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흑색거성은 네 개의 쌍둥이 탑이 각 방위를 지키고 있었다. 남쪽의 불의 마탑.
마탑과 무예의 탑이 중간부터 꼬인 듯 올라가는 정상에는 언제나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다.
그 불꽃의 밑에 마법진이 존재했다. 오고 가려면 불꽃을 지나가야 하는 그야말로 절묘한 위치였다.
마법진에서 나오자마자 반겨주는 이는 다름 아닌 불의 마탑의 탑주였다.
“흑색거성, 그중에서 불의 마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도사 칸데오라고 합니다.”
마법사는 경지를 특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심장에 고고하게 흐르는 서클이 느껴진다.
“인간이 8클래스에 오르는 게 가능한 일이었네요.”
무례할 수 있었지만, 자동적으로 나오는 감탄이었기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 경지에 도달하신 분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니 오히려 어색합니다만?”
“마법은 뭔가 다른 것처럼 느껴져서. 혹시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마법을 잘 모르기에.”
“아닙니다. 오히려 상찬으로 들렸으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가실까요?”
특이하게도 영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신전과 거리를 두기 위함이라는 설명에 이해했다.
“저희는 이단이니까요. 참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이러니라면?”
“인간이 기적을 일으켜 경지에 올랐는데, 그 과정을 가고 있는 이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말입니다.”
마도사의 존재에 놀람이 사라진 후 마법진에서 벗어나 펼쳐지는 경관에 다시 한번 말을 잃었다.
“거대하죠? 아마 시티로 친다면 적어도 7개의 시티가 합쳐진 크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중앙에 보이는 성이 작아 보일 정도의 크기. 북쪽에 있는 쌍둥이 탑이 흐릿하게 보일락말락 한다.
푸룸 시티의 하늘에 닿을 것 같았던 천공의 신전같이 높은 탑이 보이지 않을 정도.
“확실히 문제가 생길 여지는 많겠네요. 그런데.”
“왜 왕국을 선포하지 않느냐는 말씀이시죠?”
정확했다. 적어도 웬만한 공국의 크기, 어쩌면 그보다 더 큰 크기의 지역을 흑색거성이라고만 부른다.
“흑색거성은 총 9개의 구역으로 나뉜답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정경에 마나로 이루어진 선들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4개의 구역. 4개의 쌍둥이 탑의 구역. 그리고 중앙성. 이런 구조입니다.”
“레스토 가문은 아직 건재하지 않나요?”
마지막 저항자들의 선봉이자 중심에 있던 이의 핏줄은 이어지고 있었다.
“있지요. 여전히 영향력이 강하기도 하죠. 하지만.”
“압도하지 못 하는 건가 보네요.”
“정답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아카데미에서 시작이 되다 보니, 구역주, 탑주가 나서기 애매하게 되었죠.”
“학생…. 이라죠?”
한 명의 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운동. 이 땅에 존재하는 신을 왜 부정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시발점이 되었다.
“앞에 나서기로는 다른 이를 내세우지만, 탑주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흑색거성의 무력을 상징하는 두 개의 집단이 있다. 네 개의 쌍둥이 탑과 치안군.
탑주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한다면 확실한 정보라고 믿을 수 있었다.
“다만, 행정수반이나 치안수반은 학생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3인 체제로 중앙성에서 흑색거성의 전반을 다루고 있는 이들. 행정수반과 치안수반, 그리고 성주.
“성주는요?”
7년을 역임하는 치안수반이나 행정수반의 자리를 거쳐야만 성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다.
그리고 10년. 성주로 흑색거성에서 행정수반과 치안수반과 함께 이끌어간다.
“지금의 성주는 역대로 가장 힘이 없는 성주입니다. 간신히 두 수반 사이에서 줄을 타는 정도랄까요.”
흑색거성과 중앙성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 탑의 아래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럼 저는 임시 선생으로 가게 되는 건가요?”
“교수입니다. 지고한 경지에 오르신 분인데, 감사할 일이죠. ”
졸지에 해보지도 않던 선생이 되게 생겼다. 탑의 1층에 도착하자 마차가 보였다.
“이건?”
“흑색거성은 능력 있는 이들에게는 높은 대우를 해주니까요. 그럼 내일 뵙죠.”
더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바쁜 일이 있는지 양해를 구하고 먼저 떠나는 탑주님.
“모시겠습니다. 오르시지요.”
4명이 타도 될 것 같은 거대한 마차. 탑주님이 들어가자 마부가 문을 공손하게 열어주었다.
자리에 앉자 얼마 있지 않아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차감이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여기는 기본적으로 대우가 다르네?”
[흑색거성은 경지에 오른 이에 대한 대우가 특별하다!]
“어떤 길이든 상관없이?”
[조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렇다! 대장장이도 농부도, 어부도 상관없다!]
“생존을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라고 했지.”
인재가 넘쳐나는 곳. 그렇기에 신전들이 반드시 가지고 싶어 하는 곳.
배우고자 한다면, 그 무엇도 배울 수 있는 곳이 흑색거성이었다. 그 정점에 아카데미가 존재했다.
“권능을 지닌 이들은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던가?”
영왕들의 부탁을 받은 드래곤들이 만들어준 마법진이 흑색거성을 넘어서 거대한 대지를 감싼다고 들었다.
[그렇다! 신 그 자신이 오지 않는다면 들어올 수 없다. 그리고 신이 온다 해도 제약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걸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지. ‘신’인데도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보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가장 의아한 점 중 하나였다.
