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어쩐 일로 오셨대요? 엄청 바쁜 거 아니었어요? 엄마가 대신 참석한 것 같았는데.”
“대모님이 시킨 일 하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냐. 별것도 아닌 것들이 말은 안 들어가지고.”
1대대, 2대대, 3대대 그리고 10대대는 오늘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3대대의 대장이라는 양반이 형들을 데리고 냉큼 자신의 옆으로 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어쩐 일로 거기서 튀어나오는 거예요?”
“뭔 소리냐. 당연히 참석해야지. 안 그래도 어제 놓쳐서 마음 아픈데, 이 재밌는 자리를 놓칠 수는 없지.”
“진짜 지나치게 흥미본위 아니에요? 근데 린이랑 럼니형은 또 왜 데리고 왔어요?”
“원래 대장쯤 되면 옆에 어! 수행원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게 아니라. 할머니한테 보고 해야 하는데.”
“도둑놈이 못 미더우니 우리가 같이 온 거지.”
“아. 설득됐어. 확실히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광장으로 불리는 건물에 들어가자, 퍼그님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진다. 아니 퍼그님뿐만 아니었다.
“이 새끼가 미친 거지? 진짜 이것저것 재지 말고 죽여달라고 말로 하지?”
눈앞에는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 보였다.
광장이라 불리는 곳은 사실 콜로세움을 가장 흡사했다. 다만, 높은 부분이 한 부분밖에 없어서 광장이라 불릴 뿐이었다.
가장 높은 곳. 그곳에 있는 권좌. 오로지 바다의 황제라 불리는 그녀에게만 허락된 권좌.
재질은 알 수 없지만, 심해를 너무도 닮은 그 투박한 권좌는 바다를 지배하는 이를 뜻했다.
그런데 감히 그 권좌를 향해 오르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앉기 위해서.
권좌를 향해 똑바로 올라가고 있는 남성의 태도는 누가 보아도 확실했다.
퍼그님이 올 것이라 생각도 못 했는지, 얼굴이 창백해지는 남자.
“아니. 아니. 그냥 그게 아니라. 구경. 그래 구경을 하고 싶었어!”
“지금 네가 대장의 자리에 올랐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거지? 아주 미쳤구나? 대모님께서 물러나셨다고 한들 그게 니 자리는 아니지.”
온 힘을 다해서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퍼그님의 목소리는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소리 같았다.
“진짜 진심으로 널 죽이고 싶으니까. 꺼져.”
“아니.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지금 당장 뒤질래 아니면 지금 꺼질래?”
퍼그님의 전신에 살의가 충만하게 오르는 것을 보자, 말없이 빠른 걸음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전혀 재미없는 모습만 보셨네요? 근데 저 대장 나름 머리 쓰는 타입 아니었어요?”
카인에게 듣기로 해적의 대장 중에서 유독 머리가 뛰어난 몇몇 대장이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5대대장이었다, 티거와의 결투에 끼어든 것으로 보아도 그랬다.
그런데 저렇게 멍청하고 어벙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아. 진짜 괜히 왔나. 아니지 나중에 알았으면 더 빡쳤을 테니. 아니 죽이면 안되나?”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퍼그님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건 린과 럼니도 마찬가지였다.
“뭐라고 했지? 저 새끼가 뭐?”
“나름 머리 쓰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가 싶어서요.”
“하아. 시펄. 진짜 대모님도. 왜 저런 새끼를 대장으로 임명하도록 두셨나 몰라.”
“거기까지 손을 댔다면, 아예 해적은 자력으로 일어날 힘을 잃을 것 같아서 일 거예요.”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량이 조용히 첨언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퍼그님이었다.
“하긴. 네 말이 맞다. 지금도 해적같지 않은 새끼들인데, 그랬으면 진짜 개같았겠구나. 아. 그리고 저 새끼?”
조금 정신이 돌아오셨지만, 여전히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5대장을 말할 때마다 살기가 넘실거린다.
“나름 머리가 돌아가지. 그런데 그게 잔대가리라서 문제랄까. 거기에 이상하게 집착하는 게 있어.”
“권좌요?”
“어.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자기가 다음 대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지. 그리고 그게 걸리면 가뜩이나 좁은 시야가 더 좁아져.”
