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점점 함대가 다가오는, 아니 자신들이 그 함대의 중심을 향해서 다가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대장. 괜찮은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저기에 있는 마법포만 해도.”
“대장을. 그리고 대장의 친우분을 못 믿는 건가. 아니지 지금은 우리의 총수인데. 믿음이 부족하군.”
“믿음이 부족한 것과 생각을 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은데?”
“쓸데없는 염려가 많은 것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믿음이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 그래서 그토록 가벼운지도 모르겠군.”
마르쿠스와 마니에르의 묘한 신경전이었다. 비슷한 경지의 두 사람이 서로 호승심을 불태우게 된 것 같았다.
“배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쉽게 당했을 것 같아?”
“아쉽군. 우리는 배에서 이제 전투를 치러야 하는데 배에서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그것뿐이라는 소리 아닌가?”
마르쿠스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그만. 마니에르 네가 뭘 말하는지 알겠지만, 마르쿠스의 말처럼 가만히 믿고 믿어보도록, 그리고 마르쿠스 너도.”
두 사람의 소소한 언쟁을 누른 량은 이내 항해사에게 조금 더 빠르게 전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아. 량아 이 함선은 그럼 최고 속도가 얼마나 나와?”
할머니께서 자랑스럽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었다. 자신이 있다면 그 어떤 배도 멜빌레이의 앞을 지나갈 수 없다고.
“뭘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건 못 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도 그를 제외하면 가장 빠를 거야. 점점 빨라질 거고.”
“흐음. 그것만 해도 진짜 대단한 거긴 한데, 아쉽긴 하다.”
“아마도. 혹시나 아마도. 둔스트가 극에 이르면 비벼볼 수는 있을 거야. 장모님께서 재능을 온전히 다 사용 안 하신다는 전제하지만.”
“그 정도야? 그만한 잠재력이 있다고?”
“헤헤. 선장님이 너무 좋게 이야기 해주시는 겁니다. 그냥 조금 냄새를 잘 맡을 뿐입니다. 감히 로즈님께 비견 된다니요.”
겸양을 떠는 둔스트가 보이지만, 량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라고? 진짜 성장하고 난 후가 보고 싶은데. 아쉽네.’
“선장님. 3분. 이 속도로 가면 3분 이내에 적의 사정거리에 들어섭니다.”
“괜찮아. 이 속도로 순항해. 이 속도가 중속 정도 맞지?”
“옙. 실로 괴물 같은 아이입니다. 제가 이 아이를 맡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아. 중심에 들어가면 그때마다 이야기할 테니까 잘 듣고. 어떤 공격이 너에게 온들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말입니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라.”
“정 그러면 네 옆에 있는 수호대 대장을 믿어. 저래 보여도 마스터니까 절대 네가 다칠 일이 없어.”
“역시! [무투의 탑]의 초신성은 마스터라고 하더니. 그 나이에 마스터라니 천재는 제가 아니라 대장님이었구만요!”
“그럼. 슬슬 긴장하고.”
점점 다가오는 함대의 모습에 절로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척이 넘는 중형선 이상의 배들이 바다 위에서 있는 것은 어떤 압도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때, 바다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블라우 구역주님에게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저희는 전투를 할 의사가 없습니다.”
미묘한 거리. 아직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지 않는 거리에서 시작된 음성이었다.
“저희는 단지 그 배에 타고 있는 단 한 사람만 필요합니다. 그리고 절대 상해를 입힐 생각도 없습니다!”
개소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그저 부탁을 하러 온 사람들인 것마냥 말을 한다.
“그저 저희가 모시고 있는 분이 뵙고 싶다고 하기에, 부득이하게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온 자리가 23척이나 되는 함선으로 진형을 만들어놓고 하는 소리라니. 자신도 넘어가지 않을 말이었다.
“아니. 저 소리를 그대로 듣는 사람이 있나?”
“응. 의외로 많아. 애초에 한 명만 넘기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작은 균열이 일어나니까.”
그런 말을 하면서 조타의 옆에 있는 기둥에 다가가 뭔가를 누르더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카인의 신병을 인도할 생각이 전혀 없다. 길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그러자 량의 목소리가 일전의 목소리처럼 우렁차게 바다를 메운다.
