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여기서 며칠 지내려면, 아무래도 마방을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탁이라는 말에 얼굴이 미세하게 찌푸려지다가도 자신의 말에 따라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너무 웃겼다.
‘오즈안님이나 다른 분들이 나를 볼 때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허. 당연히 해주어야 하고말고. 피에트 마가 지내는 곳인데 말이야. 그리고 폐가 안 된다면 그 말을 구경하고 싶네만.”
“언제 한 번 저희와 함께 말을 타러 나가시지요. 그나저나 스테인과는.”
“하하! 안 그래도 마상 마법사와 대화를 꼭 나누고 싶었네. 오늘 저녁은 그와 함께한 후 돌려보내도록 하겠네.”
‘진짜 속이 뻔하게 드러난다. 나름 잘 숨긴다고 하는 거겠지?’
“안 그래도 슈테힌이 동생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하더니, 슈테힌도 그 집에 머문다지?”
“네. 누님과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지라.”
“이왕 온 것 오래 머무르도록 하게나. 여기에 있는 동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으니 말일세.”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슈테힌과 함께 인사하고 나오는 순간, 스테인이 돌라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것을 보고 요란한 웃음을 짓는 돌라.
“누님?”
“조금 이따가 말해줄게. 빨리 들어가자! 나도 오랜만에 말들이랑 놀아야지!”
분명히 알고 있고 말해줄 수 있는데도 말을 하지 않는 누님이었다.
‘그나저나 카인도 타고난 정보 요원인데? 연기 진짜 잘하는데?’
성을 나왔을 무렵, 노을이 지며 바다를 붉게 수놓고 있는 장면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와.”
“예쁘지? 이 광경은 정말 천금을 주고도 못 살 것 같은 광경이지.”
“이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성을 뒤로하고 봐야하는 거네요.”
“빨리 돌아가자. 여기서는 참.”
그렇게 조금은 빠르게 외성으로 향하자, 이미 저녁을 먹은 후 훈련을 하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다들 익스퍼트라 그런지 적응이 빠르네?”
“그래도, 조금 더 확실하게 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죠.”
“범님께서는 좀 어떠세요? 말을 타는 게 쉽지 않으실 텐데.”
사람들이 모르는 점이 있었다. 정말 큰 전쟁이 터지면, 용병들은 모두 말을 탈 줄 알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그런 게 어딨어. 그냥 타고 훔쳐 타고 그러는 거지.’
거기에 더해 용병들도 말을 탈 줄 알아야 제 값을 받게 되어 기마훈련을 하는 용병들이 늘어났다.
‘확실히 배우니까 다르기는 했는데. 빨리 배워서 놀랐지.’
“꽤 타요. 피에트 마사가 가문의 일원이라고 할 만하다고 했으니, 괜찮은 거겠죠?”
“범님? 그건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요? 언제 말을 타보신 적이 있으세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워서 그렇죠.”
“하여간 재능이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니까요. 여기도 저기도 다 괴물이야.”
“에이. 괴물은 량이나 카인정도는 되어야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하긴. 도련님이 좀 똑똑하기는 하시죠? 그나저나 아직도 어색한 부분이 많이 보이네요.”
“조금 도와주실래요? 그나저나 진짜 환심을 사고 싶기는 한가보네요.”
굳게 닫혀있는 성문들과 다르게 이곳은 성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비록 감시하는 인원이 있었지만, 그 감시가 자신들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 주변은 어차피 모두 돌라의 영역이니까. 자신감이죠. 그리고 회유가 가능할 것 같으니까 아마 더 할걸요?”
“왜. 또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방금 저녁 식사에서 한 말로 회유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머저리가 있을 리 없다.
그걸 모를 사람도 아니고, 저 자신감에 찬 미소를 보면 분명 무엇인가 한 표정이었다.
“글쎄요? 저는 이만 수호대원들을 봐주러 가야해서 말이지요. 아! 빅터를 잠시 빌려 갈게요!”
확실히 위장 요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피에트 가문의 장녀다운 기마 솜씨를 보여주는 유모였다.