“임기응변이 강한 타입인가요? 그래도 나름 상황을 볼 줄 아는 것 같던데.”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과 티거의 대치 상황에서 그렇게 타이밍 좋게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순간적인 판단력은 좋지. 아니 이해타산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 그거뿐인데 자기는 그걸 몰라. 하여튼 저런 놈은 빨리 담가야 하는데.”
여전히 투덜거리는 퍼그님을 뒤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퍼그님은 권좌의 밑에 있는 계단에 바로 앉아 그 누구도 계단에 오지 못하게 막고 계셨다.
“너희도 이제 가 봐라. 괜히 지랄하면 골 아프니까.”
“나중에 봬요.”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고 있는 량과 카인의 뒤에 자리했다.
모두가 들어오면서 앉아있는 퍼그님을 보고 표정을 찌푸린다. 그리고 이내 모두가 모였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이가 있고, 막상 어울리는 이는 없는 것 같은데?”
“그건 당신이 정할 일도, 생각할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시작된 내용은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가 각 수장이라는 이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추태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카인은 관찰하고 량은 간간히 입을 열면서 참여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진짜 재미없다. 카인을 도대체 누가 노린다고. 하. 그래도 내가 없었으면 귀찮기는 했겠네.’
카인과 량. 이 자리에서 압도적으로 어린 이들이었다. 자신과 동갑이니 당연했다.
그러다보니 무시가 자연스럽고 위압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이들이 보였다.
그때마다 뒤에서 얌전히 기세를 피어올리며 살며시 눌러주었다. 종종 량의 손짓에 따라 하기도 했다.
‘근데 무슨 내가 기세 피어올리는 기계가 된 느낌인데.’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아하니 그냥 기세 피어올리는 기계가 백번 편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끝나가는 것 같은데.’
처음에야 고성이 오가고 하는 것이 가끔 볼 만도 했지만, 그것이 이어질수록 그저 보기 싫은 광경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인물들이 보였다.
퍼그님을 살짝 바라보자 눈을 마주친다. 이내 손으로 먼저 나가라고 하신다.
“가자. 이제 얻을 건 대충 다 얻었으니까.”
“도대체 뭘 얻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알았어. 앞장서.”
엄연히 총수이자 구역주인 량이었기에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밖으로 나설 때쯤이었다.
자신들, 특히 량이에게 적의가 가득한 기세가 짓누르려는 듯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 진짜 개판이구나. 아무리 봐도 해적인 거 같은데? 해적 안에서도 이렇단 말이지?’
속에서 치미는 역겨움을 내리누르며 공간을 만든다. 아무런 기세도 침범하지 못할 공간을.
“나 6대대의 부대장 카우캄! 해적으로써 블라우 구역주가 구역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증명을 해야 하겠는데?”
양아치나 다름없는 말투. 그리고 개념을 말아먹은 듯한 질문이었다.
“자기가 대장도 아니고 다른 대대가 인정한 걸 저렇게 걸고넘어지는 게 멍청한 행동임을 모르나?”
“이래서 너희를 제외한 인간을 내가 좋아할 수가 없어. 붕어만도 못한 인간들이 너무 많단 말이지.”
카인과 량이 그 말을 듣고 작은 소리로 궁시렁거리는 것이 귀에 들려온다.
“진짜 귀찮게 한다. 아니 쟤 눈에는 범이가 안 보이나?”
“금붕어한테 뭘 바라냐. 게다가 자기를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너희 너무 태평하게 있는거 아니고?”
“니가 있는데?”
“범이가 있는데?”
실소가 흘러나온다. 자신을 이렇게 믿는 게 괜히 기분 좋기도 했다.
반면에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붉어지며 양손에 작은 아이만 한 도끼를 하나씩 들고 다가오는 양아치.
“거기 수호대주는 나서지 말지? 이건 해적이 구역주에게 하는 정당한 시험 같은 거니까.”
‘하. 진짜 같잖은데, 역겹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 같아서는 양팔을 자르고 싶은데.’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면서 다가오는 양아치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꺼져라. 눈도 제대로 달리지 못한 새끼가 감히 누구에게 그러는 것이냐!”
온몸을 가리고 있는 로브를 두르고 있었지만, 바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니가 여기에서 왜 나와?”
