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아들노무새끼가 편지에 꼭 할 말이 있어서 보낸다고 한 게 그 말이라는 거지?”
차마 편지를 구기지는 못 하시고 애꿎은 의자의 팔걸이만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진짜 이노무 새끼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아! 나 은퇴했구나! 러더!”
“네.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라지는 러더님.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우리들. 그리고 돌이 된 마르쿠스를 뒤로하고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셨다.
“자! 그럼 할 일도 다 정해줬고 나도 은퇴했으니까! 자유롭게 떠나야지. 앞으로 잘하고 있어? 지켜볼 거니까? 아! 그리고 저택은 당분간 훌트가 관리할 거야.”
량이와 카인 그리고 자신에게 각각 다른 말을 하고서는 바람같이 사라지셨다.
“와… 진짜 가신 건가?”
“진짜 가신 거 같은데? 근데 이모님의 아들이 부발님이라고? 넌 알고 있었어?”
“나야 저번에 동전 덕분에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 이제는 그냥 드러내실 생각인가 보네.”
가장 놀란 사실은 할머니에게 아들, 친아들이 있다는 사실인 듯 보였다.
“근데 그게 무슨 큰일이야? 할머니 아들이 부발님인 게 어때서?”
“엄청난 거지! 초인 두 명이 모자 관계인 건 처음이라고.”
“그리고 그 파급력도 엄청나지. 거기에 한 명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이모님이면.”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니 꽤 대단한 일이었다. 둘 다 초인이라는 걸 믿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초월적 재능이 있는 건 아닌데.’
“왕국이 바짝 긴장하겠는데? 그것도 블레어 왕국은.”
뜬금없는 량이의 말에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네? 황제의 아들한테 깝친 거에 팔도 없어지고. 제 발 저리겠는데?”
“그러면 좀 곤란한가. 아닌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봐야겠네.”
“뭘?”
“하아. 넌 단순해서 가끔 몹시 부러울 때가 있어.”
“량이 말은 [맘몬]에 관한 이야기야 범아. 아무래도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클 거야.”
“아! 그거? 근데 아마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걸?”
자신이 오즈안님과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각 이상으로 집중을 하는 두 사람이기에 머리를 쥐어짜내서 더욱 자세하게 이야기 했다.
“확실히 세상은 인맥빨이구나. 진짜 어이가 없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자, 영향력이 끝을 모르고 세상에서 제일 돈이 많은 이의 제자인 량이의 말이었다.
“원래 쟤가 인생을 편하게 사는 면이 없잖아 있지. 아니 많지.”
정보 단체로 비교할 곳이 한 제국의 정보국 밖에 없다는, 그것도 세계로 놓고 보면 비교할 수 없다는 단체 수장의 아들이자 후계자의 말이었다.
“너희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어이없다는 생각은 안 들어?”
“솔직히 나도 스승님을 잘 만났다는 건 알고는 있는데 널 보면 좀.”
“맞아. 범이 너는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두 사람의 이어지는 말에는 솔직히 대답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확실히 만난 사람들을 보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친구’라고 할 사람들은 너희뿐인데?”
그 말에 해맑게 웃는 카인과 어색한 표정을 짓는 량을 보면 인생을 그래도 나쁘지 않게 이어 온 것 같았다.
“그나저나 마르쿠스가 한 일로 뒤탈이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너무 대놓고 그랬나?”
“제가. 실수한 겁니까?”
“아니 실수는 아닌데. 그냥 미묘한 시기에 너무 압도적이었다 랄까? 많이 성장했더라?”
“모두 범님의 덕입니다. 범님 덕분에 스승님을 만났고, 세상에 저보다 육체가 강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도.”
“하여간 저놈은 범이라면 껌뻑 죽는다니까. 그리고 괜찮아. 아마 걔도 그냥 찔러보는 용으로 그런 것 같으니까.”
“뭐. 네가 그러면 그런 거지. 그럼 우리는 다시 블라우로 돌아가는 건가?”
“응. 일단은? 아마 당분간은 정신없을걸. 특히나 후안과 아이쪽은 말이지. 그동안 우리는 돌라를 치는 거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량.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진짜 쟤를 적으로 돌리면 어떤 느낌이려나.’
