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진짜 치사하다. 둘이서만. 와 서운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언제나 모이는 카인의 방으로 가는 내내 카인은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네가 장모님께 말을 하라니까?”
“와. 이제 장모님 편드는 것 봐. 우리의 10년 우정은 필요 없다 이거지?”
두 사람은 저 말의 반복이었다. 사실 끔찍한 시간이었지만, 피할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량이와 함께 카인의 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그만하자. 진짜 미안하다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
카인의 방에 있는 의자에 오연히 앉더니 단호하고 의지가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말해줘. 하나도 빠짐없이. 난 네 머리를 알고 있다.”
단호하기 그지없는 카인, 거기에 그대로 이야기하는 량의 모습까지. 너무 웃겨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뭐가 그리 웃긴 건데! 범이 너도 너무해! 나 진짜 서운하다고!”
“알아. 알아. 그래서 이렇게 다 이야기해줬잖아. 근데 카인 나 궁금한 게 있어.”
“응? 뭔데? 웬일이야 질문도 하고. 빨리 물어봐.”
아주 기특하다는 듯,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량이 귀여웠다.
“할머니는 왜 움직이면 안 되는데? 그냥 쓸어버리면 되지 않아?”
자신이 그동안 만난 사람들만 해도, 쓸어버리는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특히나, 할머니가 바다에 한 번 뜨면, 진짜 한 방일 텐데?’
“아 그거? 사실 엄청 간단한데, 은퇴하셨잖아. 그런데 다시 전면에 나선다고 해봐.”
“왜? 배신자를 처단하는 거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참 좋기는 한데, 좀 자세히 말하면 세 가지 이유가 있어.”
“세 가지나 있어? 그렇게 많아?”
“어. 우선 장모님은 초인이야. 그것도 비교할 수 없는 초인.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닌 초인.”
“할머니가 그렇게 강하다고?”
초인이 상상도 못 하게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라고 생각은 안 했다.
‘전생에 마스터가 왕국을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는 아니었지.’
“초인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심하게 나니까. 아마 웬만한 초인들은 장모님께 덤비면 순식간에 사라질걸?”
“초인 사이에서도 차이가 그렇게 심하다고?”
“음. 쉽게 이야기하면, 이건 스승님이 말씀하신 거니까 정확하겠지. 정말 정확하려면 실험을 하는 게 제일 좋기는 한데.”
‘와. 그래서 전생에는 그렇게 실험을 한 건가?’
“마스터는 하나의 사단(師團)을 홀로 상대할 수 있고, 초인이 되면 하나의 전선을 상대할 수 있다.”
“초인이 되면 하나의 전선을 책임진다라.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아?”
“하여튼, 그 초인 중 10명은 홀로 왕국을 상대할 수 있고, 그 안에 5명은 세계를 상대할 수 있다.”
“세계를? 한 대륙이 아니라 세계를?”
“응. 세계를. 엄밀히 말해서 본인의 무력만으로 가능한 건 3명이라고 하시더라. 그중 한 명이 장모님이신 거지.”
“넌. 큰일 났네.”
“아니. 갑자기 그 소리는 왜 하는 건데?”
“나도 모르게 그냥 나왔어. 미안. 계속해.”
양팔에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쓰다듬으며 다시 이야기하는 량.
“그런 분이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자중하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
“힘이 있어도 복잡하네. 그냥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대단하신 거기는 해. 그런데 생각해 봐. 살짝 화났는데 마을이 사라지는 거지.”
순간 상상이 돼 소름이 돋았다. 그런 힘을 가진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괜히 이 세계에 허락되지 않은 힘이라고 표현한 게 아니라고.”
“그래. 그렇다 치고 그다음은?”
“장모님께서 이미 은퇴를 선언하셨기 때문이지.”
“응? 아직은 아니잖아?”
“아니지. 이미 일선에 물러나 계셨고, 공표하신 거지. 그런데 그 말을 물린다? 절대 안 될 일이지.”
“왜?”
사람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장모님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는 그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으니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에 무게가 있다는 게”
“그거야 그네들이 잘못한 거고, 또 장모님 정도의 위치가 되면 아주 달라지니까.”
“그건 아직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리고 마지막은?”
