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고작해야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1년 만에 만나는 것처럼 반겨주는 토리스님을 따라간 곳은 불의 신전의 추기경이 있는 곳이었다.
갑작스럽게 만난 추기경님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반겨주셨다. 마치 일 잘하는 소를 바라보는 느낌.
서둘러 도망 온 곳은,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연무장이었다. 그것도 토리스님의 스승님과 함께.
거기에서 또 한바탕 대련과 연무를 펼친 뒤에야 식당에 앉아서 쉴 수 있었다.
‘무슨 폭풍같이 너무 많은 일들이 지나간 느낌인데.’
그리고 그 폭풍이 아직도 지나가지 않은 느낌이었다. 식당에 사제들이 모두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프가 아닌 자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프는 이미 영수들 한가운데에 있었다.
“원래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수행자님이 계시니.”
“제가 그렇게 특이한가요?”
“하하하.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다만, 저희 신전 사람들이 조금 활달한 편이라, 아마 대련하고 싶어서 그럴 겁니다.”
“대련이라…. 의외로 주교급의 인물들이 많네요?”
“아무래도 판테온이니까요. 그리고 저희는 본단보다 판테온의 신전이 더 크거든요.”
“사속성 신전들이 다 그렇죠? 영수, 아니 영왕 때문에.”
영수들의 왕. 영왕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 존재만으로 강대한 기세를 내뿜어낸다.
기세라고 말을 하지만 자연현상과도 같은 것이기에 견딜 수 있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저희는 영왕님 덕분이라고 합니다. 주교가 되면 본단에서 수행을 꼭 하고는 하니까요.”
“하…. 그런 영왕이 왜 저를 보고 싶어 하는 건지.”
추기경님을 만났을 때, 간절한 표정으로 하는 부탁이 그것이었다. 영왕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래도 부탁이니 꼭 가시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단언컨대 그만큼 신비로운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였다. 이 대륙에서 화기가 가장 강한 곳, 그러면서도 신비로운 곳.
온갖 설명을 들으니 한 번쯤 방문하고 싶어지고 말았다. 추기경이 아니라 이야기꾼이었다.
“제가 홀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닌 거죠.”
솔직히 가볼 생각이 동했기에, 위치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신전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였다.
“아무래도 위치가 위치인지라. 그리고 여기저기 밝히기에 좋지는 않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을 둘러보고 오라는 리퀴두스님의 제안은 6개월이었다. 적어도 6개월.
그렇게 짧지만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여유로이 여행을 하면 금방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하게 사고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인데.’
푸룸 시티에서 시작부터가 쎄했다. 숲에 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뭔가 어긋나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에 일주일 정도는 머물 생각이니까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에 시간이 꽤 빨리 지나갔다. 토리스님 덕에 판테온의 유명한 상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불의 신전 사제들과 대련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라 재밌는 나날이었다.
3일 정도 고민한 끝에, 본단에 가기로 마음먹고 슬슬 준비할 무렵이었다. 평온한 일상을 망치는 인간이 나타났다.
“여기에 수행자가 있다고 들었다! 당장 나오도록!”
불의 신전 앞으로 오지 않은 것이 나름 분별 있다고 해야 할까, 호텔 안이 아니라 밖에서 소리치는 게 분별 있다고 해야 할까.
‘분별은 무슨 그냥 쫄아있는 것 같은데.’
당당하게 소리친 것 치고는 눈동자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쟤는 아침부터 참 기운이 넘친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확실히 나이를 먹는다고 성숙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밖에서는 볼 수 없게 만들어진 창가에서 아침 댓바람부터 소리치는 중년인이 보였다.
“오! 총지배인님 등장! 갑자기 소리가 줄어들었어. 안 부끄럽나?”
[쿠라님을 만만하게 보는 게 더 멍청한 거다!]
“아니. 뭐 그거야 그렇지. 그나마 생각이 있다고 해야 하나? 곧 올라오시겠네.”
두 사람의 대화가 적나라하게 들려왔기에 곧 올라올 것을 알 수 있었다.
곧 이어진 노크 소리 이후에 쿠라님께서 들어오셨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밖의 소란 때문에 불편을 겪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바래도 이루어줄 것이라는 평온한 표정
“괜찮아요. 제가 나가서 해결할게요.”
