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성하의 일을 설명하고 나니 조금은 납득하는 표정으로 변한 두 사람이었다.
“그래. 성하의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지.”
묘한 말을 하는 량이었다. 카인은 아직 섭섭함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진짜 미안해. 나도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후우. 한 번만 봐주는 거야!”
그 말로 서운함을 표정에서 털어낸 카인이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마치 혼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왜지.”
“응. 혼나는 거야!”
“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그러고 있어. 그래서 재인이 후계자라는 이유는 뭔데. 자세하게 이야기해보시지.”
카인이야 그렇다고 쳐도 량이마저 그에 동조하면서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에휴 내 인생. 불쌍한 나여라.”
“하나도 안 불쌍해.”
“어설픈 신파는 집어치우고 빨리 얘기해.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재인의 진짜 성은 에레스야.”
말이 끝나도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진귀한 광경이었다.
‘원래 지금쯤 뭐? 진짜? 그렇군! 이런 반응이어야 하는데. 얘네도 모르는 게 있구나.’
“그래서 진짜 성이 뭐가 중요한데. 즐기지 말고 이야기 하시죠.”
“안 즐겼어! 현재 [맘몬]의 수장으로 있는 사람의 이름은 아르데오 에레스. 차기 교황으로 키워졌던 사람이야.”
그 말에 진짜 놀라는 두 사람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몹시 신나지기 시작했다.
“신전에서 추방당한 건 대략 120년 정도 되었어. 그때 이미 초인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놀라는 표정이 내 입을 신나서 열게 만들었다.
“재인이 태어났을 때. 기적이라며 성하를 뵈러 신전에 왔었다고 하더라고.”
량은 점점 표정이 심각해졌고, 카인은 점점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설득하려 했지만, 안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자세한 이야기는 비밀. 그러고 나서 더 활발해지게 된 거지.”
“근데 초인이 아이를 가지는 건 불가능한 거 아니었어?”
마스터가 되어도 자식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같은 마스터가 아닌 이상 감당을 못 한다.
초인은 마스터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다. 재능은 육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개성이 너무 강해져 더욱 힘들다고 한다.
같은 초인일지라도, 지금까지 불가능이라고 불릴 만큼 없었다고 한다.
그런 확률을 뚫고 태어난 아이. 당연히 모든 면에서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은 아니라고 하더라고. 정말 기적 같은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아는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거의 마무리 할 때쯤 진지한 표정의 량이 입을 열었다.
“범아.”
“응?”
“말 안 한 게 있지? 너가 놓친 부분을 다시 생각해서 말해봐.”
“응? 뭐가? 내가 말 안 한 게 있다고?”
“어. 그러니까 자세히 생각하면서 다시 이야기해봐.”
량이 말하는 부분은 성하의 감정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심각한 량의 표정을 보며, 다시 이야기를 하나하나 해나가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이기도 하면서 성하께서도 수긍해 주신 부분인데.”
그 말에 눈을 빛내는 것 같은 량의 모습이 들어왔다.
“역리로 내려가는 듯한 선천 재능은 아마 아르데오 에레스, 그 사람의 힘으로 인한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움직이지 못 하는 거고.”
“그래! 그거지. 어쩐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모든 게 설명되지.”
“뭐가?”
“에밋은 이제 떨어져 나갔고, 애초에 카인에게 이런 걸 후계 시험이라고 내놓을 리가 없잖아?”
“조금 길게 설명해주면 진짜 고마울 것 같은데 말이지.”
“아니. 생각을 해 봐. 이미 100년도 전에 초인을 앞둔 괴물을 상대하라고 했을 리가 없잖아.”
“모르실 수도.”
“헛소리. 그런 정보 없이 이렇게 보내지 않아. 간단해졌네 그럼. 재인과 주변을 확실하게 쳐내면 끝이야.”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있어 그런 게. 그리고 확실히 가지고 올 수 있는 건 다 가지고 와야겠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갑자기 이렇게 결정하는 모습이 어색했다. 너무 뜬금없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바로 나가도 되는 거야? 이야기해야 한다며?”
