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정말 어색하기 그지없는 순간이었다. 싸늘함이 갑자기 찾아와 무엇도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그 분위기를 부숴줄 사람이 늦지 않게 나타났다. 괴인의 몰골을 하고.
“뭐야. 왜 왔는데 분위기가 이상합니까?”
여기저기 진흙이 묻어있고 더러운 것을 빼면 첫날 보았던 하이님이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괴인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몰골이었다. 피부는 붉게 올라오고, 성한 곳이 없는 몰골.
“혹시 량?”
“범아! 도망쳐. 여기는 지옥이야. 아니야 살려줘!”
자신에게 뛰어오려는 량의 뒷덜미를 냉큼 잡으시는 하이님. 그리고는 뒤통수를 가볍게 때리신다.
“뭘 그것 가지고 살려줘냐! 잘 적응했으면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으니 엄살은 그만 떨어라.”
“량아 근데 너…?”
3일 만에 사람의 근육이 불어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부분 당연히 절대 불가능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리 운동을 한다고 해도 일주일은 되어야 실낱같은 근육이 붙고 한 달은 해야 뭔가라도 생긴다.
그런데 량의 체구가 살짝 불어나 있었다. 마치 굳은살이 여러 겹 붙은 것처럼 근육이 한 층 올라와 있었다.
“봐라! 바로 알아보지 않냐! 너 같이 축복을 받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엄살을 부리는 것이냐!”
“축복은 무슨! 사람이 죽지 않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진짜 두고 봐요.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든, 네 실력이 되면 언제든 아구창을 맞아주겠다고!”
두 사람의 대화가 경직되고 얼어있던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살 것 같았다.
“그런데 대모님. 방금은 분위기가 왜?”
“하이 네가 두 사람을 데리고 한 번 구경시켜주지 않으렴? 둘 다 그곳에서 같이 수련을 할 것 같구나.”
“하아. 방금 왔, 넵!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가자!”
무언가를 말하려다가도 할머니의 의미심장한 웃음에 바로 우리를 데리고 더 깊은 곳으로 가는 하이.
“그나저나 인사를 제대로 못 했지? 2대대 대장 하이다. 너랑은 꼭 붙어보고 싶은데 말이지.”
“안녕하세요. 어머니의 막내 범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아! 카인입니다. 에사가님의 아들입니다.”
아직은 멍한 상태에서 돌아오지 못했는지, 조금 늦게 대답을 하는 카인.
“에사가님? 아씨? 아씨의 아들이 너라고? 그 개XX의 아들이 너라고?”
에사가라는 단어에 격하게 반응하는 하이님. 혹시나 아는 분인가 싶을 정도였다.
‘나이가 좀 아닌데. 아닌가? 하이님이 몇 살인지를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너 머리가 정말 아씨를 빼다 닮았구나. 진짜로. 후 복잡할 만도 하구나.”
“하이님도 저희 어머니를 아세요?”
“그럼! 당연히 알지! 진짜 그 ---”
사람을 표현한다기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거친 언어들이 날아다녔다.
“가 아니었으면! 내가 아씨께 고백하려고 했는데! 진짜 잘 컸구나.”
복잡한 눈으로 카인을 바라보는 하이님.
‘예전에 엄마를 짝사랑하던 사람을 보는 건 무슨 느낌일까?’
“뭐 사실 아씨가 나를 남자로 안 보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아씨의 아들을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저희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금세 옆에 붙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물으며 걸어가는 카인을 앞에 두고 량의 옆에 다가갔다.
“량아. 너 몸이 더 탄탄해졌다?”
“하. 그렇게 말 해줘서 고맙기는 한데, 진짜 여기는 지옥이야.”
“근데 너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알았어?”
“아니. 그래도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했지. 이 세상에는 성지라 불리는 곳이 몇 있어. 그런데 대부분 숨겨져 있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는 게 당연한 거지.”
“이런 곳이 또 있다고?”
“형태는 다르지. 나도 처음에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데, 끓는 강이라니. 화산도 없는데. 근데 아까는 왜 그런 거야?”
“아. 다른 게 아니라 그 샤아니라는 분이 카인의 외할아버지고 중년인이 외삼촌이라고 그러더라고.”