“하튼. 저 깜짝 놀래켜주는 걸 좋아하는 건 분명 카인이 유모한테 배운 걸 거야.”
고개를 저으면서 한참 훈련하고 있는 기마대의 모습을 보다 이내 마방으로 향했다.
“하아. 생각보다 어렵단 말이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진짜.”
일전에 깨끗하고 청결했던 마방은 어느새 똥 냄새가 퀴퀴하게 나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마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이걸 매일 해야 한다는 거지.”
건초를 새거로 바꾸고 똥을 치우고, 환기가 되나 확인하고 배수를 확인한다.
귀족 가문의 자제가 절대 하지 않을 행동 같았지만, 피에트 가문의 자제는 당연한 일이었다.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도 언제나 누가 보고 있다 라고 했던가. 꽤 오랫동안 이래야 할 것 같은데, 돌아버리겠네. 익숙해지려나 모르겠네.”
*
이틀 전에 한 말이 무색하게 똥을 치우고 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금방 익숙해진 범.
그 이틀 사이에 도착한 묘한 소식에 페니가 돌라의 집무실로 황급하게 달려갔다.
“흐음. 이게 사실이란 말이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가문이면 말도 안 되지만, 피에트 가니까요.”
“그럴 수 있지. 말에 모든 것을 바친 가문이니. 지금도 다르지 않고.”
돌라가 쥐고 있는 종이에는 피에트 가문 제일의 마사가 수종제자를 들였다는 소식과 함께 제 2 기마대 30명을 새로 들였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호재이긴 한데, 갑자기?”
“갑자기라기 보다 꽤 오래 준비한 것 같습니다. 눈에 차는 제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구요.”
그리고는 다른 종이들을 내밀며 설명을 이어가는 페니였다.
“거기에 더해서 슈테힌이 자유섬으로 오고, 마울마저 오니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좋아. 좋은데, 얼마나 들어가고 얼마가 뽑힐 것 같아?”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언제는 아니었던 적 있고? 돈에 있어서는 너만한 이가 드물지.”
“얼마가 되더라도 투자해야 합니다. 돈을 산처럼 가져다 바치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희는 금광을 얻게 되는 거죠. 금광뿐만이 아닙니다. 힘도 갖출 수 있는 투자입니다.”
검지 손가락으로 탁자를 치는 것도 잠시, 이내 결정을 내린 듯 페니를 바라보는 돌라.
“후. 우선 예산의 1할까지로 시작하자. 내일 저녁에도 초청하고, 그리고 스테인은?”
“종종 만남을 가져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상 마법사를 그대로 내친다고?”
“내친다기 보다는 원래 마울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학문의 스승으로 붙여주어서.”
“호? 그럼 자연스럽게 덤으로 딸려온다는 거지? 좋아. 앞으로 저녁 늦은 시간에 볼 수 있을 때마다 보자고 해야겠군. 차라리 잘 되었어.”
“조금 도움이 됩니까? 감히 돌라님에게도?”
“굉장히 시야가 색달라. 확실히 워 메이지와도 사뭇 다른 부분이 있어서 좋더군. 그나저나 ‘그’ 일정은?”
“조금 꼬일 것 같다는 회신입니다. 아무래도 마수들이 날뛰는 것이 곤란한 듯합니다.”
“쯧. 이래서 로즈님을 쉬이 보지 말라고 해도 어린놈들은 그분의 위상을 모른단 말이지. 알았다고 전하고 그동안 우리는 마울에 집중하는 거로 하지.”
그렇게 자신들의 계획으로 마울을 집어넣는다고 생각하면서 착실하게 카인의 계획으로 걸어가는 이들이었다.
*
저녁이 되어 말들이 밥을 먹고 있는 것을 구경할 무렵, 스테인이 마방으로 들어왔다.
“저택에 있는 시간보다 마방에 더 오래 있는 거 같은데.”
“의외로 하다보니까 적성에 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 피에트 마들은 다들 왜 이렇게 온순해?”
“온순하다고 하는 건 너가 특이한 거야. 그리고 얘들도 아는 거지. 빅터가 널 잘 따른다는 걸.”
