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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120화 (120/217)

[120화]

“재능은 말이다.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란다. 찾아가는 것이고 궁리(窮理 :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함)하는 것이지.”

또 저런 뜬구름 잡는 듯의 이야기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이야기.

“사람들이 모두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단다. 그 어떤 힘도 사용하는데 대가를 지급해야 하지.”

다행히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것도 항상 고민하던 주제.

“그런데 말이다. 선천 재능이라는 게 웃긴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그 누구도 재능을 한계까지 사용한 적이 없을 정도로.”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제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당연한 것인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숨을 쉬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그렇겠지. 우리가 평생 숨을 쉬면서 살아가지만, 그 때문에 힘들어하지는 않으니.”

‘나도 내 재능을 쓸 때 전혀 그런 게 없기는 했는데.’

생각해 보면 왜 생각을 안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것도 오러와 마법을 자르는 괴랄함을 보이는데도.

“그래서 초인이 되는 것이 어렵단다. 평생을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만 할 뿐 아무런 궁구(窮寇 : 속속들이 깊이 연구함)도 궁리도 하지 않았으니.”

‘나는 내 재능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조금 해 본 적은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미미해서 생각했었고, 오러를 자르게 되었을 때 잠시 했었다.

“여러모로 궁리해 보니, 재능이란 건 말이다. 씨앗을 심는 것과 다르지 않더구나.”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발아(發芽)라고 명명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중위 재능만 되어도 그 씨앗 자체로 너무 강력한 힘이니 아무도 그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려 하지 않지.”

솔직히 자신 같아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편리하고 자연스러운 힘이다.

“그런데 나는 하위 재능을 타고 난 것에 더해서 환경이 좋았지. 내 재능이 무엇일 거 같으니?”

순간, 고요하던 물이 요동치던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떠오른다. 그런 하위 재능이 있던가.

“잘 모르겠어요. 물이랑 관련이 된 건가요?”

“하하하! 전혀 아니란다. 내 재능은 그저 바닷길을 잘 보는 것뿐이었단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는 재능이었지.”

대부분의 하위 재능, 기본 재능이 그러한 종류의 능력이었다. 그냥 보면 정말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싶은 재능들.

하위 재능과 중위 재능의 격차가 크게 인정을 받는 것도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나는 자유섬에서 태어났고, 그 당시에 작은 해적의 딸로 태어났지. 그렇기에 내 재능은 꽃필 수 있었단다.”

세상에, 무슨 저렇게 잘 맞아 떨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환경이었다.

“그런데 바닷길을 읽으려면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단다. 감이 좋아도 아무도 내 이야기를 믿지 않았지. 하위 재능이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궁리하기 시작했단다.”

로즈님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내 집중력도 더욱 높아졌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궁리했지, 왜 이렇게 나는 느끼는 걸까. 내 감은 왜 오는 건가.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솔직히 자신이 하위 재능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러더니 어느 순간 내 속에서 깨어나는 것이 있더구나. 그리고 알았지. 그때야 나는 내 재능을 자각한 것이라고.”

마치 그 순간이 자신의 재능을 무기에 담고 사용하게 되었을 때를 연상시켰다.

‘이번 생에서는 도축 덕에 빠르게 깨어난 거지.’

“그 후에도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단다. 틀린 적도 많았고 이상한 길로 들어선 적도 있었지.”

‘나는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게 잘못된 길로 가지는 않았단다. 근원과 가까운 하위 재능이어서 그랬을 테지.”

“근원이요?”

“그렇단다. 그건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고, 그렇게 지내던 순간 알게 되었단다 내 재능이 한 단계 성장했음을. 그리고 나는 바다가 흐르는 길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지.”

‘내 재능이 성장 한 거라 다르지 않은 느낌인데? 그래도 초인이 되는 거랑은 다른 거 같은데.’

“하지만, 그저 발아한 상태가 그때야 이르렀음을 나중에 알았단다. 겨우 싹이 튼 정도라는 게.”

