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볼품없는 동전.
그 동전이 바다의 황제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자판에서도 판매조차 안 될 동전에는 열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한 면에는 배 두 척과 태양이 새겨져 있었고, 다른 면에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ad solem] 태양을 향해서라는 고대어라고 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그냥 동전.
동전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할머니께서 입을 여셨다.
“이 동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니?”
“듣기로는 할머니께, 아니 바다의 황제에게 부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걸 알고도 그냥 주는 이유가 뭘까?”
“그냥. 할머니니까요. 이미 더 큰 걸 받기도 했구요.”
담담한 자신의 대답에 말없이 머리만 쓰다듬던 할머니가 다시 입을 여셨다.
“이 동전은. 세상에 단 세 개만이 존재하고 있단다. 알고 있니?”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자신이 할 말도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래. 아마 자식 중에는 구문만이 알고 있을 게다. 그리고 늙은이들만 기억하는 과거가 있지.”
그러면서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듯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옛날, 옛날에 바다를 호령하던 해적이 있었단다. 어느새 바다를 평정하고 쉼이 필요했을까. 궁금증이 도졌을까. 대륙으로 나가기로 했단다.”
할머니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조용히 하고 듣기 시작했다.
“어느새 대륙을 돌다 보니 수호성에 도착하게 되었단다.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이기에 머물 집을 구했지.”
미소가 떠오른 것을 보니 참 즐거운 기억인 듯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남자를 만났단다. 그 사람은 자신이 남자와 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다 향이 짙게 나는 그 남자는 한순간에 그 사람의 마음을 빼앗았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사제였던 거였지. 그것도 그냥 사제가 아니라 신전의 바다를 책임지는 총 책임자.”
자신에게 동전을 준 선장님이 떠오른다. 씁쓸해하며 동전을 건네주던 선장님.
“그 해적은 고민 끝에 자신이 해적임을 밝히기로 했단다. 그런데 해적임을 알고도 그 남자는 상관하지 않았지. 아니 오히려 바다의 질서를 잡았다고 칭찬을 해 주더구나. 다만 살생을 이제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부탁만 할 뿐.”
“그렇게 두 사람은 수호성에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할머니에게 자식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해적은 매년 몇 달은 바다에 다녀와야 했지. 그래서 아이가 생긴 것을 안 후로 회의를 만들어 일 년에 한 번, 길지 않게 다녀올 수 있게 만들었단다.”
‘해년회의가 그래서 만들어진 거야? 와. 진짜 신기하다.’
“아이는 엄마가 일 년에 한 번 그렇게 다녀와도 언제나 웃으며 맞아주었고, 남편도 그렇게 맞아주었지.”
그러다가 이내 씁쓸한 표정이 되는 할머니였다.
“그 해적은 가정에서 평안을 느꼈는지 정체되었던 경지가 오히려 올라갔단다. 마스터가 된 것이지.”
‘마스터가 되기도 전에 바다를 평정한 거였어? 진짜. 할머니 대단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7살이 될 무렵 일어났단다. 그 남편도 마스터가 되면서 초인에 대한 꿈이, 다음 세계에 대한 꿈이 생긴 거지.”
그러면서 동전을 꽉 쥐는 할머니.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는 듯했다.
“그렇게 매일을 싸우며 지냈지,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무렵인가? 그 남편은 초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나를 두고 떠났단다.”
‘그런데 선장님은 초인이신데도 아직 남아있는데?’
“그리고 그 아이는 사고도 많이 쳤지. 지가 고아들과 함께 돌아다닌답시고 음식을 훔쳐먹기를 하지 않나. 그래도 참 즐거운 기억이란다. 웃긴 건 그렇게 훔쳐온 음식을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나눠 먹었다는 거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웃긴 기억이신지 피식피식 웃으시는 할머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그 해적은 아이를 홀로 키우다가 아이가 15살. 홀로서기를 할 무렵에 돌아왔지. 그리고 그 아이는 같이 음식을 훔치던 친구들과 잘 나아가더구나.”
‘근데 그 아이는 누구지?’
