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바다의 황제. 이 세상의 모든 바다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지배하지 않는 사람.
역설적이게도 지배하지 않기에 모든 바다를 자신의 영역으로 둘 수 있는 사람.
모든 사람이 전설로 치부할 만큼 써 내려간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그런 사람.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초인 중에 하나. 수식어 하나하나가 너무도 화려한 사람.
그 사람이 있는 곳. 황제의 레어라는 곳에 자신이 들어온 것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이곳이 황제님이 사는 곳 이라구요? 제가 그곳으로 온 거라구요?”
“뭐 사는 곳은 아니지만, 지내시는 거처로 이어지는 동굴이지. 돌아다니실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이곳에 계시니 사는 곳이라고 해도 무방하겠구나.”
조금 더 걷다 보니 이제는 어둠이 찾아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빛의 구가 일어났다.
‘지금 영창도 없고, 시동어도 없이 하신 거지? 그런데 아까도?’
생각해 보니 일전에 그 날아가던 것도 영창도 아닌 시동어조차 없었다.
카인이 괜히 매번 시동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마법진을 사용하기에 영창이 필요 없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눈앞에 괴물은 시동어도 없이 너무나 숨 쉬는 것처럼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경지가 높은 거야 아니면 재능이 말도 안 되는 거야?’
“이런 잔재주는 그저 오래 살다 보면 할 수 있는 것이니 그리 놀랄 필요는 없단다.”
도대체 저게 잔재주라고 한다면 잔재주가 아닌 재주는 무엇인지 보고 싶을 정도였다.
꽤 걸은 것 같은데,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자 거대한 공동이 보인다. 신기한 점은 공동의 대부분이 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물 가운데 떠 있는 거대한 함선. 지금껏 보아왔던 그 어떤 함선보다 크기가 거대했다.
거대한 함선 두 개(@두 대)를 합친 것보다도 더 거대해 보이는 몸체에 전체가 검은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함선.
선미에는 [Melvillei]라고 적혀 있었다. 이 공동에 저런 배가 있다는 것도, 저런 배가 애초에 존재한다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언제 보아도 거대하고 수려하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미의 정짐이지.”
“저런 배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그럼. 어차피 대양만 갈 뿐이니. 한 제국이 최고의 재료를 준비하고 블랙 펄의 모든 장인이 달라붙어서 만든 선물이지.”
“한 번 운항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요?”
“그게 저 미인의 장점이지. 기본적인 항해는 자동으로 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성능.”
마치 자신의 배를 자랑하는 것처럼 말해 주는 러더님. 그런데도 그 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왔으면, 손님을 데리고 들어오면 되지 뭐 그렇게 말이 많누.”
“대모님!”
본래는 바다의 색처럼 푸르렀을 그 머리에 흰 머리가 절묘하게 섞이니 신비한 색의 머리가 되었다.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여전히 건강한 신체는 강인함을 함께 드러내고 있었다.
‘저분이, 바다의 황제라는 골드 로즈님. 이 세계의 정점 중 하나.’
이 세상에서 정점을 말할 때 대부분 세 명의 이름은 확정적으로 나온다.
신전의 교황 성하, 한제국의 황제, 그리고 바다의 황제. 그런 3인 중 한 명이 눈앞에 있었다.
성하를 뵈었을 때는 강자를 만난다기보다, 성스러운 분을 뵙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로즈님은 강자를 만나는 느낌. 그것도 정점을 만나는 느낌이다.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저 서 있는 자세로도 풍기는 아우라가 달랐다.
괴물 같아 보이던 러더님조차 그저 온순한 양으로 돌변시키는 힘이 있었다.
‘저게 정점이구나.’
강함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나리나는 것만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이번 막내는 왜 얼타고 있어! 할미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함대의 선수에서 이야기하시는데도 귓가에 꽂혀서 말이 들린다.
“안녕하세요. 어머니의 막내아들 범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를 뵙습니다!”
린과 럼니 형들이 반드시 지키라고 하면서 해주었던 말이 있었다.
‘황제, 대모 이런 말을 하면 오지게 맞는다고 했었지?’
“할미한테 뵙습니다가 뭐냐! 퍼뜩 올라와 봐라. 얼굴이나 보자.”
