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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125화 (125/217)

[125화]

속도가 대형 함선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아니, 어느 배보다 빠르다고 확신 할 수 있었다.

정말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눈앞에 섬이 보인다. 항구가 얼마나 큰지 가늠이 안 되는 그런 섬.

섬의 크기에 비해서 항구가 압도적이라고 할 만큼 큰 섬이 보인다.

더 놀라운 것은, [Melvillei]가 지나갈 때마다 멈추어 서는 배들, 자리를 비키는 배들이 보인다는 점.

한두 척의 배가 아닌 모든 배가 그랬다. 특히나 해적기가 있는 배는 모두 선상에 나와 존경을 표하고 있다.

“와. 할머니 진짜 멋있는 거 같아.”

“할망구가 괜히 황제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자유섬에서는 절대 권력자라고. 내부 불만? 그것도 솔직히 오냐오냐하니까 그런 거지, 헛기침 한 방에 들어갈걸?”

“그런데 왜 가만히 계시는 걸까?”

그 말에 피식 웃는 오이겐이었다.

“당연히 다음 세대로 위양 때문이지. 구문님 때문에 일이 복잡해졌다 뿐이지, 본래도 생각하고 계셨을걸?”

“어머니가 후계자셨어?”

“그럼. 그 누구도 구문님 앞에서는 함부로 못 했지. 그리고 지금 왈왈거리는 것들은 할망구를 못 겪어봐서 그런 거지. 하룻강아지가 진짜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거지.”

“해적의 황제는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걸까?”

“왜 관심 있냐?”

“퍽이나. 제가 누구 위에 서는 게 그렇게 어울리면 모를까. 전혀 아니잖아.”

“하긴. 그도 그렇네. 해적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력도 뭣도 아니야. 대충 쳐지지 않는다 싶으면 될 뿐이지. 중요한 건 딱 하나야.”

“하나? 그것밖에 없어?”

“그럼. 바다에서 얼마나 카리스마 있는가. 그거 하나지. 자신을 나타내는 기를 걸고 항해를 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가. 지금 봐. 그것도 자세히.”

오이겐의 말에 조금 집중해서 주변을 보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선장들은 다 나와 있고, 심지어 무릎 꿇는 사람도 있네?’

극한의 공경(恭敬)이 보인다. 그것도 모든 배에게서. 이것이 황제의 카리스마인가 싶었다.

“과거에는 저것보다 더 심했지. 할망구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알아서 와서 가장 귀중한 걸 바치고 떠났어.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라고.”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이었다. 할머니가 새삼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다시 알 수 있게 되었다.

“저게 바다의 황제의 진면목이구나.”

할머니께서 선수에서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있는 모습이 새삼 거대해 보였다.

“그리고 멍청이들이 생각하는 거지. 너무 오래된 사실이라 부풀려진 거다. 사람이 그럴 수 없다. 내가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감탄을 하는데 옆에서 오이겐이 계속 설명을 해 준다.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거지. 할망구의 가장 유명한 전쟁이 언제였는지 알아?”

단장님이 주신 책에 얼핏 보았던 것 같았다.

“한 제국과의 해전인가?”

“맞아. 이제는 진짜 전설로만 취급되지. 아마 한제국이 그렇게 하려고 돈 꽤나 썼을 거다.”

“근데 그게 왜? 얼마나 큰 전쟁이었길래 그래?”

책에는 간단하게만 적혀있었다. 해적에게서 자유섬을 빼앗으려 하기에 조금 혼내주었다는 식이었다.

“하긴. 자세한 사항을 알기는 어렵겠지. 그때 할망구가 단 세척으로 이겼거든.”

“세 척으로? 그냥 정찰선들을 이긴 건가?”

“아니. 한 제국의 함대를. 그것도 가장 위상이 높은 제 1함대를 박살냈지. 게다가 죽이지도 않았어. 미친 거지. 사실상 불가능한 거였는데 이루어냈거든. 그래서 황제도 인정하잖아. 바다의 황제라고.”

오이겐의 설명에 정말 대단한 사람을 할머니로 두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진짜로. 바다에서는 할망구는 절대자야. 그러니까 내가 살아있을 수 있는 거기도 하지만.”

“근데 오이겐은 무슨 짓을 했길래 그래요?”

