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단출한 방. 그럼에도 허름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깔끔하고 정갈하다고 여겨지는 방에서 눈을 뜨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중앙신전에 오자마자 성하를 뵙고, 사과를 듣기도 하고, 시험을 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연이 있던 모든 이들이 중앙신전으로 찾아왔다.
‘시험은…. 생각보다 할 만했지.’
중앙신전으로 온 그다음 날 바로 시험을 받으러 승천자의 길을 걸었다.
*
“이 길을 혼자 걸으니까 진짜 이상하네.”
좁은 오솔길. 성인 한 명이 겨우 갈 수 있는, 생각보다 험하고 좁은 길.
마틴과 함께 걸었을 때는 그렇게 험하다고, 좁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 길이 좁아 보일 만큼 성장했다.
“야니토르님은 여전하시려나.”
승천자의 길을 지나서 도착할 수 있는 승천의 문을 관리하는 초인.
그 당시에는 초인이라고 해야 마스터와 비슷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단 이틀. 할머니께서 주신 조언만으로도 선천 재능의 발현이 달라졌다.
마치 이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야니토르님은 항상 비질을 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계셨다.
눈을 들어보면 스승님이 보이고, 할머니가 보이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연마하면 어디까지 가게 될지 상상도 안 되는 힘인데 말이지.’
새삼 야니토르님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듣기로 승천의 문을 맡으신 지 30년이 넘으셨다.
‘몇 번이야 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을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건 정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승천의 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니토르님!”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잘 자라주었어. 기특하구나.”
“저도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 걸요.”
“그것도 마스터가 되어서 온 것이 아니라 한 발 내딛은 상태에서 오다니. 고생했다.”
주변 환경이 확실히 중요한 것 같았다. 뭐를 해도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다 꿰뚫어 보는 이들이 주변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아니에요. 진짜 운이 좋았는걸요.”
“내가 대신 사과를 하마. 모두가 완벽할 수 없다고 하나, 그래도 미안하구나.”
신전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것이 사과였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건지, 그것도 하나같이 주교인 분들의 사과를 받다 보니 송구해 죽을 것 같았다.
“자. 그럼 여기에 오르거라. 시험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니.”
승천의 문이라고 하지만, 문이 아니라 원형의 바닥이었다. 야니토르님 말에 따라서 그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자마자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변하고 여러 가지 자신의 인생을 마치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수많은 삶들이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곳에 홀로 있는 자신이었다.
너무도 다른 장면, 너무도 다른 분위기, 너무도 다른 삶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힘든지 찡그리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 장면이 끝나고 나자 자신에게는 문이 주어졌다. 아니, 그 전에도 보이던 문 외에도 새로운 문이 보였다.
“하. 진짜 가기 싫게 만들었네. 그래도.”
이미 수많은 배려를 받았고, 배움을 받았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결정을 내리고 나니, 다시 승천의 문이었다. 놀랍게도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았었다.
“다녀왔는가?”
눈앞의 야니토르님이 그대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선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모습.
“분명….”
“무수히 많은 선택지를 보았겠지. 표정을 보면 시험을 통과한 것을 알 수 있지.”
“본래는 다른가요?”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종종 이 길을 올라 문에 서는 이들이 있었단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승천의 문을 찾는 이들이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이 세상에 남아있기로 결정하였지. 자신들이 본 수많은 선택지는 기억하지 못한 채로.”
“그런 선택을 하면 잊히는 건가요?”
“글쎄. 그것이 잊힌다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다만, 단 하나 자신이 원하는 그 삶이 잔상으로 남는 것 같더구나.”
“하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해요.”
자신이 바라보았던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단 하나도 나쁜 것이 없었다.
수호용병대의 대장이 되었다. 귀족이 되기도 했고, [무투의 탑]의 탑주가 되기도 했다.
모든 선택지들이 하나같이 화려하고 권세가 있는, 이 세상의 정점을 이루는 선택지들이었다.
‘가족이 있거나, 나이가 조금 더 들었더라면 나도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지.’
“이제 진짜 승천의 문을 준비해야겠구나.”
말씀하시던 야니토르님이 돌연 존대를 하셨다.
“이 길을 걷기로 한 무인에게 경의를. 앞날에 무너지지 않게 축복을. 승천자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이유 모를 벅차오름이 속에서 올라온다. 그리고 진짜 곧이라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
*
“이제 2주 정도 남았나. 벌써 한 달이 지나갔네.”
중앙신전에서 모든 곳에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던 승천자의 등장을 알리는 연락이었다.
그 여파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이 멈추기 시작했고, 분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각 단체, 가문, 국가의 수장이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었고, 중앙신전은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벌써부터 중앙신전에서는 숙소를 구하기가 요원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이 나가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행운의 부적도 아니고 진짜.”
일어서려는 찰나에, 문이 격하게 열리면서 얼굴에 미소를 장착한 마틴이 들어왔다.
“범아! 가자!”
“진짜 너도 대단하다. 어떻게 하루를 안 빠지냐.”
아무리 생각해도 마틴의 직권남용으로 숙소가 배정된 것이 확실했다.
중앙신전 가장 내부에, 그것도 성하의 비밀 정원이 가장 가까운 곳에 숙소가 배정되었다.
수많은 일행 중 자신과 마틴만이 그곳에 위치한 숙소를 받았다.
