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저게 가능한 일인가? 왜 소리가 하나도 안 나는 거지?”
“아무래도 괴물이 또 바뀐 것 같은데? 저건 [풍아]의 힘이 아닌 것 같아.”
조약돌이 날아다니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 광경에 카인과 량은 넋을 놓고 대화를 이어간다.
“재능이 발전한다고 저게 되는 걸까?”
“글쎄. 나도 그쪽에 대해서는 오히려 배우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아직 잘 모르겠네.”
그런 둘의 대화도 오이겐이 연검을 들고, 그 연검을 베어가는 범의 모습에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감탄과 함께 다시 말을 하는 두 사람이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의 반응이었다.
“와. 미쳤다.”
“지금 바닥에 떨어진 검들이. 저게 가능한 거라고? 아니 듣기는 했다만.”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 조각들. 마지막 검 조각이 떨어질 때까지도 오러가 서려 있었다.
“아니. 쟤는 무슨 두 달 만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마나를. 아니지 마나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를 가공한 걸 끊어놓는다고? 저렇게 오랜 기간동안?”
고작해야 수십 초였지만, 그 수십 초 동안 오러가 남아있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사실이었다.
“저렇게 생각 없이 신나 하는 범이 부럽다.”
“그치? 가끔은 나도 그게 제일 부럽다. 쟤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는 알까?”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전부였다. 마니에르와 칼라는 아직도 넋이 나가 있었다.
*
눈을 뜨자 바닥에 떨어진 검 조각이 보인다. 무려 7조각이나 떨어져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마지막 조각이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오러를 빛내는 검 조각들이었다.
“오이겐! 성공했어!! 드디어! 이번에는 7조각이나 그리고 이렇게 길게!”
미친 듯이 기분이 좋았다. 겨우 두세 조각을 내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 거기에 이렇게 오래 오러가 유지되는 것도 처음이었다.
“오이겐?”
그런데 오이겐의 반응이 이상했다. 멍하니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이겐?”
다시 불러도 대답이 없는 오이겐이었다. 오히려 먼저 다가온 것은 카인과 량이었다.
“넌 나한테 괴물이라고 할 자격을 잃었다. 진짜 괴물은 너구만.”
“범아!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둘이 호들갑을 떨면서 다가오는 것이 의아했다.
“무슨 소리야. 너희가 하는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닌데.”
그 말에 량과 카인이 한소리 하기도 전에 오이겐이 검 조각들을 모아들고 다가와서 소리쳤다.
“미친놈아! 이게 별거 아니라고? 도대체 뭐가 별거인 건데? 뭐 바오우를 막 찍어내고 그래야 별거냐?”
흥분했는지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치는 오이겐은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너 내가 준 책은 그새 까먹었냐? 밥 말아 먹었냐고! 오러를 자르는 게 무슨 의민지도 까먹었어?”
한참을 소리지르던 오이겐은 이내 괴물을 보듯이 자신을 바라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무기 하나 바뀐 거로 이렇게 사람이 바뀌나. 진짜 어이가 없네. 헛살았네.”
다시 넋이 나가며 손의 검 조각들을 바라보는 오이겐.
“범아. 오러를 자른다는 건 정말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거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거지?”
“뭐. 그래 봐야 티거한테 질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
“본래 우리 막내 손자가 조금 자기를 너무 낮게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한데, 이 정도라고는 생각 못 했네?”
어느새 할머니가 오셔서 우리 옆에 서 계셨다. 할머니조차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근데 할머니 무슨 일 있으셔서 간 거 아니었어요? 칼라 형수님은요?”
딱! 소리가 날 정도로 이마에 딱밤을 맞았다.
“막내 고모라고 부르렴. 너랑 량이라는 꼬맹이를 데리러 왔단다. 너희도 참여해야 할 자리니까 말이다.”
“네?”
“빨리 따라오거라. 나머지 친구들은 조금 기다리고 있으렴.”