“별거 아니야! 진짜 쪼잔하게는. 그냥 새로운 시스템의 이론을 제시했을 뿐이라고!”

도대체 그 이론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지만, 도저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항구에 도착했다. 오로지 할머니를 위한 항구가 따로 있었다.

항구에 정박하니 그 앞에 할머니를 마중 나온 이가 있었다.

“선장을 뵙습니다!”

선창 후에 모두가 후창을 하는 것이 장관이었다.

“참. 격식도 좋아한다니까. 그리고!”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할머니의 손은 차지기 그지없었다.

“내가 공식적인 일이 아니면 할머니라고 하라고 했어, 안 했어.”

뒤통수를 맞았음에도 아무런 변화 없이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지금은 황제를 모시러 나오는 공식적인 자리입니다. 선. 장. 님.”

“진짜. 아주 안 좋은 거만 빼다 박아가지고. 가서 동생한테 인사나 해 이것아.”

“누나! 오랜만이에요!”

“그래. 반갑구나. 조금만 이따가 이야기할까? 선장님. 선장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 진짜 똥고집. 그래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리고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항구의 가장 왼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항구의 끝이자 섬 중에서 약간은 돌출되어있는 곳에 할머니의 별장과 생긴 것은 거의 비슷한, 다만 2배 정도 크기의 저택이 있었다.

그리고 저택 안으로 들어간 순간, 정중하던 훌트누나는 사라졌다.

“할머니! 제가 이런 거 좀 신경 쓰라고 했죠! 할머니는 너무 자기 위치를 자각하지 못 하는 거 같다니까요!”

“에효. 딸내미가 도망가고 어디서 이렇게 똑 닮은 손녀를 놓고 간 건지. 편할 날이 없어.”

“그러니까 후계를 빨리 세우든 하라니까요. 저도 할머니랑 놀러 좀 다니게! 할머니가 너무 편하게 해 주니까 별것도 아닌 것들이 까불잖아요!”

“얼씨구? 니 연애나 잘해 이것아. 그러다 노쳐녀로 늙어 죽지 말고!”

“아! 진짜! 내가 그 말 싫어하는 거 알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 분명 격식이란 이런 것이다 를 보여주는 누나였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돌변했다.

손녀와 할머니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밖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각이 서 있었다.

‘해적이 아니라 진짜 해군이라고 해도 믿겠어.’

퍼그님과의 훈련 때도 느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3대대는 훈련 때만 각이 잡혀있다면, 훌트누나의 수하들은 경계를 서는 것도 각이 잡힌 채로 있었다.

“유난이지? 너희 누나가 좀 심한 편이라 저런 거란다. 쯧 쟤네도 하필이면 훌트 밑으로 들어가서 고생이지.”

“아! 진짜! 나라고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요? 진짜 다 알면서 그런다.”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니. 안 해도 된다고. 그런 것으로 내 위신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할머니는 그럴 수 있지만, 할머니를 바라보는 수많은 해적과 자유섬민들은 안 그렇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죠! 아니면 한 번 푸닥거리를 하시던가요!”

“아이구.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힘이 드는구나. 나도 이제는 필부(匹婦 :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갈 때가 된 거지.”

“할머니 설마? 진짜?”

“그래. 이제 다음 시대가 떠오를 때가 되었지. 그렇게 혼란하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럼? 누구. 누가 다음 대의 황제가 되는 건데?”

“왜. 네가 할 생각은 없고?”

“아! 진짜! 할머니! 나는 황제 이런 거 관심 없는 거 알면서 그런다!”

“쯧. 지 어미를 쓸데없는 것까지 빼다 박아가지고. 내가 바다에서 황제란 무엇이라고 가르쳤더냐.”

“바다에서 거칠 것이 없는 자. 그 누구도 바다에서는 감히 고개 들 수 없는 자.”

“그치. 아마 다음 대는 조금 다를 것 같기는 하지만. 재밌을 것 같더구나.”

“뭐야? 정해 놓은 거야 이미? 그럼 빨리 데리고 와서 세우고 가자!”

“황제라는 자리는 남이 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알지 않더냐. 질서를 위해서는 혼란이 필요하단다.”