“후안이랑 아이면 아까 봤던 구역주들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응. 그래도 회주 자리에 있다 보면 알 수 있는 게 꽤 많거든. 장모님의 도움 덕에 더 쉽게 됐지만. 한동안 정신없을 거야.”
“그럼 우선 빨리 배로 가자. 이곳을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할머니가 하신 말씀도 있고. 그리고 마르쿠스.”
“넵!”
“너도 수호대로 활동할 거야. 부발님이 어련히 알아서 해결해 놨을 거고 보아하니 카인과 량은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잘 처리했겠지.”
“두 분이 꼭 비밀로 해야 한다면서. 죄송합니다.”
“아냐. 대충 그럴 것 같았어. 다른 이들은 배에 가서 소개해 줄게. 다들 좋아할 거야.”
“감사합니다!”
훌트 누나에게는 따로 인사를 한 뒤에 저택 바로 앞에 정박해 있는 배로 향했다.
“아마 가는 동안 조심해야 할 거야. 바다 위에서 노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나름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역시나 량이는 모든 대비가 되어있었다.
“뭐. 그래도 나야 좋지. 아직 배 성능도 다 확인 못 했는데 이번 기회에 해보지 뭐.”
“맞네. 근데 우리 배가 있었어? 너희는 어떻게 온 거야?”
“빨리도 물어본다.”
“범이가 보면 진짜 놀랄걸?”
저택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 그 곳에 유려한 선체를 자랑하는 범선이 하나 존재했다.
할머니의 배보다는 훨씬 작지만, 자신이 본 배 중에서 꽤 큰 편에 속하는 미려하기 그지없는 배. 그냥 보아도 빠를 것처럼 생긴 범선.
“우리들의 함선 [브리제]야!”
“뭐. 내꺼긴 한데. 우리꺼라고 해 줄게.”
카인과 량이 무어라 말을 했지만, 도저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였다.
“아예 돛이 하나도 없는데. 설마.”
“멜빌레이의 동력원을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해? 훗.”
“인생. 인맥빨.”
그리고서는 다시 함선이라 불린 그 아이에게 눈이 빼앗겼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유려하게 이어지는 곡선. 그 크기가 거대함에도 날렵하기 그지 없는 선체.
“하. 진짜 아름답다.”
“안에 들어가면 깜짝 놀랄걸? 괜히 함선이 아니라고?”
“아. 근데 함선? 범선은 알겠는데 함선은 뭐야?”
“들어가서 설명해 줄게 빨리 가자!”
배로 올라가는 계단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선체의 외벽에서 하나하나 목판이 나오더니 계단이 되었다.
“미쳤다. 진짜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한 거야?”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량이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뒤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들어가면 더 놀랄걸?”
장담하는 카인의 말에 기대하며 한칸한칸 계단을 올라갔다.
“대장!”
“진짜 치사하게 혼자만 다니고!”
“저도 로즈님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자신을 반기는 수호대 인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에 확연하게 기세가 변한 이들이었다.
‘마니에르는 진짜 미쳤는데? 그 새 경계에 다다른 걸 모자라서.’
괜히 천재가 아닌 듯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를 보여주는 마니에르였다.
‘그래도 마르쿠스에 비하면 약간 처지는데, 진짜 천재는 마르쿠스인가? 거의 로사랑 비슷한 재능인 것 같은데. 괴물이 너무 많아.’
전생에서 가장 빛나는 세 사람이라고 하지만, 독보적으로 빛나는 사람은 바로 로사였다.
그런데 그런 로사와 비견되는 이가 여기에 두 명이나 있었다. 그 중에 마르쿠스는 클라운이었다.
‘하긴. 괜히 블러디 제노사이더가 탄생한 게 아니겠지.’
“자. 여기는 마르쿠스. 당분간 수호대로 활동할 거야. 그래봐야 나랑 따로 다닐 것 같지만.”
수호대에 집어 넣기에는 마르쿠스는 너무 튀었다. 이미 자리 잡은 진형에 맞추는 것은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바람의 탑]을 배운 사람이기도 하니까.’
당초에 스승님 밑에서 함께 훈련받을 때 스승님께서 따로 가르쳐 주셨다.
‘스승님조차 일타와 [바람의 탑]의 궁합이 그렇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 못 했다고 하셨지.’