“아! 이게 제일 중요하지. 장모님이 은퇴하고 싶어 하시니까. 다시, 앞에 나서고 싶지 않으시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잊혀지기 원하시는 거지. 근데 힘을 드러내는 순간? 절대 못 잊지. 이제야 조금 그나마 잊혀져 가는데.”
“할머니도 어렵게 사시는구나. 힘이 있다고 막 살 수 있는 것도 아닌가?”
“정도랄까. 너무 과한 거일 수도 있고. 장모님이 그러셨어. 가끔 당신 스스로가 너무 무섭다고.”
“완전히 할머니 통제 아래에 있는 거 아니야? 특히나 선천 재능이라면.”
“사람 일은 모르니까. 감정이 폭주할까 두렵다 하시더라. 그런 걸 다스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武)를 수련하시는 거래. 근데 한계가 너무 보여서 힘들다고 하시더라.”
“와. 상상도 못 한 이유다. 할머니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 한 번도 안 하셨는데.”
“넌 아직 멀었지. 너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마음도 있고, 그리고 넌 다르다고 하시더라.”
“응? 내가 다르다니?”
“상위세계에 오르면 또 달라질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균형을 찾게 된다고 하시는데? 그때가 되면 자신보다 더 재능에 대해 알게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
“흐음. 균형인가. 진짜 어렵다. 가도가도 끝이 없구나.”
“그러니까 재밌지. 나도 조금 흥미가 생겼다고나 할까.”
“너 그러다가 큰일난다?”
“뭔 소리야. 멱살 잡고 같이 갈 거야.”
“아구 그러셨어요. 대단하신 량이는 좋으시겠어요.”
“흠. 그럼 나 혼자 남게 되는 건가? 그건 진짜 별로인 것 같은데.”
한껏 시무룩해진 카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뭔 소리야. 네가 왜 혼자야. 그리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 나도 안 갈 수도 있고.”
“나중에 범이 이름이 꼭 [프린시오 비블리아] 에 올라오는 걸 기대하고 있을게. 그것도 가장 위에!”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꼭 제일 위로 올라갈게.”
듣기만 해도, 상상만 해도 신나고 흥분이 되는 일이었다. 자신이 가장 위에 있다는 것이.
“아! 근데 해적들은 왜 가만히 있어? 자유섬에서만 너무 조용히 있는 거 같은데?”
신나는 상상을 하던 중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진실로 맞았다.
점점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말이 안 나오게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해적들이었다.
할머니는 제외하더라도 블레어나 시디야 왕국은 충분히 홀로 점령할 전력이었다.
“방향이 다르기도 하고, 문화가 다르기도 한데, 가장 중요한 건 자유섬도 수호 용병 같은 이들이란 거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난생처음 듣는 소리였다.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수호산맥에만 마수가 있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바다가 훨씬 위험했다고 하더라.”
“한 번도 이상한 걸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안정기를 찾은 건 한 500년 되었나 싶은데.”
“500년? 그럼 지금은 완전히 괜찮은 거야?”
“아니. 여전히 마수들은 있고, 심해에는 상상도 못 하는 마수들이 있다고 하더라.”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없는데, 카인 넌 알고 있었어?”
“나? 난 알고 있지. 난 모르는 게 없다구! 근데 아마 대륙 사람들은 거의 다 모를 거야. 과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것도 200년까지만 마수의 침입을 받았지, 그 이후에는 자유섬에서 모두 해결해 왔으니까.”
“바다의 마수라.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장모님의 등장 이후에는 절대적인 안정기에 들어갔으니까. 스승님 말로는 장모님 애완 마수가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바다에 마수가 있다고? 어떻게 생겼으려나. 무슨 능력을 갖고 있으려나?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거지?’
자신이 만난 마수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것들이었다. 괴이한 능력으로 말도 안 되는 강함을 가진 것들.
‘그레누이를 나 혼자 잡은 것도 사실 운이 좋았지. 어렸고 스승님도 곁에 있었고.’
같은 성의 마수라고 할지라도 성장한 것에 따라서 강함이 달랐다.
부발 대장님처럼 초인이 꼭 필요한 마수도 존재했다. 그런 마수가 바다에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그 누구도 수호산맥을 넘어본 사람이 없다고 했지. 그냥 바다라고 하기는 하는데, 거기에 있는 마수들인가?’
