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언제나 똑같은 학장실은 처음으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방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오! 인기가 많다! 너가 들어가니까 다들 너만 바라보고 있다!]
50이 넘어가는 이의 선망 어린 눈빛을 받는 것이 몹시 어색한 가운데, 한 명의 원망이 보인다.
“학장님?”
“오셨습니까. 범님.”
이미 말을 맞추어 놓기도 했지만, 막상 존대를 들으니 굉장히 어색했다.
‘진심인 것 같기도 한데.’
“구역주들과 탑주들 그리고 치안수반과 행정수반, 성주입니다.”
마지막에 성주를 소개할 때, 자신을 향해서 원망의 시선을 던지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개를 받으며 확실히 아카데미 학장이 가지는 권위를 다시 보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마지막에, 치르체 시신이 한 말 때문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치르체가, 아니 천공의 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저도 확실히 그 때문에 학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아프에게 들은 이야기를 대충 정리해 학장님에게 전해주었다.
“어쩐지 하늘이 살짝 어두워졌다고 느꼈는데, 허. 우리가 상대하는 것이 그런 괴물들이라니.”
마법사로 보이는 두 탑주는 계산을 해보듯 대화를 나누더니 나이가 조금 더 어린 탑주가 입을 열었다.
“저희도 가능은 합니다. 다만 수많은 마정석과 거대한 마법진이 필요합니다. 9서클이라면 간단해지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말로만은 불가능하다 이거군요. 신이라. 맹종하는 멍청이들만은 아니라는 거군.”
대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용히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두가 일반인이 아니기에 한 명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죽여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활발하게 나누던 이야기가 순간 뚝 끊기고 모두가 그 말을 읊조린 남성을 바라보았다.
모인 시선에 굴하기는커녕 기회라는 듯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다들 확실한 대책을 두고 왜 다른 방향의 이야기만 하는 거지?”
당당한 말투로 말하는 남성은 성주였다. 오르지아의 아버지이기도 하면서 자신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이었다.
‘아프. 저거 좀 이상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라면 흑색거성의 전력을 다하면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방 안의 분위기는 빙하 한가운데처럼 싸늘해졌다. 다른 이들은 너무 당황해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잠시만 있어봐라. 이상한 게 있기는 하다!]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자신의 말에 동의한다고 생각하는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인간의 출처도 불분명하지. 혹시 아나? 이것 또한 하나의 연극일지.”
[치르체가 등장한 시점이 10년 전이라고 했나?]
‘어. 아젠스가 확인하기로는 그렇다고 하더라. 마치 아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흑색거성의 성주로서. 인장을 걸고 하는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 저 이방인을 제압하도록!”
아무도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않자 동의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제는 막 나가는 성주였다.
더이상 두고 보았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인지 치안수반이 먼저 나섰다.
“거부하오. 미친 것 아니요? 아무리 애지중지하던 딸이 죽었다고 하나. 신에게 꼬임을 받아 넘어갔고 결국에 자살을 한 것 아니요!”
“감히! 성주의 인장으로 한 명령에 거부하는 것인가! 치안수반 자네는 진정 맹세를 어길 셈인가!”
“웃기고 있네. 그 딸을 교수로 꽂아 넣으려고 스스로 정한 제약은 잊은 모양이지? 참 편한 머린데?”
이제는 질렸다는 표정의 치안수반을 자제시키며 한 마디 더하는 것은 그 옆의 행정수반이었다.
“성주님. 자중하시지요. 최초로 타의로 성주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으시다면.”
두 사람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면서 분노에 떨고 있는 성주였지만, 모두가 한심하게 보고 있었다.
“학장님.”
확실히 눈치가 빠른 학장님이었다. 정중하게 성주를 재운 학장님.
“15년 전부터 성주가 이상하게 변했다고 하셨죠?”
“이상하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확실히 그런 경향이 없지 않기는 했죠.”
사실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오르지아가 지나치게 아픈 손가락이구나 싶은 시선들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흑색거성에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가진 자에게는 책무와 더불어 권리가 생겼다.
자신의 자리를 활용해서 이득을 취해도 된다는 문화. 다만, 선을 넘어가는 순간 사정없이 물어 뜯긴다.
그 가운데에서 철두철미하게 깨끗함을 유지하던 성주였다. 능력이 있으니 2번이나 성주를 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르지아의 등장 이후로 이 모든 평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흠이 없던 성주에게 거대한 흠이 생겼다.
그리고 선을 넘어서 이득을 취한 순간 역대로 가장 약한 성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성주라고 할지라도 아카데미 교수로 만드는 것은 분명 선을 넘는 행위.
그렇기에 성주의 가장 강한 힘 중 하나인 인장을 사용하는데 제약이 생겨났다.
그런 성주를 바라보는 시각은 역시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성주의 위치에 있으면.”
성주뿐만 아니라 탑과 구역 그리고 행정과 치안에 관련된 이들 중에서 고위직에 있는 이들은 정신감정을 받는다.
1년에 2번 받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이는 아카데미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문제가 있었다면 진즉에 발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죠. 만일 그게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인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아프의 분석을 그대로 읊었을 뿐이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다른 듯했다.
순식간에 대화가 오가더니 아프가 설명해 준 대부분의 것들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생각 이상으로 흑색거성에 뿌리내린 것들이 많다는 거군요.”
모두가 진지하고 차분해진 이 시점이 자신이 빠지기 가장 좋을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저는 흑색거성에서 우선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성주의 막말이 뱉어졌을 때와 같은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저 때문에 흑색거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에 있으면 더욱 악화가 된다고 하더군요.”
“누가…?”
어떤 방법을 만들기 전에는 보내지 않겠다는 학장님의 의지였지만, 쉽게 설득할 방법이 있었다.
