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어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작은 어선, 해안가 뒤로 걸린 그물들, 건조되고 있는 어패류들.
그 모든 것이 보이지만, 사람만 보이지 않는 마을을 과연 어촌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제 조금 보여?”
“네가 말하고 나니까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았으면 작위적인 걸 몰랐을 거야.”
“그만큼 잘 꾸며놨다는 거지. 일부로 이상한 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 아마 못 찾았을 거야.”
작은 어선이 해안가에 묶여있고, 그물이 늘여져 있다. 그리고 어패류들이 건조되는 것처럼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없었다. 뛰어노는 아이들도, 바닷가에서 손질하는 아낙네도, 그물을 손질하는 청년도.
“어떻게 지금까지 안 알려질 수 있지? 마을인데?”
“그만큼 치밀하게, 그리고 천천히 준비했다는 뜻이겠지.”
“근데 왜 굳이 마을이었을까? 마을의 칭호가 중요해?”
“마을 촌장만 해년 회의에 참석할 수 있으니까.”
“근데 구역주들이 있잖아?”
“두 가지 이유겠지. 믿지 못함과 촌장들간의 이야기가 다르니까.”
“촌장들간의 이야기라니?”
“원래 외지인은 촌장이 되는 게 거의 불가능해. 근데 촌장이 되면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
“그들의 이야기? 그건 뭐…. 아니다. 그래서 마을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거야?”
“응. 아무래도 그렇지. 그리고 이제는 정말 상관없어졌으니까, 신경을 안 쓰겠지.”
“해년회의가 없어져서 그런 거지?”
“오? 이제는 머리도 조금 굴릴 줄 알게 됐다?”
“됐거든. 그래서 어떻게 진입할 건데?”
“적진에 들어가는 거니까. 조금 돌더라도 돌아가야지.”
“얼마나 걸려?”
“얼마 안 남았어. 슬슬 준비해. 말해준 대로 그림자의 숲으로 갈 거니까.”
량의 말을 듣고 준비 후 갑판으로 나가자 꽤 높은 높이의 절벽이 자신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갑판에 서 있는 이들의 면면이 참 화려했다. 백합 기사단과 거머리 마법사, 비븐 레조난 형제, 마니에르, 마르쿠스, 레핀.
이 조합이면 공작 성을 한 번 노려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전력이었다.
“아시다시피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최대한 마나를 사용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비븐은 거머리 마법사를, 레조난은 량을 등에 업었다.
백합 기사단은 모두 중갑을 입고 있는데도 수월하게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모두가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절벽 위를 올랐을 때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진짜 어둡다. 이래서 그림자 숲이라고 하는구나.”
하늘을 찌르듯이 솟아오른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으니 한 줄기 빛도 통과하지 못했다.
순간 소름이 돋고 몸은 자연스럽게 도를 빼어서 옆으로 휘둘렀다. 갑자기 나타난 이의 목 앞에서 멈춘 도.
“오랜만이네?”
“베라트? 네가 왜.”
갑자기 혼란스러움이 머리를 뒤덮었다. 어떻게 들킨 것인지, 자신의 감각을 피해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인지.
눈을 돌려 량을 바라보자 묘하게 웃고 있는 량.
“진짜. 이런 건 좀 미리 말을 해주면 안 되냐? 그리고 너. 갑자기 뭔데. 머리를 날릴 뻔했잖아.”
그에 대한 베라트의 반응은 건조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하는 베라트는 조금 이상했다.
“뭐. 그래도 좋고, 아니 아직은 아니구나. 그나저나 대단한데? 경지의 차이가 진짜 살벌하구나. 그래도 될 줄 알았는데, 역시나 안 되네.”
말을 하는 도중에도 눈이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날카롭고 과묵할지언정 꽤 유쾌한 아이로 기억하기에 더욱 이상해 보였다.
“저희 정보원인 베라트입니다. 저희를 이끌고 어촌으로 향할 거예요.”
“어? 뭐라고? 무슨 소리야 그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의 소리였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절대로 배신을 할 사람이 아닌데? 내가 들은 게 있는데?’
이내 건조한, 그리고 어딘가 씁쓸한 베라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반응인 걸 보니까. 예전에 내가 해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나 보네.”
