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183화 (183/217)

[183화]

“이제 슬슬 갈 때도 되지 않았어?”

“에이. 이 정도의 환경에서 첨언을 들을 수 있는 곳인데 끝까지 있다가 가야죠.”

“분명히 처음 올라왔을 때는 안 이랬는데 말이지. 능글맞아졌어.”

“이게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짼데 이 정도는 해야죠. 무광 선생님.”

“하. 그 꼬마는 무슨 소리를 어떻게 한 건지. 에잉.”

말이 이어진 후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노인의 신형. 그제야 도를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진짜 미친 듯이 달리기는 했네. 여기는 그대로고.”

어찌 보면 삭막하기 그지없는 장소. 오래 있으면 미칠 것만 같은 유백색 일통의 공간.

육체를 가지고는 두 번째로, 영혼인 채로는 세 번이나 오는 장소였다.

“다음 세계에 있다고 했지.”

처음으로 상위세계로 올라갔을 때, 이 공간에서 관리자님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다시 이곳에 오지 못 했을 것이다.

“진짜 지금 생각해도 쪽팔리기 그지없는데 말이지.”

배려도 많이 받고 배움도 많이 받았다. 받은 소원권으로 두 번째 스승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당시에 배운 것 중 하나가 이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

밥을 먹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체력과 오러가 회복이 되는 최고의 폐관 수련장.

“관리자님의 눈에 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뭐든지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지.”

처음 이 공간에 올라왔을 때가 문득 생각이 난다.

*

“관리자님을 뵙습니다. 이번에 승천하게 된 범입니다.”

“호오? 승천자 치고는 굉장히 예의가 바르구나?”

“저는 승천하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감히 관리자님에게 비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히. 5계에서 와서 그런가 생각이 잘 박혀있구나. 그럼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겠어. 별다른 교육도 필요 없을 것 같고.”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가 사라진다. 그 교육이 무슨 교육인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관리자님의 목소리를 듣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응? 아! 5계에서 올라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 지금 네 수준이면 목소리를 들을 정도는 되니 괜찮다.”

“아직 목소리를 듣는 수준인 거군요.”

허리가 꼿꼿한 노인. 딱 그정도로만 보이는, 그냥 건강한 노인이구나 싶은 형상의 관리자님.

하지만, 그것이 진체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박이 느껴지는 관리자님.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진짜 갈 길이 멀구나.’

“어차피 다음 세계로 가게 되면 인도자가 있을 것이니, 자세한 설명은 그 아이에게 들으면 될게다.”

“저…. 혹시 폐가 안 된다면 이곳에서 잠시 정리를 하고 가도 되련지요?”

의외라는 듯이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해 주셨다.

“어차피 여기에 너밖에 없으니. 준비되면 부르거라.”

말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는 관리자님. 아무도 없는 유백색 공간이지만, 믿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관리자님이 이곳 관리자님은 무예에 미쳤다고 했으니까. 얼마 안 걸리겠지?’

격이 안되어 이름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관리자님. 자신에게 찾아오라고 하신 관리자님.

정점에 다다라 보겠다는 목표 외에도 새로운 목표를 준 관리자님.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꼭 찾아가 은혜를 갚아야 하는 관리자님.

‘그 덕에 확실히 빠르게 올라오기도 했지.’

고작 5년. 화경에 발을 딛고 그를 넘어서 현경에 발가락 하나를 걸치게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만일 절망한 그 1년이 없었다면,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곳에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잘하자. 그러니까.”

마른세수를 한 뒤에 아공간에서 도를 꺼내고 자세를 잡았다. 오러 홀에 자리 잡은 6개의 탑은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근데 안드로니쿠스님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만든 걸까?”

스승님조차 놀란 것이 [바람의 탑]이었다. 고작 6개를 개방했는데 현경을 바라보게 해 주는 연공법.

본래는 처음부터 다 갈아엎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이내 연공법을 보고 노선을 갈아탔다.

라니우스 스승님과 함께 만들던 초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봐주셨다.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바람의 탑] 도식과는 전혀 다른 무식하고 단순한 도법.

그렇게 탄생한 도법이 다름 아닌 라니우스 도법이었다. ‘벤다’에 모든 것을 담은 간단한 도법이었다.