“스승님께서 잠시 다녀오라고 보내주셨습니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쟤도 진짜 대단하다. 얼마나 범이를 좋아하는 건지.”
“진짜 범이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어.”
득달같이 자신을 놀리는 두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반가움이 더 컸다.
“뭔데 자유섬에서 감히 해적의 행사를 방해하는 거지? 뒤지고 싶은가 본데?”
‘진짜 눈이 삐꾼가보네. 아니, 자신감이 넘칠 만도 하지.’
정도를 벗어나면 순식간에 강해진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의외로 그런 느낌에 쉽게 취한다.
“정리하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여전히 자신에게 깍듯한 자세를 일관하는 게 오히려 더 웃겼다. 함께 한 시간이 적지 않는데, 변하지를 않는다.
“자유섬이고 나발이고. 스승님께 배운 게 있지. 강하면 너 같은 양아치에게는 참교육이 답이라는 걸.”
‘부발님을 스승으로 모셨다는 건 알겠는데, 왜 말투까지 닮아가는 건지 모르겠네.’
그 말을 끝으로 튀어나가는 청년의 손에는 이상한 무기가 들려있었다.
길이는 자신의 키만 하고 그 위에는 거대하고 끝이 뾰족한 것이 달린 텅 빈 이상한 망치. 그 망치는 틀로만 이루어진 이상한 형태였다.
그런데 그 비어있는 부분들이 순식간에 하얗고 붉은 색의 광석으로 가득 찼다.
양아치는 양손의 도끼로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바로 무릎을 꿇었다.
‘쟤 힘은 진짜 괴물인데, 더 괴물이 된 느낌인데? 역시 부발님인가.’
육체라는 신체 스펙만 놓고 보자면 마르쿠스는 괴물이었다. 신력의 가문에서조차 특별한 괴물.
그런 마르쿠스를 육체만으로 놓고 보았을 때 압도할 수 있는 이는 세계에서 손에 꼽을 것이다.
‘꼭 누군가가 있겠지. 세상에는 괴물들 천지니까.’
하지만 자신이 아는 한에서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1위는 부발님이겠지만.’
몸이 단단해지는 재능을 가지고 초인이 된 사람. 그럼에도 끊임없이 단련하는 사람이 부발님이었다.
‘사실 팔 한 짝을 가져간 그 사람도 어마어마하다는 건데.’
그런 부발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세상에 괴물을 하나 더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저걸 보면 진짜 괴물 하나 만들어 놓은 것 같기는 한데.’
분명 같은 익스퍼트일텐데, 역겨움이 올라오는 것을 보아하니 재능에 손을 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일격에 무릎 꿇고, 한손으로 내리누르는데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뭐. 괴물이 우리 편이면 좋은 거지.’
어느새 양아치를 저 멀리 날려버린 마르쿠스가 먼지를 털더니 자신에게 와 정중히 인사한다.
“다녀왔습니다. 대장.”
마르쿠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정적이 된 주변을 한 번 돌아보니 속이 시원했다.
“가자. 소개시켜 줄 사람이 많다.”
이후로 그 누구도 량이 가는 길을 막지 않았다. 너무도 수월하게 할머니의 저택으로 갈 수 있었다.
*
저택에 도착해서 우리를 맞아 준 것은 할머니뿐이었다. 어느새 갈 준비를 마쳐놓은 량이었다.
마르쿠스가 한껏 얼어있는 표정으로 인사를 한 후 건넨 편지 덕분에 새삼 긴장감이 돌았다.
“흐음. 네가 제자라는 거지? 지금 지가 안 내려오고 제자 손에 딸랑 편지만 쥐어 주고 말이지.”
마르쿠스가 저렇게 얼어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부발님 앞에서도 당당했는데 신기했다.
“에휴. 내가 뭐라고 할 주제가 안 되니 어쩔 수 없구나. 그래도 기본은 잘 잡혀 있구나.”
“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 그리고.”
“그리고?”
“스승님께서.”
우물쭈물하던 마르쿠스는 결국 쏟아내듯이 입을 열었다.
“할망구가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구만! 빨리 보러 오기나 해!”
그리고서는 정적이 흘렀다. 말을 한 마르쿠스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다른 이들은 무엇을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정적 속에서 오로지 의자의 팔걸이가 부러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