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외성에서부터 내성으로 향하고, 성 앞에 도착했을 때 성 앞으로 마중 나온 돌라가 보였다.
“하하하! 이런 결정을 내려주어서 몹시나 고맙다네.”
“아닙니다. 그동안 돌라님께서 보여주신 환대에 당연한 결정입니다.”
“그래. 그래. 같이 있다 보면 더 정도 들고 하는 것이지. 주변 땅들은 마음에 들던가?”
“그렇게까지 안 주셔도 괜찮았는데, 넓어진 만큼 더욱 많은 아이들을 관리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좋네. 아주 좋아. 그렇다면 자리를 옮겨보도록 하지. 소개해 주고 싶은 이들이 많다네.”
마중 나온 돌라를 따라 성 안. 처음 보는 거대한 홀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 이곳이 우리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있는 홀이라네.”
거대한 샹들리에가 빛을 밝히고 있는 홀에 도착하자, 수많은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과 일행을 반겨주었다.
“자! 우리는 우리의 자리로 가도록 하지.”
홀 안에서조차 철저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이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자신과 스테인 그리고 슈테힌은 가장 상석에 그리고 자신의 수하들은 중간 테이블에 앉았다 는 이야기인가요?
“후후. 기대하게나 오늘은 신경을 썼으니 말일세.”
그동안은 신경을 안 썼다는 걸까, 아니면 오늘은 오지게 돈지랄을 떨었다는 것일까.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자, 사용인들이 일제히 나와 잔에 술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경사스럽기 그지없는 날이다. 이제는 피에트 가에서 독립하여 마울 마방이 정식으로 이 땅에 정착하는 날이기에 그러하다!”
‘그래도 독립이라고 해주네. 참 말을 잘한단 말이지.’
“자유섬에서 무슨 말이냐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 말의 존재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강한 전략 무기이기도 하다.”
연습한 마냥 자연스러운 연설이었다. 헛소리만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했다.
연설이 끝나자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 같이 잔을 들어 올리자 돌라가 선창을 시작했다.
“세상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
있는 그대로 들으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외칠 법한 건배사였다.
‘그 가치 있다는 게, 돈으로 정량 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게 문제지. 뭐 이제는 상관없나.’
그리고 나오는 음식들은, 왜 신경을 썼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어떠한가? 마음에 드는가?”
“저희 지역의 음식까지. 이리 신경을 써주셨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원래 외지에 나오면 고향의 음식이 가장 그리운 법이지. 차차 적응해 가면 되는 거라네.”
확실히 사람 포섭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은근함과 대범함의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내가 진짜 마울이었고, 이 상황이 진짜였다면 이거에 마음이 기울었겠는데? 그나저나 카인도 대단하네.’
어느 지방에 가도 그 지방 고유한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만의 먹는 방식이 있다.
카인과 량에게 굴려질 당시에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는가 했던 것이 눈앞에 드러나니 새삼 대단해 보였다.
“이곳에서 허르헉을 먹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습니다. 보아하니 정말 제대로 요리한 듯 보이는데.”
“피에트에서 식당을 하던 이를 섭외했지. 피에트에서도 진미 중 하나라고 하는데 어떻게 먹는 것인가?”
“기실. 이 음식은 주로 평원에서 먹기에 그저 손으로 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뼈에 붙은 살을 뜯어 먹을 때 가장 맛있습니다.”
그 말에 거침없이 맨손으로 고기를 들어 뜯어먹는 돌라를 보자 참 대단하다 싶었다.
‘확실히. 성공하는 인간들은 뭐가 있어도 있구나.’
전통 음식이긴 했지만, 피에트 가문에서 손으로 먹는 것을 야만적이라고 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이 손에 기름을 묻혀가며 먹는 돌라를 보니 새삼 다르게 보였다.
“확실히. 손으로 먹는 맛이 있구만. 본래는 둘러앉아 같이 먹는다지?”
“본래 마상에 살던 사람들이니까요. 저희는.”
“가끔은 한 번 밖으로 나가 이렇게 먹어보고 싶군. 새로운 느낌이야.”