“그런데 왜 다른 곳으로 못 가고 꼭 이리로 가야 하는 거야?”
량이를 두고 옆에 있는 둔스트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막는 길도 전혀 없는 망망대해에서 왜 돌아갈 수 없나 싶었다.
“저들이 자리 잡고 있는 자리가 그런 자리에요. 로즈 아일랜드에서 서섬으로 이어지는 가장 강한 해류거든요.”
“다른 곳을 가는 건?”
“해류를 거슬러 가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어요. 뭐 따돌리자면 못 따돌릴 것도 아니지만. 그만큼 절묘한 위치라는 거죠.”
“그리고 그만큼 강한 의지라는 거겠지?”
량이의 대꾸에 아무 말도 없었다가 배가 조금씩 사정거리에 가까워지자 마법포들이 여기를 향하는 것이 보였다.
“마지막 권고사항이다. 수장되기 싫으면 순순히 카인이라는 놈을 내놓도록!”
그 말을 무시하고 량이는 둔스트에게 지시를 내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즉시 굉음이 들려왔다.
마법포가 바로 선체 앞의 바다를 강하게 가격했다. 물이 솟구치면서 선체를 바닷물이 적신다.
“호오? 저게 마법포의 위력이구나. 대단한데?”
“그 포화 속으로 이제 들어가는 건데?”
“에이. 내가 널 모르냐. 나야 네가 꾸며놓은 걸 천천히 구경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이내 함선이 그들의 사정거리에 진입했다. 그와 동시에 마법포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 오. 우와!”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기이했다. 분명히 선체 곳곳을 마법 포탄이 적중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제 슬슬 우리에게 공격이 올 거야. 너희를 보호해주지만, 물리적인 힘은 있을 테니까 잘 버텨.”
량이의 말대로 마법포 포탄들이 우리를 노리고 날아오기 시작했다.
주변을 가격하기도 하지만, 꽤 정확한 포탄 몇몇은 조타와 그 뒤에 있는 수호대를 맞추기도 했다.
“오? 생각 이상으로 빠른데? 아주 느리지만도 않다?”
“마법포가 발명된 지도 꽤 오래되었으니까. 개량에 개량이 된 거지.”
“저쪽도 눈이 좋은 이들이 꽤 있나 본데?”
조타의 앞을 맞춘 포탄도 있지만, 대부분 수호대 뒤를 조준하고 공격하는 듯했다.
몇 번 움찔거리더니, 포탄이 와 자신들을 가격해도 밀려나기만 하는 게 신기한지, 포탄을 향해서 뛰어가는 이들이 보인다.
“아무래도 마법포를 맡는 이들은 정예병들이고 훈련받은 이들이니까. 그렇겠지?”
“너랑 나 그리고 조타를 맞는 항해사 주변에는 거의 안 오네. 한 발 정도?”
“카인은 살려가야 가치가 있으니까? 그치?”
“후우. 진짜 어이가 없어서. 전수조사를 해야 하나.”
카인은 아까부터 조용한 상태로 앞을 주시만 하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꽤 화가 난 듯 보였다.
“원래 사고치고 일을 만드는 건 범인데. 내가 일을 만들다니.”
그런데 그게 조금은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래도 눈빛은 진지했다.
“그런데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사실 이렇게 여유로울 때는 아니었다. 수도 없이 마법 포탄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신기하다고 그 포탄을 몸으로 맞으려고 뛰어다니는 수호대들이 보였다.
“뭐. 둔스트가 이제 알아서 할 거야 슬슬. 집합!”
량이의 말에 첫눈을 본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이들이 금세 자신의 뒤로 정렬을 한다.
‘이제 량이를 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네. 존경에서 경외 비슷하게 바뀐 건가.’
“앞으로 우리를 책임질 항해사의 실력을 봐야겠지? 오늘. 우리에게 백병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이는 이들이 꽤나 많다. 아니 거의 다 그렇다.
‘도대체 쟤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 좀 그럴 만 한가?’
