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마방은 특히나 환기가 중요한데, 이곳은 환기가 썩 잘 되는 편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리 좋은 소재로 마방을 지어도 환기가 안 되면 쓸모없는 일이지요.”
“하…. 하지만 저희도 그 부분을 꽤 신경을 썼습니다만.”
“인간이 느끼는 것과 말이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르니 그럴 수밖에요.”
“하아. 저는 그럼 이만 성으로 돌아가 준비를 하겠습니다. 저녁에 맞추어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은 그 뚫린 벽을 보지 못 하겠는지, 힘없는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페니와 그 수행원들이었다.
“저희는 그럼 마사를 조금 손보도록 해 볼까요? 누님.”
“나는 가문에서 나온 지 오래라 다 까먹었는걸?”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가장 뒤에 있던 갈색 머리의 중년인이 대뜸 주문을 외웠다.
“[사일런트 룸]. 후아. 죽을 것 같았네.”
“내가 더 죽을 것 같았거든! 니가 시키는 대로 해서 다행이지. 진짜 어색해 죽는 줄 알았네.”
“도련님! 너무너무 뵙고 싶었어요. 오랜만에 위장도 재밌지만, 전 역시나 도련님의 유모가 제일 천직인 것 같아요!”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신나게 돌아다니던데? ‘웨이브’의 총 교관이라고 하더니.”
“에이! 할 거면 확실하게 하는 게 좋죠! 그리고 그 자리가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니까요.”
“너무 깊게 들어간 건 아니고?”
“괜찮아요. 아쉽긴 하지만, 슈테힌은 이번에 죽을 예정이니까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정보국에서 말이 많아. 위장 신분을 일부러 날리고 유모로 살려는 음모라는 이야기가.”
“설마! 도련님은 싫으신가요? 세상에 당당히 나서는 이때에 이 유모가 옆에 없으면.”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니야!”
“그리고 우리 도련님 위장술도 많이 느셨네요. 감쪽같이 변장을 다 하실 줄도 알고.”
“그치? 좀 자연스럽지 않아?”
“특히 그 눈썹! 굉장히 디테일 하게 잡으셨네요. 역시 디테일이 모든 걸 결정하죠!”
‘역시. 카인을 제일 잘 다루는 건 유모구나. 아주 들었다 놨다.’
“도련님. 저 여자는 누구길래 스테인에게 도련님이라고 하는 거고, 스테인은 유모라고 하는 거유?”
아주 혹독하게 교육을 받았는지, [사일런트 룸]이 펼쳐진 것을 아는데도 여전히 위장신분을 고수하는 레핀이었다.
“저 사람이 우리 내부자. 그건 알고 있지?”
“그럼유. 그 슈테힌이 내부자라고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그 슈테힌이라는 사람이 원래는 스테인 아니, 카인의 유모였어.”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던 것인지 그 말에 정적이 찾아왔다. 프라우는 믿지 못하는 표정으로 스테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그나마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린 것은 레핀이었다.
“스테인도 귀족이유? 그것도 엄청 높은?”
‘두 왕국의 왕족보다 높지 않을까 싶지만.’
“아니야. 귀족은 아니고.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부자? 아! [바람이 머물다 간]은 너희도 알지?”
“서대륙에 엄청 유명한 여관이람서요? 서섬에도 몇몇 개는 들어와있고.”
“응. 거기가 스테인네 꺼야.”
“와. 도련님. 도련님이 제일 처지는, 아니지 괴물은 괴물끼리만 논다 이건가유.”
레핀의 헛소리를 뒤로하고 한창 상봉을 이루고 있는 카인과 유모에게로 다가섰다.
“그나저나 페니가 저렇게 쉽게 나갈 거라고 어떻게 아신 거예요?”
“어머! 범님. 세상에 이렇게 헌앙해지실 줄 몰랐어요.”
“그러니까 쓰윽 싸악 이야기 하셨잖아요.”
“아니. 어머! 여자의 과거를 그렇게 기억하는 남자는 인기가 없답니다? 그래서 범님이….”
아팠다. 스승님께 훈련을 받았을 때보다도 더 아픈 공격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 페니요.”
“아! 총관은 진짜 돈에 살고 돈에 죽거든요. 아마 무너진 벽을 보고 그 스트레스를 풀러 갔을 거예요.”
“네?”
