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152화 (152/217)

[152화]

“마울! 이게 얼마 만이니. 진짜 좀 밖으로 나오라니까. 이렇게 부르지 않으면 올 생각을 안 하니.”

“누님이 너무 밖을 돌아다니는 거라고 제가 누누이 말했는데요?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안 나오셔도 되었습니다만?”

“에이! 몇 년 만에 만나는 동생인데 당연히 나와야지!”

“저. 뒤에 분들은 소개를 안 해주십니까? 여전히 귀족답지 않으시군요.”

자신의 등을 팡팡 때리며 말하는 슈테힌 누나는 여전히 괄괄했다.

“너 그렇게 딱딱할 필요 없다니까! 어차피 우리는 가문의 꿀만 먹으면서 편하게 살면 돼요.”

“그거야 누님은 명성을 높여주니까 그렇고 저는 아닙니다만.”

“에이! 우리 가문에서 말을 제일 잘 돌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되니! 얘들아 이리 와.”

슈테힌 누나의 뒤에 서 있던 세 사람이 몽롱한 눈을 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저 반점을 봐. 순혈 중에 순혈이야.”

“나도 한 번만 타보고 싶다. 순혈은 한 주인만을 모신다는데.”

“그걸 해결한 게 내 동생이지! 아직은 멀었지만.”

“안녕하세요. 불민한 제 누나를 보필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마울 피에트입니다.”

인사를 받아준 것은 몽롱한 눈을 하고 말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아닌, 인상이 날카로워 보이는 한 사람이었다.

“피에트 가문 최고의 마사(馬事 : 말을 기르고 다루는 모든 일)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돌라님을 모시는 페니라고 합니다.”

“스승님이 계시는데 최고의 마사는 아직인 것 같습니다만. 누님을 통해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돌라 성의 최고 행정가를 뵈어 제가 영광입니다.”

“무슨 말씀을 들었을지 예상이 가서 참 송구스럽군요.”

“아닙니다. 분명 저희 누나가 사고를 치고 수습하시느라 그런 것이겠지요.”

“야! 내가 무슨 맨날 사고만치는 줄 아니? 나름 얌전하게 살고 있다고!”

“우리 가문에서 빌트라고 불리는 누님이 어디 가서 다를 거라고 생각을 못하겠습니다만.”

“그건! 어릴 때지! 한창 혈기 왕성할 때! 좀 그럴 수도 있지.”

“누님이 박살 낸 마사(馬舍)만 해도.”

“에이. 옛날 일이야 옛날 일.”

“듣기로 피에트 가문의 세 남매가 격의 없이 지낸다는 소리가 진짜였군요.”

“저희 누님이 한 성질 하시고 한 힘 하셔서. 힘이 없는 저는 따를 수밖에요.”

“서대륙에서는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이 좋아 보인다고 말합니다. 속히 들어가시지요. 돌라님께서도 저녁을 함께하시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페니를 따라서 가다 보니 점점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거대한 성도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 바로 그 유명한 돌라님의 성이군요.”

성의 뒤로 보이는 높은 산이 마치 성을 두 개로 보이게 만들 만큼 거대한 성.

각 층별로 나눠져 있어 하나의 성이라기보다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성이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저 성이야말로 돌라님을 잘 나타내는 것이지요.”

몇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디에 어떤 것이 있고 하는 설명이 이어졌지만, 왠지 모르게 부숴버리고 싶은 성이었다.

‘엄청 거슬리게 지었네. 억지로 산을 등에 업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내가 여기에 있다를 외치는 듯한 건축물은 지금까지 봐온 건축과는 달랐다.

“마울님께서는 내성에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슈테힌님의 동생이신데 당연한 일이죠.”

“아. 죄송하지만 외성에 머무를 수 있을까요?”

마을 뒤에 외성이 있고 그 안에 층별로 이루어진 내성이 존재했다. 그 내성에 있는 것 자체가 이곳에서는 특권계층이었다.

