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이. 자신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물이 분간될 무렵 자신의 재능이 [절(切)]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어의 뜻도 모르지만, 머릿속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7살이 되고 재능의 고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알았다.
자신은 기본 재능이라는 것을. 재능 중에 가장 최하위라는 것을. 그리고 절망했다.
“아마 서너 살 때이지 않을까요?”
생각을 그렇게 돌아보니, 조금 신기하고 이상했다. 재능의 고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 자신이 기본 재능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관리자님의 말씀대로, 재능에는 고하가 없는 것 아닐까?’
고하라고 했지만, 사실은 분류이지 않을까. 그것이 위와 아래라는, 기본, 하위 등의 이름은 사람들이 붙인 것이니까.
‘뭔지 몰랐지만, 그 이름을 알고 난 후에 그게 뭔지 알았지. 그런데 그게 고하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의심이 들었다. 자신이 기본 재능이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와중에 로즈님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치? 우리는 사물의 이름을 알기도 전에, 우리가 무슨 재능을 타고 났는지 알 게 된단다. 그게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그런데 우리는 무나 마법을 배우고, 연금술을 배우고 다른 것을 배우면서도 선천 재능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조금 소름이 돋는 말이었다. 왜 그랬을까. 정말로.
“다른 것을 배울 때는 발전을 위해서, 더 나아지기 위해서 연습이란 걸 하지만, 유독 선천 재능에서는 그런 사람이 전혀 없단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이겠지.”
그러고서는 따라오라는 말씀을 하신 후에 밖으로 나가셨다. 집에서 이어지는 그 다리로.
다리에 앉아서 발을 바다에 담그고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무인이고 마법사고 모든 것을 떠나서 인간이지. 그리고 선천 재능을 타고 난 인간인 거고.”
어린아이가 마치 발을 찰방거리듯이 발을 찰방거리며 이야기를 하셨다.
“모든 선천 재능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지. 그것이 드러났든 안 드러났든.”
어느새 자신도 그 옆에서 같은 광경을 바라보며 바다에 다리를 담갔다.
“나 같은 경우도, 너 같은 경우도 드러나지 않은 거지. 나는 바닷길을 조금 읽는 것에 불과했으니.”
발이 찰랑거린다 싶더니 어느새 바다에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보니,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앞으로 나올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지.”
바다의 흐름이 더 선명해지고, 그 밑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해주는 듯한 흐름이 생겼다.
“그리고 그를 넘어서자 근본에 닿았지.”
흐름이 보이던 것에서, 바다가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근본에 닿고 나서 세상이 달리 보이더구나. 그리고 아직도 나는 길을 걸어가는 중이란다.”
작은 와류(渦流)가 생기면서 작은 물고기들이 그 안에 묶이고 헤엄친다.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데, 저게 그냥 선천 재능이라는 거구나.’
“그런데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단다. 자신이 쌓아 온 것만을 보려고 하지.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역행(逆行)이란다.”
“역행이요? 거스를 수가 있는 건가요?”
“대가가 필요하고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한 것 같지만, 하는 이들을 보니 그런 거 같더구나.”
“그런데, 그 역행이라는 걸로 초인에 이르는 힘을 얻을 수 있나요?”
“흠. 그것이 참 애매하단다. 갓 초인에 이른 이들과는 비등하지. 하지만, 길어질수록 필패한단다.”
“어째서죠?”
“역행하는데도 대가가 따르지만, 그 역행한 힘을 쓰는데도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지.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숨을 참는 것은 힘든 것처럼 말이다.”
‘재능에 집중하면 되지,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거지?’
“재능에 집중하기에, 그들의 머리는 너무 굳은 탓이겠지. 원망으로 시작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법이니. 그렇다 보니 쉬운 길을 찾는데 그를 제공하는 이가 나타난 거지.”
와류에 갇혀서 서서히 떠오르던 물고기들이 떠오르던 물줄기와 함께 떨어진다.
“네가 기본 재능이기에, 거기에 발아가 끝나고 나아가는 중이기에 더욱 잘 느껴졌을 거 같구나. 갓 초인에 이르러서야 작은 거부감만을 느꼈을 터인데.”
