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량이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로사는 피더에게 가 설명한다고 나갔다.
“유모가 그 소리 없는 뱀이고 슈테힌이라는 거지? 진짜 어떤 사람을 유모로 둔 거였냐.”
더 놀라운 사실은, 슈테힌이 갑작스럽게 잠적을 탄 15년이 정확히 카인의 유모인 시간이라는 점이었다.
“아니. 사실 유모가 슈테힌은 아닌데, 아니 맞나? 그냥 위장 신분 중에 하나야.”
“위장 신분 중에 하나인 게 너무 임팩트가 크지 않냐? 거기에 배경도 확실하고.”
로사가 폭풍같이 설명한 바에 의하면 몰락 귀족 출신에 그 배경이 어린 시절부터 정확하게 나와 있었다.
“아니. 그냥 몇몇 몰락 귀족이나 영세한 귀족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저 내용이 왜 [마타 하리]가 드러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영세한 귀족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유모네 가문도 꽤 이름 있는 가문 같고. 게다가 난 그게 가문 이름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
“아! 그건 좀 특이 케이스? 그 가문 자체가 우리랑 연관 있는 거라.”
귀족, 그것도 단승 귀족이 아닌 계승 귀족. 그중에서도 자작이면 생각보다 훨씬 높은 지위다.
로안이 거들먹거리는 것을 본다면 충분히 그럴 만한 지위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연관이 있어도 수중에 자작 가문을 쥐고 있는 게, 그것도 유모로?”
“오래되기도 했고, 뭐 그런 거지. 별거 아니야.”
“가끔 너네를 볼 때면 내가 이상한 건지 너희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어.”
“우리가 널 볼 때도 너가 이상한 건지 우리가 이상한 건지 모를 때가 많아.”
“맞아! 범이 너는. 뭐랄까. 너무 괴물 같애.”
“하. 여기에 마틴이 있어야 나를 이해할 텐데.”
“걔도 이상해.”
“맞아! 너희 둘 다 너무 이상해. 괴물이야.”
‘마틴이 주교 대행이 되었다고 하기는 했는데, 진짜 말도 안 되는 거긴 하지만.’
지금 마틴은 한 제국에 파견 가 있는 상태였다. 은퇴한 주교의 자리에 대행으로 파견되었다고 편지를 전해주었다.
“벌써부터 후계 수업을 갈 정도라면, 신성력이 이미 주교급이라는 건데,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거기에 범이는 마스터고 초인에 한 발 걸친 상태고. 너희 둘은 진짜 이상해.”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어디 알 수 없는 작은 동네(그래도 무역상들의 쉼터이기에 나름 크지만.)
신전에서 운영하는 작은 고아원에서 한 명은 최연소 마스터가 되었고 한 명은 교황의 후계가 되었다.
“에이. 그래도 세상에 마스터가 그렇게 많은데, 마틴이 대단한 거지 나는 뭐. 그냥 수많은 이들 중 한 명?”
“와. 범이 진짜 재수 없다.”
“빨리 상위 세계로 가버려.”
“안 그래도 그럴 거거든! 근데, 마스터가 되면 누구나 다 상위 세계로 갈 수 있었는데 왜 안 갔을까.”
“왜. 시험을 봐야 하는 건 슬쩍 말을 안 하실까?”
“뭐. 그 시험이야 거의 형식이나 다름없기도 하고. 솔직히 이해가 되기도 하고.”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시험은 간단했다. 상위 세계로 가는 것이 도피성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간단한 시험.
‘와희네 가문 던전이랑 비슷한 곳이라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거 같은데.’
“하긴. 마스터만 되면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으니까.”
“최근에 와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만. 세상은 넓고 강자는 너무 많아.”
“그치? 이모도 그렇고 이모의 측근들도 그렇고. 분명히 드러내지 않고 사는 초인도 많을 거야. 안 그래도 다시 조사하려고.”
“하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힘들어지기는 하지.”
초인이라는 경지를 제외하고라도 마스터나 5서클 마법사라는 경지는 일생을 미쳐야 도달하는 경지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의 미쳤다고 한들 관계가 생기지 않을 리 없었고, 공포가 없을 수 없었다.
‘상위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지의 무언가 보다는 알고 있는 괴로움을 선택한다.
“그리고 네가 그 형식이나 다름없다는 시험에서 언제나 떨어지기도 하지.”
