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대모님은 누가 이길 것 같으십니까?”
“그놈에 이상한 말투는 고치라니까. 쯧. 그리고.”
밤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 질문을 한 량의 고개가 숙여진다.
“대모님이 아니라 장모님이라고 했지?”
“아. 진짜 오늘따라 왜 이러시는 건데요!”
“얄미워서 그런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내 사랑은 이런 사랑이다. 왜! 그나저나 뭐? 누가 이길 것 같냐고 했던가?”
“예. 사실 두 사람은 가늠이 잘 안 돼서요. 특히나 하이님은 알려진 것도 없어서요.”
“하긴, 밖에서는 하이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 둘이 싸우면 이라. 그냥 놓고 보면 범이가 훨씬 강하기는 하지. 근데.”
그 말과 함께 눈이 따라가기도 버거울 일격을 주고받던 두 사람의 대치가 변했다.
*
세상이 반전했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자신이 마스터가 된, 아니 그전에도 이렇게 쉽게 몸이 돌아간 적이 있나 싶다.
가까스로 다시 자리를 잡자 자신을 보면서 웃고 있는 하이님이 눈에 보인다.
“뭐. 대련이고 처음이니까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보여준 셈이지.”
웃고 있는 하이님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자신을 봐준 것이다.
분명 세상이 반전되는 그 순간을 노렸다면 자신은 제대로 된 반응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끝나는 것도 아쉽고 말이지.”
다시 보아도, 다시 들어도 어처구니가 없다. 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진짜 조심하세요. 그리고 부탁드릴게요.”
바람의 탑이 세 개가 동시에 열린다. 이제는 세 개를 동시에 열어도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다.
연못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오러 쓰레드와 함께 풍아에 자신의 재능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를 넘어서 쓰레드에도 재능이 깃들게 한다.
“하이님 진짜 조심하세요. 많이 아플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니티움]에 자신의 오러를 경유하게 만든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를 끌어올린다.
잔잔한 바람들이 모여서 폭풍을 만들고, 그 폭풍에 물이 서서히 함께한다.
“하필이면 이곳이니까 더 조심하세요.”
자신의 주위에 바람이 요동치고 그와 동시에 물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대로 바람을 타고 앞으로 튀어나간다. 우선은 가볍게 한 번.
오른팔을 들어 막으셨지만, 그 방패의 윗부분이 깔끔하게 잘려나간다.
“저도 한 번 보여드렸으니까. 이제는 진짜 조심하세요. 전심을 다 해서 막으세요.”
확실히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듯 다음 한 번은 도의 면을 때린다.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를 툭툭 건드리듯이 때린다.
다시 올려쳐지는 자신의 도를 옆으로 피하면서 도면을 다시 가격한다. 그 동시에 방금 느낀 그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무게중심이 뒤틀려 작은 충격에도 요동칠 것 같은 그 순간. 자신을 보며 미소지은 채 양팔로 가격하려는 모습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바람은 생각 이상으로 다채롭고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해요.”
그 느낌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대로 그 느낌을 타고 몸을 띄우면서 도를 휘두른다.
발이 땅에 닿은 느낌이 듦과 동시에 튀어나간다. 절대 끊을 수 없는 바람이 찾아온다.
산들바람도 폭풍도 아닌 바람. 폭풍과 우풍의 사이에서 안개를 만들어내는 그런 바람.
자신의 도가 그려내는 바람은 그런 바람이었다. 불지 않는 것 같지만, 면면부절 이어지는 바람.
방패를 자른다. 양팔을 모으면 전신을 가리고도 남았던 방패가 이제는 손과 팔만을 겨우 가리고 있다.
거칠게 숨을 쉬고 있는 하이님은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바라본다.
“이거지! 이 느낌이지!! 좋아!!”
그러면서 다시 자신에게 돌진하는 하이님을 보니 올라왔던 빡침도 내려간다.
“재밌는 거 보여드릴게요. 근데 아직 조절이 미숙하니까 조심하세요.”
폭풍과 우풍에서 파생된 안개바람을 산들바람처럼 바꿀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시도한 것이 있었다.
‘문양만을 정확하게 노리는 거야. 뭐, 어디 잘리면 량이 알아서 해 주겠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멈춘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도를 휘두른다.