“당연하지! 그러면서 부탁한 게 있으니까 넘어간 게 얼마나 많은데.”
“그 학살을 일으킨 곳이 [맘몬], 정확히 말하면 데스투도 백작이었더라고.”
“너희를 구제한 게 아니라?”
“아니. 학살도 하고, 구제도 한 거지. 구제는 혹시나를 위해서 한 거였고.”
그렇게 말하는 베라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분노도 없었다. 지독한 상실감과 허탈함만이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건 뭐야? 진짜 깜짝 놀랐다고! 어떻게 한 거야?”
“여기는 내 영역이니까. 그림자의 숲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렇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라고 생각은 못 했지. 확실히 환경에 따라서 변하는 재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다행히 재능과 무력에 관한 이야기에는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는 베라트였다.
“그래서? 언제 소개시켜 줄 건데?”
“아! 량이는 알 테고, 이분들은 백합 기사단. 여기는 비븐, 레조난 형제. 그리고 거머리 마법사님이셔.”
그리고 마저 마르쿠스와 레핀 그리고 마니에르를 인사시켜주자 알아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었다.
그 가운데 가만히 있던 백합 기사단의 부단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그대 타알 출신인가?”
베라트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어느새 슬그머니 살기까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알지. 설마 당신 그때.”
“아닐세. 자네도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학살의 주범은 데스투도 백작가라고.”
“그렇다고 해서 독단일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겠지.”
“그렇게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되네. 그나저나 이를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
부단장이 고민하는 사이에 점차 분위기가 묘하게 변해갔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은 베라트.
“랠리를 알고 있나?”
“설마. 아니지 이름이 같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양 눈의 색이 다른 랠리는 단 한 명일 것 같네만.”
“당신이 누나를 어떻게 알지?”
“그녀가 내 제자라네. 참. 어처구니가 없군. 그렇게도 타알의 생존자를 찾았건만.”
“랠리 누나가 당신의 제자라고? 누나가 떠난 곳이 카시스 후작가였다고?”
“랠리도 카시스 후작가라고 생각 못 했지.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고.”
싸늘하고 살기가 넘칠지언정 흐트러짐이 없던 베라트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랠리라는 사람에게 서운함이 있었는지, 더욱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부단장이 나서서 베라트를 안아주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부단장의 모습은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토닥여주는 모습 같았다. 그 품에서 기어이 눈물을 흘리는 베라트.
‘그런데 량이 용케 재촉을 안 하네? 그럴 리가 없는데.’
그 광경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는 량이 굉장히 어색했다. 칼같이 모든 것을 계산하는 량에게 여기서 지체되는 시간이 용납될 리가 없었다.
‘저걸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뭔지를 모르겠네.’
점차 대화가 진행될수록 베라트의 표정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내 눈빛이 돌아왔다.
“그럼 슬슬 출발할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량의 말에 베라트도 정신을 차렸는지 량에게 사과를 한다.
“괜찮아. 애초에 이 인원으로 이곳을 올 수 있었던 것도 네 덕이니까.”
“하긴. 이곳을 통과하는 것도 내 덕이기는 하지.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하자.”
“알아. 자.”
량이 품에서 던진 것은 작은 패와 서류뭉치였다. 그것을 받아서 읽은 베라트는 눈이 찢어질 것 같았다.
“어떻게?”
“뭐. 간단한 추론이지. 베라트는 죽었어. 넌 이제 자유섬 출신의 글라우야. 네 재능을 아는 이들은 다 정리할 거니까 상관없고. 배경이나 잘 외워둬.”
베라트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심이 어린다. 희망과 공포심이 함께 어린 눈은 어느새 단단한 의지가 되어갔다.
“나중에. 이 일이 끝나면 꼭.”
“그러니까 죽을 생각하지 말고 살아. 살아서 갚아야지. 슬슬 가자. 가면서 설명해주고.”
“알았어. 그럼 모두 제 뒤로 3열로 서 주세요. 그리고 거부하지 말아 주세요.”
베라트의 말대로 그의 뒤에 서는 순간 베라트의 발밑에서 더욱 짙은 그림자가 펼쳐지더니 일행의 발밑을 덮었다.