수호 용병으로 있던 시절에도 마르쿠스의 위용은 대단했다. 자신 때문에 소문이 나지 않았다 뿐이지 용병단 내에서는 괴물로 불렸다.
‘괴물들이 즐비한 곳에서 괴물로 불리는 게 마르쿠스였지.’
안 그래도 마르쿠스가 만만치 않았음을 느꼈는지 마니에르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어? 아. 하긴 프라우는 안 본 지 꽤 됐으니까 저럴 수도 있지.’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듯한 프라우의 모습도 보였다.
“가서 어울려 줘. 아마 레핀이랑 마니에르는 전력으로 부딪쳐도 괜찮을 거야. 아니다. 괜찮아?”
“어. 그래도 갑판이랑 선체는 좀 조심해 줬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마르쿠스면 간당간당해.”
량이의 말에 입고리가 씨익 올라가는 마르쿠스가 보였다. 그리고 위풍당당하게 수호대 인원들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진짜 튼튼하게 지었나본데? 여기서도 괜찮다고 하는 걸 보면.”
“애초에 기준을 마르쿠스로 잡고 만들었으니까. 아마 세 번 정도는 어떻게 버티지 싶은데 말이지.”
“쟤네들은 놔두고 빨리 들어가자! 내가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단 말이야!”
함선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마려운 강아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있던 카인이 자신을 잡아 끌었다.
“뭔데? 알았어 가면 되잖아.”
‘요즘에는 조금 괜찮아졌다 싶더니 가끔 이런단 말이지.’
다시금 어린아이가 된 카인을 따라서 함선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직관적이네?”
할머니의 멜빌레이와는 다르게 조금 직관적으로 되어있는 내부가 신기했다.
“아. 별로 숨길 이유가 없어서. 허락받지 않은 사람이 지나가면 이것저것 나타나게 만들었어.”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량이의 말에 그냥 모르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걷고 있을 때였다.
“여기야! 너랑 나랑 량이 그리고 칼라 형수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야!”
함미에 위치한 곳으로 보였다. 그리고 문을 열자 광활한 바다가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와. 미쳤는데 여기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분명히 밖에서 보았을 때는 목재와 철재를 절묘하게 섞어 만들어진 걸작이었다.
‘어디에도 창문이나 유리같은게 없었는데.’
그런데 내부 함미의 벽은 모든 부분이 마치 뚫려있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뭐. 이런저런 마법과 약간의 시약만 있으면 낮은 코스트로도 할 수 있는 잔재주랄까나.”
“도대체 너한테는 뭐가 잔재주가 아닌 걸까?”
“근데 이게 다가 아니지! 자! 빨리 여기에 앉아봐.”
벽과 가장 가까운 곳, 그곳에 위치한 원형 테이블과 세 개의 의자. 의자도, 테이블도. 아니 이 방에 있는 모든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세 사람이 여기 앉는 거는 처음인데? 량아 빨리! 시작해봐.”
“크흠. 이건 좀 잔재주가 아니긴 해.”
약간은 부끄러워하는 그리고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조작하듯 만지는 량이.
“미친. 와. 와. 와.”
감탄 말고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방 전체로 함선 주변의 모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범아! 너도 할 수 있어. 팔걸이에 있는 걸 이렇게 하면.”
뒤를 돌아보니 카인의 정면에는 밖에서 대련하고 있는 수호대의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움직이고 있어? 배가? 언제? 아니. 이건 뭔데.”
“음. 웬만한 백장령의 일 년 예산이랑 연금술이랑 마법이 만나면 일어나는 일?”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지만, 코를 치켜들고 있는 량이었다. 그리고 그럴만 했다.
배는 순항하고 있었고, 주변의 모슨 환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금새 조작법을 배울 만큼 쉬웠다.
“이 함선에 해전에 능숙한 이들만 있으면 함대를 박살낼 수도 있겠는데?”
“어? 이제 마니에르랑 붙나보다. 이런 것도 가능하지!”
능숙한 카인의 손길에 어느새 함미에 방은 갑판의 대련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방 전체가 대련이 이루어지는 갑판이 되자 더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소리도 들을 수 있어? 심지어?”
생생하게 옆에서 진행되는 전투가 바로 눈 앞에 드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