적어도 마법 포탄의 경우 2서클의 마법이 걸려있다. 그리고 포탄을 쓰는 경우에도 2서클의 마법과 비슷한 공격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포격들 가운데에서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것은 그만한 방어력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날뛸 수 있는데 못 날뛰니 아쉽기는 하겠지.’
하지만, 지금 해적으로 보이는 이들이 쏟아내는 포격이 전부는 아니었다. 3서클을 상회하는 힘을 가진 포격도 있었다.
‘그래 봐야 한계가 4서클이지만, 그것도 대단한 거지. 아니 한계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가?’
국가에서 금지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런 마법포를 만들 수 있는 이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량이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이내 상념이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 항해사의 실력을 감상해 보도록!”
량의 말과 동시에 선체가 급격하게 선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절묘하게 바다를 가르고 나아갔다.
“와. 너가 데리고 온 이유가 있구나. 어린 나이인데도.”
“그럼. 진짜 대단하지? 공감각이 미쳐 돌아가는 수준이지.”
절묘하게 간격을 보며, 마치 자연스러운 길을 가듯 사이사이 헤집어가며 적진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간격 하나하나가 절대로 넘어올 수 없는 간격으로 가고 있는 거지?”
“어. 적어도 익스퍼트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올 수 있을걸? 그런데 그런 이가 혼자 오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마치 배로 꼬리잡기를 하듯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함미의 뒤로 배들이 늘어선다.
당황한 듯 그들도 포위하려고 하지만, 미친듯한 주행에 포위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류가 있다고 해도 그걸 쓰는 건 다른 문제일 텐데, 뭐 이렇게 자유로워?”
“아직 멀었다고 하더라. 자기는 고작해야 이류 항해사라고. 언젠가 초일류가 될 거라고.”
“이래서 괴물들은.”
해류를 마치 자신의 흐름처럼 사용하고 상대를 포위하지 못하게 이용한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모든 배들이 함미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포격들이 선체를 맞추고 있지만, 그렇게 큰 효과는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마나 실드가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나 보다? 아니, 분산이 되어서 그런가?”
몇몇 포격에 선체가 상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가 패여서 들어간 곳들이 보였다.
“2서클의 공격이니까. 어느 정도 패여줘야지.”
“조금 묘한데?”
“그래야 나중에 열심히 더 포격할 거 아니야. 3서클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부분도 있게 만들어야지.”
“그 말은?”
“원래는 택도 없지. 그래도 포격 가격이 얼만데, 열심히 쓰게 해줘야지. 비축된 포격 다 사라지게.”
악동처럼 웃는 량의 모습이 순간[맘몬]이 안타깝게 느껴지게 했다.
“그래서 일부로 이렇게 한 거라고? 저거 다시 다 고쳐야 하는 거 아냐?”
“뭐 그 정도야 당연히 하는 거지. 얼마 안 들어.”
당당하게 말하는 량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하나하나가 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게 분명한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역시 세계 제일의 부자…!”
량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배들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모두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쑥스럽게 웃는 둔스트였지만, 얼굴에 자신감이 만연하게 들어찬 것이 보인다.
“확실히 나쁘지 않기는 하다. 아니 대단하긴 한데.”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거지? 이제는 대부분 해전으로 이루어질 테니까?”
“응. 아무래도? 육지에서 싸우는 건 별로 없지 않을까 싶어서.”
“근데. 막상 모든 전투가 바다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이번에 돌라를 치러갈 때도 그렇고.”
“응? 자유섬 내부에서 싸운다고? 우리가 훨씬 불리할 텐데?”
“꼭 그러지만도 않을걸? 하여간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지.”
“꼭 이렇게 넘어가더라? 그냥 편하게 다 설명하고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 어차피 네 생각대로 될 텐데?”
“꼭 그러리란 보장이 있나. 그리고 가봐야 아는 일이기도 하고. 오히려 카인이 더 숨기는 게 많을걸?”
그 말에 카인을 바라보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 항상 너희랑 있으면 나는 당하고만 사는 것 같아.”
푸념을 뒤로하고 [브리제]는 끝없는, 이제는 막는 것도 없는 항해를 이어갔다.
*
“범아! 프라우!”
항구에서부터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가장 선두에 두 사람이 자신들을 부르며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