카인과 량은 외부인이 숙박하는 곳에 가장 좋은 방을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전 안에서 숙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마틴은 가장 좋은 방을 주려고 했다는 말을 하지만, 분명 아니었다.
“왜! 너무 신나잖아?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고 좋자나!”
한 달 동안 무엇을 하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따라다니는 마틴이었기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생이별이니까. 이제 만날 수 없겠지.’
항상 마음을 다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날짜가 다가올수록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쉽고 안타까우면서도 무섭고 두렵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자신의 편이 되어줄 이들을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오늘은 또 누구랑 대련하려고? 맨날 아침에는 대련, 오후에는 로즈님께 수련. 진짜 재미없게 산다.”
“그걸 매번 같이하는 너는 오죽하고? 웃겨.”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변한 점이라면, 선천 재능을 대하는 태도였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듯했던 선천 재능이 이제는 한 몸이 되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선들은 의지에 따라서 나타나기도 하고,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제 날붙이가 아니더라도 간단한 물건은 손으로도 자를 수 있게 되었다.
‘어디까지 갈지 상상이 안 돼서 문제이긴 한데.’
하지만 그럼에도 아르데오를 잘랐던 그 순간의 그 느낌은 여전히 요원했다.
그렇게 마틴, 카인 그리고 량. 이들과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진짜 올라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
본래는 정적이고 고요한 중앙신전의 아침 시간. 평소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들떠있었다.
아침 해가 그 모습을 갓 드러내는 시간에, 중앙신전에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서 찾아온 이들이 밖에 나와 있었다.
신전을 시작으로 승천의 문까지의 길이 반듯하게 열렸다. 오로지 승천자가 존재할 때만 열리는 길.
중앙신전, 그중에서도 대예배당이 마치 길처럼 양분되면서 길을 만들었다.
양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채우면서 오늘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나오는 가장 좋은 재료로, 최고의 장인이 만든 가죽 갑옷. 갑옷 모양이 아닌 예복이라고 해도 좋을 세련된 디자인.
당대의 최고의 마법사가 마법을 새기고, 교황 성하의 축성을 받은 옷을 입은 채로 중앙신전의 초입에 나섰다.
“진짜 좋기는 한데, 진짜 부끄럽기도 하다.”
생각하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파울로님께서 특별히 만들어주신 망토에는 몇몇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마틴을 필두로 카인, 량, 로사, 마르쿠스, 마니에르의 이름이 새겨진 망토.
모두가 반드시 상위세계에서 보자면서 각자 자기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진짜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 것이 보인다.
양 갈래로 나뉜 대예배당에서는 성하의 축사와 함께 앞날의 축복을 빌어주었다.
넓은 대로로 이어지는 승천자의 길. 승천자가 나타났을 때만 열린다는 길 양옆으로는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이들이 존재했다.
마법사는 마법사의, 무인은 무인의, 귀족은 귀족의. 각자의 예대로 고개를 숙이는 이들.
점차 승천의 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르쿠스가 아버지와 함께 서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주제에 절도있게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 다음으로는 로사. 그 옆에 후작가의 후계자와 함께 카시스 후작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눈에 들어온다.
칸님도 보이고, 부발님도 보인다. 카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계셨고 량은 스승님과 칼라 고모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끝내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 스승님이 서 계셨다. 그 옆에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성하의 곁에 선 마틴이 보였다.
“태어나고, 자라 성장한 이 세계에서. 허락된 가장 끝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
성하의 입이 열리자 마틴의 눈에서는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승님께서도, 어머니도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자신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이 순간 보일 수 있는 마지막 모습에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희노애락을 겪고 그 끝에 섰으나, 다시금 시작하려는 위대한 한 사람.”
성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슬며시 떠오른다.
“그 걸음에 축복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의지가 허락되기를 바라며.”
승천의 문 중앙에 하얀 빛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드러나는 계단.
“승천자는 이제 길을 걸어 올라가시지요.”
하얗게 빛이 나는 계단에 발을 올리니, 참았던 눈물이 터진 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마틴의 소리가 들려온다.
뿐만 아니라 카인의 목소리도, 놀랍게도 량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 소리가 더 들려왔다.
미치도록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되었다.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았다.
계단 하나를 오르고, 또 오르고, 몇 번을 오른 순간, 모든 목소리가 사라지고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입니다. 참 짧은 시간에 이 자리에서 다시 보게 되었군요. 축하합니다. 환생자 범군.]
“관리자님!”
결코 잊을 수 없는 소리. 자신에게 다시 기회를 준 그 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안녕하세요. 작가 Uria 인사 올립니다.
사실, 유료화는 무슨, 완결만 내보자! 라는 일념으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느새 유료 연재를 하고 있는 신기한 상황입니다.
진짜 욕도 무지 먹고, 먹을 때마다 멘탈이 갈려 나가고 내 글이 재미가 없나? 수도 없이 고민하게 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정말 독자님들 덕분에 이나마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첫 연재, 초보 작가의 너무 부족한 부분 많은 글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욕심만 많아 가지고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세계관을 괴랄하고 거대하게 만들어버려서 허덕이는 작가이지만, 어떻게든 생각한 완결까지는 꾸준히 가 보겠습니다.
1부였던 내용이 끝나고 다시 출발하는 범이도 많이 응원 부탁드립니다.
저도 진짜 잘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는 초보 작가를 불쌍히 여기어 주시고 댓글에 아량을 보여주세요. 진짜 훅훅 갈려나가요 nn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