“여기는 뭘 짓든 다 비싼 소재로 짓거든요. 비싸면 다인 줄 아는 그런 머저리? 그런데 그걸 여기에 화풀이할 수 없으니 자기 수하들한테 간 거죠.”
“뭔가 엄청 이상한데요? 비싸면 다 좋은 줄 안다구요? 그걸 돌라가.”
“돌라가 더 심해요. 두 사람 다 비싼 거에는 환장을 하면서도 돈에 미친 인간들이라.”
“그럴 리가 없어요! ‘어스퀘이크’의 수장인 돌라님께서 그런 인물일 리 없어요! 언제나 검소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흐음. 네가 프라우구나. 미네르바의 제자이자. 로사의 수호기사로 임명받은. 조금 무게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겠는걸?”
“지금은 수호기사가 아니라서 상관없거든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아줌마.”
“쯧. 해적에 로망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수호 기사라니. 거기에 눈도 가려져 있는.”
두 사람의 미묘한 언쟁이 길어질 것 같아 그냥 중간에 끼어들었다.
“프라우 그만. 유모도 그만해 주세요. 그래서 저희 계획의 시작이 언제인가요?”
“아직 미정이기는 해요. 1주일 정도? 더 걸릴 수도 있구요. 그 날짜에 맞춰서 축하연을 열기만 하면 돼요.”
“근데 왜 여기서 말을 그렇게 키우고 싶어 하는 건가요?”
“앞으로의 전쟁과 그 후의 통치를 위해서 라고나 할까요? 이미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전쟁이라면?”
“서대륙에서죠. 범님이랑 불스 수호 용병단이 슐랑거 가문을 아예 박살을 내놨잖아요.”
“에이. 제가 한 건가요?”
거점을 다 박살 낸 것은 량이와 카인의 합작품이었고, 유모도 그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여간 피에트 가문의 제일의 마사로 여기에서 마사를 지어주면 돼요.”
“뭐. 카인이 알아서 하겠죠? 그나저나 이번 저녁 만찬에서도 제가 가야 하는 거죠?”
“그럼요. 피에트 가문의 제일의 마사이신데요! 솔직히 저한테 잘 해주는 이유도 피에트 가문의 영향도 많을걸요?”
“하아. 생각보다 위장 신분이라는 게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많다는 걸 이제 알았네요.”
“그럼. 우선 수호대분들은 말을 여기에 두고 저택에 들어가 계시겠어요? 다 한 공간에 너무 머물러 있으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따라서 수호대 전원이 모두 준비된 저택으로 들어가고 자신과 유모, 그리고 카인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도련님. 범님. 사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응? 뭐가? 보고에 없었던 내용인데?”
“저도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아마도 마울을 감금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응? 뭐? 감금? 귀족가의 자제를? 그것도 직계를 감금하겠다는 생각이라는 거야?”
“네. 아무래도 저도 같이 감금할 생각인 것 같아요. 저도 조금 늦게 알게 된 부분이에요.”
미친 소리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자유섬 생각이 들자 조금 생각이 변했다.
‘할머니도 은퇴하셨겠다. 의외로 괜찮은 방법인데? 소식도 늦게 전해질 거고.’
괜찮은 방법이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기는 똑같았다.
“아예 서섬을 거점으로 잡고 기병을 기를 생각인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그 분야에 특출난 사람이 자기 수하의 동생인 거죠.”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카인이 생각이 끝나고 계획이 섰는지 바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초대라는 명목으로 불러들인 다음에 감금을 한다 이런 계획이라는 거야? 고마운데?”
“응? 고맙다고?”
“도련님?”
“응. 고마운 거지. 생각을 해봐. 원래는 시간을 맞추느라 고민했어야 하는 일을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거잖아?”
“응? 무슨 소리야 그게.”
“감금은 아마 최후의 수단일 거야. 자기들이 대우를 잘 해주면서 처음에는 회유를 하려고 하겠지.”
그 말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확실히 카인은 천재라는 걸 다시금 알 수 있었다.
*
“허허허. 어서 오시게나. 슈테힌의 동생이 온다고 해서 몹시 기대하고 있었다네.”
외성에서 내성으로 오는 내내 말 그대로 돈을 발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성안으로 들어오니까 더 심하구나. 미쳤네. 무슨 돈에 한이 맺혔나?’