“그 후에는 귀족이 되거나 그냥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자 주의가 되는 거지. 아니면 초인이 되려고 하던가.”
“흠. 그래도 100년 넘게 동반자가 생기지 않은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는 해.”
“그게 좀 이상해서 안 그래도 조사를 하려고. 그래도 30년에 한 번씩은 있던 거로 나왔는데 말이지.”
“하긴. 세계회의가 열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지.”
“그래서 해년회의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아진 거기도 하지. 다시 보니까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갑자기 량과 카인이 처음 들어보는 말들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세계회의는 또 뭐고, 여기서 한 제국 감찰단은 또 뭐야?’
대화로 시작했던 두 사람이 이제는 단어만으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약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머쓱한 웃음을 짓는 두 사람이 보인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원래는 주기적으로 세계회의가 열렸어.”
“다른 게 아니라 등반자가 있을 때 중앙 신전에서 모두 모이거든. 그때 진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근 100년 동안은 그런 일이 없었단 말이지.”
“본래는 그러려니 했는데, [맘몬]이 등장한 지 이제 100년이 넘는단 말이지.”
“그 사실을 알고 나니까 묘한 것들이 맞춰지기 시작했어. 아마 수뇌부는 알고 있을걸?”
“그래서 암흑기라면 암흑기인 100년이 생겨난 거라고 생각해.”
“거기에 네가 오즈안님께서 해주신 말이 확정적이었지.”
번갈아 가면서 말을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뭔가 알 것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이 아마 분기일 거야. 우리가 자정(自淨)을 하는 역할 정도라고나 할까.”
“왜 할머니는, 오즈안님은 그렇다고 쳐도 다른 집단이나 국가의 수뇌부들은 그대로 놔두는 걸까?”
“돈이 되고 힘이 되니까? 그래서 한 제국에서는 [맘몬]이 힘을 못 쓰는 거지.”
“한 제국에서는 힘을 못 써?”
“한 제국이 뭐야. 동도에서 아예 힘을 못 쓰는데. 그러니까 그런 미친 짓을 해서라도 힘을 쓰려고 한 거겠지.”
“작은이모를 말하는 거지? 진짜 그런 게 있다고 생각도 못 했는데.”
“그만큼 한 제국의 영향 아래에서는 힘을 못 쓴다는 거지. 현명한 황제가 있는 절대군주의 힘이라고나 할까?”
“서 대륙에서는 시디야와 블레어 때문이기고 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원래 다 그래.”
‘하긴. 과거에 나에게도 만약에 그런 손길이 있었다면, 뿌리칠 수 있었을까?’
[맘몬]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들과 손을 잡은 이들도 쓰레기지만.
‘확실히 쓰레기를 봐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거지.’
“그래서 피더는 밖에서 친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
로사가 있을 때는 로사와 피더가 중점이 되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과 수호대는 안에서 돌라와 어스퀘이크를 상대한다는 것 외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너희는 이번에 연회에 초청받아서 가게 될 거야. 그것도 슈테힌의 동생으로. 슈테힌에 대해서 알고 있어?”
“아까 로사가 열정적으로 말한 거 조금? 처음 들었는데 말이지.”
“잘 들어. 다 기억해야 해. 자연스러워야 하고. 그게 이번 작전의 키니까.”
카인이 구석에 놓인 판을 가지고 왔다. 그 판에는 자신이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
“자! 외우자. 자다가도 누가 건드리면 나올 정도로만 외우면 돼! 쉬워!”
해맑게 웃는 카인의 표정에서 자신이 지옥에 발을 들였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진짜 지옥이 찾아왔다. 카인이 한 번 모든 설명을 해주면 량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 나가고 싶다.’
틀릴 때마다 다시 반복되는 지옥의 시작이었다.
*
“도련님? 왜 죽상이유?”
지옥에 다녀온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틀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수호대 전원이 카인과 량의 수하들에게 자신와 다른 수업을 받았다.
너무 자연스럽게 도련님이라고 말하는 레핀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새겨져 있었다.
“레핀. 너도 카인이랑 량한테 동시에 갈굼 당해봐야 이 마음을 알 텐데.”
