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박수를 치는 삼촌들이 조금 의아해 보였다. 조금 갑작스럽기도 했다.
“칼라의 배필로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뭐. 두고 봐야 알겠지만 싹은 좋네요.”
빈트 삼촌과 가반 삼촌이 그렇게 말을 하니,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훌트 누나마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여기에 모인 이유부터 설명해 보도록 할까?”
묘한 미소를 짓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정확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듯했지만 할머니의 말을 자를 수는 없었다.
“이번 해년회의에서 은퇴를 발표할 거란다. 그러면 아주 난리가 나겠지.”
그 말에 경악하는 린과 럼니였다. 그런데 의외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훌트의 말에 따르면 말이지 다른 생각을 하는 것들이 많다고 하더구나.”
그 말에 모두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감히’라는 표정이 얼굴에 쓰여있다.
“뭐.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둔 것도 있지만, 이제는 때가 되기도 했으니 넘어가 주기로 했단다.”
그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량이 슬며시 손을 든다.
“1대대와 9대대는 가만히 있는 건가요? 아니면 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호오? 예비 사위가 생각 이상으로 뭔가를 알고 있나 보네. 9대대를 언급하는 걸 보면. 어떻게 할 거니?”
빈트 삼촌과 가반 삼촌을 돌아보며 할머니가 질문을 던졌다.
“저희 1대대는 언제나 어머니의 뜻에 따릅니다. 무엇을 결정하셔도 그에 따를 것입니다.”
“저희 9대대는 언제나 어머니의 보이지 않은 손일 뿐입니다. 손은 주인의 의지에 따를 뿐입니다.”
“삼촌들이 1대대랑 9대대의 대장이었어요?”
“훗! 내가 1대대의 대장이지! 그런데 1대대는 대장은 나지만, 보기에만 그렇고 진짜 대장은 할머니란다.”
“평생을 9대대의 대장을 바라보고 살아서 그런지. 어느새 진짜 대장이 되어있더구나.”
량에게 하는 태도를 제외한다면 자신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게 말을 하는 삼촌들이었다.
“그렇다는구나. 아마 그러면 얌전히 방관하고 있지 않을까? 이들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마음을 얻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라는 거죠? 그럼 3대대와 10대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10대대는 정리할 거란다. 어차피 아직 송사리들이고, 훗날 올 아이는 오고 다른 길을 찾을 아이는 다른 길을 찾겠지.”
“우리 3대대는 대외적으로 중립. 아무런 의사도 표현하지 않을 거란다. 덤비면 박살 내겠지만, 그런 멍청이들이 있을까.”
‘응? 그런데 왜 아무도 2대대는 이야기하지 않는 거지? 량이도 안 물어보고.’
“할머니. 2대대는 왜 이야기가 없어요?”
그 말에 머리를 잡는 삼촌들과 어머니, 그리고 웃음을 참는 형제들이 보인다.
“하. 2대대는 좀 그래. 이상한 애들이라서. 너무 전투적인 애들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도 열심히 훈련 중일 거다. 맨날 우리 대대에 와서 설치는 것들이라 아주 머리가 아파.”
“그래도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이가 대장으로 있으니 뭐. 어머니의 의견을 따르지 싶다.”
“전투적이요?”
“응. 아마 내전이 일어나도 신경도 안 쓸걸? 그리고 통일이 지지부진하면 지들이 나서서 휩쓸고 다닐 종자들이라. 애초에 어머니 밑에 들어오게 된 조건이.”
“미친 조건이었다. 1년에 한 번 반드시 어머니가 싸워주는.”
“그리고 그 양반이 은퇴하면 끝이 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지랑 똑 닮은 놈을 어디서 찾아왔는지. 아니 더한 놈을 말이다.”
“파란의 대장 임명식이었지. 아마?”
“어머니한테 휘장을 받을 때 2대대의 전통은 계속된다고 말한 또라이.”
“그래도 귀엽지 않니. 바다에서 가장 사나운 아이가 내 앞에서는 순한 강아지인 것이.”
“그건 어머니 앞에서나 그렇죠.”
“가끔 저희 9대대에도 놀러 오는 양아치일 뿐.”