“네? 어찌하여 외성에 머무르려고 하시는 건지요?”

그렇기에 페니의 저 의문이 당연할 것이다. 자칫 무례함으로도 비칠 수 있지만.

“저희 아이들이 땅에 서있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아무래도 건축물에 있으면 불편해하더군요.”

“그럼 말들만 외성에 맡기시고.”

“죄송합니다. 저희는 말과 절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진짜 기가 막힌 신분이란 말이지. 이런 걸 다 고려해서 짰으려나?’

“아! 이것이 피에트 가문의 가훈이라고 들었습니다. 슈테힌님을 보고 제가 착각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 누님을 저도 알고 있으니 충분히 그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외성에서 가장 넓고 한적한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만족하실 겁니다.”

마치 이미 준비된 것처럼 자신들을 이끄는 페니였다. 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을 지나가야만 했다.

‘근데 마을 분위기가 파탄지경인데?’

외성으로 가기 위해 지나온 마을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마치 칼날 위를 걸어가듯 모두가 날이 서있었다.

“분위기가 조금 날이 서있다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웃는 얼굴로 페니가 입을 연다.

“저희는 경쟁을 장려합니다. 외성으로 들어오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껏 살아가는 거죠. 누구나 능력이 있다면 외성을 넘어 내성에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본래 이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그럼 어떻게 된 건가요?”

“이주를 간 분도 있고, 계속 그 자리에 사시는 분도 있죠. 그리고 여러 마을에서 저희 성으로 찾아오기도 한답니다.”

굉장히 자랑스럽게 말하는 페니와는 다르게 마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이 다녔던 자유섬의 마을들과는 사뭇 달랐다. 웃는 사람도 흥에 겨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을에서는 어느 집에 누가 있고 어떻게 살고를 알고 있는 느낌이라면 이곳은 마치 내 알 바 아니다 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서 성벽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저희 성의 자랑 중에 하나인 선택된 벽이랍니다. 견고한 벽인 동시에 이 벽을 넘은 자만이 선택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자랑이지요.”

블레어 수도의 성벽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많은 마법진이 설치된 듯 희미한 빛을 여기저기서 내고 있었다.

고개를 올려보니 이제는 산이 가려지고 오로지 하늘을 찌를 듯한 성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슈테힌님의 동생분이시니 만큼 정문으로 들어가실 수 있답니다. 이 문이 열리는 것 또한 장관이지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를 발견한 것인지 문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희 성에 오신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마울님.”

성벽에 있는 문이 말 그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통행하는 이들이 모두 멈춰 서고 문이 올라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돌라님께서 특별히 초청한 분만이 볼 수 있는 진귀한 광경이지요. 그러니 가주님께 꼭 잘 말씀드려주십시오.”

“가주님께 말씀을 드린다고 해도 누님께서는 워낙 당신의 주관이 뚜렷하신 분이라. 그래도 대우를 받고 있음은 알겠네요.”

양옆으로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가려던 사람들 가운데로 문이 활짝 열리고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층이 이렇게 확실하게 나뉘어 있을 수도 있구나.’

크게는 세 개의 층으로 작게는 무수하게 나뉜 성이 눈에 들어온다.

‘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건물이라고 해야 하나 모를 일이네.’

막상 성으로 보이는 곳은 가장 위에 존재할 뿐이었다. 가까이 보니 나머지는 주택과 건물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언덕이었다.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은 사뭇 다르지요? 건축하는 것보다도 사람을 들이는 것이 더 힘들답니다.”

“사람을 들이는 것. 말입니까?”

“아무나 내성에 들일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기에 여전 빈 곳이 굉장히 많답니다. 저기 성 바로 아래에 슈테힌님의 주택이 존재하지요.”

“사실 나도 불편한데, 꼭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 뭐 그래서 작은 집을 얻었지.”

“취향은 하나도 변함이 없으시군요. 누님.”

