몸은 모르는 것이 없지!]

“아직이야.”

겨우 걸음을 힘겹게 옮겨서 에트라에게로 다가간다. 사선이 되어 땅에 떨어진 에트라의 신체(神體).

“내가 머리는 나빠도 들은 말은 잘 기억하고 있단 말이지.”

흑색거성의 전투 이후에 생겨난 이질적인 기운. [바람의 탑] 밑에 꽁꽁 봉인해야 했던 기운.

봉인을 풀자마자 전능감이 몸에 차오른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기운은 오롯이 도에 담는다. 기운의 씨앗. 근원이 되는 모든 것을 담는다.

[하지 말거라! 미친 것 아니냐! 왜!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육성이 아닌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누구도 아닌 에트라의 목소리였다.

“역시. 리퀴두스님이 하신 말이 맞았네. 선택이라 함은 이런 상황을 두고 말씀하신 거겠지.”

[네 신성의 근원이다! 씨앗이란 말이다! 그것을 버리면 너는 신이 되지 못한다!]

“상관없어. 내가 바라는 건 고작 이게 아니야. 그리고 그 덕에 넌 살아나고? 그럴 수는 없지.”

신은 죽지 않는다. 불멸이 된 이들. 그들은 숭배받는 이상 절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죽었다고 해도 신체가 절단이 나도, 믿음으로 숭배로 인해서 다시 살아난다.

신들끼리의 전투에서도 자신의 신성을 상당히 감수하고 나서야 그 존재를 없앨 수 있다.

그런 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를 없앨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지금 자신이 하는 것.

신성의 근원으로 상대의 근원을 파괴하는 것이다.

신성의 근원이 담긴 도를 에트라의 머리에 찔러 넣는 순간에도 에트라는 끊임없이 소리쳤다.

[너에게 충성을 맹세할게! 신언으로도 맹세할게! 제발! 제바알!]

그 소리를 무시하고 머리에 찔러넣은 도.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도에 어린 빛과 에트라의 머리에서 나온 빛이 충돌한다.

서로 다른 두 빛이 충돌하면서 나온 결과는 양쪽 모두의 소멸. 천공의 신은 이제 죽었다.

“하…. 진짜 죽을 것 같다.”

“안 아까워? 불멸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불멸이라는 게 거짓 된 불멸이니까요. 그래 봐야 이 세계의 지박령 정도랄까요.”

그 말에 폭소하는 젬마. 그 후에 진지한 표정이 되어 다시 묻는다.

“왜? 그 전능감이 들었을 텐데?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그런.”

“젬마도 알아요? 경험해 본 적이 있어요?”

그러기에는 젬마는 아직이었다. 이제는 확연히 보이는 젬마의 경지.

“간접적으로나마?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지. 근데 난 무서워서. 그 힘에 내가 잡아먹힐 것 같아서 그만뒀어.”

“전. 제 힘이 아닌 건 별로라서요. 그리고 속박이 되는 것도 느꼈다랄까.”

[머리는 나쁜데 진짜 감각 하나는 정말 타고난 놈이다! 그 상황에서 그걸 느끼다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전능감을 느낀 거지. 전능해진 건 아니니까요. 결국에는 거짓이라는 거죠.”

그 말을 듣고 난 후에 사뭇 대단하다고 바라보는 젬마의 시선에 조금 부끄러웠다.

약간 부끄러워하는 때에 익숙한. 하지만 이곳에서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되는지 넌 모르겠지. 고생했다. 엄청났다고 해두마.”

온몸에 빛이 한 번 휘감고 지나가더니 모든 체력이, 상처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리퀴두스님?”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리퀴두스님.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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