“[지고한 바]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고한 바]의 등장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 있는 이들은 그곳이 평범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
“그럼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그곳에서 방법도 알려 주신 겁니까?”
“방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길이지만, 어떻게 될 것도 같습니다.”
아쉬워하는 이들의 눈길이 꽤 의아했지만, 결국에 받아들이는 이들을 뒤로하고 방으로 향했다.
“근데 왜 이틀 뒤에 가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뭐라도 챙겨주려고 하는 것 아니겠나! 넌 영웅이다! 봐라!]
“하긴, 솔직히 역적 취급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성주가 말할 때 놀라지 않았던 이유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오히려 성주만 그런 반응인 것이 놀라웠다. 어찌 되었건 자신은 재앙을 몰고 온 인간이었다.
[눈에 바로 보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바로 전에 네 신위를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둘 다이려나?”
학장님의 방에서 내려오니 방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젠스?”
조금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의 아젠스. 이제는 대놓고 눈에 존경이 흘러넘친다.
“교수님….”
“뭐야. 왜 이래? 일신의 무는 몸을 지킬 정도면 된다며?”
아젠스를 가르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분명 재능이 있는데 욕심이 없었다.
‘한계가 확실한 것에 전념하기 보다 사람을 다루는 거에 힘쓸 거라고 했는데, 지금 눈은.’
자신의 길을 꽤나 명확하게 정하고 가고 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젠스의 눈에는 존경과 더불어서 강한 욕심이, 욕망이 존재하고 있었다.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0에 가까운 확률이라고 해도 교수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네가 정한 길은 어떻게 하고?”
“그게 변한 건 아니에요. 잠을 조금 더 줄이면 되겠죠.”
“지금 가르쳐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적어도 그랜드 마스터까지는 갈 수 있는 무예다?”
아젠스에게는 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신법인 풍도와 수호유술을 개량한 투법.
‘거기에 오러 써클도 가르쳐 주었는데 말이지.’
처음 대면했을 때,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배움을 받으려면 오러 써클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했었다.
각오를 보고자 한 일이기도 했고, 반응을 보고자 한 일이었는데 고민 없이 알겠다고 대답한 아젠스였다.
‘자기가 바라보는 시선보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장기적으로 훨씬 옳다고 했던가?’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 조금 지켜본 후 가르쳐 준 것은 무광님이 만든 오러 써클이었다.
구층일원공과 바람의 탑을 참고해서 그 누구도 아닌 무광님이 만든 오러 써클.
‘싹이 보이는 놈이면 가르쳐 주라고 하셨지. 진짜 괴물이라니까.’
참고만 하라면서 만들어서 보여주신 것만 해도 5종의 무예가 있었다.
“이 써클에 짝이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역시 감이 좋은데? 근데 굳이 필요할까?”
“그 짝이 있다면 그랜드 마스터 이상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젠스가 솔직히 나오는 이유. 자신이 굳이 가르쳐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이다.
하지만 치르체와의 전투 과정에서 아젠스의 공이 상당했고, 나름 흑색거성에는 빚진 마음이 있기도 했다.
‘아젠스가 최초의 왕이 되면 그도 꽤 괜찮을 것 같으니. 뭐 재앙이 될지도 모르지만.’
“3일 후에 떠나야 해. 그동안 죽었다고 생각해라.”
얼굴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기색이 만연하는 것을 보아하니 더욱 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몸에 하나하나 새겨주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젠스를 훈련시키는 동안 치르체와의 전투에서 복기를 함께할 생각으로 연무장에 들어갔다.
*
아젠스를 가르치고, 치르체와의 전투를 복기하느라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스승님.”
이제는 교수님이 아니라 스승이라고 부르는 아젠스를 보면서 조금 묘한 감정이 생겼다.
“스승은 무슨. 그리고 네 무예의 뿌리를 잘 기억해라. 누가 창안했는지도.”
무광님께 허락을 받은 일이기에 가르침을 내리기 전에 무예의 뿌리를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꼭 다시 찾아오셔야 합니다.”
“그때는 흑색거성이 아니었으면 한다만. 두고 보마.”
학장님의 방으로 올라가기 전 아젠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정리를 마쳤다.
[네 첫 번째 제자냐!]
‘그렇다고 해야겠지? 진짜 진지하게 가르쳤으니까?’
[호오? 나중에 꼭 다시 찾아오자!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하다!]
아프와 함께 학장님의 방으로 올라가니 성주를 제외하면 동일한 인원이 인원이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도밖에 못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 한 가운데 있는 것은 허리춤에 찰 수 있는 작은 주머니였다.
아공간. 이들에게 있어서 주머니만으로도 엄청난 보물일 텐데 그 안에는 생필품이 가득했다.
“이 정도가 아니라 몹시 과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저희 삶의 터를 지켜주신 분에게 이 정도밖에 입니다.”
탑주들도, 구역주들도 꼭 다시 찾아오라면서 신신당부를 하는 모습이 의아했다.
[배움에 열린 곳이니, 강자에 대한 존중이 당연하다!]
‘강자가 한 명이라도 가르치면 흑색거성에 이득이다? 그게 돼?’
[그게 지금까지 흑색거성이 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라는 걸 아는 이들이니까 그렇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해?’
[이미 알아 왔다! 우선은 막내부터 사냥하는 거다!]
‘사냥이라…. 내가 그거 하나는 잘하지.’
두 번째 스승님도, 무광님도 무인이라기보다 사냥꾼에 가깝다고 평가했었다.
[가자!]
흑색거성의 북문을 통해서 나온 이유. 의외로 막내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중해라…. 신기한 곳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