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거대한 홀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창날처럼 천장이 끝도 없이 높았다.
넓고 높은 층고를 가지고 있는 1층 홀에는 기둥이 수도 없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신전 기둥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주랑을 따라서 만든 건가?’
베라트의 그림자의 덕분일까. 아직도 홀 안의 인원 중에서 우리를 눈치챈 이가 없었다.
량의 눈짓에 망치를 들고 마르쿠스가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이내 바닥을 향해 힘껏 내려친다.
바닥을 타고 진동이 온 홀을 잡아 삼킨다. 온갖 소리가 나며 시끄러워질 찰나, 그대로 옆으로 휘둘러 비븐님의 방패에 마르쿠스의 망치가 직격한다.
굉음이 모든 소리를 잡아먹고, 2층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하고 1층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어수선하고 다급한 광경과 다르게 일행은 모두 차분했다. 비븐님과 마르쿠스가 뒤로 다시 오자, 자연스럽게 거머리 마법사님이 앞으로 나선다.
“확실히 의외로 이런 곳일수록 대처가 미흡하단 말이지. 뭐 그럴만 하지만.”
혼잣말을 하며 갑자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거머리 마법사님. 이내 완드로 바닥을 치며 박자를 맞춘다.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이것 참. 이렇게 시간을 주면 너무 날로 먹는 느낌이지만.”
‘그러고 보니 카인을 제외하고는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걸 처음 보는데?’
마법사의 마법은 2서클이 되는 순간부터 천차만별로 변하기 시작한다.
학파가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재능에 따라서 똑같은 마법이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마법을 발현하는 것조차 마법사마다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는 했다.
‘카인도 그것 때문에 엄청 고생했다고 했지. 자기만의 발현을 만든다고.’
자신의 발현 방법을 만들지 못해서 뒤처지는 마법사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자신의 재능과 어울리는 발현 방식을 만든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 마법사들은 마탑을 향한다.
지금까지의 선대 마법사들의 발현 방식과 재능의 사례가 있는 마탑. 그렇기에 마탑은 계속해서 마법의 종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마탑에 가면 평생을 저당 잡히는 거라고 싫다고 했지. 와흐네 가문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고 했나.’
장로들이 존재하기에, 마탑과 와흐네 가문이 분리되기는 하지만, 온전히 독립적이지는 못했다.
‘거머리 마법사님은 엄청 특이하신데?’
카인의 경우에는 마법진을 이용해서 마법을 발현시켰다. 대다수의 전투 마법사들은 매개체나 영창을 통한 빠른 발현이 주를 이루었다.
그에 반해 거머리 마법사님은 흥얼거리면서 여기저기에 점들을 흩날려 놓으신다.
‘저게 마나인 것 같기는 한데, 무슨 포자처럼 하늘거리네?’
넓은 1층의 홀 이곳저곳에 마나로 이루어진 포자가 자리 잡았을 때, [맘몬]의 인원들도 자리를 잡았다.
‘응? 그냥 저렇게 사라지는 건가? 뭐지?’
4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모였지만, 그중에서 익스퍼트 정도의 경지는 10명도 되지 않아 보였다.
“베라트님! 어째서 배반하신 겁니까!! 소주의 호위인 당신이!!”
“자기소개를 해주면 좋을 테지만, 우리가 그럴 사이는 또 아니겠지?”
모인 인원의 대장격인 인사가 소리쳤지만, 유들하게 받아넘기는 마법사님이었다.
“이제 슬슬 가시게. 대충 나올 인물들은 다 나온 것 같으니.”
“길을 터주시면 그때 가겠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바쁘지 않으니 말입니다.”
“뭐. 구경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조심하게나.”
대놓고 여유로는 마법사님과 량이었다. 적지에서 저럴 수 있는 것도 대단하다 싶었다.
“자네들 혹시 연금술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아는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거머리 마법사님은 신이 나 보이셨다.
“세상에 마법만큼이나 신비한 학문이 있다는 것을 난 너무 늦게 알았다네.”
그러면서 완드로 땅을 툭툭 치시더니 한 번 휘두르신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으로 보였다.
“그렇게 모두 모여있으면 덥지 않나? 더우면 몸이 힘들고 지치는데 말이지. 움직이는 것도 느려지고.”
의미 없는 행동과 이상한 말이 합쳐지니 상상하지도 못한 효과가 나타났다.