‘간단하지를 않아서 문제지만, 도대체 후삼식(後三式)은 지금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자세를 바로 하고 도를 들었다. 가장 기본적인 중단세에서 출발한다.

“라니우스 1식 : 일도양단(一刀兩斷)”

선천재능이 밖을 감싸고 오러가 안을 채우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다.

가장 효과적인 선을 그리면서 내려가는 도. 그에 멈추지 않고 사선으로, 아래에서 위로, 횡으로 베기 시작했다.

‘1식이라고 하는 절은, 베는 모든 행위를 말하니까. 가장 효과적인 선을 찾는 게 힘들지만.’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선을 선천 재능이 알려준다.

“라니우스 2식 : 면면부절(綿綿不絕)”

팔방을 베고 나서 발을 앞으로 한 보 내딛으며 도를 휘두른다. 두 번째 스승님이 만들어주신 초식.

앞으로 나가면서, 방향을 바꾸면서도 끊이지 않고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나가는 초식.

화경(化境)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르고, 깨달은 사실은 자신에게 오러블레이드는 필요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밖으로 형성시키는 것이 필요 없다는 점이었다. 선천 재능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강력했다.

그리하여 태어난 초식. 아직도 미완성의 초식. 자세를 잡고 한 발을 강하게 내딛었다.

“라니우스 3식 : 만절(萬切)”

발도처럼 허리에서 나온 도가 위를 향해서 강하게 휘둘러진다. 순식간에 허공에 상흔이 생기고 사라진다.

“호? 재밌는 힘을 쓰는구나?”

“아. 관리자님. 아직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힘입니다.”

“아니야. 아니야. 5계 출신들은 하나같이 다 근원과 맞닿은 능력이 있는데, 넌 그중에서도 꽤 재미가 있어.”

“근원…. 입니까?”

“그렇지. 근원이지. 어찌 보면 축복이지만,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라고 해야 하나. 뭐. 개인의 선택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시던 관리자님이 손을 뻗자 사라졌던 지팡이가 나타난다.

“흠. 이렇게, 이렇게 인가? 아니지. 조금 이런 느낌인가?”

몇 번의 단순한 휘두름에 공간이 잘리고 붙고를 반복하더니 곧이어 자신이 만든 것과 똑같은, 아니 더 깊은 상흔이 만들어진다.

‘관리자는 진짜 어느 위치에 서 있는 걸까.’

“역시…. 무광.”

순간 지팡이가 목에 닿고, 온몸을 찌그러트리려는 압박이 느껴졌지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쯧. 승천자라 이거지. 그거 누구한테 들은 거냐.”

“관리자님께서.”

“아니. 당연히 관리자가 씨부렸겠지. 그런데 누구냐고, 그 관리자가.”

“이름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아씨. 그놈의 격. 하. 머리 아픈 건 질색인데.”

목에 닿아있던 지팡이가 어느새 머리 위로 올라와 가볍게 두들긴다.

분명 손목만으로 가볍게 머리를 치는데 목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골이 쪼개지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골이 쪼개지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르는 관리자님의 말이 있었다.

“무치!”

‘무광이라고 절대 부르지 말고 무치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멍청이.’

소리를 지르자마자 지팡이가 멈추어섰다. 그리고 다양한 표정 변화가 일어나고 계신 얼굴이었다.

“하. 그 꼬맹이가. 그럼 일부로 이곳에 배정했다는 건데,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럼 공과가 사라질 텐데.”

다양한 표정 변화 뒤에는 진지한 얼굴로 뭐라고 중얼거리시더니 지팡이로 머리를 후려치셨다.

“이놈아. 빨리 말해야 할 것 아니냐! 괜히 머리를 쓸 뻔했네.”

아무것도 없는 유백색 공간이 분명했는데, 왜 별이 보이는지 모르겠다.

“쯧. 자빠져 있거라.”

점차 시야가 흐려지더니 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 화경의 끝자락인데….’

어처구니없는 기절 뒤에 일어나니, 여전히 머리가 얼얼했다.

“어린놈이 뭐가 이렇게 비리비리하누.”

관리자님이 묘한 표정을 하고 서 계신 게 보였다.

‘불쌍한 놈을 쳐다보는 눈빛인 거 같은데. 아닌가?’