“저희 지방에 대해서 이렇게 해박하실 것이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이런 사람이 왜 [맘몬]에 소속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매력 있는 사람이다.
‘카인에게 먼저 듣지 않았다면, 마음이 불편할 뻔했네.’
격의 없고 호인으로 보이는 돌라의 행동의 동기를 배웠다. 그리고 변하는 돌라의 행적을 배웠다.
‘단물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하게 철저하게 파괴한다고 했지.’
황금알을 계속 낳지 못하는 거위는 배가 갈라지고 삶아질 뿐이라고, 카인이 말을 해 주었다.
‘그나저나 이 허르헉이라는 거 진짜 맛있는데? 그때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어.’
대표적인 음식을 배울 때, 카인이 먹인 음식 중 하나가 이 허르헉이었다.
특이하게 불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달궈진 돌을 사용해서 익히는.
‘그땐 노린내가 살짝 났는데, 이건 그런 거 없이 부드러운데? 돈이 좋기는 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차려진 음식을 먹고 즐기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테이블들이 치워지기 시작했다.
“이 홀에서 연회를 즐길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네.”
상석을 제외하고는 모든 테이블이 나가기 시작하고, 사용인들이 손에 음식과 음료를 들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연회에서 새로운 짝을 많이 만나기도 하지.”
노래가 서정적인 음율에서 조금 빠른 템포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하나둘 춤을 신청하고 추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상석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슈테힌, 저와 한 곡 어울려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하하! 이리 목석같은 이가 있나 했더니, 숨겨두었던 짝이 있었나 보군! 알고 있었나?”
“이제는 더이상 가문에 메이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아쉽게 되었군. 내 모든 힘을 써서 슈테힌의 짝을 찾아주려 했건만, 스테인만한 남자가 어디에 있겠나.”
슈테힌에게 춤을 신청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스테인이었다. 수줍은 얼굴로 손을 잡으며 홀의 중앙으로 향하는 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울. 자네는 생각이 없는가?”
“우선은 저 둘을 바라보고 싶군요. 여러 감정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도 그럴 만하겠군. 그럼 나도 이번 타임은 같이 쉬어보도록 할까.”
스테인이 미리 말이라도 해 놓은 것일까. 스테인과 슈테힌이 홀의 끝으로 향하자 노래가 변하기 시작했다.
더 빠른 템포의 노래가 변하며 분위기가 격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홀의 끝에서 시작된 둘의 춤은 홀 전체를 누비기 시작했다.
“슈테힌이 저리도 격정적인 이일 줄이야 상상도 못 했군.”
“저도. 스테인이 저리 격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못 했습니다.”
민폐라고도 할 수 있는 둘이었지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주인공은 두 사람이었다.
슈테힌과 스테인은 그 이후로도 몇 곡을 더 추면서 중앙에서 추던 첫 곡과는 다르게 구석을 누비며 춤을 추었다.
‘이게 제일 힘들구나.’
돌라의 동생의 딸과 추는 춤, 페니의 딸과 추는 춤. 수도 아카데미에서 억지로 배우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었다.
‘그래도 진짜 별로다.’
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을 무렵 계속해서 춤을 추는 스테인과 슈테힌이 눈에 들어왔다.
‘저 둘은 지치지도 않나. 한 곡만 쉰 것 같은데 말이지.’
벌써 5곡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자신은 두 곡만 춤을 추었는데도 죽을 것 같았다.
거기에 여성들, 의도를 가진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고역이었다.
어떻게 피신해 온 구석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스테인이 눈에 들어왔다.
“좋았습니까? 첫 곡은 신청곡인 것 같았는데, 언제 둘이 그렇게 합을 맞추었습니까?”
“다 준비를 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제 완성되었습니다.”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스테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르쿠스를 찾았다. 그리고 이 홀에서 자신만큼 어색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전혀 귀족 그것도 백작가의 자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쟤도 천성이 용병인가. 진짜 누가 보면 태생이 용병인 줄 알겠어.’
“마르쿠스.”
“아! 도련님.”