“그리고 그 아이가 수호 용병단의 단장이 되었을 때 너무 기뻤지. 그리고 동생들이 생겼다고 했을 때도 정말 기뻐해 주었단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못난 어미도 끝까지 사랑하는 내 생애 최고의 보물이지.”
‘설마. 아니겠지?’
“그리고 그 자식이 네가 아는 부발이란다.”
“단장이, 아니 부발님의 어머니가 할머니셨어요?”
진짜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으시던 단장이었다.
“그렇지. 단장이 되기 전에는 나 때문에 괜한 사건에 일으킬까 봐 말을 안 하고, 후에는 나를 위해서 말을 안 하고 다닌 아들이지.”
아공간에서 귀하게 보관하고 있던 책을 꺼내서 할머니께 드린다.
“어머? 아들이 내 손주를 정말 좋게 보았나 보구나. 이걸 준 걸 보니.”
“어떻게 단장이 이런 걸 가지고 있나 했더니.”
“어릴 적 부발에게 만들어준 동화책 같은 거지. 내심 해적이 되기를 바랬는데, 수호 용병이 되더구나.”
‘단장. 부모님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었잖아? 진짜 와 이건.’
아직도 머릿속에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한도 이상의 이야기를 들은 느낌.
아버지는 신전의 바다를 책임지고 어머니는 바다의 황제. 그리고 아들은 수호 용병단의 단장.
무슨 괴물 같은 집안이 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구성이었다.
“뭐 그래도 아들과 그놈은 나름 해후를 한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안 되더구나.”
“당연하죠! 정말 왜 그랬나 몰라요!”
“그래서 이 동전의 이름이 남은 자의 동전이란다. 한때 취기에 나도 모르게 말 해버리고만 이름이지.”
“정말. 정말 힘드셨겠어요.”
“뭐. 처음에는 힘들고 당분간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들 덕분에 일어서야만 했지. 그래서 돌아와서도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눈이 가더구나.”
“특히나 구문 그 아이는 정말 눈을 사로잡았지. 부발도 구문 그 아이에는 쥐약이나 다름없지. 동생 사랑이 나보다 더하니 원.”
괜히 단장의 사무실 탁자에 소중하게 놓인 조약돌이 생각이 난다.
‘그때 조약돌 보고 세상에서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보물이라면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줬다고 했는데.’
“퍼그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진짜 가관이었단다. 거기서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지. 정말.”
그 이후로도 자신의 이야기를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셨다.
“이제는 때가 되었구나 싶구나.”
“네? 무슨 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물러날 때지. 나도 이제 은퇴하고 정말 편하게 살 때도 되었지.”
“네? 은퇴요? 하지만.”
바다의 황제가 은퇴를 한다. 그것은 제국의 황제가 선위(禪位 : 왕위를 다음 왕에게 물려줌.)을 하는 것과 같았다.
다만, 문제라면 지금 해적들에게는 명확한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슬슬 여기저기 불만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마당이니. 그만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더구나. 그리고 싹이 보이는 놈도 있고.”
여기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훌트누님이었다. 어머니의 장녀.
“이게 다 네 어미 때문이란다. 내가 굳이 나가지 말라고 말라고 해도 나가버려서. 쯧.”
그렇게 말씀하셔도 충분히 기뻐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자유섬을 정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고여있다 보니 영 혼탁한 것들이 들어오니 말이다.”
“혼탁한 거라고 하시면?”
“각 대륙의 범죄자들도 있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장려하는 [맘몬]도 있고 말이다.”
‘[맘몬] 비밀 결사 아니었어? 뭐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사실 그런 것 치고는 [맘몬]을 언급하는 이들의 면면이 지나치게 화려하긴 했다.
카인의 아버지, 오즈안님, 거기에 할머니. 그래도 뭔가 김이 빠지는 느낌이기는 했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내려놓으려 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구나.”
“하지만, 그러면 너무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바다가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바다의 황제라는 절대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존재 하나로 블레어도 시디야도 그 한 제국도 바다에서는 함부로 하지 못 한다.
하지만, 그 황제가 은퇴를 한다면? 각국에서 요충지인 자유섬을 그냥 내버려 둘리 없다.
“그 정도 혼란도 못 이기면 내 자식이라고 할 수 없지. 그리고 그 혼란이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거 같구나.”
