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210화 (210/217)

[210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결과가 좋으면 기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상상 이상이라면 넋을 놓게 된다.

“뭐야? 왜 불러놓고 멍때리고 있어? 처음 보는 놈이 우리를 다 불러냈네?”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었냐? 목숨만 징해가지고.”

“쟤가 개구나? 그 위신이랑 한 판 떠서 대가리 날렸다는.”

한 명이 나타나는 것을 시작으로 빛이 계속 번쩍이면서 점차 늘어났다.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인지 얼어있는 자신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지막 빛이 번쩍이자 모두 합죽이가 된다.

“꼬맹이들이 여기로 다 모일 줄은 몰랐네? 그리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여성. 미의 화신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냄새 좋다….’

백옥의 피부결에 찰랑거리는 머리뿐만 아니라 등장만으로 코를 간질이는 싱그러운 향.

흙, 나무, 바람의 냄새가 함께 나 마치 숲속에 있는 것 같았다.

[정신 차려라! 소개 안 하냐!]

아프의 말에 눈앞에 있는 7명의 인원에게 자기소개 겸 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인물이 있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볼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말이지.”

“아! 세탄타님. 저도 몰랐습니다.”

“오? 막내! 누군지 알고 있어? 만난 적 있어? 나도 한창때는 잘 나갔는데, 쟤는 심하게 괴물.”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말하던 이의 입이 살며시 닫히고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참여할 사람만 남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참여를 선택하는 광경을 보면서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세탄타는 아는 것 같으니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죠?”

9서클, 그랜드 마스터 이상인 인물들이 그녀의 말에 순한 양처럼 따랐다.

네 명의 마법사와 두 명의 검사. 그리고 세탄타님. 이렇게 여섯 명의 소개가 끝나고 그녀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저는 숲의 일원. 젬마라고 해요.”

“숲의 일원이라고 하신다면.”

“네. 엘프입니다. 경지는 뭐. 낮지는 않아요. 아프님도 오랜만에 뵈어요.”

[젬마. 넌 어떻게 나온 거냐? 설마.]

“아니에요. 정.당.하.게 나온 거랍니다. 아! 그리고.”

아프와 똑같이 생긴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작지만, 황금빛의 눈동자를 가진 플라멘 팔코.

[아니마를 데리고 온 걸 보면 확실하긴 한데.]

젬마라고 한 엘프의 어깨에서 날아와서 아프의 곁에 앉아서 애교를 떠는 새.

“그래서. 상세한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속성 신전의 정보와 에첸트로스님이 주신 막대기가 아니었다면 계획조차 할 수 없었던 방법.

“대담한데? 그리고 꽤 확실하기도 한 방법이기도 하고. 근데 괜찮겠어?”

걱정하는 젬마를 보니 엘프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조금 불안하기는 한데.”

생각해 놓은 차선을 이야기하려는 찰나, 젬마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럼. 한 명당 8클래스 한 명씩 붙여주면 되지. 그건 내가 담당해 줄게.”

똑같은 막대기가, 그것도 거의 모든 칸이 차오른 막대기가 젬마의 손에서 튀어나왔다.

표정이 환해지는 다른 6명의 초월자들. 신호와 시간을 정하고 나서는 모두가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젬마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저…. 어째서 이렇게 친절을 베푸시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흐음.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썩 나쁘지는 않은데 말이지. 눈도 맑고.”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는 젬마였지만 대답해 주지 않았다.

“네?”

“아니야. 그나저나 이야기 좀 해 봐. 왜 이렇게 얽힌 거야?”

“어.”

뭔가 싶었다. 자신과 비슷한 경지라 뭐라고 하지도 못 하고, 가장 크게는 엘프를 처음 만났다.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아프의 말이 들린다.

[편하게 말해도 된다. 받을 도움도 다 받아먹어도 된다! 근데 좀 이상하기는 하다. 그냥 숲의 일원이 아니다!]

“그냥 숲의 일원이 아니라고?”

“아프님!”

[뭘 그렇게 소리치냐!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지도 모르는데.]

“아니죠! 이번에 잘못하다가 죽을 수도 있죠!”

왠지 모르게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 살짝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웃기고 있네. 퍽이나. 네가 여기에 있는데? 제대로 소개나 해라.]

살짝 아프를 째려보던 젬마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숲의 일원이자 고귀한 하이 엘프의 손과 발. 숲 지기인 젬마라고 합니다.”

뭔가 엄청나고 거대한 것 같은데 아는 것이 없으니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이 엘프 하나만 알아들었는데.’

하이 엘프. 엘프들 중에서도 소수만 존재하는 고귀한 존재. 세계수를 관리하는 이들.

생명의 잉태로 태어나는 엘프들과 다르게 세계수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난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존재들이었다.

‘그런 하이 엘프의 수족이라고 하면 평범하지는 않겠지만. 모르겠네.’

[숲 지기는 엘프들을 위한 무력부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찰도 하고 뭐. 하여튼 다 한다!]

‘무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안 그래도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데.’

활을 하나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궁사로 보였다. 궁사가 현경이라는 건 처음 보는 광경.

“흐음. 확실히 아는 게 없으니까 놀라지도 않네. 이런 건 좀 편하다고 해야 하나.”

[젬마는 사고를 엄청 많이 치고 다닌다! 숲에서 유명한 사고뭉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프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소리치는 모습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부러운 종족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프. 넌 근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그것도 자세하게 아는 것 같다?”

[고귀한 영수인 이 몸은 모르는 것이 없다! 숲에서도 나 같은 존재는 거의 없다!]

“아프님은 여러모로 숲에서도 특별하신 분이니까요. 생각보다 나이도 많으시고.”

[하! 나이로 따지면 너도 적지 않은 나이다! 범이 보다 5배는 더 살았으면서!]