마방에 있는 내내 자신의 옆을 지키며 아양을 떨고 있는 빅터를 보며 카인이 말을 이었다.
“빅터가 널 마음에 들어 하니까. 다들 알아서 기는 거지. 그나저나 순혈 피에트 마가 이렇게 잘 따르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지.”
“응? 훈련을 잘해놔서 그런 거 아니고?”
“용납해 주도록 훈련시킨 거지, 따르도록 훈련시키는 건 절대 못 한다고 하더라.”
맑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빅터의 갈기를 쓰다듬어주자 좋아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어쩐 일로 바로 여기로 오셨대?”
“잠시만 기다려 봐. 유모도 곧 올 거야.”
유모도 양반은 못 되는지 카인이 말을 하자마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도련님!”
“애들 훈련은 잘 시키고 왔어?”
“진짜 어디서 저런 원석들을 구하신 거예요. 우리 도련님도 참. 보는 눈도 좋으시지.”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량이랑 한 거니까. 그리고 뭐 보는 눈은 범이 어마어마하지.”
저 두 사람은 지치지도 않는지 칭찬 티키타카를 시작했다. 익숙하지만, 적응이 안 되는 것은 매번 같았다.
“하아. 저기요. 스테인님?”
“아! 맞다. 유모도 들었지?”
“네. 안 그래도 저한테 따로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엄청 정중하게.”
“생각보다 잘 먹힌 것 같지? 돌라가 괜히 돈을 쓸어 모은 게 아니야.”
“확실히, 해야 할 때는 과감하게 하는 사람이기는 하죠.”
“저기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여기 하나 있는데요?”
“범님, 그러니까 마울에게 내일 저녁에 초대하겠다고 꼭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그리고 스테인인 나한테도 매일 저녁에 시간이 되면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더라.”
“그럼?”
“그럼은 무슨, 이제 슬슬 밀고 당기면서 타이밍을 맞춰야지. 여기도 새로 짓고.”
“근데 정말 도련님도 그렇고 량님도 그렇고 무서운 분들이시네요.”
“응? 뭐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자재며 모든 걸 다 준비해 오신 거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신 거예요?”
“그런 건 나도 량이한테 많이 배우고 있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길이라고 생각하면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어.”
두 사람이 신나는 것과 다르게 기쁘기는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하아.”
“응? 범님은 왜 한숨을 쉬시는 거예요?”
대답할 힘도 없었다. 이유를 알고 있는 카인이 웃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을 듣고서는 이내 웃음을 터트리는 유모가 눈에 들어왔다.
“웃으시는 건 좋은데, 저는 심각하다구요. 도대체 그 지휘를 왜 얘가 도맡아서 해야 하는 건지.”
“당연히 마울은 둘도 없을 마사니까? 마방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까?”
“진짜 그만 놀려. 공부해야 하는 게 뭐 이렇게 많은 거야.”
“척을 하려고 해도 자연스러워야 하니까. 당연한 거지!”
“하아. 차라리 마울 역할을 카인 네가 했어야 하는데.”
“그럼. 네가 돌라를 맡았어야 하는데 그건 할 수 있고?”
정말 얄밉게 웃고 있는 카인이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카인이나 되니까 저렇게 자연스럽게 속일 수 있는 거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오늘부터 외워야 할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내일은 내가 같이 갈 거 같으니까.”
“하아. 진짜 니가 항상 붙어있으면 좀 편하냐?”
“에이. 그래도 마방 재건축은 내가 붙어있어도 너가 모르면 금방 티나서 안 돼. 일단 자재들은 다 외웠지?”
“어. 근데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 이런 나무들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배수로는 또 이렇게 하는 것도 처음 보고.”
비박이 생활이었던 자신에게 배수로를 파고 임시 천막이나 거주지를 만드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 했는데. 고작 말이 지내는 마방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런데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뭐 이리도 많은지 외워야 할 것 투성이었다.
“그래도 얼마 안 되니까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해봐야 겉핥기니까!”
해맑게 웃고 있는 카인의 표정에는 분명히 자신을 놀리려는 의도가 가득했다.
*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겠지? 내 소개를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