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거대하기 그지없는 도끼. 그에 반해 약간 호리호리한 몸. 럼니가 말한 것과 똑같은 사람이 서 있었다.
‘해적으로는 젬병이지만, 전투로만 놓고 보면 어머니의 자식 중 가장 뛰어나다. 거기에 순애(殉愛 :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침)하다고. 그것도 누나에게.’
비록 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지만, 어머니의 자식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누나는 영 그게 꺼림칙 했다고 했지, 그래도 요즘에는 나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스필 형님을 뵙습니다. 막내가 된 범이라고 합니다.”
“알아, 들었어. 훌트가 엄청 자랑하더라. 괴물 같은 동생이 들어왔다고. 뭘 그렇게 딱딱하게 하고 그래. 우리 그런 거 진짜 싫어해. 편하게 해 편하게.”
처음부터 편하게 하는 것은 카인같이 얼굴이 두껍거나, 훌트누나나 린과 럼니처럼 특이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오이겐 님께 가는 길인가 보네. 나중에 시간 되면 한 번 대련해 줄 수 있을까?”
정작 편하게 하라면서 정중하기 그지없는 형님이었다. 이래서 린과 럼니가 형이 더 어렵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저야 언제든 환영이죠! 도끼에 있어서 천부적이라는 형님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그래. 다음에 볼 때는 말을 편히 했으면 좋겠구나. 그럼 조금 이따가 보자.”
이제 셋째 형님을 제외하면 모든 형, 누나들을 만난 것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특징이 뚜렷한 형, 누나들이었다.
‘도끼만 내려놓으면 인자한 선생님 같다는 게 뭔지 알겠네. 진짜 궁금하다.’
린과 럼니에게 형제들에 대해 워낙 많이 듣다 보니 그렇게까지 어색하지 않았다.
‘형제가 있다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구나.’
아직은 어색하지만, 그저 동생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다가와 주는 형제들이 고마웠다.
그런 생각을 품으며 걷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별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왔어? 생각보다 오래 있었네? 얼마나 기다렸는데! 빨리 나가자!”
별관에 도착해서 문을 여니 보이는 것은 이미 외출 준비가 끝난 오이겐이었다.
“아니 오자마자 뭔 소리야.”
“어차피 널 여기로 보낸 건 저녁까지는 네가 할 일이 없다는 거고, 너랑 다니면 마음껏 편하게 다닐 수 있다고!”
자신을 수호 기사 삼아 돌아다니겠다는 당당한 선언이었다.
“대신에 내가 설명도 다 해줄게. 어때? 너도나도 이기는 거래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정말 나가고 싶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오이겐을 보니 차마 거절할 수도 없었다.
‘하긴, 좀 진득하게 구경할 수 있을 때 해야지.’
거기에 더해서 로즈 아일랜드에 궁금하기도 했다.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해년회의를 구경하기 위해서 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만큼 좌판이 엄청 활성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대신, 진짜 잘 설명해 줘. 기대하고 있을게.”
“내가 또 여기는 빠삭하게 알고 있지. 나만 믿으라고!”
오랜만에 바깥에 나온 것이 신이 난듯한 오이겐과 함께 저택을 나나와서 로즈 아일랜드의 중심으로 향했다.
“근데 왜 할머니는 중심에 있지 않고 항구 쪽에 계시는 거야?”
항구가 거대한 만큼 항구의 끝에서 중앙으로만 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릴 만큼의 거리였다.
“그건 할망구가 귀찮은 걸 싫어하는 것도 있는데, 이렇게 발전하게 될 걸 생각 못 한 것도 있지.”
확실히 오이겐은 모르는 게 없었다. 마치 카인이 생각 날 정도로.
오이겐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할머니의 집과 항구가 있던 것으로 시작해 점점 항구가 길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항구의 중심에 건물이 하나둘 세워지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황제에 대한 예우라나? 그 주변에는 어떤 건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로즈 아일랜드 전체를 놓고 보아도 할머니의 집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다.
“자연스러운 거지. 그래서 할망구가 진짜 대단한 거기도 하고. 아무런 압제도 폭력도 없이 황제가 된 것이니까.”
할머니를 설명하는 오이겐의 말에는 할망구라고 표현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존경심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황제가 될 생각도 없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가 그렇게 부르고 자유섬의 모든 이들이 원해서 자연스럽게 황제가 되었다고 한다.