사라졌던 포자가 빛을 내며 점멸하더니, [맘몬]의 사람들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경비대부터 나서라! 저 마법사가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막아!”
명령을 내리고 수인을 맺는 것으로 보아 마법사인 듯했다. 요동을 치는 마나가 느껴진다.
“전투 마법사는 말일세,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다네.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에서 마나도 빠르게 변하니까.”
여전히 완드를 휘두르고 통통 바닥을 치면서 말을 이어가는 거머리 마법사.
그 말이 끝나자마자 수인을 맺던 마법사가 입에서 각혈을 토해내는 것이 보인다.
“또 그렇게 느리게 있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살이 날아와 눈을 멀게 하지.”
천천히 움직이면서 말을 이어가는 거머리 마법사. 그 말에 따라 마법이 발현된다.
홀 곳곳에 있던 포자가 점멸하더니 얇은 매직 미사일이 날아가 몇몇의 눈을 멀게 한다.
“량아. 저게 뭔데? 원래 저런 거야 마법사는?”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이었다. 아니, 저런 마법은 처음 보았다. 시선을 앗아가는 광경이었다.
“원래도 저런 형태였어. 근데 효율이 좀 떨어지기에, 그걸 높인 거지.”
“뭔 소리야? 효율을 높이다니?”
“그럼 공짜로 저런 마법사를 초청한 줄 알았어? 마나를 매개체로 쓰는 특이한 방법이길래 나도 한 번 손 써봤지. 저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조금 천천히 진행하던 거머리 마법사님은 흥이 올라오고 신이 나는지 점점 빨라졌다.
“유명한 말이 있지. 흥분한 마법사는 죽은 마법사라는, 근데 흥분한 전투 마법사는 주변을 모두 초토화 시킨다네.”
땅이 미끄러워지고 질척해진다. 어떤 땅에서는 작은 폭발이 일어나고 어디서는 누군가의 팔이 터져나간다.
“거머리 마법사라니. 저게 어떻게 거머리 마법사야. 홀로 휘젓고 다니는데.”
“오랜 기간 낮은 서클에서 살아남고자 만든 전투법이 그런 거지. 거기에 재능의 효율도 너무 안 좋고.”
“그런데?”
“이제는 마나량도 충분한 데다 저 완드가 있으니 신이 나실 만도 하지.”
“저 완드는 뭔데? 그냥 긴 봉에 양쪽에 동그란 공을 달아놓은 것 같은데.”
“그 동그란 공 하나는 소형 마나 엔진이고, 하나는 안슐러스의 마석이야.”
“안슐러스? 그 개같은 마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다. 2성 마수인 안슐러스는 진짜 개같은 마수였다.
‘수많은 분체랑 연결이 되어있어서 다 한꺼번에 죽이지 않으면 금세 살아나서 진짜 개같이 뛰어다녔는데.’
“응. 맞아. 저 포자들을 좀 더 쉽고 빠르게 연결하는 역할로 박아 넣었지. 근데 이 정도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진짜 신나셨는데?”
계속해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거머리 마법사님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럼 가자. 이 정도면, 혼자서도 충분하실 것 같네.”
량을 중심에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움직임을 [맘몬]도 거머리 마법사님도 읽었다.
“막아! 빨리 지원을 요청하라고!”
각혈한 채로도 지휘에 힘쓰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몇몇이 우리를 막기 위해서 자리를 옮기려 하자 마법사님이 다시 등장하신다.
“어허. 사람은 말이야 관심을 받다가 멀어지면 서운해지는 법이지. 서운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열이 받아서 뭐든 던지곤 하지.”
그러자 파이어볼이 여러 개 생기더니 날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를 좀 봐 달라고 소리도 치고 떼도 부리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네.”
땅에 구멍이 생기면서 진로를 방해하고 귓가에 찢어지는 소리가 커지는지 주저앉는 이들이 보인다.
“어때.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길이지 않은가? 함께 가도록 하지.”
“어디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3층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 세상에 이런 괴물일 줄이야.”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빠르게 가지요.”
‘3층이면, 중간 간부라고 하는 이들의 숙소라고 했는데.’
조금은 걱정이 된다. 아무리 5서클의 마스터라고 해도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괜찮네. 이 완드가 있으면 적어도 하루종일 이럴 수 있을 것 같으니. 이는 마법사로서의 판단일세.”
“가장 보수적인 판단이라고 하신다면 맞겠지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앞에서 비븐님과 마르쿠스가 길을 뚫고 뒤에서 거머리 마법사님이 방해한다.