“번거로우시다면, 그렇게 안 하셔도 됩니다.”
괜찮다고 거듭 이야기하고 호텔 밖으로 나가자 기세가 등등해진 중년인이 눈에 들어왔다.
“네가 감히 전투의 신전의 주교에게 모욕을 주고 떠난 수행자렸다!”
눈앞에 중년인은 화경에 이른 무인이었다. 아마 추기경이 아닐까 싶었다.
‘토리스님이 말한 스승이 이 인간인가 보네. 추기경은 무슨.’
그 스승에 그 제자로 보였다. 화경에 간신히 발을 들이민 아니, 그보다 못했다.
‘권능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가?’
이 세계에서 가장 신기한 것 중의 하나가 권능이었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모욕을 받아서 갚아준 것뿐인데?”
“언행이 경박하니 배움이 없다는 것이 보입니다. 추기경님.”
“배움이 없다고 한들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따라오거라! 신전에서 너의 죄를 판단할 것이니.”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열심히 결정하는 이들. 하는 행태가 가관이었다.
당연히 자신들의 말을 따를 것이라는 확신. 그것이 보기가 싫었다.
“싫은데?”
“감히! 몽상가의 후예라고 해서 좋게 봐주려고 했거늘!”
옆에서 딸랑이던 사제가 기세를 피어 올린다. 당장이라도 출수할 것 같은 기세.
“좋게 봐주는 것 치고 굉장히 흉흉한데? 그리고 내가 죄진 것도 없는데 굳이 왜 따라나서야 하나?”
사건 사고를 많이 겪으면서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을 강제로 깨우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사고를 치고 사건에 얽혀도 작은 명분이 의외로 판세를 엎을 힘이 된다는 것도 배웠기에.
“하! 수행자 주제에 지금. 그래! 네가 힘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죄다!”
저런 딸랑이들은 작은 도발에도 넘어오는 것을 감사히 명분으로 삼을 수 있었다.
메이스를 들고 튀어나오는 딸랑이는 대주교급으로 보였다. 직선적인 만큼 빠르고 강맹한 일격.
“그러니까. 전투의 신전에서는 힘이 있으면 죄가 없는 거구나. 그치?”
너무나 손쉽게 잡힌 메이스. 빼려고 하지만, 빠지지 않아 더 당황하는 딸랑이.
“어…어떻게. 분명히 나보다 약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데!”
“확실히 투박하단 말이지. 아니, 좀 멍청한가?”
‘권능을 받으면 모시는 신을 따라간다고 했으니, 신이 멍청한 건가?’
메이스를 잡은 채로 그대로 얼굴에 박으려고 했지만, 메이스에서 손을 놓고 안으로 파고드는 딸랑이.
파고드는 딸랑이에게 오히려 더 붙어서 그대로 주먹으로 복부를 강타했다.
“흠. 그래도 감각은 있네. 아주 멍청하지는 않아.”
“그 짧은 시간에 세 번의 연격을 꽂은 자네가 더 대단한 것 같네만.”
“불의 신전이 개입하려고 하는 건가!”
“아닐세. 그저 귀빈을 모시러 왔을 뿐. 여기서는 한발 물러서 있을걸세.”
꽤나 소란스러워지니 사람들이 몰리고, 판테온에서 나온 사제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새하얀 머리를 가지고 있는, 그에 반해 눈빛은 형형한 노인.
대주교임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추기경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노인은 다름 아닌 토리스님의 스승이었다.
“오셨는데, 좀 도와주시면 감사히 받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런 민가에서는 올바르지 않은 사용처라. 거기다 수행자님에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아르도르님께서요? 에이 저게 진짜 반푼이지. 아르도르님은 아니신데요.”
아르도르님 때문에 긴장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아주 반푼이는 아니었다.
‘하긴, 그러니까 토리스님을 더 무시한 거였겠지.’
불의 신전에서 대련의 첫 상대는 아르도르님이었다. 그리고 마법의 새로운 활용을 몸으로 겪었다.
‘진짜 불처럼 난폭하고 열정적인 전투였단 말이지.’
마법사 하면 마법을 사용하고 마법진을 연구한다는 선입견을 산산이 깨주었다.
