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출항 준비를 구경하고 있던 자신에게 찾아온 총수는 아침을 같이 먹자며 초대했다.
“단 이틀뿐인데, 변화가 있는 것 같다면서 기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너무 배려만 받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자연스러운 대화 내용 중 원하던 말이 드디어 들려왔다.
“저희가 수소문하며 도움을 드리는 동안 혹시 교육을 받으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교육…. 말씀입니까?”
“네. 저희가 북부나 흑색거성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간단하게나마 교육을 해드리고 있답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요? 상인과는 전혀 다른 행보인 듯한데.”
“저 또한 비슷한 아픔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저와 같은 아픔이 없었으면 할 뿐입니다.”
‘머리가 좋으면 연기도 잘 하는 건가?’
안타까움과 슬픔이 묘하게 섞인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어 보였다.
“대단하시네요. 도망쳐온 제가 부끄러워질 만큼.”
다시 해맑게 웃으며 가볍게 이야기하는 총수를 따라 교육이 진행되는 곳으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통로가 나타난다.
“바람이 많이 불다 보니, 저희는 주로 지하에서 많이 생활하게 되더라고요.”
조금 지나자 사람 10명은 들어갈 수 있는 공동이 나왔고, 익숙한 물건이 있었다.
“칠판이 있네요? 다른 사람은 또 없나요?”
“대부분 저희 섬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은 제가 담당한답니다.”
“선생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총수였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테키나가 말한 공을 다 가져간다는 게 이건가? 그리고 이 냄새. 이상해.’
다른 사람의 기척이 없다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달콤한 냄새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몸에서 반응하고 있다는 거니까. 분명 뭔가 있다는 건데.’
[이니티움]에는 착용자에게 해로운 물질을 자동으로 걸러주는 마법이 존재했다.
그리고 작동하는 동안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작동하고 있었다.
“무스님께서는 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글쎄요. 북부에서는 신이라고 하지만 흑색거성에서는 위신이라고 하는 정도랄까요.”
“그렇죠.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랍니다. 북부에서 그러셨다가는 추살의 대상이 됩니다.”
북부에 대한 설명을 하다 이내 습관을 들여야 한다며 따라 하라고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그럼 한 번 따라 해 보시겠어요? 신께서는 우리를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축복이 있기를.”
은근하게 천공의 신에 대한 이야기를 섞어가며 위신이 아닌 신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하기도 애매했던 것은 적응의 일환이었고, 인사말이라며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고역이 이어지고 있을 때, 기다리며 몸을 감추고 있던 아프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확인했다! 이곳이 맞다! 진짜 대범한 놈들이다! 감히 영왕의 영역에.]
‘그럼 테키나에게도 알려줄래? 바로 시작해야겠다.’
[아! 그리고 페루스님께서 청소해주는 대가라고 너무 놀라지 말라고 하셨다!]
알 수 없는 말을 건네고 아프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무릎을 털면서 일어섰다.
“총수님은 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 질문이 너무 자연스럽게 순간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저는 중립이랄까요. 하지만 꼭 한번 뵙고 싶어요. 그럼 저도 인생이 변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저도 한번 뵙고 싶은 신이 생기기는 했습니다. 북부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떨치고 있다고 들었는데.”
“무스님께서도 천공의 신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조금 들은 말은 있습니다. 7성? 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엄청 유명하다고.”
“흑색거성에 그런 이야기도 돌고 있나요?”
아프의 신호가 다시 오고 나서야 마음 편하게 도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아직은 아니지만, 이제 곧 알지 않을까? 침략자로. 안 그래? 알카이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약간의 경계를 했지만, 도에 손을 올린 순간부터는 긴장하는 알카이드.
“흐음. 그 이름은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오히려 이름을 이야기하니 평온하게 돌아온 알카이드였다.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질문한다.
“하. 조금 께름칙 하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대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러게 나도 솔직히 이렇게까지 한 번에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그럼. 흑색거성에 있다는 몽상가의 후예는 누군데? 어라? 너 모르는구나? 진짜 누군지 궁금하네. 완전히 당했어.”
알지 못하는 소리를 하더니 당했다는 소리를 하며 짜증과 분노가 보이니 생각나는 건 학장님이었다.
‘뭔가를 하셨나?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쉽게 단 둘뿐인 상황을 허락했겠지.’
“근데 생각 이상으로 여유로운데? 막내 아니었어?”
“막내라고 해서 가장 약한 건 아니지. 네가 강한 건 알겠어. 무슨 수를 쓴 건지 지금은 마스터로만 보이지만.”
바닥, 벽, 천장에 온통 빛이 나기 시작하며 마법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던전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소리 못 들어봤어?”
그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신전의 사제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이 있다는 7성이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칭하는 것이 너무 웃겼다.
“마법사라니. 너무 웃긴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아?”
“어째서? 그분께서도 인간의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택한 길인데. 더 당당한 게 맞지.”
새로운 해석이었다. 다만 신전에서 마법사라는, 무인이라는 단어가 금지가 아니었다면 수긍했을 터였다.
“그럼. 그분께서 원하시는 바가 있으니 나는 수행해야지?”
위험하다는 감각이 울리기 시작하는 것이 마법진에서 무엇인가 시작되는 듯했다.
‘아직인가?’