전신을 가볍게 쓸고 나가는 듯이 하이님을 쓸고 지나쳐 왔다.
“괴물이구나. 이건 뭐냐?”
뒤돌아보니 흥분해서 눈이 돌아가 있던 하이님이 다시금 차분한 모습을 되찾았다.
“안개바람. 아직은 멀고 멀었는데, 꼭 완성하고 싶은 바람이에요.”
“진짜 완성하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구나.”
그 동시에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 기절하듯이 쓰러지는 하이님. 그리고 그제야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정말. 이 아이가 자초한 거라지만, 착실하게도 베어놨구나.”
어느새 할머니께서 옆으로 오셔서 하이님을 보시더니 말을 건네셨다.
“헤. 저도 오랜만이라 조금 조절이 안 되었어요.”
“조절은 무슨.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던데. 그래도 굉장했단다. 완성하면 꽤 대단할 것 같더구나.”
“진짜 장난 아니더라! 마지막껀 다 놓쳤어.”
할머니와 함께 올라오자 가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인이 눈을 빛내며 말한다.
“진짜. 너 나 믿고 이렇게 한 거지?”
그 옆에 있던 량이 툴툴거리면서 다가온다. 그보다 먼저 나선 사람이 있었다.
거대한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자 흙들이 올라와서 하이님을 뒤덮었다.
하이님을 감싼 흙들이 순식간에 그 힘을 잃고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 굳은 덩어리를 툭 치신다.
“이게…?”
다시 드러난 하이님은 하나의 상처도 남지 않은 채 온몸이 회복된 모습이었다.
“차만가문만 사용할 수 있는 특유의 자연 마법이래. 나도 자세한 건 못 들었지만.”
카인이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설명해 준다. 기존에 알려진 마법 체계와는 전혀 다르다고.
더 이야기하려는데 자신을 끌고 가는 손길이 있었다. 웅덩이 밖의 공터에 앉혀지고 눈을 드니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웅덩이에서 홀로 나온 자가 여기 있으니! 그 이름이 범이라. 자신의 시련을 딛고 일어난 성인이라!”
박수와 함성이 묘한 선율을 이루면서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이렇게나 박수받을 일인가?’
“그런 이에게 응당 축복이 있어야 할 것이니!”
지팡이가 자신의 등을 살짝 누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동시에 따끔거린다.
“그는 불을 이루는 근원의 축복을 받아 쉬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꺼지지 않을 것이라. 물에게 축복을 받아 활력이 넘칠 것이고 언제나 흐르듯 멈추지 않을 것이니!”
따끔거리던 그 느낌이 점차 강해지더니, 등의 피부밑으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고통이 느껴진다.
“이 축복은 받은 이가 장성할수록 같이 자랄 것이며, 그의 해를 막을 것이고, 결코 떨어지지 않으리라!”
말이 끝난 동시에 고통이 사라지고 시원한 느낌이 전신을 관통한다.
‘와… 신기한데? 이건 뭐지?’
시원한 느낌이 지나고 나자 새로운 활력이 몸에 도는 것이 느껴진다.
방금 전의 전투로 인한 피로감이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그 전보다 더 활력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연회를 시작하자!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 자리에서 아무 설명도 없이, 모두가 일어나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은 의자로 쓰이던 나무 채로 들려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
여전히 신기하게만 쳐다보니 카인이 슬쩍 옆으로 다가온다. 옆구리를 툭툭 찌르는 거로 보아 놀리려는 게 틀림없었다.
“왜~ 마음에 드는 여자가 한 명도 없었어?”
“알면서 그런다. 진짜 혼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인들이 꽤 있었는데, 그를 모두 거절한 것을 보고 한 말이었다.
“고집쟁이. 바보.”
“누가 누구한테 고집쟁이라고 하는 거냐? 넌 더 하면서.”
실제로 자신에게 관심을 표한 여자들이 꽤 있었다면, 카인에게는 모든 여인들이 그랬다.
“왜? 아직도 신기하게 보고 있어.”
능숙하게 말을 돌리는 카인을 한 번 봐주기로 했다.
“안 신기하냐 넌 저게?”