‘그럼. 난 이제야 발아를 한 거라는 거구나.’

“하지만, 그 변화는 놀라울 정도였지. 발아한 것치고는 너무 큰 변화였지.”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 고작 발아한 것이 오러를 가르고 마법을 가른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작은 해적단의 선장이 되어있었지. 그리고 그 순간에 느낄 수 있었지. 내 재능이 비로소 한 단계 성장을 한 것이.”

너무나 재밌는 이야기, 그리고 알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이제는 흐름을 보는 것을 넘어서 그 후의 흐름도 보게 되었단다. 바다에서 나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 그 이후로 나는 바다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단다.”

그때가 비로소 골드 로즈 해적단의 무패 신화가 시작된 때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초인은 무슨, 익스퍼트에 불과했을 나에게 그저 재능이 큰 힘이 되었을 뿐이지. 지금의 홀트와 비슷했다랄까.”

‘자기 같은 기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 할머니를 두고 한 말이었구나!’

“재능을 자각하고 난 뒤면, 재능을 사용하는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단다. 궁리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리고 초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알았단다. 이제야 내 재능의 근본에 닿았음을.”

“근본이요? 근원과는 다른 건가요?”

“근원과 근본의 차이가 무엇인 줄 알겠니?”

근원과 근본. 모두 같은 뜻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냥 본바탕 같은 의미 아니던가.

“근본은 본질을 말하고 근원은 비롯됨을 말한단다. 조금 어렵지?”

조금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가 갑자기 형이상학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초인이 되는 것은 실로 간단하단다. 자신의 재능의 근본에 닿으면 된단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근원은 뭐고 또 근본은 뭐란 말인가. 근본에 닿으려면 뭘 해야 한다는 건지.

“쉽게 이야기하면, 나는 바닷길을 읽는 재능을 타고 났지만, 그 안에 본질은 결국 바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느끼게 되었고 그를 넘어서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단다.”

“바다를 사용한다는 말씀이신가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본 초인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바로 그렇지는 못하지. 처음에는 그저 파도 하나만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였달까. 그러니 초인들 사이에서의 격차는 상상할 수 없단다.”

일전의 장면이 기억이 난다. 물이 요동을 치면서 함선을 들어 올리고 빠르게 움직이게 한 그 파도.

“설마. 아까 그 파도를 움직이신 게 마법이 아니라.”

“마법은 무슨, 겨우 마스터에 늦깎이로 이르렀는데. 재능의 힘이란다.”

사기였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재능이 있다는 말인가. 최상위 재능조차 비빌 수 없는 능력이다.

‘바다에서 사는 해적이 바다를 다스린다고?’

왜 눈앞의 할머니가 황제의 칭호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바다에서 그녀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다를 다스리는데 그 누가 와도 어떻게 이겨. 해적 내에서 매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그리고 근원에 가장 가까운 재능은 기본 재능이란다. 그렇기에 시행착오가 적지.”

“하지만.”

“그렇지. 그렇게 좋은데, 왜 사람들이 재능을 깨우지 못하느냐는 것이지?”

“네. 세상에 기본 재능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나요?”

“그렇지. 하지만, 그만큼 깨우는 것이 말도 안 될 정도로 힘들단다. 하위 재능과 비교해도 수십 배가 차이가 나는걸.”

하위 재능과 수십 배. 그렇다면 중위 재능, 상위 재능 그리고 최상위 재능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전생(前生)에서 미친 듯이 베고 또 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나서야 미미하게 깨어났었다.

‘그나마 내 재능이 절(切)이라서 다행이었던, 아니 깨울 수라도 있던 건가. 나도 환경이 좋은 거였구나 오히려.’

포기하고 생각 없이 살려고 베었던 그 시간이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깨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세상에서 말랑해진 그 재능이 도축을 통해서 비교적 빠르게 발아한 것이리라.

