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신기하네요. 아니, 신비롭다고 해야 맞는 것 같네요.”
눈앞에 있는 영수는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새햐안 고양인데 발과 꼬리에 불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마치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싶은 아름다운 자태.
“팔코와 함께 하시는 분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프는 뭔가…. 아름다운 새? 라면 저 아이는 정말 신비로운 생물 같은걸요.”
“아무래도 영수는 능력에 따라서 기운을 완전히 갈무리 할 수 있으니까요. 아프님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것 같은데요. 대화도 되시는 거죠?”
“아마 저에게만인 것 같지만, 소통은 원활하게 되죠. 너무 말이 많아서 문제지만.”
“저도 언젠가 파빌라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그냥 의지를 느끼는 정도뿐이라.”
게이트에서 불의 신전의 소속이라며 잠시만 시간을 내달라고 했던 토리스.
영수와 함께하고 있는 주교가. 직접 나와서 부탁하기에, 궁금증과 함께 신전으로 왔다.
불의 신전은 조금 특이한 모양의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쯤 보게 되는 건물.
밖에서 보면 원통형 모양의 건물. 들어오면 한가운데가 훤하게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불이었다. 사람의 키 만큼이나 타오르고 있는 불.
토리스의 안내를 따라서 도착한 이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에서 뛰어노는 파빌라를 보았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프가 땍땍거려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결국, 작은 테이블이 나오고 간단한 다과와 함께 의자가 등장하고 나서야 대화가 시작되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이라면, 불의 신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법사이자 무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그저 비기라고 통칭하면서 신전의 숨겨진 힘이라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
거기에 소식이 어찌나 빠른지, 자신이 몽상가의 후예인 수행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도 몽상가의 후예이시기에 편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사속성 신전들은 모두가 그런 건가요?”
“네. 그렇기에 사제가 다른 신전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지요.”
“권능. 이게 문제가 되겠네요. 그러면 어떻게?”
“다행히 역대로 신전을 맡으신 분들이 능력이 뛰어나셔서, 거기에 영수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확실히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이 세상, 인간의 세상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보인다. 30이 넘은 남자가 우물쭈물하는 건 참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것도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저 부끄러워하는 건 도대체 뭔데.’
처음 길을 막았을 때, 덩치를 보고 괜히 손이 나갈 뻔했었다. 그런 모습으로 세상 어물쩡이라니.
“도와주세요!”
“그러니까 뭐를 도와달라는 건지 말을 하셔야죠.”
“솔직히 이건 불의 신전의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부탁입니다.”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입을 뗀 토리스의 부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틀만 머물러 줄 수 있냐는 것.
영수는 같은 영수와 있을 때, 특히 나 상위의 영수와 있을 때 빠르게 성장한다고 한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서 등급이 올라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특히 다른 속성의 영수일 때.
‘영수도 계급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말이지.’
어차피 그렇게 급할 것도 없고, 영수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이기에 좋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에 나오는 부탁이었다.
“그러니까. 비기를 알려달라고 말씀하신 거죠?”
“정말 송구스러운, 죄송한 부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말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리퀴두스님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몽상가의 후예라는 점이었다.
바람의 속성의 무예를 극한까지 이루었던 검사. 거기에 기초적인 마법마저 사용한 마검사.
자신에게 마법에 대한 적성이 없었다고 하면 완벽하게 후예의 행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기록에 의거하여 비기를 알려달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토리스님 말씀은, 토리스님의 스승님의 스승님과 함께 저희 스승님께서 만든 게 있는데 실전이 되었다는 말씀이죠?”
전사한 스승님께 배우지 못한 기예. 그것을 자신에게 가르쳐달라고 한 것이다.
“네. 혹시나 가능하시면 입니다. 저에게는 정말 절실한 부분이기에.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몽상가라는 양반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여기저기에 손을 쓰고 다닌 거야.’
문득 드는 불길한 생각이었다. 토리스의 말을 들으면 몽상가라는 인물은 여기저기 안 낀 곳이 없었다.
‘솔직히 알려주고 싶은데,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말이지.’
놀랍게도 저 덩치를 하고 있는 토리스는 마법사였다. 그중에서도 권각술을 함께 익히는 전투 마법사.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을 망설인다고 생각하는지 더 간절한 표정이 되는 토리스.
그리고 다행히 그때 구원이 손길이 내려졌다.
[내가 알고 있다! 몰라서 고민하는 거면 내가 알려 줄 수 있다!]
파빌라를 교육하는 건지 괴롭히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가던 아프가 옆으로 와서 알려주었다.
어떻게 알고 있냐는, 눈빛으로 하는 물음에 용케 알아듣고 대답하는 아프.
[몽상가, 아니 세미스드라의 무학이라면 전부 알고 있다!]
어떻게 몽상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우선은 눈앞 토리스의 얼굴을 정상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만, 기록원의 열람을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고작 그 정도로 되시겠습니까?”
“제가 거의 세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 문제라면, 기록원을 전부 열람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저희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서적도 열람하실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비기의 가치가 큰 것 같았다. 기록원을 열람하는 것을 바랬는데, 그 이상을 받았다.
‘리퀴두스님께서 기록원을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 보라고 하셨으니까. 바람의 신전이면 더 좋았겠지만.’
본래 판테온에서 바람의 신전에 있는 기록원을 갈 생각이었지만, 지금이 더 편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따로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요?”
왜 내일 아침이냐는 항변의 눈빛에 파빌라와 아프가 놀고 있는 모습을 눈짓하자 금방 수그러들었다.
“아침에 제 제자를 시켜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려는 찰나에, 그 제자라는 인물이 들어와서 토리스에게 귀엣말을 건네는 게 보였다.