처음 본 순간에 자신이 누군지 알았다는 것은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했다.
러더님을 따라서 올라간 함대 위에서 보는 광경은 또 달랐다.
‘공동이 엄청 크구나. 여기를 어떻게 들어온 거지.’
어딜 보아도 출입 할 수 있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공동에 있는 물들도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하누. 난 막내 손주가 여길 온 것이 신기한데. 오즈안 그 영감태기 눈에는 또 어떻게 들었을꼬.”
신기한 생물을 보듯이 바라보던 로즈님은 이내 양팔을 벌리셨다.
“어디 한 번 안아보자꾸나. 내 빌어먹을 첫째 딸의 막둥이.”
엄청 어색하게 다가가서 품에 안겼다. 안긴 순간 파도가 자신을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항상 똑같이 움직이지만, 어느 순간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파도.
‘정점을 만나면 다 이런 걸 느끼는 건가?’
“호오? 꽤 재능이 많이 깨어나 있구나. 감도 좋고. 역시 기본 재능이라 다른가?”
그 순간 퍼그님의 말씀이 떠 오른다. 자신과 같은 기본 재능을 타고나 정점에 오른이가 눈앞에 있었다.
“할머니. 혹시 재능이.”
“아! 너도 들은 모양이구나. 하지만 아쉽게도 아니란다. 나는 기본 재능이 아니야. 아쉽지.”
뭐가 아쉽다고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기본재능은… 안 되는 것인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자신과 같은 기본 재능이 이 세계의 정점에 올랐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걸어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 되었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었다.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더욱 큰 절망으로 돌아왔다.
“빡”
“어린 노무시키가 뭔 한숨을 다 산 사람처럼 쉬고 있어!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진짜 별이 보였다. 공동인데도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느끼지도 못한 일격.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고 해도…’
문득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 치고 자신의 뒤통수를 갈기를 사람들이 너무 대단했다.
부발, 오즈안 그리고 로즈. 모두가 세계의 정점에 있는 초인이었다.
‘초인은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내가 이런 거지?’
“빡!”
한 대 더 맞았다. 진짜 아팠다.
“어린 주제에 이렇게 잘 나아가고 있으면 조금 만족할 줄도 알아야지. 어디랑 비교하는 것이냐.”
항상 자신의 속내를 훤히 다 들여보는 인물들 주변에 있으니 자신이 이렇게도 읽기 쉬운 사람이었나 싶었다.
“기본 재능은 가장 축복을 받은 재능이다.”
그러고 나서 대뜸 하는 소리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가장 축복을 받은 재능은 최상위 재능이고 그 밑으로 이어져 가장 바닥에 있는 것이 기본 재능이었다.
“쯧.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가만히 있거라. 러더! 잘 잡아!”
“크으! 이 맛에 내가 이 배를 떠날 수가 없는 거죠!”
여전히 선수에 있던 로즈님의 손길에 따라서 공동의 물이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벽으로만 보였던 바위가 한쪽으로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막내는 잘 버티고 있어라! 이 할미가 신나는 경험을 시켜주마.”
요동을 치던 물이 거대한 파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함선의 밑을 그대로 들어 올린다.
“가자아!”
나잇값을 전혀 못 하는 러더님의 외침이었지만, 이해가 되었다.
파도가 함선을 그대로 들어서 미친 듯이 밀고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너무나 유려하게 항해를 시작한다.
“요호호호!”
러더님의 신난 음성이 공동을 울리며 함선이 나아간다. 순식간에 동굴을 지나서 밖으로 나오자 거대한 섬이 눈에 보인다.
“이 할미의 집이 어떠하냐?”
순식간에 나왔다. 분명히 길이가 꽤 되는 것 같았는데 너무나 순식간에 끝나서 아쉬웠다.
눈에 들어온 섬은 너무나 순수했다. 녹음이 지고 바다의 색은 투명했다.
“와. 할머니 집이 이 섬이에요?”
“뭐. 내 집이기도 하고 1대대의 집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온전히 나의 장소이기도 하지.”
해안가에 작은 별장이 하나 지어져 있었다. 바다와 연결되는 다리가 있는 아담한 집.