“아프님!!”

두 사람의 투닥거림이 계속되는 걸 잠시 구경하다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죽을 일이 없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이 계획을 세우면서 솔직히 멀쩡하게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70% 정도 되려나. 아주 잘 풀리면 80%.’

신성과 권능의 연관성을 가지고 하는 도박이었다. 신성에서 나오는 권능. 권능에서 나오는 신성.

7성. 이제는 5성이 된 그들을 같은 시간에 죽이고, 거기에 타격을 받은 에트라를 노린다.

단순한 계획이지만 이 이상의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의뢰를 해결할 수 있는 이들이 중요했다.

‘9서클에 8서클. 이렇게 2인이 찾아가면 마음 놓을 수 있기는 한데.’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에 동시는 바랄 수 없었다. 거기에 언제 전투가 끝날지도 몰랐고.

‘결국에는 내가 버텨야 한다는 거지. 만약에 못 버티면.’

죽는 거다. 중간에 에트라가 눈치채더라도 죽는 것이고. 불확실한 계획.

‘솔직히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지고한 바]에서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렇게 빠르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당황하기는 했는데.’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놀랍기만 했다.

‘그것도 당일에.’

치르체와의 전투가 끝나고 난 그 날의 늦은 저녁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

[[지고한 바]에 잠깐 가야겠다!]

“무슨 소리야?”

아젠스에게 오러 써클과 짝이 되는 권법을 알려주고 치르체와의 전투를 복기하던 중 아프가 다가왔다.

[리퀴두스님께서 오라고 하셨다.]

“어? 뭐? 에첸트로스님이 아니라 리퀴두스님?”

[그래!]

자연스럽게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몸. 생각지도 않은 이름의 등장.

“어째서? 무슨 일로? 나 사고 쳤어?”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가자!]

아젠스에게 말을 하고 난 후 [지고한 바]로 향하는 발걸음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게도 1층은 그대로였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고요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던 바의 모습이 아닌 텅텅 빈 조용한 바의 풍경이 어색했다.

“왔으면 들어오거라.”

에첸트로스님을 만난 공간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의자가 사라졌고, 다른 두 의자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성장했더구나? 그것도 이렇게 빨리.”

미묘하게 상석에 앉아있는 사람. 아니 드래곤은 리퀴두스님이었다.

“리퀴두스님과 에첸트로스님을 뵙습니다.”

“그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말씀은 하셔도 웃으시는 것을 보니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왜 오셔가지고 하루 장사를 망치시는 겁니까.”

툴툴거리는 에첸트로스님의 모습이 어색해 보일 지경이었다. 거기에 리퀴두스님의 눈빛에 수그러드는 모습.

‘리퀴두스님은 드래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이신 거지?’

“다른 게 아니고, 잡것 하나가 맹랑한 짓을 했더구나.”

잡것. 의외로 인간을 후하게 대해 주시는 리퀴두스님께서 저리 말하는 이들은 위신들 뿐이었다.

“네. 사실 저도 그것 때문에 조금 복잡하기는 해요.”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왔다. 애초에 마법진을 만드는데 한 손 거들기도 했고. 생각하는 방법은 있고?”

“그게.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려도 천천히 7성 아니, 6성을 죽이는 것부터.”

“흠. 그도 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번 일은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저도 그렇게 하고 싶기는 하지만.”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아도 역시나 안 되는 것을 재확인할 뿐이었다.

“그래도 작은 도움은 주도록 하마. 사속성 신전에 연락해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막대기도 줘 보거라.”

“리퀴두스님 막대기가 아니라!”

뭐라고 제대로 항변도 못 하고 다시 얌전해진 에첸트로스님의 눈치를 보면서 막대기를 꺼냈다.

“충전해 주거라.”

이미 끝까지 찬 줄 알았던 막대기가 불퉁한 에첸트로스님의 손짓에 옆으로도 가득 채워졌다.

“그걸 사용하면 한 번에 진행할 수 있을 거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조언을 받은 뒤 에첸트로스님이 자리를 비우고 나서야 조금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도와주시는데.”

뭐를 말하고자 하는지 알았는지 피식 웃는 리퀴두스님이었다.

“너무 내가 한 번에 하면 안 되지 않겠니. 그리고 최대한 개입을 않는 것이 좋기도 하고.”

“개입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너도 나중에는 다른 게 보일 거다.”

“그렇다면, 혹시나 안 좋은 거라면.”

“아니. 그런 거랑은 상관이 없단다. 그리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보신 리퀴두스님.

“그리고 네가 우리 일을 도와주는 것이니기도 하니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단다.”

“네?”

“중간계의 조율. 근데 말이 조율자지 마음대로 하면 더 어긋나기 십상이지.”

“그렇다면 그 잡것이라는 이들이.”

“뭐랄까. 작은 곰팡이 같은 것들이라고 해야 하나. 상관은 없는데 치우지 않으면 금세 퍼지는.”

그렇게 다시 말씀해 주시니 한결 편해지기도 했다.

‘그냥 나서시면 될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모르는 게 있나.’

“그나저나 아프는 좀 어떻게 도움이 되고? 사고만 치는 게 아니라?”

아프에 관련된 주제로 넘어가면서 다시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을 그 자리에 있었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

“너 흉보던 생각. 적극적으로 좀 나섭시다? 사고뭉치 아프군?”

[아니다! 나는 사고를 친 적이 없다!]

다시 참전하는 젬마. 그리고 대화를 나누기다가 잠시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확실히 나는 두뇌파는 아니야.’

“젬마님. 혹시 마법을 사용하실 줄 아시나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젬마님이 구세주와 같아 보였다.

“그럼 연다?”

손에서 시작된 마법진이 공동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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