“신전의 이름을 걸고 물러나라!”
아르도르님을 계속 경계하더니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외치는 추기경.
“나. 아르도르는 이 사건에 대해서 공증인의 역할에만 있을 것이네. 되었나?”
그 말에 다시 화색이 도는 중년인을 보니, 확실히 그냥 반푼이가 맞았다.
‘지금은 [이니티움]으로 경지를 낮추지도 않았는데, 경지가 안 보이는데 왜 저렇게 자신만만하지?’
“몽상가의 어떤 사술을 이어받았는지 모르지만! 그래 봐야 진정한 힘 앞에서는 깨어져 나갈 뿐이다!”
그제야 왜 이렇게 당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실로 어리석은 반푼이었다.
‘살수 무공 같은 걸 생각하나 본데? 진짜 멍청하구나.’
눈이 붉어지면서 기세가 기류가 되어서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반푼이지만 화경이라 이건가.”
오러 블레이드가 검에 맺히며 기류와 함께 뛰쳐나오는 추기경이 참 좋은 실험대상으로 보였다.
‘[절]이라는 재능이 단순하지 않다는 거지. 끊고 베어내는 게 꼭 유형의 대상만이 아니란 말이지.’
베어내야 하는 선을 보여주던 눈은 어느새 흐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뛰쳐나오는 추기경에게도 선이 보였다. 검에서 손, 팔, 어깨가 만드는 선. 거기에서 이어질 흐름.
그 흐름을 끊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경직된다. 순간적인 반응이더라도 멈추는 그 순간.
화경의 끝을 바라보는 무인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추기경이라 이거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손을 쳐내자 끊긴 흐름에 경직이 왔지만, 광화(狂化) 때문인지 빠르게 반응한다.
쳐올린 손이 내려오면서 발을 들려는 것이 보였지만, 이미 늦었다. 그대로 품으로 들어가 팔꿈치로 심장을 가볍게 때렸다.
‘확실히 권능 덕분이라고 해도 나름 화경이다 이건가? 아니면 너무 약했나?’
팔꿈치로 맞은 힘으로 뒤로 구르더니 다시 일어난 추기경의 전신에 붉은 기류가 어리기 시작했다.
“전투의 신전이 왜 전투의 신전인지 제대로 보여주마.”
비장하게 외친 추기경의 움직임이 확실하게 변했다. 정형화된 움직임이 사라졌다.
뻔하게 보이던 흐름이 잠시나마 흐트러질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이게 권능의 힘인가? 진짜 신기하네.’
단번에 보였던 흐름이, 조금 시간을 두고 나타났다. 흐름에 끼어들려는 순간 직선적인 움직임이 변한다.
‘확실히 감각이 올라온 것 같은데. 그럼.’
4개의 탑을 개방하면서 조금 진심으로 흐름을 끊어낸다. 짐승에 가까운 움직임이 순간 멈칫한다.
그 순간 양어깨와 심장 골반을 순차적으로 가격한다. 그리고서 쓰러지는 추기경이 보인다.
“아직은 내가 너무 어설픈데. 조금 더 연습해야겠네.”
쓰러지지 않을 정도를 생각했지만, 눈을 뒤집으면서 기절한 추기경의 모습.
확실히 실패한 광경이었다. 아직까지 흐름에 간섭하는 정도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리 손쉽게 추기경을 쓰러트리고도 어설프다고 하시면 어떡하십니까.“
“아! 뭐.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저쪽이 반푼인 건 확실하네요.”
“권능의 힘 덕분이면서 때문이겠죠. 그럼.”
아르도르님을 따라간 곳은 불의 신전에 지하에 위치한 공동이었다.
“경비가 꽤 삼엄한데요?”
“본단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니 당연한 조치입니다. 그럼 위에 오르시지요.”
공동에 존재하는 마법진. 그 가운데 오르자 아르도르의 팔에서 뱀 한 마리가 스르륵 기어 나왔다.
[저 자식! 내가 부를 때는 나오지도 않더니!]
영수와 아르도르의 마나가 붉게 빛이 나며 마법진에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마법진을 감싸는 불꽃이 화려하게 타올랐다.
*
[승천자는 오랜만이네. 그것도 이렇게 특이한. 반가워?]
숨이 막힐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