“마지막에 상대한 티거는 순간적이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의 적대감을 느꼈을 정도인데요?”
“아마 그 티거는 초인과 비슷한 힘을 지녔을 것이다. 다만, 그에 대한 대가가 따르겠지만.”
생각해 보니, 그 순간이동과 같은 움직임을 계속해서 쓰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을 듯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꽤 부담되는 표정이었지.’
본래 선천 재능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되는 일이 아니다. 체력이 먼저 지치거나 마나가 고갈될 뿐이었다.
“자! 그럼 바라는 바를 말해 보렴. 들어주마.”
“네?”
“호호호. 오즈안 그 영감탱이가 아무 말도 안 해줬나 보구나. 바다의 황제가 아닌 나 개인에게 하나의 부탁을 할 수 있단다.”
갑자기 오즈안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괴팍하고 꼬장하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오즈안님은… 천사였던 거야!’
“저를!”
“잘 생각해 보고 말하렴. 언제나 급하면 체하는 법이란다.”
그 말씀에 말하던 입이 닫히고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었다.
“해년회의 전까지, 제 선천 재능을 훈련시켜주세요. 티거를 이길 정도로.”
해년회의(海年會議) 바다의 일 년을 결정한다는 오만(傲慢)한 이름이 붙여진 회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오만하다고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시는 로즈님이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우리 딸내미가 나를 닮아서 아이 보는 눈이 좋구나. 좋다! 애매하기는 하지만, 들어주마. 그럼 갈까?”
“네? 어디로요?”
“어디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양반이 있는 곳이지!”
순간적으로 량이와 파울로님이 떠올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은 아니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섬 중앙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가시는 로즈님.
“어여 따라오지 않고 뭐하니?”
“네! 갈게요!”
그렇게 로즈님을 따라서 섬 중앙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있다는 곳이 이 섬이었나 싶었다.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나무와 덤불이 푸르게 세상을 덮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있었다. 지나치게 고요했다. 오로지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었다.
이렇게 푸르른 곳이면 다양한 생물들이 살기 마련이고, 그 생물들의 소리가 들리기 마련인데, 전혀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 근데 여기는 왜 아무런 생물이 살지 않아요?”
“그치? 너도 신기하지? 나도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지금 찾아가는 양반의 말로는 생명이 살기에 척박한 곳이라고 하더구나.”
그런 것 치고는 주변의 덤불과 나무들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났다.
“이곳에서는, 이곳에서만 자라는 저런 덤불과 나무를 제외하면 기본적인 온도가 높아서 생명이 못산다나? 화산 위라 물이 너무 뜨겁다나? 그런 복잡한 게 있다고 하더라.”
섬 자체가 따듯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정도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여러모로 신기한 섬이었다. 그 의문이 해소되니 찾아가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흠. 막내는 서대륙 사람이니 아무래도 파울로님을 떠올렸겠구나.”
“네! 그런데 파울로님은.”
“지금 막둥이랑 막둥이 예랑이랑 있겠지?”
“와. 무슨 이 자리에서도 모든 걸 내려다보는 능력이라도?”
“바다에서, 그리고 자유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모두 내 손에 있단다.”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이 뭔가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거대해 보였다.
“파울로님께서 인정한 양반이 있단다. 동대륙 태생으로 내 덕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뭐가 아줌마 덕분이야! 아줌마 때문에 내가 갇혀있는 거지!”
눈에는 이상한 것을 얹은 채로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중년이니 나오면서 카랑카랑하게 소리친다.
“웃기고 있네. 나랑 있는 조건으로 황제가 살려준 걸 모르나 본데!”
“거의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게 아줌마라고! 진짜 내가 억울해서.”
“하이고, 볼 때마다 아주 지랄은. 참 혈기왕성하다.”
“여기에 갇힌 게 벌써 5년이야! 나도 좀 나가서 살면 안 되냐!”
“조금만 기다려봐. 잘 이야기해 볼 테니까. 그러니까 왜 굳이 그런 짓을 해가지고.”
“동대륙은 너무 고착화 돼 있어! 발전을 하려면 흐름을 타야 한다고!”