“네놈이 버티는 동안 종종 봐주도록 하마. 그 전에 마지막 초식. 네 근원을 쓰지 말고 내공으로만 완성한다면 말이지.”

“내공 말씀이십니까?”

“오러니, 내공이니, 차크라니 다양한 이름이 있지만, 결국 그게 그것이니. 네 근원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어라? 이놈 보게? 설마 네가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냐?”

“품고 있는 것이요?”

“오러말이다.”

“[바람의 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허. 이게 바로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라더니. 지놈이 품고 있는 것이 뭔지를 몰랐단 말인데.”

관리자님께서, 그것도 무광이라고 불린 사람에게 이런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의 연공법인가 싶었다.

점점 더 알 수 없는 연공법이었다.

‘안드로니쿠스님은 도대체?’

“아해야. 네 연공법을 해보거라.”

관리자님의 말씀에 따라서 앉아서 [바람의 탑]을 개방했다. 1탑에서 시작해서 6탑까지.

‘이 공간에서도 오러가 쌓이면 주구장창 연공만 할 수 있는데 말이지.’

전신에 시원함이 감돈다. 다양한 바람들이 자신을 뽐내면서 온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 이 또라이 자식을 보소? 아니 천재인가? 아니지. 이놈은 아닐 테고. 도대체 어느 놈인지 꼭 보고 싶은 놈일세.”

모든 탑이 열리고 전신에 다양한 바람이 오고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일순(一巡) 뒤에 멈추려는 때.

“멈추지 말거라. 그리고 오로지 하나의 탑으로 모든 탑을 돌거라. 순차적으로.”

‘하나의 탑으로 다른 탑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이었지만, 우선 해보기로 했다. 아펠리오테스의 탑의 바람을 다른 탑으로 보냈다.

‘어? 어어?’

산들바람이 다른 탑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모두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6개의 탑 모두가 산들바람이 되어서 몸 전체를 휘돌고 있었다. 그 다음도, 다음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깊이가 이렇기 깊었다고?’

탑 하나하나에 대해 거의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출발선에만 선 수준이었다.

“허허. 진짜로 보고 싶은 놈일세. 어떤 미친놈이 이걸 이렇게나 바꾸어 놨지? 이걸 다 이해하고 했을 리가 있나?”

감탄과 경악이 서린 표정을 눈을 뜨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관리자님마저 경악에 서리게 만든 안드로니쿠스님은 도대체.

“이 연공법을 알고 계신가요?”

“하! 알다마다. 이 세상에 내가 모르는 무(武)가 많지만, 이 무는 모를 수 없지. 본래 다른 이름의 연공법이다. 아니지. 연공법이자 하나의 무 그 자체인 것이지.”

“[바람의 탑]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아니, 그래 맞다고 할 수도 있지. 이 정도로 바꾸었다면 인정해야지. 실로 놀랍구나.”

“본래 다른 연공법이었다는 건?”

“본래 태초에 세계가 하나였을 당시. 가장 높고 찬란한 100가지의 공부가 있었지. 그중 하나가 네가 익히고 있는 연공법의 모태이다.”

“100위 말씀이신가요?”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놀라실 일인가?’

엄청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관리자님이 놀라실 정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멍청한! 지금이라면 어느 세계에 놓아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음이라! 거기에 공부라고 하지 않더냐!”

그제야 피부로 확 와닿은 말이었다. 그리고 경악이 찾아오기도 했다.

‘안드로니쿠스님은 그런 걸 고치기까지 하신 거라면, 도대체가 어떤 분인 거지?’

“본래 이름은 구층일원공(九層一原功) 허. 그러고 보니 네가 이렇게 빠르게 현경을 엿보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네? 제가 현경을 엿보는 이유가 [바람의 탑]에 있다는 말씀은?”

“하! 이런 복도 많은 녀석. 본래 구층일원공은 한 층씩 공부를 쌓아가며 결국 근원에 닿는다는 공부이니라.”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있으니 혀를 차시면서도 계속 설명을 이어가셨다.

“그런데 네 놈은 이미 근원을 품고 있지 않느냐. 설령 구층일원공의 뼈대가 바뀌었다고 한들 근원을 추구하는 근본은 바뀌지 아니하였느라.”

“아!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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