그 말에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우선은 량이와 함께 할머니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따라가는 내내 량이 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을 한 것인지 설명을 해 주었지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른 초인들의 괴물 같은 능력이랑은 좀 다르지 싶은데. 아직 나도 갈 길이 멀었는데 왜 이러지?’
괜히 과하게 칭찬을 받는 느낌이라 조금 이상했다. 할머니처럼 바다를 다루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할머니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Melvillei]였다. 함선에 오르자 처음으로 선장실이 아닌 다른 곳을 들어가 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다른 곳은 구경해 본 적이 없네?’
워낙 커서 그런 것도 있었고, 아직은 어색할 때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선장실이 아닌 데크에서 아래로 내려가 함미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네. 처음 와서는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겠는데?’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직선이 아니라 꽤 복잡하게 설계가 된 내부였다.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데?”
“그치? 아마 블랙 펄에서 만들어서 그럴걸? 대모님께서 설계를 한 대로 만들었을 거야. 대부분의 해적선들이 내부를 복잡하게 만드니까.”
“왜 그렇게 만드는지 우리 예비 사위님은 알고 있을까?”
“본래의 시작은 해적들이 보물을 숨겨놓기 위함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마나엔진을 숨기기 위함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흠. 확실히 나쁘지 않아. 해적에 대해서 꽤 공부를 많이 한 게 티가 난단 말이지.”
“칼라가 해적이니까요.”
분명 저 한 마디로 꽤 많은 점수를 땄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할머니를 보니 분명했다.
“할머니. 근데 우리는 여기에 왜 데리고 온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보렴. 이제 곧 도착할 거니까.”
두어번을 오르락내리락하자 쭉 뻗은 복도와 문이 눈에 들어온다. 문에는 할머니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1년 중에서 내가 가장 오래 지내는 곳이란다. 들어가자꾸나.”
꽤 많은 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느껴지지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게 마나 엔진 때문이라 이거지?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것 같은데?’
문이 열리자 8명의 인원이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 많았다.
“어머니!”
어머니의 옆으로 훌트누나와 스필 형 그리고 린과 럼니가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처음 보는 남자 둘과 칼라님이 앉아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려는 찰나 강한 기세가 적의와 함께 풍기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이 아닌 량에게 가는 기세였다. 자연스럽게 그 기세를 손으로 끊어내었다.
“호오?”
“누님은 도대체 어떤 괴물을 막내로 들인 겁니까?”
적의가 풀풀 풍기던 두 사람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본다.
“하핫! 내가 엄마한테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잘 배웠지. 아마 너희보다 윗줄일걸?”
“하아. 진짜 적당히 해야지. 저건 무슨 숫제 괴물이구만.”
“화도 못 내게 막는 게 서러워서 살겠어?”
“이놈들아! 지들이 부족한 것을 탓해야지 왜 막내 손주를 탓하고 있어!”
“아니. 엄마 생각을 해봐. 자기보다 반도 못 산 아이에게 추월당하는 슬픔을!”
“죄송합니다. 어머님.”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어딘가 약간 양아치스러운 모습의 중년과, 짧게 자른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중년 남성.
“막둥이!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그새 또 괴물이 되었어.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야?”
언제나 쾌활하기 그지없는 린과 럼니. 자신이 아닌 량을 보는 훌트 누나와 자신에게 열기가 서린 눈빛은 보내는 스필형.
“자! 그만하고 우선 앉자. 둘째랑 셋째는 언제나처럼 안 온 거 같고, 셋째 손녀도 빼먹었구나.”
“다들 이제 가정이 있으니까요. 잘살고 있잖아요. 한 달 후에는 다 같이 볼 텐데요.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우리 오랜만에 자기소개나 해 볼까?”
소리 없는 아우성이 순식간에 방을 가득 채우지만, 결국에는 모두 포기한 채로 고개를 떨군다.
“자기소개가 뭐예요 할머니?”
“네 엄마가 보여줄 거란다. 언제나 새로운 가족이 들어오면 하는 전통이지.”
홀로 뿌듯해하는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축 처진 시금치같이 시들어 보인다.
“따알?”