“그래서 기본 재능을 일깨운 이는 비교적 똑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단다. 근원에서 비롯되기에 근본을 찾는 것이 쉬운 법이지.”

“그렇다면 저는 그저 베는 것만 해야 하는 건가요?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좋은 소식이자 나쁜 소식이었다. 자신은 급했다.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 말 뒤에 날아온 것은 강렬한 통증이었다.

“내 말은 도대체 어디로 들은 거니! 궁리하고 궁구하라고 한 것은 듣지 않은 것이냐!”

“하지만 많이 생각했는걸요?”

“빡!”

“얼마나 생각을 했느냐, 얼마나 궁리를 했느냐. 너의 기본 재능은 무엇이더냐.”

“제 기본 재능은 절(切). 자르는 것입니다.”

“무엇을 자르고 어떻게 자르고 왜 자르는 것이냐. 어디를 자르고 왜 그곳을 자르는 것이냐.”

끊임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단 하나의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너는 궁리하지 않았다.”

천둥처럼 그 소리가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네요… 저는 궁리하지 않았네요.”

“괜찮다. 여기 있는 동안 궁리할 터이니. 이제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모를 것이다.”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앞으로 갈 길이 보이니 힘이 난다. 그러자 다른 의문이 또 든다.

“할머니. 그런데 저 거부감을 느꼈는데, 혹시 뭔지 아실까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오즈안님은 아실 것 같았지만 내가 뵙고 싶다고 막 뵐 수 있는 분은 아니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로즈님은 알고 계실 것 같단 말이지.’

서도가 [맘몬]의 본거지 역할을 한다면 로즈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었다.

“아. 언젠가 때가 올 때가 된다고 하더니 그것이 지금인가 보구나. 그리고 그 사람이 너희들이고.”

알 수 없는 말을 하시면서 표정에 약간의 그리움과 슬픔이 스쳐 지나간다.

“비인(非人)을 만난 모양이구나. 게다가 네 재능이 기본 재능에 발아를 했으니 더 격하게 느꼈을 것이고.”

비인. 들었던 단어이다. 사람이 아닌 사람들. 강해지기 위해서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그 사람들이었다.

“비인을 만나면 무조건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나요? 저만 느끼는 것 같은데. 그리고 기세가 일어나지 않으면 느껴지지도 않았구요.”

“본능적인 거부감이 살짝 일기는 하지만 그리 크지는 않지. 하지만 재능을 자각하면 그 거부감이 더 커지고 발아하면 더욱 커진단다.”

“왜 그런 건가요? 무슨 짓을 했기에 선천 재능과 관련이 있는 거예요?”

“흠. 초인이 되기 위해서 도전을 했다가 절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 같으니?”

마스터의 수가 수백을 넘어서 천을 넘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드러난 초인은 11명.

숨어지내는 초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30명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다면 산술적으로도 3%도 안 되는 사람들이 겨우 초인이라는 경지에 오른다는 것.

아마 확률이 더 내려갔으면 내려갔지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청 많지 않을까요?”

“많지. 너무나 많지. 그중에는 천재들이 많단다. 마스터에 이르렀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재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려주니.”

“그런데 왜 그렇게 재능이 있는데.”

“무(武)나 마법의 재능과는 다르단다. 초인은 선천 재능에 따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쉬울 리가 없지 않니. 걸어온 길이 다른 것이란다.”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안 되었다. 무인들과 마법사들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평생을 갈고 닦은 무와 마법. 하지만 정해진 한계. 그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제약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절망을 선사했을까.

선천 재능이라는 활로를 열어주신 것이 이해가 안 갔다. 왜 하필 다른 것일까.

“왜 초인은 선천 재능에 따라서 나뉘는 걸까요.”

“사람들이 앞과 뒤를 잘 모르는 것 같더구나. 범아. 넌 선천 재능을 언제 알았니?”

그 질문에 자신의 재능을 자각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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