자신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한 그 물로 각종 고기와 야채들을 삶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로 만들어진 음식들은 다른 무엇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이런 때가 아니면 먹을 수 없으니까 실컷 먹어둬야지!”
“이미 배 터지게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들어가네.”
삶은 고기와 삶은 야채들이 밍밍할 것 같았지만, 묘한 맛이 있었다. 각 재료 맛의 정수가 압축된 그런 느낌이었다.
“진짜 마지막이네. 벌써.”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카인에게 물어보았다.
“야. 이 등에 있는 건 뭐냐? 물어볼 엄두가 안 나서 못 물어보고 있었는데.”
사실 물어볼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있었지만, 물어볼 수 없는 이유가 더 컸다.
할머니께서 오크통째로 가져온 럼을 가지고 먹다가 이미 뻗어버리신 샤아니님이셨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은퓨어님도 강을 건너가게 생겼다. 여전히 정정한 할머니는 다른 의미로 괴물이었다.
“아! 그거. 맞아 나보고 설명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이유일 줄은 몰랐네.”
굴러다니는 오크통들이 저 전장의 치열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자연의 축복이라는 거라고 하셨어. 량이나 내가 받은 거랑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응? 너도 가슴에 뭐 새겼어?”
“응. 근데 지금은 문양에 가려져서 안 보이는 건데, 량이보다는 조금 작아.”
괜히 시무룩 해 보이는 카인이 조금 웃겼다. 저 둘은 이상한 경쟁의식이 있었다.
“그래도! 량이는 고정적인 거니까! 내꺼는 범이 너처럼 성장하는 거라고 하셨고!”
“그래서 그 자연의 축복이란 게 뭔데?”
“불과 물을 깊이 탐구하고 같이 살던 그 핏줄의 후손이래. 이 세상 전에 말이야.”
갑자기 이야기가 단 하나의 세상이었던 때로 뛰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100년도 채 안 지났을 쯤, 뭔가 달라졌다고 하시더라고. 그러고 나서 새로이 생긴 거라고 하시더라.”
쓸데없이 복잡하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고, 자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니. 그래서 자연의 축복 효과가 뭐냐구.”
“멍청아! 이런 걸 다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굳이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카인이었다.
“그래서. 잘 알겠으니까. 효과가 뭐냐구. 갑자기 활력이 돌아서 진짜 놀랐다고. 오러랑도 상관이 없는 것 같던데.”
“사람마다 다르대.”
참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카인의 뒤통수를 노리며 손이 날아갔다.
“어? 피했어?”
카인의 반응 속도보다 조금 빠른 정도, 약간 아픈 정도로 언제나 뒤통수를 때리던 손이 허공을 날았다.
“흥! 나라고 가만히 있는 줄 만 아냐!”
조금 더 빠르게, 허공을 다시 갈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조금 더 빠르게 휘두르고 나서야 뒤통수에 안착 할 수 있었다.
“뭐냐? 뭐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바뀌는 거야.”
“나도 연못도 다녀오고! 너랑은 조금 다르지만, 축복도 받은 몸이라고!”
“그거로 이렇게 변한다고? 감각이 달라진다고?”
무인도 아닌 마법사 카인의 반응 속도와 감각이 이렇게까지 달라졌다는 게 신기했다.
‘그럼. 나도 그렇게 달라졌다는 건가?’
매번 하이님과의 대련으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 왔지만, 이렇게까지 변화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불은 꺼지지 않는 생명을, 물은 끊어지지 않는 흐름을 나타낸다고 하셨어. 아마 너도 달라질걸? 이미 달라졌을 거고.”
‘할머니한테 물밤을 날려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건가.’
자신이 하이님이 된 것 같았다. 몸이 근질거려서 누구랑 대련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네가 이번에 내 호위라며! 완전 기대하고 있다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그런데, 그분들은 어디에 계신 건데?”
“아! 잠시 일 때문에 서도에, 그리고 로즈 아일랜드라서 조금 마음을 놨던 것도 있구.”
“웬일이래? 앞으로도 뒤로도 조심을 외치던 카인은 어디 갔고?”
“놀리지 마. 나도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러니까. 아니 어떻게 내부에 그렇게 생각하나 몰라?”
“응? 뭔 소리야?”
그리고 이어진 카인의 이야기는 자신으로도 이해가 힘든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