“너희 9대대는 가끔이지, 우리 3대대에는 걸핏하면 와서 진짜 내가 어머니만 아니었으면 정말.”
다들 쌓인 것이 많았는지 한바탕 이야기하는 인물. 오히려 그러니까 누군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뭔가 깨달은 게 있다고 딸한테 덤빌 거라고 벼르고 있다던데, 불쌍하게 되었네. 하필 퍼그가.”
“호호호.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데요! 진짜 그이도 아마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요.”
“하여간. 그래서 너희들이 중심을 좀 잘 잡아주었으면 좋겠구나. 괜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이번 레핀 일리야 사건은 알고 있지?”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는 이름이 나와서 반가운지, 아닌지 잘 모를 분위기.
“내가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것에도 은근히 영향을 끼친 일이니까 말이다. 다음 대는 조금 활발하게 나서거나 완벽하게 틀어막을 아이가 되었으면 하더구나.”
그러면서 어머니를 계속 바라보는 모습이 아직 포기를 못 하신 것처럼 보였다.
“엄마. 아냐, 안 돼. 안 해. 그런 거 안 어울려.”
“사실 누님만큼 어울리는, 컥.”
입을 열었다가 괜히 어머니께 얻어맞는 가반 삼촌을 보니 어떤 삼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막내!”
할머니의 말에 갑자기 정자세가 되는 막내 고모. 마치 자동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눈만 그렇게 멀뚱멀뚱 뜨지 말고, 자빠트렸으면 빨리, 빨리! 엄마도 손주 한 번 안아봐야지.”
그 말에 량과 막내 고모는 얼굴이 터질 듯 빨개졌고, 삼촌들과 형제들은 빵 터졌다.
그런데 막내 고모의 반응이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똑같았는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 혼자만 그 위화감을 느낀 것이 아닌 듯했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먼저 알아차리셨다.
“막내야아?”
“막내?”
할머니와 구문님이 동시에 말을 꺼냈다. 방의 온도가 순식간에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웃던 가반과 빈트 삼촌들은 설마 하며 죽일 듯이 량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멀스멀 다가온 린과 럼니가 자신의 어깨를 토닥거리자 고개가 돌아간다.
“동생아.”
“도망가자.”
더 웃긴 건 량이 조차 몰랐던 듯 세상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 가자.”
살며시 린과 럼니와 함께 방을 나서는 순간 고함과 살기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와. 칼라 고모.”
“역시 사고 치는 레벨이 다르구나.”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설마.”
“아닐걸, 저 반응이면.”
“99%지 아마도. 세상에나.”
“량이 아빠가 된다고?”
“그나저나 진짜 좋아하긴 한가보다.”
“맞아. 막내 고모 막 자기는 결혼할 때까지 지킬 거라고 했는데.”
순식간에 대가족이 생기는 량이었다. 그것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럼 량이 아이는 진짜 말도 안 되는 배경을 갖고 태어나는 거네.’
할머니는 바다의 황제요 할아버지는 그 파울로님이다. 아버지는 괴물 같은 천재고 엄마도 뒤지지 않는다.
거기에 삼촌과 고모들은 바다를 틀어쥐고 있는 이들.
“도망 나온 김에 구경시켜줄게!”
“맞아! 너 마나 엔진 한 번도 못 봤지? 여기선 볼 수 있어!”
대부분의 소형선에 있는 마나 엔진은 그 엔진이 드러나 있지 않다. 열리면 폭발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래서 전투가 심해지면 마나 엔진을 아예 바다 밑에 넣었다가 뺀다고 했던가?’
그런데 [Melvillei] 정도 되는 대형 함선은 아마도 다른가 싶었다. 린과 럼니를 따라나섰다.
할머니의 방을 갈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복잡한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복잡한 길을 꽤 길게 지나가자 철문이 나타났다. 각종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철문.
“여기는 원래 우리도 못 열어.”
“할머니랑 1대대 대장만 열 수 있지.”
“그럼 여기에는 왜 데리고 온 거야? 철문 구경?”
“에이. 설마 우리가”
“그 정도로 생각이 없어 보여?”
린이 품속에서 패를 하나 꺼내 들었다. 처음 보는 장미가 그려진 패.
“엄마 패를 슬쩍한 건 아니구.”
