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133화 (133/217)

[133화]

“하아. 진짜 너희 너무 지독한 거 아니야?”

“나도 뭔지 모르겠는데 살아야 할 것 같으니까. 그리고 너도 너무 독한 거 아니야?”

“맞아! 어떻게 그렇게 죽자사자 하냐 그리고 첫날 이후에는 적응도 바로 하고!”

“너희는 오밤중에 뭘 하길래 이렇게 연계가 금방 좋아지는데? 말도 안 돼!”

자신은 저녁에도 이곳에 틀어박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만, 할머니께서 물방울을 던지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튕겨내기도 힘든 그 물방울을 자르라고 하시는데, 자신이 잘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강도였다.

더군다나 맞으면 어찌나 아픈지, 진짜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아침의 훈련은 다른 의미로 고역이었다. 처음에는 끊기는 부분도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오후와 저녁에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몰라도 연계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제일 짜증나는 것은 사일런트룸이었다. 분명 이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공격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검격과 마법들. 땅 밑에서 튀어 오르는 마법들. 갈수록 패턴이 사라질 정도로 다양하게 공격이 들어왔다.

이틀간은 한 대도 맞지 않았는데 3일째 되는 날부터 조금씩 공격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반은 맞고 반은 흘리는 그런 느낌까지 왔다. 가장 압권은 지금 날아오는 무언가였다.

“아니! 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건데! 무슨 짓을 한 거야!”

더욱이 오이겐조차 순간순간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괴물 둘을 붙여놓으면 3일 만에 이런 것이 가능한가 싶기도 했다. 자신은 상상치 못한 공격들이었다.

‘할머니가 저렇게 웃고 계신 게 엄청 불안하단 말이지.’

카운트되는 내가 자르는 것만 포함된다. 그러니 전날부터는 아예 자르지 못할 공격만 날아온다.

전격이 발밑에서 튀어나오고 오이겐은 찌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만!”

할머니의 외침에 우리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오신다.

“아쉽게도 우리 막내 손주가 진 것 같구나. 그래도 벌칙이 몸에 좋은 거니 너무 걱정 마려무나. 슬슬 가볼까?”

어디를 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제외하고는 서약서까지 작성하고 준비한 뒤 출발하는 장소였다.

“로즈 아일랜드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라는 곳이 어떤 곳이에요?”

어제저녁에 설명해 주신 곳이었지만, 자세한 설명은 절대로 해주지 않으셨다.

다만, 자연의 위대함을 알 수 있는 장소라고만 말씀해 주실 뿐이었다.

“가보면 안단다. 정말 신비로운 곳이지. 해적의 비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놀랍게도 카인조차 모르고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더해 오이겐조차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서도의 반도 안 되는 작은 섬이 로즈 아일랜드였지만, 그 비밀은 자유섬을 합쳐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는 것이 카인의 설명이었다.

해년회의가 열리는 동안 공개된다고 하지만, 오로지 마을 주변만이 공개될 뿐이라고 한다.

허술해 보이지만, 은근히 사라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허락 없이 돌아다니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도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신비에 쌓인 섬. 그곳이 바로 로즈 아일랜드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스럽고 가장 신비롭다는 것이 할머니의 설명이었다.

“사실 너희를 데려가면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단다. 하지만, 괜찮지 앞을 생각한다면 너희도 알아야 할 곳이기도 하니까.”

저렇게 할머니가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할 때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카인이랑 오이겐은 또 뭔가를 이해했나 보네. 진짜 머리가 좋은 애들은 다른가 보다.’

만에서 조금 더 들어가자 무성하게 자리를 잡고있는 맹그로브들이 눈에 들어온다.

“와. 할머니 맹그로브가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있는 곳은 처음인 것 같아요!”

“그치? 그래도 이제 조금은 바닷사람다워졌구나. 맹그로브도 척척 알고.”

일반적인 수풀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 쭉 줄기와 뿌리가 있는 수풀이 맹그로브였다.

그 숲을 조금 더 걸어가자 그 만과는 상관없이 바다와 이어지는 강이 하나 보였다.

“자 이리 오렴.”

나룻배가 그곳에 메어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노를 젓는 나룻배였다.

“이곳에서는 순수히 노로만 가야 하니 막내가 수고 좀 해주렴.”

할머니의 부탁에 얌전히 노를 잡고 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헐.”

“이게 말이 안 되는데?”

강에서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강물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점점 상류로 향하면 향할수록 더욱 강물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손을 한번 넣어보렴.”

손을 넣어보니 생각 이상으로 뜨거운 물의 온도가 느껴졌다. 마치 따스했던 국이 살짝 식은 그런 정도.

“왜 이 강은 물이 따듯한 거예요? 수증기가 막 올라오고 있어요!”

“글쎄. 아무도 모르는 신비 중의 하나란다. 그리고 여기에는 화산도 없다고 하더구나.”

‘화산이랑 무슨 상관이지?’

그 말에 경악한 것은 카인이었다. 오이겐도 옆에서 표정으로 말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요! 화산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따듯한 물이 나와요?”

“글쎄. 그러니까 가장 신비로운 장소 중 하나라고 하지 않겠니?”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닌데.”

카인과 오이겐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샅샅이 보면서 가고 있었다.

점점 올라갈수록 물의 온도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람의 체온을 훌쩍 넘는 온도.

“이제 슬슬 저곳에 배를 대렴.”

배를 대고 나서 무성하게 자란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더 걸었을 무렵이었다.

‘사람이 은근히 있는데? 아니 은근히가 아니지. 적어도 20명은 넘는 것 같은데?’

