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지중해. 땅 가운데 있는 바다라는 간단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
북부와 흑색거성을 나누는 바다. 만(灣)이 길고 넓게 들어와 하나의 바다로 불린다.
“거기에 막내가 있다는 거야?”
[그렇다! 그 중간에 있는 섬에 있는 거로 파악된다.]
“남은 별이 6개인가? 치르체가 6성이라고 했지?”
[그렇다! 치르체가 미자르였다!]
“7성이 이름이 아닐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7성이라는 이들의 위치가 되면, 에트라가 흠향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흠향이라. 천공의 신에게 이미 먹힌 거 아니야 그 정도면?”
[그러니 이름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이를 아는 이들은 없겠지만.]
아프에게 점차 ‘신’이라는 존재들에 대해서 들을수록 반감이 커져가는 것 같다.
‘꼭 하는 짓이 귀족들이랑 비슷하단 말이지.’
밑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귀족들.
비록 안 그런 귀족도 있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대다수 귀족이 그랬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열등감을 털어낸 지금도 그런 행태를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그 밑에서 바보같이 충성하며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이었다.
7성이 꼭 그런 인간들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프. 7성 중 막내가 아카이드라고 했지?”
[막내라고 얕보면 안 된다! 7성의 두뇌라고 말해주지 않았냐!]
“알아. 알리오츠가 본래 두뇌 역할이었지만, 알카이드의 등장으로 변했다며.”
[그러니까 지중해에 파견이 된 거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지중해 아래 화산에 불의 신전 본단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한 화산이 존재할 정도로 거대한 바다라는 뜻이었다.
거대한 바다의 크기만큼이나 섬들이 꽤 여럿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이 세력이 셋 있었다.
“하나가 북부에서 도망치는 이들을 잡기 위한 이단심문관들이고?”
[그리고 하나는 그들을 돕기 위한 흑색거성의 수군이다. 그냥 해적으로 알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곳이란 말이지? 진짜 의왼데. 아니 머리를 잘 쓴 건가?”
개인의 무력면에서는 이단심문관이 강세였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조직력은 수군이 우위였다.
그 중간 빈 공간을 차지한 것이 해상이었다. 바다의 상인이라고 스스로 칭하는 이들.
돈을 받으면 이단심문관이든 수군이든 가리지 않는다. 높은 금액을 부른 이들을 돕는다.
이단심문관들도 수군도 이들을 처리하고 싶지만, 해상이 어디에 붙느냐에 따라서 판도가 바뀌기에 쉽사리 손을 댈 수 없었다.
해상이 등장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이들을 규합하고 하나의 세력이 된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신흥세력이 공백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평가받는데 그들을 규합한 수장이 바로 아카이드였다.
“왜 꼭 나는 세력들이랑 사건 사고가 얽히게 되는 걸까.”
[네 팔자려니 해라! 그래도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다고 하니 다행 아니냐!]
“뭐 그것도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표면적인 것만 믿기에는 좀 그렇잖아?”
[가끔 날카롭기는 한 것 같다!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지중해가 누구의 영역인지 생각해 봐라!]
“페루스님! 그렇네. 아무래도 바다다 보니까 잊게 된다.”
세상의 불을 관장하는 페루스님이라고 하지만, 각 영왕들이 존재하는 지역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어쨌든 할 만하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다!]
“그럼 일단.”
경지를 마스터로 조정하면서 느끼기를 확실히 [이니티움]만큼이나 범용성이 있는 물건은 없는 것 같았다.
“옷은 이미 준비해 뒀고, 그럼 내일인가?”
[그렇다! 내일이 격랑의 시작이다!]
“이거 인위적인 거지? 아니 영위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그냥 원래부터 그런 바람이 있는 곳이다! 영수와는 상관이 없다!]
“진짜 자연적이 현상이라고? 격랑이 몰아치는 게?”
북문을 지나쳐 달려오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평온하고 잔잔한 바다가 보였다.