“에이. 그건 너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감추어 놨을 때 이야기지.”
“맞아! 너가 미리 말 했으면 이미 80%는 끝났을 텐데!”
두 사람의 타박을 엄청 들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타박이 끝나고 칼라 이모에게 슬그머니 발걸음을 맞췄다.
“제가 뭐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
그 말에 칼라 이모가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이 어떤 것을 했는지 설명해주셨다.
“그러니까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 봤다는 건가요? 근데 그만큼 지도자가 중요한가요?”
“[맘몬]은 뿌리니까. 그걸 혁명에 가깝게 변화시켜내고 2대가 누군지 엄청 골몰했지.”
“아…. 100년이라는 역사가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2대나 3대를 열심히 찾았던 거지. 그런데 그럴만한 사람이 너무 없는 거지.”
“그런데 그걸 알았다고 해서 저렇게 바로 견적이 나오는 건가요?”
“뭐. 다 그럴 수는 없지만, 네 친구들이 워낙 괴물이지 않니. 거기에 도움도 있었고.”
“도움이요?”
그 말에 앞서나가던 두 사람이 짠 듯이 칼라 이모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말하지 않을게요. 미안. 비밀이라고 하네.”
“너무한 거 아니야? 진짜 치사하다!”
“너가 더 너무하지! 량이랑 세계 인물을 뒤지는 게 쉬운 줄 알았어?”
“거기에 혼자만 알고 있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줄도 몰랐다는 게 더 어이가 없어.”
“알았어. 알았어. 잘못했어. 근데 무슨 도움을 받았는데? [맘몬]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런 게 있어. 조만간 알게 될 거야.”
“뭐. 카인이 저러니 내가 어떻게 먼저 말하겠어?”
그러더니 식당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이었다. 칼라 이모를 보았지만, 어깨를 으쓱하시며 뒤따라 들어갔다.
“에효. 여기에 내 편은 없지. 서러워서.”
언젠가 알려주겠지 싶어 상념을 털고 좋은 냄새가 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
“저녁은 마음에 들었나 모르겠네.”
“이런 곳으로 이렇게 빨리 불러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일전의 무례는 죄송합니다.”
돌라가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던 야외 정원. 그곳에 다과와 함께 재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나온 거야? 그치는 기분이 나쁘대?”
“죄송합니다. 제가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던 량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한 마디 내뱉었다.
“에레스.”
“네?”
“들었을 텐데?”
재인의 표정이 완전하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소름끼치게 무서운 표정이 떠오른다.
“누구지? 아닌데, 그 누구도 그건 알 수 없는데.”
“왜? 그걸 알게 되면 뭐가 변하나? 네 태도는 확연히 변했는데.”
충격이 컸는지, 계속해서 누가 그랬는지를 중얼거리며 생각하는 재인이었다.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네.”
“내 출신을 알았는데도 감히 이런 태도라고?”
“출신? 출신이라고 할 게 있나. 한 때였고, 이제는 파문되었고 당대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대를 이어서는 아니지. 오히려 신전의 은혜를 받은 입장이겠지.”
그 말이 역린을 건드리는 말이었을까. 그나마 관리되었던 표정까지 무너졌다.
오히려 얼굴이 붉어지더니 살의와 함께 량을 쏘아보는 재인.
“감히! 그런 말을!”
‘확실히 그 수장이라는 사람은 재능의 역천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나보네.’
한껏 기세가 올라오는 재인에게서는 어떠한 역겨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기세를 피운다고 여기서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나. 그리고 감히 라니 쯧. 아직 멀었군.”
여전히 손에 찻잔을 쥐면서 느긋하게 말하는 량은 내가 보기에도 얄미웠다.
필사적으로 평정을 찾으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 재인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 말은 결국 우리에게 오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지?”
“차라리 상단이 이미 망한 게 다행이군. 협상을 전혀 할 줄을 모르는 이가 상단주가 되면 볼만했겠어.”