“왜 이렇게 어색하게 서 있어. 좀 즐기지.”
“저는 영 이런 연회에 익숙하지 않아서. 오히려 그냥 술판이 편한 것 같습니다.”
“누가 알겠어. 네가 그 베타라 가문의 장자라는 걸 말이지.”
“이제 때가 된 것입니까?”
“응. 슬슬 준비해야지. 알고 있으라고. 너무 외곽에 있지 말고.”
그리고 자리를 옮겨 레핀에게로 다가갔다. 레핀은 일리야 옆에서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종종 춤 신청이 있던 것 같은데 왜 가만히 있어.”
“아닙니다!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어색해. 멍청이. 이제 슬슬 준비해. 스테인의 신호가 있으면 움직이게.”
어쩔 줄 몰라하며 눈치를 보던 레핀이 생동감 넘치는 표정으로 변한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슬슬 연회장 중심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인지하지 못 했다.
중앙을 지나기 시작할 무렵 마르쿠스가 자신의 뒤에 서는 것이 느껴졌다.
“마울. 자네!”
돌라가 의아함을 느꼈는지 자신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한걸음에 기세를 담는다.
주변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지는 것이 보인다. 그에 맞추어 카인이 완드를 바닥에 찍으며 주문을 말한다.
“이게 무슨 짓인가! 스테인 이 마법은 또 무엇이냐!”
그 신호에 맞추어서 문을 막고 자신과 돌라를 제외한 사람들을 막는 수호대원들이 보인다.
어느새 무기가 손에 들려 있었고 아공간에서 도(刀)와 마르쿠스의 망치를 꺼낸다.
“감히 지금 어느 곳에서 무기를 빼는 것인지 알고 있느냐!”
돌라를 중심으로 ‘어스퀘이크’의 인원이 모이는 것이 보인다. 대형을 만드는 것이 순식간이었다.
“마울! 이게 무슨 난동이냐!”
분노로 일그러진 돌라의 표정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가죽을 벗기며 다시 인사를 한다.
“음. 일단 난 마울이 아니고, 블라우 구역의 수호대를 맡고 있는 범이라고 해.”
할 말을 잃은 듯한 돌라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표정과 다르게 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소용없을 거야. 이 공간은 완전히 외부와 차단되어있으니까.”
“비열하기 그지 없구나! 다른 사람을 사칭해서 오다니! 블라우 구역주는 그 정도의 자신감도 없나보구나!”
“뭐. 우리 구역주님은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시는 분이라. 머리를 따면 끝나는데 굳이? ”
주변을 둘러보던 돌라는,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 나서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굉장히 좋은 전략임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군. 하지만 아주 큰 실수를 했어.”
약간 미친놈 같았지만, 아직 정리되어가는 중이기에 가만히 두었다.
“나를 치려는데, ‘어스퀘이크’를 치려는데 고작 이 인원으로 온 것이 가장 큰 실수이다!”
“그래 봐야 마스터도 없는 주제에?”
그 말이 아픈 부분을 찔렀던 듯 회복된 신색이 바로 일그러졌다.
돌라뿐만 아니라 ‘어스퀘이크’ 전원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어린 나이에 마스터가 되었다고 세상이 만만해 보이는가 보구나!”
“어. 생각보다 마스터가 대단한 존재더라고, 요즘에 조금 회의감이 들었는데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싶을 무렵 약속했던 발 구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그 잘난 ‘어스퀘이크’를 한 번 볼까?”
“저. 범님?”
“응?”
“제가 먼저 혼자 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준비를 마친 마르쿠스가 설레는 표정으로 물었다. 반짝이는 눈이 마치 첫사랑을 대면한 이 같았다.
“하아. 이런 것도 불스님을 닮아가냐. 알았어. 그런데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들어갈 거니까 염두하고.”
자신들을 눈앞에 두고도 평온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마법이 날아오고 있었다.
“에이. 대화하는데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아줌마.”
날아오는 파이어볼을 가르는 동시에 마르쿠스가 뛰쳐나갔다.
“살벌하다. 살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