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괜찮을까요? 그렇게 만만한 것 같지는 않던데.”
“아니마를 함께 붙여주었으니 괜찮을 거야. 상위 영수의 힘을 만만하게 보지 마.”
“영수의 힘이라….”
“넌 아프와 함께 하는데도 영수의 힘을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다?”
“딱히 힘을 쓰는 모습을 보지 못 해서요.”
“상위 영수면 적어도 8클래스 이상의 힘을 내니까. 거기에 이런 장소면 더욱 그렇지. 그러니 걱정 마.”
“확실히 그 정도라면.”
매일 땍땍거리고 먹는 것만 본 자신으로는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여기 진짜 별로다. 너무 역해.”
젬마, 아프와만 이상한 동굴을 탐험하고 있는 지금의 이유는 단순했다.
“확실히 그냥 바로 위신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지만.”
페루스님의 힘을 빌어 도착한 곳은 천공의 섬이었다. 말 그대로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섬.
그리고 맞이한 것은 수많은 숫자의 이상한 인물들이었다. 마치 광기에 서린 것 같은.
“모든 위신들이 저런 단체를 가지고 있을까요.”
솔직한 감상으로 소름이 돋고 두려움이 올라왔다. 순수한 적대감. 순수한 광기.
“아닐걸? 저것도 이것도 사실은 진짜 대단한 거야. 그러니 너에게 부탁한 것도 있겠지.”
“공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그것도 큰 부분을 차지했겠지. 그러니 이렇게 역하지.”
자신들을 이단심문관이라고 소개한 인물들. 처음에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왔다.
‘하지만 최후통첩처럼 안 통하니 돌변했지.’
하나같이 강한 이들이었다. 소드 익스퍼트가 가장 약해 보이는 이였다.
그들을 세탄타님과 아니마에게 맡기고 천공의 신이 거하는 곳을 찾기 위해서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곳이 맞을까요?”
“왜? 천공의 신이라고 부르는데 땅 밑에 우중충하게 있는 게 신기해?”
말 그대로였다. 천공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높은 곳에 화려하게 지어진 도시.
이단심문관을 맡기고 자신을 안내하는 젬마가 인도한 곳은 이상한 지하였다.
어떻게 찾았는지, 비어있는 건물로 들어가더니 지하통로를 기어코 찾아낸 것이다.
‘역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곳이라고 했나?’
계속해서 걷고 걸어도 심해진다는 역한 냄새를 전혀 모르겠지만, 이곳이 땅속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네. 왜 굳이 이렇게 깊은 곳에 지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자기 땅인데.”
“위신이 된 것들의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알아?”
“강하다?”
“그게 맞지. 그런데 그 정도의 강자가 되면, 이 세상에 자기보다 강한 존재가 있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거든.”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 정도에 올랐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소드마스터만 되어도 세상을 이길 것처럼 행동하는데 말이지.’
“조금이지만 흐름을 알게 되며 느끼는 거지. 조금 벗어나거나 눈엣가시가 되면 큰일 난다는 걸.”
“그래서 지하에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요?”
“지하에 있는 건 본체. 아까 봤지? 엄청 크고 높이 세워진 거.”
“네. 솔직히 젬마가 이렇게 이끌지 않았으면 그곳으로 가려고 했는데요?”
거기에 이단심문관들이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있기도 했다.
“아마 분체(分體)일거야. 냄새가 다르거든. 그리고 이왕이면 한 번에 끝내야지. 돌아가면 무슨 고생이야.”
정확한 길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섬의 중심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사고뭉치지만,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으니까. 괜히 손과 발로 뽑힌 게 아니다!]
거기에 아프의 확언까지 있으니 별다른 걱정 없이 걸었다. 그리고 확신을 주는 느낌이 곧 느껴졌다.
“정말 이 길이 맞기는 한가 보네요.”
상대도 느낀 것인지 대놓고 기세를 흘려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약한데요?”
“에이. 원래 문지기 정도는 있는 거라고. 저 정도면 과하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또 그렇네요.”
기세가 점점 강해지는 것이 곧 도착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통로가 끝나고 보인 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등을 보이고 있는 거대한 체구의 남성.
“문지기 맞지?”
여전히 쾌활한 젬마였다. 순식간에 기세가 사라지면서 거대한 음성이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숲 지기가 여기에 온 것이지? 인간과 전쟁을 선포하는 것인가?”
그 말을 듣고는 가당치도 않는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하는 젬마.
“웃기고 있네. 네가 진짜 인간들의 신이라도 된 줄 아나 보지? 너 따위에게 그분이 신경이나 쓰실까.”
“그렇다면 평범한 숲 지기 한 명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말인가 보군.”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 진짜 더럽겠다. 죽여도 문제고 안 죽여도 문제고. 그렇다고 제압 할 수 있는 실력은 안 되고.”
거대한 문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분노라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에이. 왜? 신이라면서 그 정도도 못 하나 봐?”
얄밉기 그지없는 말투. 정말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는 젬마였다.
더 이상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있던 남성이 서서히 일어난다.
“그런데 굳이 저런 문지기가 있어야 할까 싶기도 한데요?”
“조금 있어 봐. 역겨운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싫어하는 이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면서도 꺼려지기도 했다.
‘역겹다고 말할 정도면 진짜 별로라는 건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역겨운 장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어나 문을 보며 기도를 드리는 듯한 거한.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부터 불길했다.
“저를 불러주시고 사용해 주신 은혜를 갚을 수 없으매. 한량없는 그 자비로움에 조금이나마 정성이 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그 후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뽑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거한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심장은 뛰고 있었다.