“대답이나 했으면 좋겠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평가를 들을 생각 따위 없어.”
“언젠가는 결국 내, 아니 우리 손에 들어올 서섬인데 그걸 조건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누가 들어가?”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한 건지 모르겠지만, 네 스승이 너를 보호해 줄 것 같아?”
“막상 스승님이 등장하면 꼬리 말고 튈 것들이 꼭 그렇게 이야기 하지. 넌 오히려 뭘 믿고 여기서 그렇게 당당한지 궁금한데?”
“협상을 위해서 온 사절단을 죽이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예의가 없다고?”
“나는 그런 쓸모없는 형식에 메이는 편이 아니라. 효율이 중요하지. 설마 나를 죽이면 우리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이런 건가?”
“하! 그런 기본도 모르는 것을 보니 스승도 알만하군. 죽여보시지. 혼자 죽지 않을 테니.”
그러면서 품에 손을 넣어서 주먹보다 조금 큰 마나석을 꺼내 보이는 재인.
밝게 빛을 발하고 있는 마나석의 주변으로 얇은 띠가 하나 둘러져있는 처음 보는 마나석이었다.
“뭐야. 당당하게 이야기해놓고 결국 죽지 않고 싶다는 거잖아.”
“너같이 예의가 없는 이를 위한 대비책일 뿐이다. 이 하나가 터지면 우리가 가져온 모두가 함께 터진다!”
“그나저나 그렇단 말이지. 그래 좋아. 그럼 이만 가봐.”
이어지는 량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재인.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이었다.
“왜? 배려지. 어차피 우리랑 있는 게 편하지도 않을 텐데, 전부 준비시켜놨으니 가보도록 해.”
손의 마나석을 강하게 그려 쥐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게끔 등을 돌려 나가는 재인.
그 모습을 보면서 무표정한 량과 재밌어하는 카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기하고 있던 마르쿠스가 재인을 안내하는 것이 눈에서 멀어졌다.
“량아. 저렇게 그냥 보내도 돼?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그리고 그냥 지금 처리하는 게 낫지 않아?”
“안 돼.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건 보자마자 포기했어.”
“응? 왜?”
“극비 아닌 극비이긴 한데, 너 재인이 들고 있던 마나석이 뭔지 알아?”
“별거 없어보였는데? 그냥 불안정하게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저 마나석이 신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을 금한 물건이라고 하면 믿겠어?”
“저게? 마정석도 아니고 그냥 마나석인데도?”
“응. 모두 회수 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아있는 게 있었네. 아니면 빼돌렸거나.”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는데? 뭔데?”
“스승님께서 신전에 꼼짝을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기도 한데, 마법에 속성이 있는 건 알지?”
“마법은 7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정도는 알지!”
“그치. 그래봐야 4대 속성이 주를 이루지만 말이지. 그런데 마법에 속성이 있듯 마나에도 속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실험이 있었어.”
“그걸 파울로님께서 하셨다고?”
“응. 어찌어찌 하셨는데 두 가지 속성을 담은 것만으로도 불안정하게 있다가 폭발해버렸어.”
“근데 폭발정도가지고 왜?”
“새끼손톱만한 마나석이 연구실을 반파시켰으니까. 아무리 작은 연구실이었다 해도 그 스승님의.”
“근데 그게 왜 파울로님을 옭아매는 일이야?”
“그래도 쓰임새가 있다 판단을 하셨는데, 그때 젊으실 때라 생각 없이 몇 군데에 배포 하셨더라고, 그리고 전쟁, 테러, 암살에 사용이 되었고.”
“아….”
“그걸 수습하는 걸 신전에서 맡아서 해주었지. 근데 아직도 남아있다니…….”
량을 알아온 시간 동안 본 것 중 가장 싸늘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자. 빨리 정리하고 좀 더 자세하게 파봐야겠어. 카인 너도 좀 도와.”
그 기백에 카인과 함께 량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바라본 밖의 풍경.
마차가 내성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 보였다.
‘그래도 아무 일 안 벌이고 가기는 하네. 이제 곧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