“사람이 변할 때가 되면 죽는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괜찮은 남자는 좀 찾았습니까? 애초에 그러시러 나간다고 하신 것 아닙니까.”

“에이! 아직 한창이야. 한창! 언젠가 나타나지 않겠어?”

“한창이라고 하기에는.”

“페니님! 어서 가요. 외성에 따로 준비해 주신 곳이 있다면서요?”

“두 분의 우애가 참으로 보기가 좋습니다. 저희가 마사로 사용하고자 했던 곳이 있습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열린 성문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빼곡히 들어서 있는 그 길을 지나 왼편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성의 정면이 보이지 않고 왼편이 보이게 될 때쯤 건물들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생각 이상으로 넓은 공터네요? 이런 공터가 내성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는데 말입니다.”

밖에서 사람들이 들어가고자 하고 이 내성에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본 지금, 눈앞의 공터는 심하게 넓었다.

“저희도 마사를 운영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더군요. 슈테힌님께도 여쭈어보았지만, 자신은 피에트 가문의 돌연변이라며.”

“저희 누님이 다른 이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대부분 감각이라서 그럴 것입니다. 잠시.”

바닥을 발로 건드려보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바람을 느껴보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입지는 좋군요. 채광도 잘 되고 바람도 선선히 불고. 다만.”

“다만?”

“제가 뭐라고 말씀을 드리기에는 적어도 1년을 보고 말씀을 드려야 하기에 섣부르게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하지만, 저 문은 확실히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말은 반드시 주변에 뛰어놀 곳이 필요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본성을 그대로 드러낼 그런 장소.

그런 의미에서 성벽에 문이 열려있고, 그 사이로 보이는 너른 평지와 산은 좋은 환경이었다.

“저희도 나름 여러 마사들에게 묻고 지었습니다만, 역시나 전문 마사를 찾는 건 어렵더군요.”

“아무래도 마사를 따로 교육하는 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니 도제식으로 배움을 받으니 그렇겠지요.”

“저희도 몇 명을 처음에는 들였지만 대부분이 사기꾼이고 아니면 전장에서 조금 관리한 정도더군요.”

“하! 그런 이들은 마사라고 감히 할 수 없는 이들입니다. 말은 동물 중에서도 가장 섬세한 동물입니다.”

그 말에 동의하듯이 투레질을 하는 빅터였다. 그리고 이내 자신들을 지나쳐서 마방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저리 놔두어도 되는 것입니까?”

“빅터는 이 무리의 우두머리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지낼 곳을 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페니의 말대로 마사를 운영하려고 시도했다는 듯 작은 건물 옆으로 마방이 크게 지어져 있었다.

“저희가 아는 것이 없어서. 그래도 청소를 시켜놓기는 했습니다만.”

“영 까탈스럽게 굴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저희 집과 같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

“혹시라도 마방을 보시고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만은. 확실한 건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방이라는 것은 적어도 1년을 보고 지어야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작은 조언이라도 저희에게는 황금 같은 조언이니 꼭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에 마방에서 투레질 소리와 함께 무엇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빅터야.”

“무슨 일이…?”

“아마 마방의 방 하나를 부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가장 큰 방을 가져야 성이 차는 녀석이라. 같이 가시죠.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순혈의 피에트 마라고 한다면 그런 패기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흙빛이 되는 것을 보니, 돈에 살고 돈에 죽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마방에 도착해 보니 마방 하나를 부셔서 넓은 방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벽 하나를 아예 휑하니 부셔놓은 빅터가 보였다.

“이…. 이게….”

자신이 한 것을 보라면서 잘했다고 칭찬을 해달라고 하는 빅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인석아 잘했다. 잘했어. 네 덕에 내 돈은 나가지만 어쩌겠냐.”

“왜…. 아니….”

뻥 뚫린 벽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페니를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게 문제였던 듯하군요.”

“예…. 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