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진짜 좋겠네. 누구는 저렇게 항구에서부터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뭔 소리야. 너도 있으면서.”
“나만 없는 것 같아. 왜 날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 거지.”
“근데 로사도 생각보다 많이 변했다?”
이제는 혼자라며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로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치? 아무래도 북부를 통일하면서 많이 변했다고 하더라. 카시스 후작도 생각이 많아졌을걸?”
“고작해야 북부를 통일하면서 저렇게 성장했다는 거지?”
북부를 ‘고작해야’ 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쟁과 전투, 정복이 없이 그저 시험을 통과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본래 1대대와 2대대가 관리하는 마을 같은 느낌이니까. 무주공산에 깃발만 꽂는 느낌이지. 그래도 인정을 받는 건 또 다른 문제지만.’
“오히려 쟤가 진짜 괴물이라고 할 수 있지. 무인의 재능뿐만 아니라 지도자로도 타고난 것 같더라.”
“왜?”
“카시스 후작의 검도 어느새 자기편으로 완전히 돌렸던데? 거기에 주민들에게도 꽤나 인정받고.”
“벌써? 얼마나 됐다고. 진짜 난 놈은 난 놈이다. 거기에 괴물이고. 지도자는 개뿔. 무인으로 괴물인데.”
“놈? 괴물? 설마?”
“그냥 넘어가지? 뭐 넘은 것 같은데.”
그렇게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있자 금방 항구에 닿았다. 살짝 덜컹거리더니 정박을 하고 계단이 나타났다.
“공녀님!”
‘눈썹이 휘날린다’ 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달려가는 프라우가 보인다.
‘프라우도 진짜 한결같네. 안 본 지도 오래되었을 텐데.’
마니에르에게 가려져 있다뿐이지, 프라우도 재능이 넘치는 아이였다. 벌써 익스퍼트인 것만 해도 그 재능을 알 수 있었다.
‘마르쿠스나 마니에르가 워낙 괴물인 거지, 프라우도 진짜 빠르긴 빠른 편이지. 내 기준이 이상한 건가.’
주변에 워낙 재능이 넘쳐 흐르는 이들만 있다 보니, 언젠가 기준이 높아진 느낌이었다.
‘그러네. 언제부터 익스퍼트의 끝, 그 경계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기 시작한 거지?’
자유섬에 오고 나서부터 더 심해진 듯싶었다. 해적은 알면 알수록 괴물들의 천지였다.
한 왕국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마스터가 즐비했다. 아니, 할머니의 곁에 있는 이들이 그러했다.
‘그러고 보면, 마스터도 퍼그님을 제외하면 다른 대대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1대대에서도 훌트 누나의 주변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익스퍼트였을 뿐이다.
익스퍼트가 흔한 것도 말이 안 되기는 했지만, 자신의 생각처럼 마스터가 발에 치이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익스퍼트를 무시하고 있었는데, 일부로 그런 거였나.’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왜 귀족들이 그 모양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그들과는 다르겠지만, 나도 정신 차려야겠네.’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더이상 자신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것.
‘이제는 진짜로 다음이 없구나. 이번이 마지막이겠어.’
자신이 상위 세계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는 단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살아있다면, 그리고 끝난다면 올라가야겠어. 이래서 마스터들이 올라가지 못하는 건가.’
어영부영하다가 어느새 이 자리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초인이 되고 나서’ 라고 하면서 점점 시간은 흐른다.
그렇게 대부분의 마스터들이 때를 놓치고 올라가지 못했던 듯했다. 초인들도 같을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그냥 보기 좋아서.”
“웃기고 있네. 가자. 우리 집으로.”
로사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함께 량의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빛과 바람의 집]은 이상하게 정겨운 느낌이 났다.
‘우리 집인가…’
*
“이제 슬슬 말해줄 때가 된 것 같은데?”
신변잡기를 물어보다가 로사가 량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이제 시작이야. 골드 로즈님께서 은퇴를 선언하셨어. 아쉽게 되었네, 조금만 빨랐다면 너도 참석 할 수 있었는데.”
“은퇴? 갑자기? 왜? 무슨 일로?”
‘하긴. 저 반응이 정상이기는 하지. 아무런 징조가 없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
할머니를 가까이에서 봤던 수호대원들 조차 할머니의 은퇴 소식을 믿지 못했다.