“솔직히 할머니가 나서면 한 큐에 해결될 일인 건 알고 있지?”

“하지만 일시적임을 너도 알지 않느냐. 다시 불만이 튀어나올 것이고 다시 욕심이 튀어나올 것이란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만담 같아서 재밌는데 그 중함은 생각 이상이어서 재밌어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한 것이 생겨서 안 끼어들 수가 없었다.

“누나. 누나는 왜 생각이 없는 거야. 누나만 하겠다고 하면 할머니는 오히려 좋아하실 것 같은데?”

“그치?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다. 말이 황제지 아주 그냥 자기 멋대로야.”

바로 나온 할머니의 답변을 무시하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말하는 누나.

“범아. 내가 왜 해적이 되었는지 알아? 마음껏 바다를 항해할 수도 있고, 약탈도 가능하지. 합법적으로다가.”

사실이긴 했다. 블레어 왕국과 시디야 왕국, 그리고 한 제국에서 실시하는 훈련이기도 했다.

각 함대들이 훈련할 때 항상 해적의 공격에 대비한다. 그리고 그를 파훼하고 약탈을 하는 것.

다만, 살생을 자제하도록 부탁을 받았을 뿐이다.

“남의 배를 부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지? 거기에 내 기가 딱 달리면 도망가는 배를 보는 그 즐거움!”

정상으로 보이던 누나가 조금 위험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해적들의 수장이 되면 그런 맛이 없어요. 뭘 하지도 못 해. 괜히 오해나 받고, 귀찮아 아주.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그걸 지금 나한테 계속하라는 건 무슨 심보니?”

“할머니는 할머니가 너무 잘나서 황제가 된 건데 어쩔 수 없지.”

“하. 진짜 말하는 것하고는. 그래서 어쩐 일로 네가 여기에 이 시간에 온 것이냐.”

“아니! 할머니를 모시러 왔다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범이에게 이야기를 해도 좋으니 이야기를 해보거라.”

손녀와 할머니의 말랑한 분위기는 삽시간에 사라지고, 싸늘한 누나의 말이 튀어나온다.

“넋 빠진 새끼들이 꽤 많습니다. 5대대에서 8대대까지 전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9대대의 도움을 받아 확인한 사실이니 정확할 것입니다.”

“하. 이래저래 어린아이들이라 생각은 했다지만, 전부라 이거지. 그래도 4대대는 어떻게 되었더냐.”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이라는 거겠죠.”

“쯧.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내가 뒤집어엎고 싶지만. 이제는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겠지.”

“장미를 짊어지고 있는 부대장으로 한 말씀 드려도 됩니까?”

“그래. 해보렴.”

“저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선장님께서 나서지 않으시고 그들을 두는지. 3대대가 아닌 1대대만 나서도 정리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들 또한 자유섬의 도민이고 해적이기 때문이란다. 다만, 책임도 자신들이 지어야겠지. 내 우산에서 나간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

“그렇다면 생각하시는 후계를 말씀해 주세요. 저도 그 후계를 만나고 시험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그래. 너라면 그럴 수 있지. 막내 손주야? 잠시 오이겐이 있는 곳으로 가겠니? 이건 아직은 네가 알면 안 되는 일이니.”

“네. 먼저 나가 있을게요!”

감사한 일이었다. 후계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1층의 후문으로 나오자 텃밭이 존재했다. 신기하게도 바다에서 자라는 풀들이 있었다.

“땅을 파서 바닷물이 들어오게 하신 건가? 신기하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형태의 텃밭이고 정원이었다. 땅을 파서 바닷물이 강처럼 흘러들어오고 나가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노란 꽃대의 꽃들이 아직 피지 못한 채 잎이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오이겐은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공간이 있다며 달려갔다. 바로 텃밭을 지나서 있는 작은 별관이었다.

오이겐이 있는 장소로 가면서도 주변의 꽃들에 눈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예쁘지? 저게 꽃이 피면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는 하얀 꽃이 핀단다. 오직 이 섬에서만 자라는 꽃이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자신에게 이렇게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에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꽃의 이름이 뭔지 아니? 상사화(相思花)라고 한단다. 잎은 꽃을, 꽃은 잎을 보지 못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로 안 것이 아니라 그가 등에 메고 있는 것으로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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