오이겐은 그것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그렇게 황제가 된 할머니가 유일하게 진정한 황제라고 말을 했다.
로즈 아일랜드와 할머니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항구의 가운데에 도착하게 되었다.
“진짜 배 많다. 이렇게 큰 항구가 배로 가득 찰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거의 자리가 없네.”
“여기에 정박 할 수 있는 이들은 해적이거나 권력가 아니면 거대한 상회뿐이야.”
“그럼? 이것보다 더 많아진다고?”
“저기 보여?”
오이겐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배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들어오려고 하는 배들을 말하는 거야?”
“맞는데 아니야. 이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저기에 정박을 한 거야. 그리고 소형선을 타고 섬에 들어오는 거지.”
“그렇게 많다고? 아직 항구가 가득 찬 건 아닌 거 같은데?”
“다 자리가 있는 거지. 암묵적인 배려랄까나. 그리고 자유섬에서 운행하는 배도 있으니까. 다만 저런 배들은 대부분 대박을 바라는 상인들이 많지. 조금 더 지나면 한가득일걸?”
상상도 되지 않는 장면이다. 꼭 보고 싶은 장면이기도 했다. 항구를 뒤로하고 광장으로 향하니 상상 이상의 크기였다.
“진짜 큰데? 거의 마을보다 큰 것 같은데?”
신기한 건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몇몇 건물들이 특이하게 지어졌다는 점이다.
“이 시기가 아니면 거의 비어. 그러니까 건물을 대여하는 개념이라고나 할까?”
“응? 그럼 비어있을 때 관리는 누가 하고?”
“장기적으로 빌리는 곳들은 자기들이 하는데, 나머지는 [바람이 머물다 간]의 여관에서 관리하는 거로 알고 있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여긴 이름도 달라.”
“응? 이름이 다르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바람이 머물다 간]은 어딜가나 이름이 똑같았다.
“자! 봐!”
항구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가장 앞에 위치한 건물. 그곳이 바로 [바람이 머물다 간]이었다. 아니, 다른 이름이었다.
“[바람이 빼앗아 간]? 뭐야? 왜 이런데?”
“아직도 아무도 모르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지. 할망구한테 물어봤는데도 끝끝내 안 알려주더라 치사하게.”
‘나중에 카인한테 물어보면 알려나?’
반드시 물어볼 것이라 다짐하면서 좌판이 길게 늘어선 거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저 건물 3개는 뭐야? 엄청 특이한데?”
모든 건물이 같은 모양으로 일관적으로 지어진 것에 비해 몇몇 건물은 특이하게 지어져 있었다.
다른 건물은 대충 어떤 건물인지 알 것 같았지만, 눈에 띄는 저 세 건물은 달랐다.
“아! 저거? 상주하는 인원이 있는 몇 안 되는 건물이지. 대놓고 감시하는 이상한 놈들이랄까?”
“감시한다고? 할머니를? 누가?”
“사실 감시라기도 민망하고, 그냥 각 왕국과 제국에서 지은 건물이야. 자기네 전용 숙소라고나 할까.”
어쩐지 눈에 너무 띄게 지었다고 생각될 정도의 건물이었다. 웃긴 것은 그 위치였다.
“할망구가 설계도를 보고 그냥 구석에 처박으라고 해서 저기에 구석에 모여있는 거야. 쯧. 멍청하다니까.”
‘내가 여기 있다’ 라고 외치는 건물. 그 건물들이 구석에 모여있으니 멋있는 것이 아니라 처량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자! 먹어.”
걸어가다가 좌판에서 대뜸 꼬치를 들더니 자신에게 건네주는 오이겐.
“계산 안 해요?”
“여기서 이런 자잘한 음식들은 해적들에게는 다 공짜야. 마음껏 먹어도 돼.”
오이겐은 확실히 이곳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상점과 음식점, 그리고 소식지 판매점이 있었다.
“신기하지? 의외로 이런 소식지가 많이 팔리더라 요즘은. 서대륙에서 시작한 거라는데 누가 생각했는지 몰라도 진짜 기발하지. 아마 떼돈 벌었을걸?”
‘카인. 너 떼돈 벌었구나.’
엄청 신기한 광경이었다. 카인이 시작한 그 소식지는 어느새 자유섬에서도 활발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렇게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니기를 반복하자 배가 빨리 고파졌다.