‘전투의 신전에 누가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그런 미친놈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비록 푸룸 시티와 레스 시티뿐이었지만, 신전의 대우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저. 수행자님. 죄송하지만, 혹시 같이 나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해결할 수는 있지만.”
“누구기에 감히 신전에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겁니까?”
“하.하. 들으셨군요. 전투의 신전의 주교가 워낙 천지 분간을 못 하는 이인지라.”
“그런데도 주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나요?”
“전투의 신전은 무력이 가장 우선이라. 그나마 내려진 징계가 이곳으로의 좌천이었습니다.”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면서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보이는 토리스의 표정에 오히려 궁금해졌다.
“가시죠. 저도 한 번 구경해 보고 싶네요.”
“네. 아마 목적이 수행자님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손속에 자비를.”
“설마 제가 죽이기라도 하겠어요?”
멋쩍은 웃음을 짓는 토리스의 표정에 순간 불길함이 들었지만, 이내 따라나섰다.
복도에 들어가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별로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약해빠진 놈들은 비키라고? 강자가 법이라. 안하무인이네, 한창 그럴 때지.’
복도를 지나 신전의 문에 당도하자, 자신과 토리스를 보았는지 목소리가 더 커진 인물이었다.
‘검사인가. 20대 후반에 마스터라. 사고를 쳐도 봐줄 만했네.’
주변에 지나친 괴물들이 많았던 인생이라, 20대 초반에 마스터에 오르는 이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괴물들이었다. 저 정도만 해도 세계에서 천재라고 불릴 만했다.
“풀른 주교님. 어째서 저희 신전 앞에서 난동부리고 계신 건지요.”
“토리스 주교! 수행자가 왔다면서! 저 사람인가 보지? 이봐! 나랑 얘기 좀 하자!”
생각 이상으로 안하무인이었다. 왜 토리스가 걱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토리스님. 굳이 제가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들어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토리스의 걱정대로 그냥 들어가 있기로 했다. 신경을 한 번 긁어주는 것으로 봐주려고 했다.
“풀른 주교님. 수행자님께서는 저희 신전의 손님이십니다.”
다행히 토리스도 이해했는지, 상황을 마무리시키려고 노력을 했지만. 부질없었다.
“거기 수행자! 그렇게 도망갈 거면 영수라도 놓고 가지 그래! 몽상가의 후예라고 하더니 별거 아니구만!”
도대체가 왜 저런 안하무인들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을까 싶었다.
“주교님! 언행에 주의를 해주시지요.”
토리스가 기세를 피워올리기 시작하자, 덩달아 풀른이라는 인간도 기세를 피워 올린다.
“반쪽짜리 주교는 자리를 피해 주지? 내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쟤네들은 저런 대사를 배우나? 왜 하나같이 저런 대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근데 반쪽짜리라.’
시끄럽게 땍땍거리는 풀른이라는 인간보다는 반쪽짜리라는 말에 더 흥미가 갔다.
‘그나저나 나도 진짜 많이 사람 됐다. 참을 줄도 알고.’
아프를 언급했을 때 튀어나갈 뻔했지만, 필사적인 토리스를 보아서 참아주려고 했다.
“어이! 보아하니 별것도 아닌 수행자 같은데. 스승도 눈이 삐었나 보지?”
몽상가를 언급했을 때는 기실 상관이 없는 사람이기에 괜찮았지만, 지금은 선을 넘었다.
“왜? 보기만 하면 내가 무서워서 사과라도, 커억.”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주둥이를 그대로 잡아서 땅에 꽂았다. 마스터라고 한들 자신에게는 별거 없었다.
“다시 말 해보지. 스승님이 뭐?”
고통이 지나자 상황이 파악된 듯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겋게 변하며 뭐라고 소리치지만 아가리가 잡혀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참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다시 한번 땅에 뒤통수를 그대로 가져다가 박았다. 같이 온 이들이 검을 뽑는 것이 보였다.
“뽑는 순간. 너희는 다 죽는다. 이 새끼도 포함해서.”
“지금 그분이 어떤 분의 제자인 줄 알고 이렇게 행동하는 겁니까!”
“그래 봐야 쓰레기 위에 쓰레기겠지. 왜. 너희 신전은 강한 게 최고라며. 데리고 와.”
끌려온 밑에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나 싶어 봐주려고 했지만, 그중에 어리석은 사람은 꼭 있었다.
나름 사각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했는지, 뒤에서 검으로 찔러오는 이가 느껴졌다.
왼손으로 아가리를 굳게 쥐고 누워있는 놈을 들어서 그 검에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와! 대단하다. 이게 전투의 신전이 입을 막는 방법인가 보네? 상관을 죽여서라도 부끄러움을 없앤다 이건가?”
허벅지에 그대로 관통된 검을 잡은 전투의 신전 사제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 검을 뽑지도 않고 막 쥐고 쑤시려고 하는 거야?”
당황했는지 그대로 검을 뽑아버리는 사제, 그리고 뽑힌 곳에서 피가 솟구친다.
“이제는 과다출혈로 확실하게 죽이려고 그런 거구나! 대단한데? 전투의 신전.”
아가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제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풀른이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감히. 감히! 감히! 나에게!”
“감히는 너가 진짜 뭐가 되고 난 후에 써도 늦지 않은 소리고. 왜. 그러면 다시 덤벼 보든가.”
신기하게도 허벅지의 상처가 금방 아무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눈동자 주위가 붉어지고 있었다.
‘저거 많이 보던 건데.’
익숙한 광경, 익숙한 행동이었다. 그랬기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충 예상 할 수 있었다.
“토리스님.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 맞죠?”
그 말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던 토리스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