페루스님의 선물을 기다리다가 먼저 나섰다. 풍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도(拔刀).
라니우스 1식의 일도양단을 시작하는 그 순간 벽 주변으로 불길이 피어오른다.
‘타이밍 참. 진짜 너무 극적인 걸 좋아하신다니까.’
정확히 보고 도를 휘둘렀지만, 벽과 마법진이 베어질 뿐 알카이드의 모습은 없었다.
뒤에 일렁이는 것 같은 공간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동시에 한 바퀴 돌면서 도를 휘둘렀다.
마치 공간이 방패가 된 듯 중간에 멈춘 도를 빼내면서 자세를 잡았을 때 드러난 알카이드의 모습.
“어떻게! 아니! 영왕 따위가 감히!”
한껏 여유가 가득했던 얼굴이 무너지고 당황과 분노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왜? 잘 안 되나 보지?”
슬며시 긁어주면서 개방한 모든 탑들을, 폭풍을 말하는 에우루스의 탑으로 물들인다.
천장에 있는 마법진이 빛나더니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다리에 더 많은 힘을 주고 뛰쳐나가는데 몸을 막아서는 것들이 느껴진다.
‘뭔가가 계속 부딪히는데. 거슬려.’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들이 느껴진다. 멈칫하는 순간 매직 미사일처럼 보이는 것들이 쏟아진다.
손쉽게 돌파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뒤로 물러서면서 미사일들을 쳐낸다.
도를 앞으로 세운 채, 불과 며칠 전 그 감각을 최대한 다시 기억해내며 집중한다.
다시 떠오르는 수많은 매직 미사일들, 몸을 점점 누르는 이상한 마법을 잊고 한 발을 강하게 내디딘다.
‘라니우스 3식 : 단절.’
사선으로 베어지는 도를 따라 눈앞에 모든 것들이 베어지는 것이 보인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나가는 도격. 그 가운데 있던 알카이드의 왼팔이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팔이 잘린 것을 인지하지 못 했는지 수인을 지으려고 하던 알카이드가 이내 떨어진 팔을 발견한다.
‘생각보다 어렵네. 조절하는 건 아직 안 되겠어.’
거대하고 깊은 사선의 도흔이 남았다. 앞으로 다시 달려나가며 남은 팔로 뭔가 하려던 알카이드의 다리를 노렸다.
또다시 사라진 알카이드의 모습.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거대한 일렁임이 느껴지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잠깐!”
말을 마치기 전에 목을 베어버렸다. 학장님의 말을 기억하며 쓰러지는 시체로 다가갔다.
아공간에서 꺼낸 포션병. 황색의 물길이 찰랑이는 포션은 량이 준 것 중 하나였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시체에 흩뿌리자 순식간에 매캐한 연기를 내며 시체가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져 있던 팔에도 뿌리고 난 후에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학장님의 말이 맞았나 보네. 매개가 있어야 가능할 거라는 게.”
다행히 이번에는 천공의 신의 등장이 없었다. 페루스님의 저 불길도 도움이 된 것 같았다.
“하아.”
갑자기 아득한 느낌이 찾아왔다. 5명이나 남고 그 위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래도 방법은 있으니까 됐나.”
[순식간에 처리했네? 많이 늘었다!]
다시 돌아온 아프가 보이자 조금이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권능이라는 게 뭔지도 대충 감이 잡혔으니까.”
[그럼 빨리 시작하자! 한 번에 몰아치지 않으면 진짜 힘들 거다!]
아프의 말에 [지고한 바]에서 받은 나무 막대기를 꺼냈다. 막대에 오러를 불어넣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거였지?”
가장 아래에 쓰여있는 것이 5서클이었다. 그리고 가장 위는 역시나 9서클.
에첸트로스님의 배려로 막대의 게이지가 가득 차 있어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감사한 줄 알아라!]
아프의 말 그대로였다. 아프에게 듣기로 막대에 한 칸을 채우는 것도 쉽지 않다고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의뢰를 통해서 또는 에첸트로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채우는 칸들.
그런 한 칸이 총 100개가 있었는데, 자신은 그것이 가득 차 있었다.
“이거 최소 10칸이 있어야 9서클을 부를 수 있다는 거지?”
[그래! 넌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10명을 부를 수 있는 거다!]
“그렇다고 다 의뢰를 받아주는 것도 아니잖아?”
듣기로는 인간이 아닌 이종족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도 그게 있고 없고가 차이가 크다! 네가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좋으냐!]
사실이었다. 거기에 자동으로 공간이동이 되어 나타난다는 것도 엄청난 기능이었다.
‘진짜 드래곤이란. 도대체가 보이지가 않네.’
솔직히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들고 [지고한 바]의 에첸트로스님 찾아갈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근데 아프가 반대했단 말이지. 평생을 저당 잡힐 수도 있다고.’
아프가 아니었으면 위험할 뻔했다. 상념을 뒤로하고 다시 손에 쥐어진 막대에게 시선을 돌렸다.
각 클래스가 새겨진 글씨가 떠오르고 오러를 조절하면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비상시에는 따로 작동시키는 방법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시간을 가지고 의뢰할 수도 있었다.
“그럼. 9서클.”
아프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솔직히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기대를 크게 가지지 않고 9서클을 선택한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