“역시 막내가 빠르기는 빠르구나. 아마 곧 나올 거란다.”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죽으로 만든 반바지를 입고 상의는 거의 탈의한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대모님을 뵙습니다. ”

처음 보는 형태의 동물 문신이 새겨져 있는 이들. 문신은 왼쪽 가슴을 시작으로 어깨까지 이어져 있었다.

“람포수쿠스란다. 인사하렴. 해적들의 시초라고 보면 되겠구나.”

“해적들에게도 시초가 있다고?”

오이겐의 새된 음성을 배경으로 카인과 함께 인사를 건넨다.

“대모님의 장녀의 막내아들 범이라고 합니다.”

“에사가의 아들 카인이라고 합니다.”

카인의 말에 가장 앞에 있는 중년의 남성이 눈을 빛내면서 카인에게 다가간다.

“하! 네가 에사가의 아들이구나. 정말 보게 될 줄은 몰랐건만, 잘 자랐구나.”

‘해적은 진짜 괴물들의 소굴이구나. 미쳤다 정말로.’

마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세를 보아하니 초인으로 보였다. 아마도 마법사일 것이다.

“어?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항상 보여주시던 사진에 있는 분인 것 같은데.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에사가가 정이 참 많은 아이지. 이상한 새끼만 아니었어도 내보내지 않는 것인데.”

“우선 그에게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

“죄송합니다. 대모님.”

“아니야. 나도 그랬는데 자네는 더 하겠지.”

그래도 대모님의 말에 곧장 우리를 앞서서 안내를 해 주는 이들이었다.

“할머니. 해적의 시초가 무슨 뜻이에요?”

“나도 젊을 적에는 몰랐던 이야기지만, 해적은 본래 중재자의 입장이었다고 하더구나.”

“중재자요?”

“대륙 간에는 중앙 신전이 있어서 그들이 감히 전쟁을 생각할 수 없었지.”

할머니의 말이 시작되자 오이겐도 카인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다는 휑하니 뚫려있지 않니. 분명 인간의 욕심은 바다를 건너 넘어왔을 것이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너무 생생해서 마치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중앙에 자유섬이 생긴 것이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곳에서 바다를 지키고 있는 이들. 그들이 바로 해적의 시초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 대모 덕에 다시 본래의 정통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작은 오두막이 하나 보이는 장소. 그 장소에 순간 할아버지가 옆에 나타났다.

람포수쿠스들이 입고 있는 반바지를 입고, 그 위에는 품이 넓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천 옷을 입고 있었다.

“샤아니! 왜 이리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지.”

“그건 대모가 너무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 아니겠소?”

두 사람은 짧게 포옹을 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가 저리도 존중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네가 카인이구나. 정말 에사가를 많이 닮았구나.”

카인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는 카인.

“할아버지 옷이. 엄청 익숙한데. 아! 엄마가 일 년에 한 번 입는 옷인데? 춤추면서!”

“허허허 에사가가 그곳에서도 여전히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가 보구나. 내가 네 할아버지란다.”

“네??”

“그리고 저기 저들을 이끌고 있는 이가 네 삼촌이지.”

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 한 일이 찾아오면 뇌가 일시 정지하는 상태가 되는, 그게 지금이었다.

그 가운데 오로지 할머니만이 자유로이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나도 에사가가 람포수쿠스 출신이라는 것은 몰랐단다. 나중에 대모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 이곳을, 그리고 에사가의 뿌리를 알게 되었지.”

“대모의 소문이 들릴 때 에사가가 얼마나 흥분했던지. 당신이야 말로 해적을 다시 해적으로 만들 것이라며 튀어나갔지.”

“람포수쿠스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일가(一家)가 있다는 것도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그나저나 정말 많이 컸구나.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아이일 때 이후로는 보지 못 했는데.”

“왜. 왜. 왜 저는 이제야 알게 된 거죠?”

카인의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 화난 듯 슬퍼 보였고 원망인 듯 안타까워 보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진짜 건강, 아니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들 같은데.’

“저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세상에 외할아버지랑 외삼촌이 있었다니요.”

점점 말을 하는 카인의 목소리가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감정이 정리되어 더욱 날이 선다.

“지금껏 없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갑자기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그 할아버지의 기색을 읽었음에도 카인은 말을 이어 한다.

“무슨 사정이 있을 수 있겠죠. 신비를 담당하고 중재를 담당하는 귀한 임무를 하시는 제약이 있겠죠,”

확실히 카인은 생각이 다르고 시야가 달랐다. 자신은 생각조차 못 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게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람포수쿠스와 그를 이끄는 일가일 뿐입니다.”

단호하고 냉정한 선 긋기였다. 그리고 그에 아무런 반문도 못 하는 두 사람이었다.

“두 분을 뵈었을 때 반가이 맞이한 것도, 그리고 얼굴을 쓰다듬게 한 것도 혹시나 하는 생각과 이해를 해 보려고 했습니다.”

확실히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카인은 조금 누그러진 그리고 자신이 아는 그런 카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해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게 가족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이모뿐입니다.”

1시간도 되지 않는 그 시간에 카인이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라면 절대 안 되겠지. 감정에 휩쓸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했을 거야.’

비록 지금 카인이 감정이 휩싸여 한 선택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바라보는 시야가 다르기는 했다.

“그 비슷한 옷을 입고 춤을 추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고 사진을 보며 씁쓸해하던 모습이 밟혀 그랬을 뿐입니다.”

카인의 눈에는 그럼에도 여러 가지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아직은 정해지지 못한 혼란이 그대로 드러났다.

“제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오빠가 있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없습니다. 람포수쿠스를 이끄시는 분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굽혀지는 허리. 정중하기 그지없는 그 인사를 받는 할아버지와 중년의 사내는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숙여지는 허리를 뒤에서 보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카인의 뒷모습에서도 슬픔이 느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