문득 할머니께서 방금 언급하신 싹이 보이는 놈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 슬슬 다음 세대로 진입하는 시기니, 시기도 얼추 맞을 것 같구나. 너무 오래 있었어.”
그러면서 회한이 서린 얼굴로 하늘을 보는 할머니의 모습은 조금 후련 해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거라는 그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봐둔 싹이 있다는 그 사람 말인가요?”
할머니의 뒤를 이를 사람이라. 누군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그런데 또 모르지, 누가 혜성처럼 나타날지.”
“훌트누님이신가요?”
그 이름을 듣고 갑자기 웃으시는 할머니.
“그 아이는 누구 위에 설 수 있는 아이는 아니란다. 아마 곧 보게 될 거다. 이제 늦었으니 들어가 볼까?”
그러면서 일어나는 할머니를 뒤따라 들어간다.
‘누구지? 다음 세대의 황제가?’
*
그렇게 들어가면서 고민을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벌써 해년회의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드디어 성공한 날. 아니, 성공을 확인하는 새벽이었다.
“됐어! 이제 지금 수준에는 아무래도 이게 최선인 것 같다.”
오이겐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날에서 오러가 사라졌다.
“진짜. 완벽한 분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네 재능은 괴물 같구나.”
“아니, 재능이 괴물 같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어색한 건 왠지 모르겠어.”
“그만큼 기본 재능이 발아하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어렵다는 거겠지.”
“그리고도 갈 길이 멀다는 점이 암울하기는 하지만.”
오이겐과 3개월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무(武)와 재능. 양면 모두가 생각 이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
‘생각하지도 못 한 일인데,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이겐의 평에 따르면 자신의 무는 살검(殺劍)도 아니고 무도(武道)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라고 했다.
‘무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익힌 주제에 살검을 펼친다고 했지. 진짜.’
뼈아픈 말이고 도저히 인정이 안 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대련으로 알게 된 사실이기도 했다.
‘후. 진짜 이건 머리가 너무 아픈데.’
일단 뒤로하고 1주일 후에 열릴 해년회의를 참석하기 위해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빨리, 빨리 오라고! 왜 그렇게 굼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로즈 아일랜드가 존재한다. 이름 그대로 황제의 섬. 그리고 그곳이 공식적인 할머니의 주거지이자 영역이기도 했다.
해년회의가 벌어지는 1달의 사이 이곳에 각국의 인사들과 사제들 그리고 해적들과 구역주들이 참가한다.
‘진짜 할머니가 대단하긴 하지. 할머니에게 보고하려고 각지에서 오는 것을 보면.’
해년회의가 개최가 되면 섬이 일정 부분 공개되는데, 그때 수많은 장인과 상인들이 찾아온다.
배를 팔기 위해서, 아니면 투자를 받기 위해서 또는 새로운 상품을 팔기 위해서.
해년회의는 참석하는 이들이 이들인 만큼 한 번의 거래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오이겐이 이 새벽부터 자신을 들들 볶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진짜 이 기간이 아니면 사람이 복작복작한데 있지를 못한다고! 빨리 와!”
오이겐은 푸른색 망토를 입고 있었는데, 그 망토를 잡아주는 핀에는 금빛 장미가 새겨진 브로치가 있었다.
“진짜! 할머니 증표도 없으면 목숨이 위험한 양반이 뭐가 그렇게 급해요!”
골드 로즈의 공식적인 손님이자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 그 증표가 있으면 로즈 아일랜드에서는 절대적인 안전이 보장된다고 한다.
“진짜! 너 혼나볼래? 내가 이런 거 없어도! 어!”
“그럼 벗고 가보시던가!”
그렇게 투닥거리며 해안가로 향하니 할머니께서 선수에 서서 우리를 보고 계셨다.
“진짜 저 배는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돼.”
“그쵸?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이내 오이겐과 함께 [Melvillei]에 승선을 한다. 승선을 하자마자 할머니의 손길에 배가 움직인다.
“진짜 괴물 같은 할망구.”
“괴물한테 물로 던져짐 당하고 싶니?”
여전히 투닥이는 두 사람을 싣고 [Melvillei]는 도도하게 항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