‘뭔가 강제하는 느낌이긴 한데, 그다지 강한 강제는 아니네. 신기한데?’
베라트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지는 느낌이었다. 곧이어서 그림자가 발밑에서 자라나더니 온몸을 뒤덮었다.
“이러면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안심하고 가면 됩니다. 그리고 저희가 가는 곳은 정확히는 어촌 마을 뒤에 있는 산입니다.”
“산? 산에 본거지가 있어?”
“아니. 산 전체가 본거지라고 생각하면 돼.”
상상이 안 되는 말에 순간 머리가 멈췄다. 뒤에서도 헛웃음이 들려왔다.
“산 내부를 깎고 지지대를 세우면서 산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어.”
“그런 공사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몰랐다고?”
“마법사와 무인이 함께 만드니까 금방이더라. 아무도 모르고.”
‘무인들과 마법사들이 공사에 참여했다고? 직접?’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이라고 할 정도의 무인과 마법사들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했다.
절대로 노동을 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치욕이자 수모로 여기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 무인들과 마법사들이 군말 없이 공사했다는 점이 오히려 소름 돋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면 그렇게 절대복종이 가능하지?’
그 한 제국 조차도 무인과 마법사의 자존심을 세워준다. 그들이 이룬 경지에 대한 존중이었다.
“나조차도 지하에는 내려가 본 적이 없어. 딱 한 번. 재인을 따라서 문을 넘은 것뿐이야. 그 내부는 몰라.”
“지하가 있다고?”
“응. 생각 이상으로 내가 못 가본 곳도 많아. 지상만 7층으로 되어 있으니까.”
가는 동안 베라트의 설명이 이어졌다. 종종 뒤에서 질문이 날아오면 세세하게 대답해주고는 했다.
“내가 아는 정도는 이 정도가 다야.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은 일종의 개구멍이야.”
“개구멍?”
“그냥 내가 지은 이름이야. 그림자의 숲은 온전히 나 혼자 맡으니까. 그냥 작은 문이라서.”
후방의 하나를 온전히 맡았다. 베라트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근데 너는 왜 달라?”
너무 대뜸 물었나 싶었지만, 바로 알아들은 베라트였다.
“역시, 안 그래도 네가 어떻게 알아보는지는 모르지만 알아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말이지.”
“아마 나뿐만이 아닐걸?”
“다른 사람은 적어도 초인이라는 게 문제인 거지. 재인이 귀뜸하더라고.”
“응? 재인이?”
“응. 한계가 명확할 거라고. 너라면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넌 소모품이 아니라고. 난 그 말을 듣고 또 감동받았지만 말이지.”
씁쓸함과 함께 이제는 공허함이 아닌 분노가 느껴진다. 살아난 것이 느껴진다.
“베라트가 말한 대로 7층이나 나누어져 있어서 층별로 나뉘면 우리가 위험해요.”
슬며시 입을 떼는 량의 말에 모두가 집중해서 듣기 시작한다.
“한 번에 들이쳐야 그나마 승산 있어요.”
그 말에 반응이 온 것은 단장이었다.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데 함부로 나서는 것이 더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대부분이 전쟁을 위해서 나간 상황이니, 수뇌부와 잔챙이들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뇌부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맞을 텐데.”
“[맘몬]에서 보여지는 수뇌부는 실상 실험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진짜 수뇌부는 움직이지 않고.”
“허. 실험체라기에 그들의 전력이 너무 강한 것 아닌가?”
“방금 베라트가 말했듯이, 진짜로 키우는 이들은 그 이상한 힘을 받지 않았을 거예요. 조금 특이한 구조라고 해야 하나. 중간이 두꺼운 피라미드예요.”
그 말을 모두가 알아들었다. 중간층은 모두 소진해도 언제든지 쌓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능력이 있는 이상, 언제든지 강함에 갈망하는 이들이 꼬이는 것은 너무 쉬우니까요.”
“미친 단체가 따로 없군. 후작님께서 우리를 보낸 이유가 있어. 이번에 정리하지 않으면.”
“확실히 위험한 단체이긴 하지만, 서 대륙에서는 그만큼 탐나는 단체이니까요.”
“아! 그래서!”
갑자기 탄성을 지르는 거머리 마법사에게 모든 시선이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