할머니를 뵙지 못한 로사는 아마 더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았다. 해적의 힘을 가장 많이 느낀 사람도 로사일 것이다.
‘1대대에서 3대대는 차원이 다르니까. 해적들을 지나치게 높게 보게 된 이유기도 하지만.’
그만큼 차이가 크기는 컸다. 2대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자신과 함께 부대낀 3대대와 훌트 누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세인들이 황제라고 추대하고 부른 거지 진짜 황제는 아니었지. 뭐 황제보다 황제 같기는 했지만.”
“아니. 그렇다고 해서!”
“오히려 그래서 더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거지. 그냥 은퇴하신다고 하면 되니까. 그리고 누가 막겠어?”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바로 움직여야 해.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하기는 하니까. 수로 본다면.”
“하. 그래서 기사단을 데리고 오라고 한 거구나.”
“그렇지. 빠르게 움직여야 하니까 못 따라오는 인원은 솔직히 짐이지. 근데 기사단이야?”
“아직.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조금 변한 것 같기는 하고. 그나저나 프라우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라니?”
“아니. 무슨 짓을 했길래 벌써 경계에 들었냐는 거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와중에 주변에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뭐. 벌써 경계를 넘은 너만 할까?”
정적이 찾아왔다. 카인과 량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로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보다는 느려.”
“아니. 기준이 너무 이상한 거 아니야? 벌써 경계를 넘었다는 건 자랑할 일이지!”
“진짜? 진짜로 로사가 마스터가 되었다고?”
“아. 재능 만능주의 같으니라고. 서러워서 살겠나. 그래도 진짜 축하한다.”
두 사람이 허탈해하고 있을 무렵 기가 막힌 타이밍에 칼라 이모가 다과를 들고 들어왔다.
“응? 갑자기 이건 무슨 분위기래?”
“칼라. 세상은 재능이 없으면 살기가 너무 팍팍한 거 같아.”
“자기야. 자기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기만이야. 기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범이까지는 그렇다 쳤는데, 로사마저 마스터가 되었다니까 어이가 없네.”
“어? 무슨 소리야? 로사가 뭐?”
“로사가 마스터가 되었다고.”
“진짜? 어머! 너무 축하해! 진짜 고생했어. 대단하다. 그 나이에 마스터가 되는 사람이 또 있다니!”
량이가 재차 확인해 준 말에 이모는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자신이 더 기뻐하셨다.
“감사합니다. 칼라님. 진짜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해. 운이 좋다고 넘을 수 있는 벽이면 개나 소나 다 넘었게? 그만큼 네가 노력한 거지. 진짜 축하한다. 대단한데?”
가감 없이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에 조심스럽게 량이 이모에게 묻는다.
“자기는 괜찮아? 허탈하거나 그렇지는 않아?”
“당연히 괜찮지! 축하해줄 일이지. 내가 안 괜찮을 이유가 뭐가 있어?”
티 하나 없는 이모의 대답에 안도하는 량의 모습이 보인다.
‘저런 걸 보면 진짜 애처가가 따로 없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좋구. 나는 괜히 좀 그럴까 그랬지.”
“에이. 태어나는 순서만 있지, 죽는데도 경지가 오르는데도 순서가 어디 있어. 그리고 자기 때가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이모가 갑자기 현인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기는 나를 뭐로 본 거야! 너무 오냐오냐 안 해도 된다니까! 내가 방금 한 이야기도 자기가 해준 거면서!”
“아니. 그래도 조심할 건 조심 하면 좋지. 오냐오냐하는 게 아니라 귀하게 여기는 거지.”
순식간에 분홍빛이 빛나는 분위기가 되는 두 사람이 보기 좋은데 몹시 싫었다.
“그만하지? 진짜 시도 때도 없이 그러면 좋냐?”
“어. 좋아. 부럽냐?”
“와… 원래 재수 없는데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재수 없다.”
“크흠.”
홍조가 올라온 로사의 헛기침에 그제야 두 사람이 그만두고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로사의 기사단이랑 수호대 전원이 돌라의 구역으로 향할 거야.”
“구역? 그중에서도 어디로?”
“바로 심장부를 찌를 거야. 돌라를 먼저 치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니까.”
