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태양이 아직 떠오르지 않은 시각. 량이와 함께 돌라의 성을 나섰다.
“여기에도 이런 게 있었어? 도대체 언제?”
외성에서 나누어진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항구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지. 마을 모든 곳에는 항구가 있어. 이번에 다 끌고 왔지.”
[섹타도르], [브리제], 그리고 처음 보는 함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총 여섯 대의 함선들.
“설마. 저 함선들이 다”
“블랙 펄에서 만든 거기도 하고, [브리제]만한 성능이기도 하지. 어때?”
함께 있는 함선들을 보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섹타도르로 시작해서 점점 밝아지는 함선의 색.
‘검은색에서 점점 회색이 되는 건데. 저렇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돈 지랄은 진짜 그 누구도 량을 따라갈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진짜 미친놈인데, 왜 부러울까….’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이거 타고 갈 거야.”
[칼라]라고 적혀있는 회색 함선. 칙칙한 회색이 아니라 밝은 느낌의 회색이었다.
“이모가 엄청 좋아했겠다?”
“뭐 이 정도 가지고. 하여간 따라서 와.”
‘어쩐지, 나만 따로 부른 이유가 있나 보네.’
[칼라]도 역시나 함선 앞에 서는 순간 알아서 올라가는 판들이 나타난다.
함선의 내부로 들어가자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깔끔하고 간단한 내부로 만드는 거구나. 근데 왜 이리로 가는 거지?’
마나의 파동이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공간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브리제]랑 다른가? 최대한 파동이 드러나지 않게 설계하고 만든 거로 알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어이가 없는 장면이었다. 마나 엔진. 희대의 발명품이었다.
마나석은 자유도가 심한 만큼 어떻게 튈 줄 모르는 것이라면, 마나 엔진은 마나를 공급하는 것만 할 줄 알았다.
그 대신 어떤 마법진이라도, 마법이라도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는 유연함과 절대에 가까운 안정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안전성을 갖추기 위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라도 어마어마한 돈이 깨진다.
그런 마나 엔진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세 개가 맥동을 하고 있는 장면은 말을 잃게 했다.
“어때? 확실히 이래저래 방비했는데 새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네.”
“미친놈아. 하나가 멜빌레이랑 비슷한 출력인 것 같은데, 세 개면 당연하지!”
“오? 보는 눈이 조금 좋아졌는데? 그래도 이러면 확 사라지지.”
량의 손짓에 세 개의 마나 엔진들이 빛을 잃었다. 파동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설마 저 세 개가 연동하는 거냐? 증폭하는 거라고?”
세 개가 있는 것도 모자라서 각각의 엔진이 서로 연동하고 증폭시켜주는 말도 안 되는 광경.
“뭘 하려고 이렇게 만든 거야? 미친 거 아니야?”
마법에 문외한에 가까운 자신이더라도 마나 용량 한계의 법칙은 알고 있었다.
초인 중에 마법사가 드문 이유도, 은연중에 마법사가 무인보다 약하다는 말이 떠도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어떠한 마법이라도 5서클 이상의 마나는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고 터져 나간다는 건데. 저 마나 엔진이라면 터질 것 같은데.’
멜빌레이의 마나 엔진 단일 출력은 5서클을 상회했다. 다만, 보호와 추진을 동시에 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오! 확실히 감각이 많이 좋아졌어!”
“근데 그럼 쓸모없는 거 아니야? 오히려 위험할 텐데 왜?”
“너도 한계 법칙은 알고 있구나. 난 그게 참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단봉으로 여기저기를 툭툭 건드니 마법진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하나가 되기를 반복했다.
‘카인이 여기에 엄청 손을 댔나 보네. 진짜 멋있다.’
“그래서 카인랑 합작으로 만들고 있는 이론이 있는데, 이건 그 실험작이자 과도기에 있는 정도랄까.”
마법을 모르는 자신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되는 광경이었다.
“마법은 조금 더 한계가 명확하단 말이지. 마치 ‘여기까지야’라고 말하는 듯이. 근데 재능은 또 다르단 말이야.”
마법진에 따라 마나엔진이 서서히 빛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카인의 재능을 더한 마법진, 그리고 내 연금술을 섞으면 어떻게 될까.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하나의 마나 엔진이 묵직하게 맥동을 시작했다. 마치 심장처럼 일정하고 느린 속도.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지금의 아이지. 효용성으로 따지자면, 6서클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다른 하나의 마나 엔진이 빛을 찾으며 조금 더 빠르게 맥동하고, 다른 마나 엔진은 그 사이에서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이 길도 이미 허락된 느낌이고”
어느새 처음 문을 열었을 때처럼 말도 안 되는 마나의 파장이 느껴진다.
“뭐. 그래도 이 세계에서 이 아이를 이길 수 있는 건 아직은 없지. 첫 아이치고 굉장히 뛰어나.”
“미친놈들. 진짜 너희는 말도 안 되는 놈들이다.”
“자. 여기에 네 재능을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넣어 봐.”
“뭐? 재능을 뭐?”
“네 말 그대로, 왜 이렇게까지 마나 엔진이 필요하겠어. 다양한 마법을 사용한다 해도 사실 두 개 정도면 충분하지.”
“아니 근데 뭐라고?”
“네 재능을 부여해 보라고, 최대한 모든 힘을 담아서.”
‘뭔 소린지 모르겠네. 재능을 어떻게 하라는 거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지만, 빛나는 량의 눈을 보면 뭔가 있어도 있는 듯했기에, 말을 들어 주었다.