“쯧. 조금만 영글고 조금만 겸손하면 시대를 움직였을 인물이.”
“그 인물을 잡아두고 있는 게 누군데!”
할머니에게 카랑카랑하게 대들지만, 그것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투정을 부리는 자식 같아 보이는 것은 왤까?
“그나저나 저 꼬맹이는 뭔데 여길 데리고 와? 나 보여줘도 돼?”
“내 첫째의 막둥이다. 인사해라 자칭 타칭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꼬장쟁이다.”
“꼬장쟁이라니! 오이겐이라는 멋진 이름이 있는데! 꼬맹이. 영광으로 알도록.”
“안녕하세요. 범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힐끗 바라보더니 마치 자신을 아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한다.
“흠. 생각보다 싹수는 있고, 보아하니 동대륙 출신에 수호 용병단, 그것도 불스 용병단에서 나왔나 보지?”
이어지는 말들은 5년간 여기에 갇혀있었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말들이었다.
“그러고 나서 자유섬으로 와서 서도에서 정착한 거 같고, 그 과정에서 구문을 만났나 보네. 정착이 아니라 곧 떠날 거였나?”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에 대한 정보가 술술 나온다. 놀란 눈으로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그냥 꼬장이가 아는 게 많아서 그런 것이고,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니 들어주려무나.”
“자랑이라니! 그저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할 뿐인데!”
“그게 자랑이다. 에휴. 왜 이런 놈에게 저런 머리를 주신 것인지.”
“하여간. 그래서 뭘 물어보러 온 거냐.”
대답하지 못하고,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사실 몰랐다, 그러자 웃으며 할머니께서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이 아이의 재능에 대해서 물으러 왔다. 잘 설명 해 주거라.”
“아니! 너무 자주 써먹는 거 아니에요? 아줌마 진짜!”
“힘써 보마. 아마 아주 좋은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 네가 그리도 원하는.”
그러자 눈빛이 변하는 오이겐. 그리고 진지한 자세로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퍽 웃겼다.
“아줌마. 내가 아줌마 믿는 거 알죠? 그래. 꼬맹이 재능이 뭔데?”
“[절(切)]입니다.”
그 말에 진지해졌던 오이겐님의 눈이 커진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다시 물으신다.
“너 혹시. 기본 재능이냐? 게다가 발아를 이미 마친?”
“네. 기본 재능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기본 재능이라고 말할 때마다, 알려질 때마다 나오는 반응이 있었다.
망했군, 왜 아직도 여기에? 쟤가? 기본 재능이 여기에?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단연코 저런 반응을 보이는 오이겐을 보면서 신기하고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내 생에 기본 재능이 발아를 한 걸 볼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꼬마가! 그리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다니!”
아주 신이 나고 아주 놀라고 아주 미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놀람이 자신에게 있었다.
“꼬마. 아니지 범이라고 했지? 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지? 기본 재능이라니! 근원에 가장 가까운 재능인데! 그걸 어떻게 벌써 발아를 시킨 거지? 그것도 절이라니! 공격적인 재능이잖아!”
그의 반응을 보면 마치 내 재능이 엄청 대단한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근원이라는 이야기가 또 나왔다. 그놈의 근원이 뭐기에 이렇게 호들갑인지.
“좋아! 아줌마. 아마 3개월 정도 있겠지? 아줌마도 있을 거고. 좋아 좋아 아주 제대로 미쳐보자고!”
“아효. 이런 반응일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더 심하구나. 아마 꽤 고생할 것 같구나.”
“네?”
“내가 감으로, 또는 그냥 경험으로 아는 지식을 총망라해서 정리한 아이가 이 아이란다. 그만큼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다는 거지.”
“그런데.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요?”
“이론은 실천하지 않으면 쓰레기라는 주읜데, 자신의 눈앞에 그 실천을 보여줄 대상이 나타났으니 저럴 게다. 그래도 공짜로 저 아이의 모든 것을 빼먹을 수 있는 기회니 나쁘지만도 않을 것이다.”
“범! 들어와! 아줌마도! 시간이 아깝다고!”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동굴로 다급하게 들어가는 오이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