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정말 듣고 싶지 않던 이름을 듣고 난 후에 아젠스가 넋을 놓게 된 인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치안청의 정보국장이라. 그것도 21년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거지.’
7년간의 임기를 가지고 있는 치안 수반. 4명의 치안 수반이 지나가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
그것도 한미하거나 기피하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요직 중 하나인 정보국장.
“덕분에 썩은 부분을 잘라낼 수 있게 되어서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단련되어있는 몸도 아니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중년인.
“이미 알고 계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는 이미 10년 전부터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했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이번에 그 특강으로 인해서 더 드러난 이들도 있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정보국장의 말에 의아함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신을 추종하고 믿는 것은 꽤나 엄격하게 금지가 되어있습니다. 형벌도 꽤 강하고요.”
정보국장의 말 그대로였다. 신을 믿는 행위. 신전을 짓거나 전도를 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알려지기로 인간이 신이 된 경우가 아니라면, 참 애매해지기 시작하지요.”
아리송한 이야기였다.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인간에서 신이 된 신들만이 존재했다.
“가령 태양이라던가 말이지요. 마치 그냥 태양에 감사하는 단체인 것처럼 말이지요. 일상에 감사하는 신념이라고 한다면 말이지요.”
“말장난…. 아닌가요?”
처음으로 크게 소리를 내서 웃는 정보국장이었다.
“실로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말장난에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여러 합의체로 인해서 돌아가는 흑색거성. 그 최고 수뇌조차 3인 체제.
그렇기에 명확하지 않다면 강제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인즉슨 드러나기만 한다면 저희가 움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계신 정보국장님께서 굳이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유이기도 해.”
가장 먼저 썩기 시작한 부위도 정보국이었다는 것이 학장님의 설명이었다.
“아무래도 흑색거성의 외부에 나가는 대부분의 인원이 정보국 소속이니까.”
그렇기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확실한 증좌가 잡힐 그 날을 위해서.
‘대단하네. 그동안 정보만 모으면서 그 인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대면하고 있었다는 게.’
“역시 무색무취무성.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색도 없고 향도 없고 성과도 없다고? 그게 칭찬인가?’
하지만 그 말에 이채를 띄면서 아젠스를 바라보는 정보국장.
“허허. 그걸 알아주는 이가 학생 중에도 있을 줄이야. 정보국 요원조차 무시하는데 말이지?”
“정보를 다루는 인물이 성과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는 것을 모르는 머저리일 뿐입니다!”
항상 허허거리던 아젠스가 진지하게 큰소리를 치는 것을 처음 보는 듯했다.
“역시라고 해야 하나? 아카데미 그림자의 주인은 좀 다르네요? 정말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 말에 표정이 굳는 아젠스. 아카데미의 그림자라는 건 처음 들었다.
“아카데미에 산재한 정보를 다루는 동아리들, 그 위에 군림하는 동아리가 아닌 단체.”
‘오? 아젠스가 그 정도였단 말이야?’
“3년 전에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아카데미 내에서는 가장 확실한 정보만을 다룬다는 단체.”
‘그나저나 표정 관리하는 법도 가르쳐야 하나?’
“인원이 몇 명인지 확실하지 않음. 드러난 인물은 네 명. 그중에서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인물. 맞지요?”
천연덕스러운 정보국장의 표정과 다르게 아젠스의 표정은 심히 굳어있었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배신자가 있는 건 아니니까.”
‘오? 표정이 다시 돌아왔네? 그만큼 놀랐다는 건가.“
“너무 낱낱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어떻게 아신 건지 여쭈어도 될까요?”
“아카데미 학생이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걸 오늘 알게 되어서요. 기뻐할 수만은 없네요.”
“아니. 진심입니다. 아젠스 군의 단체를 조사하기 위해서 한 팀을 배정했으니까요. 당연한 결과일 뿐이죠.”
“팀이라고 하신다면…?”
“그것도 제가 따로 만든 부대의 팀이 움직였으니. 제가 아젠스 군을 보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갑작스럽게 빠진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젠스의 정체를 알아낸 팀장과 함께 일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대충 이야기를 끝내고, 각자 할 일과 시기를 정한 후 아젠스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괜찮겠어? 아무리 그래도.”
정보국장의 밑에 있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아젠스의 단체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제 목표는 치안 수반이니까요.”
“근데 왜 목표가 치안 수반이야?”
질문을 듣자 차가운 물을 가지고 오더니 소파에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치안 수반의 휘하에 군대가 있어요.”
“군대? 치안청에 군대가 있었어?”
“마탑들과 함께 만든 군(軍)이 있어요. 독투스 가문의 비원을 이루는 것. 제 꿈이에요.”
“군대랑 비원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데?”
“지금의 3인 체제를 제안하고 만들어낸 게 저희 시조님이라는 건 알고 계시죠?”
고개를 끄덕여 주자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젠스.
“그때. 시조님과 치열하게 논쟁을 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알아. 시조님과 결혼한 분이잖아.”
그 말에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아젠스. 아프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교수님을 가끔 엄청 똑똑하신 것 같아요. 하여간 그분께서는 철혈정치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라고 주장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시조님도 동의하셨고.”
“근데?”
“그 철혈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아직까지도 왕국이라 할 수 없는 거고요.”
“호오? 생각 이상으로 야망이 엄청난 녀석이었네?”
초대 국왕이 꿈인 녀석이 눈앞에 있다는 게 꽤 신선했다.