“정당하게 빌려왔지!”
패를 철문 가운데 있는 홈에 넣자 빛이 나며 문이 양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문이 열리기 시작하며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 그 어떤 때보다도 강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진다.
울퉁한 원형으로 생긴 마나 엔진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마치 심장처럼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스터가 10명이 있어도 이런 느낌이 느껴질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진짜 여기는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압도적이지. 우리 배도 이런 느낌은 아닌데 말이야.”
마나가 너무 진하게 풍겨서 마치 마나의 향이 나는 듯했다. 혼을 빼는 광경이었다.
“특히나 [Melvillei]의 마나엔진은 다르지.”
“어머니를 위해 파울로님께서 특별히 만들어주신 거니까.”
그 이야기를 듣던 도중에 도(刀)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마나의 밀도에 살짝 느껴지는 진동이 아니었다.
허리에 매고 있던 도를 꺼내자 진동이 조금 더 심해진다.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로 자신의 마나와 재능을 자연스럽게 주입했다.
“어? 더 떨리는데?”
“야! 조심해. 우리 다 죽는다?”
어느 순간 떨리던 도의 진동이 멈추고 다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도가 약간 변해 있었다.
순철과 무궁이 나누어진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면, 지금은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더불어 바오우가 조금 더 길게 뻗으며 자라있었고, 도환(刀環 : 칼코등이, 검이나 칼의 가드)이 생겨났다.
“막내? 도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나도, 나도 모르겠는데?”
“량이가 줬다고 했나?”
“그럼 량이한데 가야 하는데.”
“량이가 살아 있을까?”
린과 럼니가 말하는 것이 들렸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거지?’
느낌도 달랐다. 길이 만들어지던 느낌이라면 이제는 이미 난 길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재능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나도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신체의 한 부분처럼.
차마 마나 엔진이 눈앞에 있어서 휘둘러보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달라졌다는 것을
“빨리 나가서 휘둘러봐!”
“나도 한 번 휘둘러볼래!”
남자라는 생물은 좋은 무기 앞에서는 더욱 어려지는 것이 진리일까.
린과 럼니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맞는 것 같았다. 자신도 한시 빨리 휘둘러보고 싶었다.
“빨리 나가자.”
문을 닫고 정말 순식간에 갑판으로 나왔다. 거의 달리듯이 나온 것 같았다.
[Melvillei]가 말도 안 되는 크기를 자랑하니 갑판도 마찬가지였다. 린과 럼니에게서 조금 떨어져 도를 쥐었다.
‘다르구나. 진짜 달라.’
도를 쥐는 것에 의지가 서리자 손에 잡히는 느낌이 달라진다. 손과 붙어서 일체가 된 느낌.
안드로니쿠스님께서 만든 던전에서 본 그 검무(劍舞)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어쩌면 지금이라면.’
여러 가지 작은 이유들이 합쳐져서 그 군무를 정확하게 따라 하지 못하고 제 뜻대로 바꾸어서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느낌이라면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를 앞에 세우고 한 발을 내디딘다. 오러와 재능이 너무 자연스럽게 도에 깃든다.
일보에 바람을 따르며, 이보에 바람을 도에 감싸 안는다. 삼보에 산들바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움. 어느 순간 생각이 사라졌다.
*
“쟤는 미친놈인가?”
“그치? 좀 그렇다.”
도를 쥔 순간 분위기가 바뀌더니 어느새 도를 들고 한 발을 내디딜 때는 완전히 달라진 기세가 느껴졌다.
“저건 사람이 아닌데.”
“완전 바람이잖아. 저걸 어떻게 하냐.”
두 번째 걸음에서 바람과 비슷해지더니 세 번째 걸음부터는 바람이 되어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불가해하다고 해야겠구나.”
“엄마?”
“고모랑 량이 족치는 거 아니었어?”
“저런 걸 못 보면 그 날로 무인이라는 이름을 반납해야지.”
“어디서 저런 손주를 주워왔는지, 너도 내 딸이지만 정말 대단하구나.”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모든 이들이 나와서 범이 만드는 바람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위험하구나. 다들 주변으로 오거라.”
로즈의 말로 모두가 로즈를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다가 고요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