[보고 배운 게 다르니까 그렇지 싶다! 여기 인간들은 대부분 그냥 관장하는 분야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신은 전지전능하다고 하지 않아?”
[해석의 나름이다. 그리고 뜻이 있다고 하면 뭐라고 할 수 있겠냐!]
드래곤의 마법에 의해 막히는 신. 그 드래곤 조차 신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한번 보고 싶기는 한데, 괜히 불안하단 말이지.”
고민하던 중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의아해할 때 마부석의 창이 열렸다.
“이제 곧 중앙성에 도착합니다. 조금 느리게 가야 하니, 구경하시면 금방 도착할 것입니다.”
“고맙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마부의 말대로 중앙성에 진입하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각 구역마다 특색이 다르다고 했지?”
[그래! 흑색거성은 정말 구경할 게 넘쳐나는 도시다!]
말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것을 보니 아카데미를 다니며 종종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경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다르구나.”
크게는 건물의 양식부터 사람들의 복식이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이내 직장이 될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선생이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서서히 중앙성의 중심으로 가고 있는 마차의 창으로 아카데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네가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그도 그럴 만하지. 나도 생각 못 했으니까. 근데 아카데미가 특이하게 생겼다?”
[이니티움]을 조작하면서 바라본 아카데미는 자신이 생각하던 아카데미와는 사뭇 달랐다.
[본래 아카데미가 저렇게 생겼다! 너희 세계에서는 어땠는데? 궁금하다!]
“아카데미라.”
얼마 안 지난 이야기 같은데도, 어느새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 되었다.
“저것보다는 작았어. 대신 높은 건물이 많았지. 그리고 초인들만 사는 마을이 있었어.”
[초인? 초인은 또 무엇이냐? 무얼 넘어섰다는 거지?]
그때 마부석의 창문이 열리며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카데미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다만, 신원 확인을 위해 창을 잠시 내리셔야 합니다.”
마부의 말에 따라서 창을 내리니 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탑주에게 받은 종이를 건네주며 창밖을 보니 꽤 신선한 풍경이 보였다.
‘학생이 두 명, 그리고 선생이 한 명인가. 신기한데? 경지도 낮지 않고.’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은 유저의 끝자락에 다다른 것으로 보였고, 선생은 익스퍼트의 끝자락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었지만, 이어지는 우렁찬 소리에 그럴 수 없었다.
“영광입니다! 검술반 6학년! 로안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여준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꽤 거리를 움직였는데도 마차를 빤히 바라보는 세 사람이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소개했기에 저런 반응인 걸까.”
[뭐라고 소개했든, 저런 반응이 당연하다! 무려 화경의 무인인데!]
생각해 보면 자신도 아카데미에 있었더라면 저런 반응이었을 것이다.
“현경이라고 했으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오히려 안 믿었을 거다!]
“그래. 나라도 그럴 것 같다. 근데 진짜 크다?”
마차가 꽤나 움직였는데도, 아직 아카데미의 중심이라고 하는 숙소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중앙성의 반 가까이는 아카데미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각보다 머리를 잘 썼다!]
“나름의 인질인가? 좋은 의미로?”
[인질이지만, 흑색거성의 힘이기도 하다! 5세부터 15세까지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수준이 다르다!]
“진짜 대단하긴 하네. 이래서 땅은 레스토가 기반은 독투스가라는 말이 나온 거구나.”
독투스가문은 참 특이한 가문이었다. 저항대전이라고 불리는 전투에서는 미미한 가문이었다.
하지만 흑색거성이 중앙성에서 시작할 때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본래부터 학자였다고 했지? 엄청 유명했는데 쫓겨나기 시작한.”
[최초의 신이 등장했을 때,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가르쳤다가 제거 1순위였다!]
아직 성벽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부터 아카데미의 창설을 밀어붙인 괴짜.
“대대로 학장은 독투스가문에서 역임한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대단하단 말이지. 근데 왜?”
맥락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아프와 쌓인 시간도 꽤 되었기에 대답이 날아왔다.
[맹약을 한다는 소문이 있다! 정치에는 절대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맹약이라. 지금 학장은 꽤 어리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탑주의 설명을 되새기면서 학장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1년만 있었어도 공고히 자리를 잡았을 인물이라고 했지. 마치 노린 것처럼 튀어나왔다고.’
그럼에도 아카데미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도 학장의 능력 덕분이라고 했다.
“오? 엄청난데?”
먼 거리에서 봤을 때부터 크다고 생각했지만, 생각 이상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저 정도는 필요하다! 여기에 학생으로만 따져도 몇만 명이 된다!]
“어차피 13세 이하는 통학 아니야?”
[통학이라도! 기숙 생활을 하는 학생이 만 명이 넘어간다!]
“진짜 어마어마하구나.”
양쪽에 날개처럼 9개의 층으로 되어있는 건물이 길게 펼쳐져 있고 중앙에 10층 건물이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정중하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답하자, 문이 열리며 학생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이 들어왔다.
“학장님의 비서로 있는 큐시리라고 합니다. 존귀한 무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리다. 아까 6학년이라고 소개한 이가 오른쪽 가슴에 6개의 보석을 달고 있었고, 지금 학생은 5개였다.
‘그런데도 2서클이라 이거지? 대단한데?’
“반갑습니다. 수행자, 아니 범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문명 수준이 다른데? 훨씬 발전한 느낌이란 말이지.’
알리오츠가 자랑했던 층계를 오가는 기물이 이곳에 있었다. 그 덕에 10층에 오르는 것은 금방이었다.
작은 홀 양옆으로 방이 있었고,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문을 여는 학생.
‘어?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