“바로 그렇게 갈 수가 있어? 그리고 그곳에 돌라가 있다는 보장이 있고?”
탁자에 서도의 지도, 그중에서도 돌라의 구역이 확대되어있는 지도를 가지고 와 설명을 이어가는 량.
“돌라 구역주의 특성상, 온전히 돌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곳이야.”
“응? 뭔 소리야.”
당연히 구역주의 위치에 있다면, 그 구역주의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당연했다.
“아니. 조금 심하게. 여기는 돌라만 치면 모래성처럼 부서지게 되는 구조라고나 할까. 아니다. 돌라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곳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
“휘하에 그렇게 사람이 없다고?”
“그보다는 돌라의 ‘어스퀘이크’가 너무 강해서 다른 보강을 생각을 안 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조금 의아한 말이었다. 지금 블라우가 수호대에 모든 힘이 모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사람을 끌어모으고 조직을 개편하려고 끊임없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2대도 만들고 있고, 치안대도 만드는 것 같은데. 돌라는 훨씬 오래되었는데 왜 그랬을까.’
“왜 가만히 놔두었나 생각하고 있지? 우리보다도 훨씬 오래 있었는데.”
“진짜 소름 돋는다니까. 난 네가 독심술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
“그냥 네가 너무 티가 난다고 생각해. 바보야.”
잠시 호흡을 고르면서, 어떻게 쉽게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필요성의 문제였을 거야. 주변에 있는 두 구역주도 사실상 같은 편이고. 뭐 쉽게 말하면 방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한 거고.”
“단체를 이끈다는 게 쉽지가 않지. 계속해서 자기를 돌아봐야 하는데. 역시 나는 맞지 않나.”
옆에서 있던 로사의 헛소리가 들렸지만, 그 누구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로사. 네 기사단. 아니 그냥 피더라고 하자. 피더랑 우리 수호대랑 둘이 양동작전을 펼쳐야 해.”
“우리가 양동작전을 펼쳐야 한다고? 누가 기만책인데?”
“기만책이라기보다, 전선이 두 개라고 생각해야 해. 실제로도 양쪽에서 동시에 일을 벌여야 하니까.”
이어지는 량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순간 한순간을 설정하는 치밀함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완벽하기는 한데 말이지.”
하지만, 로사의 생각은 다른 듯 보였다.
“우리가 밖을 공략하는 건 그럴 수 있고 충분해. 아니 완벽하지. 그런데 내부에서 터트리는 건 어떻게 진입시킬 생각이야?”
‘확실히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그럴 수 있겠네.’
몹시 타당한, 아니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량이니까 방법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카인 덕분이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만들어놨더라고.”
“응? 카인이?”
아직까지 로사는 카인이 어느 단체의 후계자인지 모르고 있었다.
“카인이 섭외 한 사람이 있어. 돌라의 구역에서 최근에 이름을 날리면서 꽤나 측근으로 올라간.”
“설마. 슈테힌을 말하는 거야? 소리 없는 뱀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
“응? 유명한 사람이야?”
로사가 흥분한 모습을 보니 꽤나 유명한 사람인 듯싶었는데 왜 자신은 모르나 싶었다.
“하아. 조금 미리 너도 알아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로사를 봐 주변 정보를 잘 취합하고 있잖아.”
“아니. 그게.”
“너무 우리한테 의지하는 건 좋지 않아.”
“알았어. 그나저나 그 슈테힌이라는 사람이 유명해?”
“그럼! 최근에 2년 사이에는 가장 유명한 사람인걸. 네가 등장하기 전에 제일 유명했다고!”
“소리 없는 뱀이면, 암살자인가?”
“아니야! 레이피어를 쓰는데 지나가면 쓰러진다고 해서 붙은 이명이야! 그 사람을 어떻게 섭외를 했어? 아니. 만나는 것조차 힘들 텐데!?”
같은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이라 그런지 로사의 표정에는 반드시 만나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음. 애초에 우리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어? 무슨 소리야? 애초에 우리 사람이었다니?”
“범이는 아마 알고 있을걸? 얼굴을 보면 바로 알 텐데.”
‘내가 레이피어를 쓰는 사람을 알고 있나? 아니. 그렇게 친한 사람이 없는데.’
“카인의 사람 하면 생각나는 사람 없어?”
“설마? 아니지?”
‘그럴 리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