나중에 대충 일이 해결되면 반드시 할머니에게 부탁해서 구경 가고 싶어졌다.
‘어차피 할머니랑 가면 어딘들 안전할 테니까.’
“자! 그만! 이제 일 이야기 해야지. 가끔 량이도 보면 샛길로 너무 샌다니까?”
“지금. 네가. 나한테? 샛길로 샌다고 하는 거야? 카인이? 나에게?”
“아니. 뭐. 그렇다고. 어쨌든! 이젠 범이도 대충 알게 된 것 같고.”
“아! 맞네. 왜 나한테는 말 안 해 줬어? 그 미묘한 분위기는 또 뭐였고?”
방금전 할머니의 저택에서 마치 량이 모든 것을 이어받을 것처럼 말이 되는 분위기였다.
‘아니. 이어받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건가? 널 믿는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좀 빠르게 진행이 된 거라. 게다가 넌 [무투의 탑]에 있을 때라서 더 그랬어.”
“흐음. 아닌 것 같은데, 칼라 이모랑 이렇게 저렇게 되고 나서 그렇게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카인. 내가 말했지? 얘도 은근히 구렁이라고.”
“[무투의 탑]에 있을 때도 진행이 된 거 맞아. 그런데 주체가 나에서 량이로 바뀐 거지.”
“파울로님이 찾아오셨을 때?”
“평상시에 이렇게 똑똑하면 내가 편하지 않겠어?”
“파울로님이 오시고 량이가 전면에 나서겠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감동하셨는지. 이제야 자기도 편하게 살 수 있다면서, 제자가 사람이 되었다면서.”
“그 이야기는 왜 하는데!”
량이 눈을 부라리지만 그것으로는 카인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칼라 형수님의 손을 잡으며 네가 은인이라고 엄청 좋아하시더라.”
“그래서 언제 이야기가 된 건데?”
“구문님을 뵈었을 때. 이야기가 시작된 거지.”
“아! 그때 어머니가 잠시 따로 보자고 했을 때구나!”
“어. 칼라가 있으면 영감들도 자연스럽게 인정해줄 거라고 하시더라. 다만, 정리를 해야 하는 건 내 몫이고.”
“솔직히 그 정도면 너한테는 식은 죽 먹기 아니야?”
전생에서 탑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고도 점령 전쟁에 미친 영향력을 가졌던 량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나서서 하는 일이니만큼 어떻게 풀어갈지 자신의 머리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게. 좀 달라. 그냥 싹 다 양패구상을 시키거나 피를 많이 흘리는 쪽이면 쉬운데.”
‘미쳤다. 진짜 내가 세상을 구했네.’
“이제는 그러기는 싫고, 지켜야 할 사람들도 생겼고. 거기에 [맘몬]도 있어서. 차근차근 풀어가야지.”
“그 차근차근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길면 1년?”
“차근차근이 1년이냐! 그럼 막하면 뭐 얼마나 걸리는데?”
“이것저것 안 재고 막하면? 2달이면 차고 넘치지 않을까?”
‘진짜 쟤랑 친구라서 너무 다행이다. 진짜 무서운 놈은 이놈이라니까.’
“그럼 어떻게 진행할 건데?”
“우선 5대대부터 조지고 봐야지.”
“응? 5대대면 [맘몬]이랑 손을 잡은 핵심 아니야?”
“응. 아니야. 그냥 드러나기를 그러는 거지. 그리고 5대대 대장이 좀 멍청하고 욕심만 많아서. 그렇게 두는 거고.”
“에이. 그 이유만 있는 거 아니면서! 나는 알지요. 왜 량이가 5대대부터 조지려고 하는지.”
그 말에 량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면서 품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약병을 꺼냈다.
“죽여버릴 거야 카인. 말하면 이거 던진다?”
“5대대 대장이 칼라 형수님한. 야! 야! 미친놈아! [리스테이블라이즈]!”
카인의 입이 열리는 동시에 량이 약병을 카인의 발밑에 던졌다. 그리고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안 죽을 거 아니까 호들갑 떨지 마.”
“이 미친놈아! 나라서 그나마 다행이지 이걸 던지면 죽는다고!”
“너라서 던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냐?”
그렇게 투닥대기를 잠시, 다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래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슬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