다행히 시선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학장님이 제대로 알려 주신 듯했다.
‘흑색거성에 포함되지만, 중립지대 같은 곳이라고 했던가?’
흑색거성에 포함되다 보니 천공의 신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학장님과 약속한 장소로 가며 보이는 눈앞의 바다는 잔잔하고 평온 해 보였다.
이 평온하고 잔잔한 바다가 오늘 밤부터 급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4일간 격랑이 몰아치기 시작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근데 진짜 자신 있냐!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다! 네가 배를 몰다니!]
“놀라지나 마라. 내가 한때 해적을 했었다고!.”
[네가? 해적을? 전혀 안 어울린다! 아니면 그냥 약탈만 담당했나!]
“보고나 말하시지.”
과연 학장님이랄까. 약속한 장소에 원하는 그대로의 배가 놓여있었다.
[이런 쪽배로 격랑을 가겠다는 거냐? 미쳤냐? 아니면 숨겨둔 날개가 있냐!]
“두고 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격랑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보자!]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 12시가 되었다는 듯 잔잔하던 바다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기한데? 근데 이 정도면…….”
말을 끝내기 전에 점차 파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들어오니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하는 거야?”
[자연의 신비라고나 할까! 협곡들에서 나오는 바람도 있고, 대양에서 부는 파도와 바람도 있지.]
아프의 말마따나 잠잠하던 바람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강풍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파도뿐만이 아니었구나. 격랑이 괜히 격랑이 아니었네.”
작은 소용돌이들이 군데군데 생기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평온했던 바다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광경.
[지중해에서 평생을 배를 몰아도 죽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해로를 알아도 위험한 바다라는 거다!]
여전히 못 미더운 듯 배에 오르려는 자신을 말리려는 아프였지만 괜찮았다.
“저 정도면 얌전한 편이지. 괜찮아.”
과거 3대대에서 기본적인 항해술을 익혔었다. 그뿐이라면 이런 생각은 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내 할머니가 좀 대단한 분이었거든.”
[할머니라면? 리퀴두스님이 제일 궁금해하시던 그 인간이냐!]
리퀴두스님께서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관심 있게 들으셨던 부분은 바로 선천 재능에 관련된 이야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를 느끼던 대상이 다름 아닌 할머니. 바다를 움직인다는 것에 대해 큰 흥미를 드러내셨다.
“어. 어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른다고, 엄청 굴렀지.”
바다 그 자체를 다루는 할머니께서 스파르타식으로 몸에 박아넣은 항해술.
길을 찾고 해로를 보는 눈을 기른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영 불안하지만, 뭐 죽지는 않을 테니까!]
“웃기고 있네. 깔끔 중독자.”
바람으로 한 방울의 물도 자신에게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아프를 비웃어준 뒤에서 배에 올랐다.
배에 오르자마자 흔들리는 바다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정도는 평범한 정도였다.
‘기감을 넓게 퍼트리고, 바람에 집중한다. 바람의 흐름도 바다의 흐름도 모두 느낀다.’
넓게 퍼트린 기감이 주변의 바람을 알려주고 바다의 흐름을 알려준다.
바다의 흐름을 타면서 지중해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배. 조금씩 파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 보이고 느껴진다.
[생각보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다! 뭐냐!]
“뭐긴. 이게 생존 항해라는 거다.”
할머니께서 몸에 박아 넣어준 항해술에는 최대한 바다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이 주가 되었다.
도대체 어떤 세상을 상상하신 것인지 모르지만, 배가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 방향을 원하는 곳을 갈 수 없지 않냐!]
확실히 아프의 말대로였다. 바다를 거스르지 않기만 하면 같은 자리를 돌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마나가 중요한 거지. 최대한의 효율로.”
‘솔직히 선천 재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겠지만.’
평생 바다를 누벼온 할머니가 항해술을 쉽게 생각하고 가르쳐 줄 리 없었다.