“진짜 역겹다는 게 뭔지를 알겠네요.”
천천히 무릎을 꿇으면서 양손에 자신의 심장을 올리고 나서야 죽은 거한.
그럼에도 심장은 여전히 박동하며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흥건한 피가 흐르고 흘러 문에 닿았다.
“눈앞의 것만 보는 어리석은 것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역겹다고 표현하는 것이냐.”
거대한 문이 열리며 나타나는 계단. 수많은 계단이 있었고 그 위에 에트라가 있었다.
천공의 신인 에트라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실제의 나이는 훨씬 많겠지만.
그 젊음이, 저 강대한 기세가 홀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강대한 기세였지만, 온갖 기운의 집합이었다. 정수를 취한 지금 더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신성도 스스로 못 만들어. 신앙을 먹고 살아. 숭배를 강요하고 거기에 인신 공양까지. 기생충 아니야?”
그 말에 옆에 있던 젬마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재능이 있는데 어리석은 것들을 보면 참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안타깝고 안타까워.”
“머리카락은 또 왜 그렇게 백발인데? 나이가 들었다는 걸 티 내고 싶어서?”
서 있는 공간이 떨리기 시작한다. 이제까지의 분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거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네가 나의 아이를 해하였기에! 붉게 빛나는 아름다운 아이였는데!”
“그런데도 왜 가만히 있을까? 뭘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나 모르겠네?”
페루스님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직접 보니 신기했다.
‘저러고서도 신이라고 할 수 있나? 아니, 저렇게라도 신이 되고 싶나?’
강대한 기세, 온몸을 넘어서 공간을 흔드는 압박감. 모두가 대단했다.
하지만, 전혀 자유가 없어 보이는 저 존재는 신이라고 하기에는 부족 해 보였다.
‘신성 때문이라고 했지? 저런 모습이.’
천공의 신이 흑색거성을 탐내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신성이었다.
여러 신이 존재하는 북부와 다르게 흑색거성은 아직 깃발이 하나도 꽂히지 않은 빈 땅이었다.
거대한 인구. 거기서 오는 신성을 위해 흑색거성을 노린 것일 터였다.
“아둔하기 그지없구나. 신의 한 발걸음은 그 무엇보다 진중하고 느린 법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은 무엇보다 무겁지.”
‘신성 쓰는 것을 그 무엇보다 아까워한다고 했지.’
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성이 소모된다고 들었다. 권능을 내려주는 것은 더 큰 신성을 위함이기에 내려주는 것이고.
‘거기에 권능은 회수하면 그만이니까. 진짜 저게 신인가?’
자신이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 모든 신전에 신탁이 내려간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는 포장된 내용이.
아마 지하에 내려왔을 때부터 신탁이 내려졌을 것이다. 거기에 더 해서 인신 공양까지.
최대한 신성을 적게 소모하려는 발버둥이었고, 결코 신으로 보이지 않는 행동이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란 말이지.’
위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을 전투. 그곳에서 자신의 신을 부르짖으며 죽어가는 이단 심문관들.
그들이 죽어가면서 내뱉는 기도가, 피가, 생명이 신성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임계치를 재고 있다는 거겠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별로네.’
위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을 에트라였다. 그러면서 음성도 들려주고 축복도 해 준다.
죽어가는 이에게 신의 음성이 들린다. 전투에서 축복이 내린다. 결국은 더 큰 신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너희 동료가 걱정되지는 않는가 보군. 지금도 힘들어 보이는데.”
저 말들이 개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금은 마음이 움직였을까.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신호가 갔을 것이다. 5성을 치러가는 이들에게.
천공의 신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쉽게 성공했다.
‘다만, 얼마나 걸릴지가 문젠데 말이지. 시작부터.’
“이단심문관들이 걱정되지는 않나 보지? 쉽게 만든 이들은 아닐 텐데 말이야.”
우선은 장단을 맞춰줘야 했다. 한 번에 모두가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숭고한 행위를 하는 이들이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행하고 있는 것이지.”
“하. 진짜 그렇게도 좋은가 보네.”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는 도를 꺼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개소리를 그만 듣고 싶은데 말이지.’
“그리고 내 아이들은 저들처럼 되는 것이 꿈이지. 너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여전히 헛소리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시야가 천공의 섬으로 제한 된 듯했다.
‘다행이네. 눈앞에 급급해서 멀리 못 보는 게 누군데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심지어 내 옆자리를 허락할 수도 있음이라! 만인의 아버지가 되는.”
신박한 개소리를 하던 에트라가 말하기를 멈추고 표정이 굳어진다.
‘곧이다. 젬마는 직접적으로는 못 움직인다고 했으니. 견제 정도일 거고.’
공간 그 자체가 떨리던 기세가 변한다. 모든 것을 내리누르는 듯한 기세로.
무언가를 보고 있는지 서로 다른 색의 눈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계획한 것이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눈치챈 에트라.
“감히 버러지 따위들이 힘을 합쳐 이단을 행하는 것이냐!”
황금빛으로 빛나던 왼쪽 눈이 검은색으로 변하며 폭발적인 기세가 터져 나왔다.
“너를 벌하고 내 직접 나설 것이야! 내가 어리석었구나. 어리석은 것들은 힘을 보여줘야 했어!”
에트라가 말한 것 중 하나는 사실이었다. 신의 걸음은 무거웠다.
에트라가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온몸을 내리누르는 힘이 느껴지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