“하. 복잡하겠네 저 녀석도. 꽤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우리가 가는 곳에 뭐가 있길래 네가 이렇게 변한 거야?”
가까이서 본 량은 생각 이상으로 더 많이 변해 있었다. 몸에 근육이 붙은 것이 다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흐트러져 있던 균형이 잡혔다. 거기에 더해 피부가 꽤나 질겨진 듯했다.
“피부가 좀 더 질겨진 거 같은데? 근육은 좀 더 조밀해지고 탄탄해지고. 마치 몸 자체가 달라진 것처럼.”
그 말에 피식 웃는 량. 여기 와서 웃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진짜 가끔 넌 예리하다니까, 평소에도 좀 이러면 덧나냐?”
“야! 너네 둘이 너무 괴물 같은 거지 나도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거든!”
“뭐. 그렇다 치고, 맞아 네가 본 그게. 몸의 근본이 변화해간다고 해야 하나.”
“응? 뭐?”
“인간의 몸이 근본이 변한다고 우리가 가는 곳이.”
“그게 가능해? 정말 가능하다고? 그럴 수가 없는데? 바디체인지도 그렇게는 못 하는데?”
량의 말대로라면 오히려 바디체인지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셈이었다.
왜 수 많은 이들이 마스터의 경지를 갈망할까. 단순하게 강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몸의 균형이 맞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한계를 끝까지 끌어낼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한계였다. 육체가 가진 모든 힘을 낼 수 있지만, 한계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마스터 중에서도 순순한 힘으로는 다른 익스퍼트에 비해서 약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채우는 것이 오러라고 하지만, 같은 오러라고 가정하면 힘의 한계는 유의미한 변수를 만들어낸다.
그런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다.
“안 믿기지? 솔직히 나도 안 믿었어, 보고 경험하기 전까지는, 근데 대충 어떤 원리인지는 알 것 같기는 하더라.”
“원리? 그런 거에도 원리가 있어? 그냥 신비로운 현상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는 원리가 있어. 알지 못하기에 신비라고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에 기적이라고 할 뿐이지.”
“예전에 네가 말해 준 것 같은데. 기적이라는 건 인간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맞아. 그 말이야. 다만,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은 또 있는 거지. 지금 우리가 가는 곳처럼.”
“근데 그런 곳이 있으면 너도나도 올 것 같은데?”
“그게 람포수쿠스의 사명 중 하나기도 해. 그리고 방법을 모르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엄청 많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인데?”
지난날이 기억이 나는지 얼굴이 창백해지는 량이. 자신을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가 파악한 대충의 원리는, 가지고 태어난 본연의 모든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강제로 변화시켜주는 거야.”
“응? 가지고 있는 한계라니?”
“사람에게는 성장 한계치가 있어. 그런데 자라면서 환경에 따라서 그 한계치를 한참 밑도는 성장을 하는 거지.”
“뭐 먹는 거나 이런 거?”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훈련도 그렇지. 그런데 그 지나쳐버린 한계들을 다 뽑아내는 거야. 속에서부터 바뀌어 가면서.”
“그런데?”
“너 근육이 성장하는 게 어떤 원린지는 알지?”
“찢어지고 다시 붙으면서 커진다고? 그리고 그사이에 마나가 들어가면 더욱 질겨지는 거고.”
“응. 근데 그 과정을 혈액에서부터 뼈를 지나쳐 신경을 타고 근육에 이른다고 생각해봐.”
“진짜 싫다.”
익스퍼트에 이르면 어느 정도 몸의 고착화가 진행된다. 그 상태에서 더 성장하려면 미친듯한 노력이 필요했다.
언제나 한계로 자신을 몰아붙여야 했고, 그 한계에서 느껴지는 전신의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게 근육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잖아?’
“그 통 기억나지?”
“애들이랑 나를 담가 놨던 그 통?”
“어. 난 그 통의 완성형을 눈으로 본 거지. 거의 다 왔다.”
량과 대화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듯했다. 수증기가 어마어마했다.
“와”
“신기하지? 마치 수증기가 한곳으로 모여서 기둥처럼 올라가는 게?”
“얼마나 뜨거운 거야 저기는?”