“간단하게 뭐라도 먹고 가자. 어차피 저녁을 배터지게 먹을 거니까. 보자. 너 동대륙 음식은 한 번도 안 먹어 봤지? 내가 제대로 하는 곳을 데려가 줄게!”
에펫님에게서 그리고 [맛집]에서 신나게 먹었지만, 자신만만하며 데려가는 오이겐이었기에 잠자코 따라갔다.
“자! 여기야 빨리 와.”
한 건물의 1층만을 사용하는 음식점으로 보였다.
“여기 국수가 기가 막히지. 특히 국물이 얼마나 시원한데! 기본에 충실한 곳이지.”
안 그래도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원한 냄새가 풍겨왔다. 익숙한 듯 자리를 찾아간 오이겐.
“여기 국수 둘이요!”
메뉴가 하나뿐인 듯했다. 퍼져오는 향기가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순식간에 나오는 국수. 면을 먹자마자 탱글탱글한 식감이 느껴졌다. 입안에서 국수가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 입 국물을 먹자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몸을 상쾌하게 해 주는 기분.
“와. 진짜 맛있네요.”
“여기만한 곳은 한 제국에서도 찾기 힘들지. 주인장이 하나하나 모두 손수 만드니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 순간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오이겐을 밀쳤다.
“반역자 주제에 입맛은 변하지 않나 봐? 더럽기 그지없군. 자신이 끼친 민폐는 생각하지도 않나 보지?”
세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서는 한 제국에서 꽤 지위가 높은 이로 보였다.
‘오이겐보다 한참 약한 거 같은데?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거지? 오이겐은 또 왜 가만히 있고.’
혹시나 해서 천천히 손을 들려고 하자 그를 막는 오이겐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냥 가자. 미안해.”
자신에게 조용히 말하는 오이겐의 표정은 참 복잡했다. 씁쓸하고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드러났다.
그런 오이겐의 표정을 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냥 나가려는 찰나 다시 말이 들렸다.
“해적의 비호를 받으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가 본데. 그게 얼마나 갈지 모르겠군. 해적들이 보호자도 붙여주나 보지?”
순간 의아함에 다시 그들을 자세히 느껴보았다. 그럼에도 의아함은 가시지 않았다.
‘오이겐이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 할 수 있을 정돈데? 유저 둘에 갓 익스퍼트에 오른 이가 하나뿐인데?’
오이겐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가 무인, 그것도 검객이라는 점. 게다가 경계에 이른 검객이라는 점이었다.
특이한 오러 서킷을 배우고 있기에 처음에는 오이겐이 무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오러 서킷과는 조금 다른 오러 서킷을 운용하고 있는 오이겐이었다.
‘뭔가 무인이라기보다 암살자에 가까운 고요한 서킷인데. 마법사랑 오히려 비슷하단 말이지.’
대부분, 절대다수의 오러 서킷은 오러를 배꼽 밑에 있는 오러 홀에 저장한다.
그리고 오러 홀에 저장되지 못한 오러는 전신에 고루 퍼져있다. 그럼에도 중심이 오러 홀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오이겐은 오러가 전신에 퍼져있다. 마치 마법사의 마나가 전시에 퍼져있듯이.
‘그러니까 마법사인 줄 알았지. 전신에 은은하게 퍼진 게 마나랑 오히려 비슷하단 말이지.’
마법사의 서클은 감각을 집중하지 않는 이상에야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마법사끼리는 바로 아는 것 같기는 하지만. 또 같은 서클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근데 약간 뉘앙스가 이상한데?’
마치 해적의 비호가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 채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할머니의 권위를 부정하는 말로도 해석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단 마음에 안 들었다.
“자유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하! 이래서 섬 사람들이란. 해적이 최고인 줄 알지.”
생긴 건 꼭 못생긴 아기 돼지처럼 생겨서 하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선을 넘는 발언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약간은 손을 봐줘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좋아하실지도.
조금 손을 보려는데 만류하는 손길이 느껴졌다.
“네 입장에서는 더러운 배신자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적을 비하하는 말은 위험하다는 걸 가문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나 보지? 발언에 주의할 필요가 있네. 그럼.”
그리고서는 자신을 잡아끌고 나가는 오이겐. 분명 뒤에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 귀에 똑똑히 들렸다.
“왜?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그냥 나가는 건데?”
“괜히 미안해. 나 때문에 곤욕을 치렀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나저나 왜 그냥 두는 건데?”
“저 말 막 하는 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