“교수님께는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독투스 왕조를 이루는 것. 북으로 진출하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잘해봐라. 너라면 꽤 잘할지도? 후대는 모르겠지만.”
아젠스와 함께 하면서 느낀 아젠스의 가장 큰 장점은 객관적인 시선이었다.
훗날까지도 자신에게 객관적인 저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꽤 좋은 왕이 될 것 같았다.
“헤. 역시 교수님은 어디론가 떠나실 작정이신가 보네요.”
욕심에 서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젠스의 표정에 원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아서라. 날 품기에는 멀었다.”
“교수님이 계시면 오래오래 제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내가 없다고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 거야 임마. 그리고 네 단체가 있잖아?”
팀장이 붙는다고 했을 때, 왜 반대를 안 하고 오히려 좋아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
“교수님. 어떤 모습이 진짜 교수님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정보국장님은 모르는 눈친데.”
“정보의 차이지. 난 네 꿈을 알고, 그분은 모르는 거니까. 믿을 수 있는 애들인가 보네.”
“5년 넘게 공들였는데, 당연하죠. 그래도 온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뭐. 알아서 잘하겠지. 그 팀장님이나 잘 써.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솔직히 2주? 만약에 팀장이 제가 생각하는 사람이면 1주?”
“갑자기 반으로 확 줄어들었다?”
“정보국의 팀장이라는 건, 그 정도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기본 조사도 끝냈고.”
“어때? 조금 할만한 구석이 있어?”
“네. 우선 너무 완벽하게 같다는 점. 확실히 이상하더라구요.”
“완벽하게 같다니?”
“어린 시절이면 사고도 치고, 실수도 하고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럼 누구에게는 장난꾸러기나 말괄량이 이런 평가가 있어야 한단 말이죠.”
“근데 안 그렇다 이거구나?”
“네. 다 똑같아요. 예의가 바르고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순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확실히. 다행이네, 그나마 완벽하지 않아서.”
“에이. 저니까 이렇게 의구심도 가지고 확인도 하는 거죠.”
“예.예. 빨리 가시죠. 그림자의 주인님? 와. 소름 돋아라.”
“갈 거거든요! 근데 아프는 왜 안 보여요?”
얼굴이 시뻘겋게 올라온 주제에, 정신은 잘 잡고 있는 것이 참 용한 아젠스였다.
“잠시 밖에 돌아보고 온다고 나갔어. 훠이 훠이.”
아젠스가 나가고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프가 다시 돌아왔다.
[네가 말한 대로다! 어떻게 알았냐?]
“나도 눈치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서 말이지.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이번에 밀어주는 건 아젠스인가.”
아프는 어딜 간 것이 아니라 학장실에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바람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그 장소에서 알게 된 사실은 정보국장 또한 독투스 가문의 소속이었다는 점.
아젠스는 모르겠지만, 학장님과 정보국장은 아젠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근데 왜 그동안 없었을까? 있을 만도 했는데!]
“학장님 말에 따르면 독투스 가문은 특이하게 뭐 하나에 꽂힌다고 하더라.”
[아! 근데 그게 왕이었던 경우가 없는 거였나!]
“그래. 그리고 애초에 방계라고 하기에는 너도 알잖아?”
[맞다! 아젠스도 꽤 향이 강하게 나기는 했다!]
“손이 귀한 가문이니까.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꽤 재밌겠네. 종종 들려야겠다.”
[가만 보면 넌 사건을 몰고 다니는 것 같다! 거기에 진짜 성공하면 왕가의 무예가 네 무예 아니냐!]
“내 무예라기보다는 변형이지만, 그건 두고 봐야지.”
[너도 꽤 성공률을 높게 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 아니냐!]
“독투스 가문이 오히려 더 영향력이 강하더라고. 꽤 여기저기 퍼진 곳도 많고.”
[그래서 언제로 시기를 정했냐! 그걸 못 들었다!]
“2주. 학장님도 그 정도에 맞출 수 있다고 하셨으니까. 역시 드래곤이라고 해야 하나.”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마법진.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전혀 새로운 것이 보였다고 하셨다.
[당연하다! 마나를 다루는 드래곤에게 마법은 형식에 불과하니까!]
“그래.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더라. 의지를 법칙으로 만들다니. 진짜 괴물들이네.”
[너도 만만치 않은 괴물이다! 진짜 리퀴두스님의 혜안은 대단하다.]
“아직 멀었어. 길도 못 찾았는데 뭐. 알 것도 같은데.”
[왜 길을 못 찾는지 모르겠다! 네 앞에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그전에는 그런 소리 안 했잖아?”
[네가 충분히 고민하고 알 줄 알았다. 선천 재능!]
‘멍청이!’
아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머릿속에 안개처럼 자욱하던 그곳에 똑바른 길이 하나 생겨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선천재능이 있었는데도 다른 것에서 길을 생각하려는 게 잘못이었어!’
이미 길이 존재하는데, 다른 곳을 찾는다고 열심히 찾은 꼴과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고민과 생각들이 하나로 모이며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고맙다. 너가 아니었으면 한참을 돌아갈 뻔했어.”
[역시. 넌 이 고귀한 몸이 아니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가슴을 한껏 내밀며 날개를 홰치는 아프의 모습이 처음으로 예뻐 보였다.
알고 있던 것을 정리하고, 다시금 선천 재능을 깊이 돌아보며 강의를 진행하니, 2주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좌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지금은 아예 거대한 운동장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