“적어도 100도는 훨씬 넘는다는 건 확실하지. 그리고 네가 들어가야 할 곳이기도 하고.”
“자! 이만. 설명은 내가 해야지. 넌 할 일이 있지 않느냐. 내가 특별히 조금 봐주었던 걸 까먹은 건 아니지?”
“아니.”
“아니고 저시고 들어가라 빨리. 그리고 잊지 말고.”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결국에는 옷을 벗는 량.
옷을 벗자 본래 본 적이 없는 량의 몸이 드러났다. 본래의 새하얗고 조밀한 몸이 아니었다.
진한 구릿빛 피부에 탄탄하면서도 조밀한 몸이 자태를 드러낸다. 마치 최대한 압축 된 근육으로 만든 조각 같은 몸이었다.
‘분명 저런 몸은 아니었는데, 그 짧은 사이에 그렇게 됐다고?’
만일 알려지기만 한다면 전 세계의 모든 무인들이 마법사들이 찾아올 곳이었다.
바지마저 벗은 채로 량은 연못처럼 물이 고여서 수증기가 하늘로 치솟는 곳 앞에 섰다.
이내 옆에 있는 진흙을 온몸에 고루 바르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뭔 놈에 진흙 바르는 게 오래 걸려! 많이 해봤으면서 빨리 안 들어가?”
하이님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연못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증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곳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키보다 살짝 높은 작은 폭포가 있었다.
“끄아아아악!”
온 비명을 지르면서도 꿋꿋하게 그 폭포의 안으로 들어가서 있는 량이었다.
“입 벌리지 말아라! 입에 물들어가면 죽는 거야!”
불길한 기분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소리를 친 하이님은 작은 가방 두 개를 가져오시더니 우리에게 내밀었다.
“자. 입고 온 옷은 벗고, 여기에 넣어놔. 우선 홀딱 벗자.”
내민 가방을 멍하니 보면서 카인과 눈을 맞추었다. 귀에는 죽어가는 량의 소리가 들린다.
“걱정하지 마. 저거 다 엄살이라니까?”
아무리 봐도 엄살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기회를 넘어갈 수도 없었다.
정말 내키지 않는 손길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카인도 포기한 듯 옷을 벗기 시작했다.
“오? 역시 바디체인지를 한 몸이라 그런지 때깔이 다른데? 카인도 생각 이상으로 몸이 좋고. 기본이 좋네.”
전혀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옷을 다 벗자 하이님께서 손수 진흙을 발라주기 시작하셨다.
“자 여기 잘 보이지. 이 연못의 진흙을 아무거나 쓴다고 되는 게 아니야. 꼭 이 자리에 있는 진흙만 가능하다.”
온몸을 진흙으로 꼼꼼히 발라주시기 시작하셨다. 한 곳 한 곳을 설명하면서.
“그리고 비어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죽는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 넌 마스터라 어느 정도 버티긴 하겠지만 카인 너는 아니야.”
진흙의 감촉이 특이했다. 서늘하면서도 끈적이지 않고 몸에 잘 흡착되는 느낌이었다.
“연못에 들어가면 량이의 옆자리에 서도록 해. 그리고 물이 닿으면 진흙은 단단하게 굳으니까 걱정 말고.”
어느 순간 진흙이 두 사람의 전신을 가득 덮었다.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 같았다.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했지?”
“하이님께서 나오라고 하시면 바로 나오라는 것이요?”
“그렇지! 지금은 처음이니까 천천히 시작하자. 특히 카인 너는 부르면 바로 나와. 그럼 출발!”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서 연못으로 향했다. 량의 비명이 점점 더 크게 들린다.
“후우 후우.”
“사내새끼들이 퍼뜩 안 들어가?”
그 말을 끝으로 발을 담갔다. 그런데 의외로 아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원했다.
“괜찮은데?”
“입 열지 말라고 했지! 아가리 닥치고 끝까지 들어가라!”
연못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무릎보다 살짝 위로 올라오는 정도였다.
조금씩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진흙이 굳어서 몸에 온전히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달라붙은 진흙들이 온몸을 조금씩 조이기 시작하면서 몸의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폭포까지 1/3이 남았을 무렵에 느낌이 왔다.
“입 벌리지 마라!”
‘씨이이이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