무슨 그림에, 몬스터와 마수의 박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지금 이 식탁은.
‘뭐가 이리 커? 거기에 이 나무 아무리 봐도 수호 산맥에 있는 나문데.’
무엇이든 간에 수호 산맥에서 나오는 것은 비쌌다. 거기에 자유섬까지라면 미친 듯이 비싸진다.
그런데 수호 산맥에서 나오는 물품들뿐만 아니라 동·서 대륙에서 값지다는 것을 모두 때려 박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해 돌라를 만나러 오는 내내 느껴지는 수련장에서의 역한 느낌. 그 느낌은 돌라를 보았을 때 정점을 찍었다.
“그 유명한 돌라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피에트 가문의 차남. 마울이라 합니다.”
‘마법사도 그런 사람이 있구나. 그나마 저렇게 기세를 줄줄 흘려서 알 수 있기는 했는데, 영 역하네.’
귓가에서 울리는 카인의 말대로 따라하고 밥을 먹는 것도 따라하는 것이 영 쉽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는 것이 들리기는 했는데, 그 말보다 카인이 하는 말을 더 집중해서 듣느라 대부분 들리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함께 온 이는 누구신가?”
“아! 저희 기마대에 몇 없는 마법사인데. 돌라님을 한번 뵙고 싶다고 간청을 하여 명목상 호위로 데리고 왔습니다.”
“호오? 그 유명한 피에트 가문의 마상마법사인가?”
“돌라님 앞에서야 부끄러운 이름일 뿐이지요. 스테인.”
“마상마법사라는 허명을 입고 있는 스테인이라고 합니다. 마법 [어스퀘이크]의 창시자이신 돌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 그 이름을 알고 있다니. 대단하군? 그대도 참된 마법사로군.”
“아닙니다. 마탑에서도 공식적인 마법으로 인정받은 마법을 모른다면, 마법사라고 할 수 없지요.”
“대다수의 마법사들은 그저 어스웨이브의 변형이라고 폄훼하더군.”
“아집과 고집일 뿐이지요. 웨이브와 파동의 방향이 다른 순간부터 변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혹시 그대가?”
“예. 사용권을 온전히 구매했습니다. 가문의 덕이지요.”
“하하하! 오늘을 특별히나 기쁜 날이로군. 총교관의 동생도 왔을 뿐 아니라 내 마법을 알아주는 이도 오다니! 여봐라!”
갑자기 시종을 부르더니 귀엣말로 로즈 럼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 돌라였다.
‘로즈 럼이면, 할머니 집에 있을 때 종종 먹던 건데. 기가 막히기는 하지.’
하지만 나온 것은 그동안 보아왔던 것이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병이었다.
“이것이 로즈 럼이라는 것이네. 자유섬에서는 각 해적들마다 술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굉장히 흥미롭게 이야기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은 돌라였다.
“내 사실은 혼자만 먹는 귀한 술이네만, 오늘 같은 날은 같이 먹는 것도 괜찮겠지.”
‘그나저나 병이 예쁘기는 하다. 유리병에 황금으로 장미가 새겨진 건가?’
“자. 한 잔씩 받게나.”
사용인들이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잔에 반 정도 채워주는 것이 보인다.
‘이건 감질맛도 안 나겠네.’
“이 좋은 만남을 위해서 건배!”
그리고 입에 넘어가는 순간 얼굴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야 했다.
“크. 이맛이야말로 자유섬 정점의 맛이 아니겠나. 깊고 풍미 가득하면서도 자유로운.”
‘와. 심각하게 열화판인데. 확실히 판매용은 다르다고 했던 말씀이 뭔지를 알겠네.’
물론 열화판이라고 해서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할머니께서 직접 주신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온갖 생색을 내면서 즐거워하는 돌라를 보니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쟤는 이게 열화판인 걸 모르고 그렇게 자랑하고 다녔던 거겠지.’
식사가 슬슬 끝나 갈 무렵이 되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돌라님. 혹시 폐가 되지 않는다면 제 수하에게 시간을 허락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스테인.”
“돌라님. 다름 아니라 이렇게 만나 뵙기 힘든 돌라님과 시간을 함께하며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송구하게도 이런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흐음. 나도 마상 마법사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기껍기도 하네만.”
“아! 그리고 하나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크흠. 말해 보게나.”
‘속이 훤하다. 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