흐름을 보는 눈과 감각. 거기에 선천 재능이 합쳐지니 몸에 박아 넣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신 것이다.
그 결과가 격랑을 하나하나 차분하게 넘어가고 있는 쪽배에서 나타났다.
[미쳤다! 미쳤어! 재밌다! 너 배도 꽤 모는구나!]
처음에는 걱정 가득했던 아프였지만, 조금씩 배가 나아갈수록 항해를 즐기고 있었다.
[저기 저기 큰 파도가 온다! 저걸 넘어라!]
이제는 아예 큰 파도를 타자고 말하며 신나 하는 아프였다.
‘그런 주제에 꼭 괜찮은 길을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마냥 즐거움만 챙기면 뭐라고 하겠는데, 아프가 말하는 길들이 빠른 길들이었다.
높이 솟아오른 파도에 배가 적당한 위치에 잡기만 하면 손쉽게 나아갈 수 있었다.
격랑이 치는 때에는 죽음의 바다라고도 불리는 것과는 너무 다르게 파도를 타면서 목적지가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프.”
[알았다! 그리고 인정이다! 넌 배를 잘 몬다! 나중에 또 하자!]
서서히 바람이 되어 모습을 감추는 아프. 그와 동시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섬.
작은 섬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항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단단하게 고정되어있는 수많은 배들.
해상의 깃발을 확인하고 나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배를 두 동강 냈다.
거대한 널빤지가 된 배의 조각을 붙잡고 바다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겼다.
서서히 돌고 돌아 항구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자 눈을 감고 기절한 척을 하기 위해 호흡을 멈추었다.
서서히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호흡이 줄어들자 청각은 오히려 예민해졌다.
몸을 뒤덮는 파도가 느껴지면서 서서히 항구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돌고 돌아서 항구에 도착하자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들린다. 배의 고정을 확인하는 인부들의 목소리.
학장님이 준비해준 옷은 바람이 그려진 서탑의 정복. 그를 알아본 이들이 더 호들갑을 떨었다.
곧이어 갈고리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지면서 부양감이 들었다.
손으로 몸을 만지며 생사를 확인한 후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었다.
‘대처가 빨라. 체계가 잘 잡혀있네?’
자신을 발견하고 옮겨는 동시에 몇 명은 보고하러 떠나가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왔다.
항구의 창고 같은 곳에 뉘어진 뒤 모포가 몸을 둘러싸는 동시에 문이 열리며 책임자로 보이는 이가 들어온다.
한두 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대처. 책임자 또한 능숙했다.
“확실히 서탑의 인물이군. 보아하니 무인인 것 같고. 너! 본단으로 가서 일행수님께 보고하고 나머지는 가서 할 일을 해!”
일꾼들이 나가자 책임자와 같이 들어온 이들이 진형을 짜고 한 명이 다가온다.
“대장님. 기식이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건강합니다. 다른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이 날씨에 난파당해서 왔는데 그저 기식이 약해졌다라. 가서 증원을 요청하도록.”
“그럴 필요 없네. 수고했어. 이후의 일은 내가 맡도록 하지.”
“일행수님을 뵙습니다!”
“고생했네. 오늘의 일은 확실히 보고하도록 하지.”
갑옷을 입고 있는 듯한 소리가 나는 두 사람이 들것에 자신을 올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내 울렁임이 느껴지면서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과연 누구한테 가려나.’
일행수가 왔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어디로 갈지는 여전히 도박이었다.
‘학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가야 할 텐데.’
창고를 나오자 다시 바람 소리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리가 멈추었다.
“대행수님.”
일행수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어떤 대행수인지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맑은 음성이 들려왔고, 문이 닫혔다. 방 안의 기척은 오로지 대행수와 그 호위 한 명뿐이었다.
“서탑의 도망자인가. 아니면….”
그러면서 무언가 조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적막이 찾아왔다. 밖의 소리가 젼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대단하시네요. 정말 가능할 줄이야.”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