어디선가 많이 본 집이었다. 조금 많이 다르지만, 분위기가 너무 비슷했다.
“러더. 너는 일하러 가! 빠져가지고. 대장 괴롭히지 말고!”
“진짜 서러워서 살겠나! 내가 안 하고 싶다고 했는데!”
“웃기고 있네. 어서 가라.”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에게 윙크를 한 번 한 뒤 별장의 앞에 있던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러더님.
“따라오거라. 오즈안 그 영감태기는 차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드니까. 좀 주마.”
닻도 내리지 않고 함선에서 그저 훌쩍 바다로 뛰어내린 로즈님. 그리고 별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하셨다.
“이곳이 어머니가 자란 장소구나.”
어쩐지 별장이 익숙 해 보이더니 어머니께서 이 별장을 본떠서 집을 지으신 것 같았다.
별장 안에 들어가니 수많은 사진이 눈을 채운다. 그중에는 어머니의 어릴 적 사진도 많았다.
작은 거북이 같이 생긴 배 옆에서 로즈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참. 말도 잘 듣는 아이었는데 어느새 커서 나갔지. 그것도 저 배를 가지고. 잘 사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Archelon]이라고 적힌 거북 모양의 배는 인상적이었고 유려했다.
“내 첫 배이기도 했지. 자유섬 부근에서만 돌아다닐 수 있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 어떤 배보다 날카로웠지.”
그러면서 사진 하나하나를 설명 해 주는 로즈님은 행복해 보였다. 사진의 설명이 끝나고 끓여주신 차는 꽃차였다.
“오즈안 영감이 금고(金庫)에 넣을 정도로 아끼는 차니 맛이 좋을 것이다.”
꽃 향이 방 전체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입안에 넣자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전신에 따스한 기운을 흘려보낸다.
“그래. 재능 때문에 온 것 같으니 재능 이야기를 해 볼까? 아마 성하를 제외한다면 나만한 이도 없을 터이니.”
담담하게 말하는 로즈님의 말에 다시금 기대감이 차오른다.
“그리고 가장 많은 초인을 본 것도 아마 성하를 제외하고는 나일 거고.”
그 말에 더욱 기대감이 차올라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자신을 괴롭히던 질문을 던졌다.
“재능이 뭔가요? 왜 도대체 초인이 되려면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건가요?”
“질문이 잘 못 되었단다. 재능이 있기에 이 세상에서 초인이라는 압도적인 강자가 나타나는 거란다.”
“그럼. 왜 기본 재능은 특별하다고 하셨나요. 솔직히 전혀 아니잖아요. 최상위 재능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데.”
“비교. 비교. 비교. 언제나 안 좋은 결말을 낳는 안 좋은 것이지만 젊은 너에게는 아직 와 닿지 않겠지.”
잠시 생각을 정리하시던 로즈님께서 역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내가 기본 재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럼 나는 어떤 재능을 타고 난 것 같으냐?”
그 질문에 잠깐 머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아니, 소망을 담아서 말했다.
“하위 재능일까요?”
“정답이란다. 난 재능이 하위 재능이었지. 운도 좋았지, 자유섬에서 태어났으니.”
절망감이 조금은 가신다. 이 세계의 정점 중 한 명이 하위 재능에서 났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사실 성하께서 가장 말도 안 되는 괴물이란다. 최상위 재능이 초인이라니. 이 세계의 모든 역사에서도 한 손으로 꼽히지 않을까 싶구나.”
들었지만, 여전히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왜 최상위 재능은 초인이 되기 어려운 것일까.
재능만을 두고 본다면 다른 재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는데.
“최상위 재능은 왜 초인이 되는 것이 거예요? 아니 초인이 되기 위해서 재능을 깨우고 넘어선다는 게 뭔가요?”
“재능. 그건 말 그대로 선물이란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근데 선물이 당연히 공평해야 하지 않겠니?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지 재능의 절대적인 차이는 없단다.”
마치 관리자님께서 해 주신 말과 같았다. 인간의 무지로 인해서 재능의 고하가 생겼다는.
하지만, 여전히 인정할 수 없었다. 재능은 눈에 보인다. 그 격차가, 힘의 차이가.
“재능은 말이다.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란다.”