무언가 말을 하려던 어머니는 할머니의 지긋한 눈빛에 결국에는 고개를 숙이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니의 첫째 딸 구문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물방울이 하나 날아와서 어머니의 콧잔등을 살짝 때린다.
“어…엄마.”
애처로운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는 어머니지만, 단호하기 그지없는 표정에 눈을 질끈 감으시고 다시 입을 여셨다.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어머니의 첫째! 구문입니다! 앞으로 첫째로 동생들을 잘 품어주는 누나이자 언니가 되겠습니다!”
순간 정신공격을 받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도 웃고 있지 않았다. 모두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수치와 환란의 인사가 지나고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다.
이리저리 눈을 굴려보아도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머니의 막내아들 범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냥 어머니께서 처음 하신 대로 따라해 보았다. 다행히 물방울은 날아오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괜히 처음에 우리가 같이 해서.”
다행히 처음 인사를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거나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룰은 없는 듯했다.
‘진짜. 가관이었어.’
그리고 이내 모든 이들의 시선이 량이에게 모였다.
“안녕하세요. 곧 칼라의 남편이 될 량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자유섬에서 살아갈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담담하기 그지없는 인사. 하지만 그 말에 칼라님의 얼굴을 새빨갛게 변했고 빈트와 가반이라고 소개한 이들의 기세는 흉흉해졌다.
‘저건. 내가 막고 할 성질이 아닌 것 같은데.’
처음이야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지만, 그 적의와 기세가 왜 오르는지 알게 되니 차마 막을 수가 없었다.
‘량이 알아서 하겠지?’
생각해보면 자신과 칼라님은 5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그만큼 막내 동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눈에 선했다.
그리고 그 귀여운 막내 동생을 빼앗아가려는 놈팽이가 등장한 것이니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할머니도 막지 않으셨다. 오히려 어머니 옆으로 슬쩍 이동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은근슬쩍 그 자리로 피신했다. 가운데 량이 홀로 있고 가반 삼촌이랑 빈트 삼촌이 흉흉한 기세를 드러낸다.
잠자코 량을 해부하는 눈동자로 보는 빈트삼촌과는 다르게 가반삼촌은 입을 열었다.
“흠. 그래서 나이가 어떻게 되나?”
“21살이 되었습니다.”
“그래. 연금술사라고 했지. 돈은 좀 있나?”
“네. 세계에서 아마 가장 부자일 것 같습니다. 결코 칼라가 굶주리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세계 제일의 부자라고 말하는 순간 무너질 뻔한 가반 삼촌이었다.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삼촌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질문이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하는 량. 그 와중에 가만히 있던 빈트 삼촌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해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본래는 강성하고 하나 되었지만, 지금은 순식간에 부서질 것 같은 모래성. 그렇게 보입니다.”
그 말에 린과 럼니마저 언짢은 기색을 풍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외로 어머니와 훌트누나 그리고 할머니는 가만히 계셨다.
“어째서지?”
“대모님께서 눈에 보이는 활동을 하지 않으신 이후로 자신들의 힘을 쓰고 싶어 하는 해적들이 늘어났습니다. 소소한 일탈에도 제지가 없다 보니 점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대책은?”
“솔직히 대모님의 기침 한 번이면 될 것 같은데, 그러실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를 바라보던 량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적법한 후계를, 그것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후계를 세우면 되는데 그 후계들이 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훌트 누님을 살짝 바라보는 량. 미소를 확인하고 다시 말을 한다.
“그럼. 본래 해적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깔끔할 것 같습니다.”
“본래 해적의 방식이 무엇인 줄 알고 있는 건가?”
“대모님이 하신 것처럼. 바다에서 그 누구도 덤비지 못하는 카리스마.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 말은 결국 해적 내에서 내전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임을 알고도 그 소리를 하는 것인가?”
“혼란 없이 만들어진 평화는 결국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그 혼란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적은 피해를 일으킬 것입니다. 겸사겸사 가지치기도 하면 완벽할 것입니다.”
마치 발표를 하는 것처럼 말하는 량. 그리고 량의 말이 끝나자 삼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