희미한 빛을 내고 있는 마나 엔진에 손을 얹었다. 신기한 느낌이 손을 통해서 느껴진다.
‘작은 마나석만 해도 뭔가 따스하고 활기찬 느낌인데, 이건 따스하긴 한데 텅 빈 느낌인데?’
손을 얹은 상태에서 재능을 일깨우고 그 재능을 마나 엔진에 흘려보낸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순식간에 재능이 옮겨가는 것이 느껴진다.
‘어? 뭐야.’
텅 빈 공간에 자신의 재능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의아한 느낌.
“뭐야 이거!”
어느새 재능이 더 이상 차오르지 않는다. 그 대신 재능이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기묘한 느낌.
“손을 떼지 말고 계속 집중 해야 해!”
들려오는 량의 말에 재능을 느끼는데 집중을 했다. 자신과 하나로 이어진 마나 엔진.
‘어? 이거 어디서 느껴봤다 싶었더니, 이 미친놈이.’
희소성으로만 따졌을 때는 마정석 중에서도 가장 위에 위치한 마정석이 있었다.
‘타눙의 마정석을 여기에 박아 놨다고? 마나석에 어떻게 마정석을 넣은 거지?’
희귀한 마정석을 구한 것도 놀랍지만, 어떻게 구했는지 예상은 갔다.
‘창고에 있던걸 데마르님을 어떻게든 꼬셔서 받아왔겠지.’
하지만 마나석의 내부에 마정석을 넣어 놓은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집중하라는 량의 말에 손을 함부로 뗄 수도 없었다.
‘어라? 뭐야. 뭔데?’
재능은 눈에 보이거나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마나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라고만 생각 했는데, 마정석 안에서 점차 재능이 원을 그리며 머무르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정석 자체가 변하는 느낌인가? 아니 마정석이 왜 변해?’
마정석이 존재하는데도 마나석이 발명되고, 마나 엔진이 발명되는, 마정석이 쓰이지 않는 이유.
마정석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그랬다. 마정석이 나오는 마수의 개성을 짙게 지닌 마정석.
그렇기에 그 기운을 살리는 아티팩트나 몇 특별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마정석에서 마치 자신이 마수가 되고, 그 마정석이 개성을 지니게 된 것처럼 변하고 있었다.
점차 변해가는 마정석에 맞춰서 마나 엔진이 빛을 발하고, 점점 빛을 발하더니 순간 빛이 안으로 모여 은은한 색을 띠기 시작했다.
“됐다! 성공했어! 생각 이상으로 잘했는데?”
“뭐? 성공했다고?”
“그럼. 이걸 어떻게 실험해보냐. 이론으로는 완벽한데 또 모르니까.”
“이 미친놈아! 마나 엔진이 장난이냐!”
“왜? 폭발은 안 했을걸? 아마도. 그리고 하나 날아가도 괜찮아. 잘 됐으면 됐지. 그럼 보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마나 엔진을 확인하는 량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진짜. 미친놈…. 그래서 카인은 안 데리고 왔어? 배려심 있는 미친놈이네.”
말이 안 들리는 듯 마나 엔진에 달라붙어서 이곳저곳을 보는 량의 뒷모습은 조금 무서웠다.
‘미친놈이 제일 위험한 놈이라더니.’
“됐다! 근데 효율이 진짜 쓰레기 같기는 하네. 뭐 그래도 성공한 거에 의미가 있으니까.”
“그래서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건데?”
이걸 어떻게 쉽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량의 표정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나 엔진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마나를 저장해서 사용하는 개념이잖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고개를 당당하게 끄덕일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본 거지. 재능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재능이 발현될 때 사용되는 무언가가 마나의 근본이지 않을까.”
점점 어려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분위기였다. 마나의 근본이라는 말이 시작되며 이어지는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 그런 게 있어. 하여간 그래서 마나 엔진처럼 재능을 저장하고 사용할 수 없을까. 고민해본 거지.”
처음 들어보는 단어와 온갖 마법 이론, 연금술의 향연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마정석을 이용해서 재능을 저장하고 마나 엔진으로 수복해 사용하는 원리라는 거지?”
“뭐.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지. 그런 목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효율이 좋지 않다는 거고, 한계도 뚜렷하고.”
“오? 그래도 핵심을 잘 이해했네?”
“애초에 핵심만 말하면 될 텐데 말이지. 근데 진짜 말이 안 나온다.”
사람을 혼미하게 만드는 량의 정신 공격에 넋이 나갔을 뿐, 여전히 감탄은 남아있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만든 거냐. 근데 효율을 생각하면 다른 분의 재능이 훨씬 낫지 않아?”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재능이 존재하는데, 굳이 자신의 재능일까 싶었다.
“할머니께 부탁드렸으면, 좋다고 해 주셨을 것 같기도 한데.”
새롭고 신박한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분명 좋다고 하셨을 거다. 그럼 아무리 효율이 거지 같다고 해도 ‘배’에 가장 어울리는 재능이었다.
“….”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고 입으로 우물거리기만 한다.
“설마 효율을 그렇게 중시하는 량님께서 그런 걸 생각을 안 했을 리가 없는데 말이지.”
놀리는 것을 계속하자 점점 얼굴이 붉어지던 량이는 쏟아내듯이 소리쳤다.
“너가 가니까! 그냥 한 거라고! 재능이라도 있으면 너가 있는 것 같으니까!”
붉어진 얼굴로 소리친 량과 함께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듣고 난 후에 머리가 멍해졌다.
침묵에 이은 묘한 기류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뭐라도 말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내 재능을 담으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얼굴에 화색이 돌며 대답하는 량의 얼굴에는 홍조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