“도련님. 도련님은 두 사람뿐이었지만, 우리는 집단으로 당했다는 걸 모르쥬? 도련님도 그 지옥을 경험해봐야 했는데,”
지금은 말 위에서 레핀과 투닥이고 있는 중이었다. 슈테힌이 있는 가문은 페이그의 가문과 비슷한 가문이었다.
‘말로 유명한 가문이라고 했지. 말을 기르고 교배하는데 제일로 여겨지는 피에트 가문.’
그 가문에서 나타난 돌연변이가 슈테힌이라고 한다. 마상 전투보다도 두 발로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오히려 특이하게 눈에 띄는 인물일수록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했던가?’
피에트 가문에서 장녀인 슈테힌은 2부인의 소생. 그런 그녀에게 동생이 둘이었다.
가문을 이어받을 것이 확실한 1부인의 아들. 그리고 슈테힌의 친동생.
자신의 위장 신분은 바로 그 슈테힌의 친동생이었다. 피에트 가문 특유의 적갈색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것이 드물었다.
말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고 조용히 사색하는 것을 즐기는 인물로만 알려져 있었다.
종종 눈에 띄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특이점이 없는 한량 같은 존재로만 알려져 있었다.
‘소름인 거는 2부인에게는 자식이 없다는 점이지. 어디부터가 진짜이고 가짜인지를 모르겠다니까.’
애초에 슈테힌과 1부인의 소생인 장자와의 나이 차가 10살 이상 났다.
지금 그 장자의 나이가 30살밖에 안 되었다는 점을 보면,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위장신분이었다.
‘하긴. 피에트 가문 자체가 [마타 하리]의 일원이라는데 말 다 했지 뭐.’
슈테힌이라는 신분과 그 동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본래부터 위장을 위해 준비된 신분이었다.
“도련님은 도련님 가족들만 외우면 됐지만, 우리는 기사단과 기마단을 다 외워야 했다구요!”
레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 레핀과 수호대의 위장신분은 풀린 제 2기마대였다.
피에트 가문을 대표하는 기마대들이 키워지는 요람이지만, 그 자체로도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진 기마대.
“이놈의 가문은 기마대원의 수가 왜 이렇게 많냐는 거죠! 게다가 왜 말 이름들이 다 있냐구요!”
“그래. 그래. 고생했어. 그래도 그 덕분에 이렇게 쉽게 일이 풀렸잖아? 안 그래?”
실제로 말의 이름이 모두 있는 것으로 유명한 피에트 가문. 그리고 그 가문의 막내 공자가 타는 말을 직접 데리고 왔다.
처음 말을 보았을 때, ‘말도 잘생길 수 있구나’를 처음 알았고 [마타 하리]의 치밀함에 소름이 돋았다.
주인을 가릴만한 명마임에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잘 태우게 훈련을 시킨 말.
여전히 까탈스럽기 그지없지만, 이 품종의 말을 이렇게 훈련시킨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쳇. 좋겠수다. 도련님은 위장 신분덕에 피에트마(馬)를 타기도 하구 말이유.”
사실 피에트가 가문 이름이라는 것에 더 놀랐다. 자신이 알기로는 말의 품종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내 인생에 피에트마를 탈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그것도 순혈의.”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은 어떻게 알고 기분 좋은 투레질을 하는 빅터였다.
“이런 순혈마는 돈을 주고도 못 구한다던데, 피에트 가(家)는 이렇게도 많으니 부럽구만유.”
순혈마는 오로지 자신이 타고 있는 빅터뿐이지만, 나머지도 모두 피에트마 혈통이었다.
말의 이마에 있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반점이 뚜렷함 정도가 피에트 마의 순혈 정도를 나타낸다.
빅터의 이마에 있는 것처럼 뚜렷한 반점은 정통 순혈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럼 뭐해 내 말도 아니고, 내 가문도 아닌데.”
“어허이! 도련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지금은 범 대장이 아니라 마울 도련님입니다!”
“그렇지. 나는 마울이지 지금 그럼 그런 의미에서 달려볼까?”
피에트 마는 그 어떤 말보다 빠르고 지구력이 뛰어난 말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훈련을 받으면.
‘내 마음처럼 바로 움직여 준다는 말이지. 왜 돈 많은 사람들이 말이랑 배에 미치는지 알 것 같다니까.’
“도련님! 도련님! 야아!”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지만, 바람이 얼굴을 스쳐가는 기분이 상쾌해서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