순식간에 올라온 3층의 계단. 4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거머리 마법사님이 멈추어 선다.
“잘 다녀오시게.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놀아 볼 수 있을 것 같네.”
빠르게 올라오면서도, 방해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퍼지는 포자가 눈에 들어왔다.
‘진짜 제대로 구경하고 싶기는 한데, 나도 아쉽네’
“자! 그럼 나랑 놀아주지 않겠나? 어린아이처럼 변덕이 심하지만 말이야. 마치 바람이 부는 것 같이.”
한껏 신이 난 마법사님을 두고 4층으로 올라갔다. 여기는 지금까지와 다르다는 느낌으로 설계를 한 듯했다.
‘밖의 공간이랑 아예 완전히 단절된 느낌인데?’
3층까지는 계단과 이어지는 공간이 있었다. 1층이 보이는 복도도 있는 구조였다면 4층은 달랐다.
“완전히 방같이 밀폐되어있는 구조라. 그 안에 다시 방이 있단 말이지. 소리도 차단이 되고. 그렇다고 밖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닐 테고. 흠.”
4층의 방에 들어서자 특이한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말에 대답을 하는 낯선 이가 있었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단다. 어차피 여기서 한 줌 독이 되어 죽을 것을.”
“진짜 못생겼다.”
키가 본래는 컸던 듯하지만 구부정한 허리에 얼굴의 반은 녹아내린 흔적이 있는 노인.
“원래 독을 다루는 이들 중에는 저렇게 녹아내린 이들이 많아. 제대로 못 다룬다는 거지.”
“그래?”
“그럼. 넌 내가 독 다루면서 실수하는 거 봤냐?”
“그런 적은 없지.”
“근데 저렇게 녹아내린다는 건 독을 못 다룬다는 거지.”
비장하게 등장한 적을 앞에 두었지만, 위기감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거였음 모를까. 량이 앞에서 독이라니. 상성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잖아.’
“에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런 잡스러운 건 안 되지.”
한발 앞서 량이 단봉을 휘두르자, 뿌연 수증기가 일어나면서 일행을 스치고 지나간다.
다른 일행들도 모두 같은 생각인지 평안한 상태로 뿌연 수증기를 맞이한다.
“연금술사들의 그 오만! 독술이 연금술의 하나라고 하는 그 오만이 얼마나 헛된 건지 모여주마!”
“연금술의 하나라고 생각 안 하는데? 독술은 독술이지. 다루는 사람이 허접해서 그렇지. 잇차.”
말을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색색의 수증기의 향연이 이어졌다. 그러더니 품에서 병을 하나 꺼내는 량이었다.
“독술이 위험한 건 대상이 너무 넓어서 그래. 그래서 만들어본 건데. 한 번 해독 해 봐.”
단봉으로 포션병을 툭 치더니 앞으로 던져서 깨는 량이. 붉은빛의 아지랑이가 노괴를 향해 뱀처럼 기어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혼자 나가지 말라니까.”
“쯧. 소장에게 느끼는 열등감을 굳이 왜 헛되게 푸는지 모르겠군.”
“...”
아지랑이가 나아가는 순간에 그 노괴의 뒤로 일남이녀가 나타나는 것이 보인다.
“역하기 그지없네. 마르쿠스 조심해. 역하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실험체들 중에서도 나름 우수한 이들로 보였다.
“알겠습니다. 범님.”
“량아. 저 노괴는?”
“응. 괜찮아. 정신없을걸?”
“독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네.”
그 말에 마르쿠스와 마니에르 그리고 레핀이 앞으로 나선다.
“단장님?”
“저들이 가장 강하고, 이 안에 남아있는 인원이라고 해야 2명이 끝입니다.”
단장의 말을 듣고 판단을 마친 량이 마르쿠스 등에게 포션을 건넨다.
“자. 힘들면 이거 먹고, 위험하다 싶으면 그거 던지고 알지? 나머지는 위로 가시죠.”
‘조금 위험하려나?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우선 빠르게 올라가야 하니.’
결정이 내려지자 가장 앞에 비븐님 그리고 바로 뒤에 단장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즉시 량이 다른 손에 쥐고 있었던 포션병을 떨어트리니 짙은 어둠의 연기가 순식간에 가득 피어올랐다.
그리고 바로 출발하는 일행. 단장의 신호에 따라서 비븐님이 움직이고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순식간에 완성된 마법이 발현되며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